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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혹시 내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캐릭터들이 있었나? 사실 히로인이 그 세 명보다 훨씬 많았던 건가?

        

       사실 많았다고 해도 내가 알 방법은 없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이상 원래 게임이 어땠는지 플레이해볼 방법은 없으니까. 어쩌면 위키에 쓰여있던 정보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제작자가 넣으려다가 만 더미 데이터거나, 게임상에선 얼굴만 등장하는 공략 불가 캐릭터일 수도 있다.

        

       미연시에서 공략 불가 캐릭터라는 건 자주 있는 법이니까.

        

       아니면 그냥 내 앞에 있는 이 선배가 너무 개성적이라 나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고.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도록 하자.

        

       나는 다시 한번 도서 위원장의 이름을 보았다.

        

       이름은 류바다였다.

        

       “원래는 위원장까지 맡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선배가 졸업하면서 나에게 맡기고 간 거니까…….”

        

       류바다의 말투는 다소 느긋했다. 이런 점까지도 만화나 게임에 나오는 문학소녀 같은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뭐, 읽고 있던 책은 문학이 아니라 과학책이긴 했지만.

        

       “아, 맞다.”

        

       이야기하던 류바다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때 그 선물, 동생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덕분에 잘 먹었어요.”

        

       “아, 네…….”

        

       아무리 봐도 이 학교에 널리고 널린 싸가지 없는 재벌가 아가씨들과는 다른 이미지이다. 그날은 그렇게 길게 본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시간은 없었지만, 이렇게 보면 조금 느긋한 성격의 좋은 사람 같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에요?”

        

       류바다가 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제가 이번에 부회장이 될 것 같아서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위원회가 도서 위원회 정도밖에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러 왔어요.”

        

       “아, 그렇구나.”

        

       류바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위원장들이 대부분 전학 갔다는 말은 들었어요. 위원 일을 그만둔 사람도 많다고 들었고…….”

        

       “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을 하는 걸까. 나보다 나이도 한 살 많으면서.

        

       혹시라도 이런 게임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월반 같은 설정인가 하고 봤는데, 딱히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다. 키도 나보다 크고, 발육 상태도 나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여기서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면 노안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반칙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이미 대화를 여기까지 해버린 상황이라 이제 와서 왜 존댓말을 하냐고 물어보기에는—

        

       “그런데 선배.”

        

       —좀 어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옆에 있던 소희가 불쑥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네!?”

        

       아무래도 이 선배는 소희가 무서운 모양이다.

        

       혹시 1학년 때 양아치들한테 괴롭힘이라도 당한 걸까?

        

       ……그냥 소심한 성격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지. 나는 애써 그런 불길한 상상을 치워버렸다.

        

       놀란 눈이 크게 뜨여서, 눈의 반 정도가 앞머리에 묻혀버렸다. 저건 저거대로 꽤 귀여운 인상이긴 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선배라는 이미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이야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에요?”

        

       “아, 아뇨, 그게…….”

        

       소희가 황당하다는 듯 묻자, 류바다의 시선이 마구 요동쳤다.

        

       “그, 신소희 씨? 는, 예사라 양?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조금 거칠다는 말을 들어서……. 조금 무서워서…….”

        

       “…….”

        

       침묵.

        

       음, 부정할 수가 없다. 실제로 소희는 내 앞에서는 유순하게 굴지만, 다른 애들 앞에선 상대가 조금만 신경을 거슬러도 바로 양아치모드가 되었으니까. 그것도 멱살을 잡고 한 대 때릴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양아치. 사실 나도 처음 만났을 때 얘가 누군지 바로 알아서 다행이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으면 진짜로 엄청나게 무서웠을 거다.

        

       분명히 중학생 때나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친구들이 있었을 텐데, 그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성격이 많이 소심해 보이는 류바다는 소희에게 완전히 겁먹은 모양이다.

        

       하긴, 처음 말을 걸었을 때도 소희가 책상을 세게 내려쳤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음.”

        

       대놓고 무섭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인지, 소희는 조금 당황해서 잠깐 말을 더듬다가, 이내 숨을 살짝 내쉬고 말했다.

