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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총성이, 그리고 폭음이 정말 미친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리고 안 그래도 충분히 엉망이었던 레오나르의 사업체가 물리적 감가상각에 노출되었다.

         

         한 덩어리가 되어 고물상 부지를 뒹굴던 감염체와 아군이 슬금슬금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이제는 제대로 ‘감염체들’이라 판단한듯, 멀쩡한 이들이 훌쩍 뒤로 물러나 무차별적으로 총탄을 퍼부어댔다.

         

         이게 엑사테크의 장점이자 단점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까? 기계 위주 병력이라 해킹 위험성도 있는 대신, 안에 진짜 동료가 들은 건 아니라 여차하면 버릴 수 있다는 게.

         

         “……아, 이제는 진짜 빠져나가야지.”

         

         일단 거기까지 구경한 나는 시야 공유를 자르곤 한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다른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후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도망친다가 아니라 빠진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이쪽 소요 사태가 내 손을 떠나갔어도 아리송한 레오나르 쪽 대치 상황은 그대로니까… 적당히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만 찾고 또 뒤지게 일해야 해서. 쯧.

         

         그나마 나야 몸과 소지품이 전재산이나 다름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해커였다면 거점과 장비를 잃은 시점에서 바로 작전 대실패였다.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레오나르!

         

         “으어억…!”

         

         …그러나저러나 지금 감쪽같이 사라지려면 대체 어디로 나가야 한담?

         창고 정문은 난장판이 벌어졌으니 불가. 사무실에 난 구멍은… 거기로 낑낑거리며 빠져나가다 눈에 띄면 굉장히 곤란해질 거고. 아, 저기 뒤에 쪽문이 있긴 하네.

         

         기운이 빠져서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했다.

         귓가엔 계속 치열한 외부 교전이 자아내는 폭음이 울리지, 연결된 전자기기가 하도 많아서 머리는 아프지, 눈치도 없는지 슬슬 배까지 고파오지.

         

         하여간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으리만치 복합적인 상황 속이었던 만큼. 툭.

         

         “…에이씨.”

         

         내가 호주머니에서 꺼내던 칼로리 캔디를 실수로 떨어트리고,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숙인 건 어찌 보면 일종의 예정된 우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부웅—! 우지직!!

         

         “!?”

         

         외마디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못했다.

         잠깐 허리 좀 굽혔는데 직전까지 내 상반신이 있던 위치를 웬 통나무 같은 쇳덩어리가 휩쓸고 지나갔다면, 오히려 존나 놀라서 호흡을 멈춘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나?

         

         하나 배우긴 했다.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감각이 둔해진 상태라면 바로 뒤까지 접근한 적을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도록 하자.

         

         그렇게 넘어진 상태로 멍하니 정비대에 틀어박힌 기계 팔을 한 번, 그걸 휘두른 놈의 면상을 한 번 쳐다보았다.

         

         – 후우… 이 쓸모없는 기동대 녀석들. 최소 한 명은 무조건 생포해서 기억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건만! 전혀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서는…. –

         

         ‘내 드로이드를 하나 빌리길 잘했지.’ 라던가, ‘위성 통신망 제어는 너무 반응이 느려 터져서 문제야!’ 라던가.

         

         알아먹기 힘든 혼잣말을 연신 주워섬기는 내용물이 과연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밖에서 바쁘게 싸우고 있어야 할 엑사테크 드로이드를 끌고 온 것과 살벌한 첫인사로 보건대 아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씨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게 벌써 몇 번째야…!?”

         

         – 잠깐! 이 해커 나부랭이 년이 어딜 도망