        

       “제가 물어보고 싶었던 건, 선배가 왜 우리한테 존댓말을 쓰는가, 였는데요.”

        

       이번엔 겁먹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아, 그건…….”

        

       질문을 들은 류바다가 내 쪽을 흘끗 보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다시 아래로 살짝 내리깔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

        

       그러니까, 쫄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기야 아무리 원작이 미연시니, 뭐니 하더라도 한국 정서에서 자기보다 어린 후배한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어색하긴 해. 심지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동급생이나 후배한테 존댓말을 쓰는 캐릭터의 대사는 반말로 다시 번역되곤 하니까.

        

       완전히 학교를 졸업해서 아예 이 학교의 고등학생을 처음 만나는 거라면 차라리 존댓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후배한테는 반말을 쓰는 쪽이 자연스럽지.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다른 애들도 편하게 말하잖아요.”

        

       나는 일부러 조금 부드럽게 선배한테 말해봤지만,

        

       “네…… 편해지면 그렇게 할게요.”

        

       그런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거 철벽 치는 건가?

        

       *

        

       그런 식으로 중간중간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억지로 잡아 돌려놓으며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도서 위원회는 위원회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적은 부서라는 말이 나왔다.

        

       굳이 이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만약 그런 학생이 있어도 보통은 장학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산도 늘어나질 않아서, 신간도 제한적으로만 들여와요.”

        

       그래도 말하는 도중에 조금은 편해진 듯 말을 이상하게 줄이거나 더듬지는 않게 된 류바다는 그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큰 도서실인데도 들어오는 책이 별로 없어서, 의외로 책장은 휑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실속이 없으니 굳이 도서실을 찾아오는 학생도 별로 없고, 이용자가 별로 없으니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고, 예산은 동결되고……의 무한반복이라나.

        

       “그런가요.”

        

       하지만 그래서, 그렇기에 이 도서 위원회는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었다. 관련자 대부분이 장학생이니 전학을 가고 싶어도 갈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 뿐이니까.

        

       흠.

        

       과연, 그렇단 말이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원래 장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이런 말이렷다.

        

       그렇다는 건, 1학년 여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남학생이나 다른 학년 장학생들도 종종 이용한다는 소리다.

        

       나중에 학교 내에서 모일 장소가 필요하면 도서관으로 하면 되겠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원래는 도서 위원회의 위원회장도 돈 많고 싸가지 없는 종류의 인간일 거라 생각하고 기선제압부터 해보려고 왔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건 다행이었다.

        

       “도서 위원 정원은 다 찼나요?”

        

       “아뇨. 원래 인기가 없는 데다, 그런 직책이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적어서요…….”

        

       류바다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정원을 채울 생각은 있으시죠?”

        

       “네?”

        

       나의 질문에, 류바다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아, 그, 저는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늘어나는 건 좀…….”

        

       “…….”

        

       아니, 이렇게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이 그 파티에서 드레스는 어떻게 입고 있었을까.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헤어스타일을 원상복구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사람 혼자 머리를 풀어 다시 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성적이라기보다는 의외로 극도의 마이페이스라서 이런 사고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때 그 조용한 곳에서 혼자 손을 들고나와서 동생들과 먹게 음식 좀 싸갈 수 있냐고 물어본 사람이다. 그냥 소심한 사람일 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정원은 제대로 채워야 할 거예요.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위원들도.”

        

       “그런가요…….”

        

       뭔가, 이 사람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뇌가 어디로 빠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이야기는 제대로 가닥을 잡고 나가고 있는데, 그 가닥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사실 처음부터 잘못된 가닥을 잡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그런데 끝까지 가면 결국 하려고 했던 대화가 맞긴 하다.

        

       그래도 처음 만나는 선배 앞에서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머리를 부여잡거나 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말고 다음에도 볼 건데, 벌써 걱정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선배와 같은 학년 중에 위원장이나 위원을 할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

        

       내 질문에, 류바다는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가,

        

       “잘 모르겠어요…….”

        

       라며 고개를 젓는 것이다.

        

       ……진짜로 잘 모르겠는 거 맞지?

        

       혼자 생각하다가 도중에 생각을 이어 나가기 귀찮아진 거 아니지?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나는 이를 악물며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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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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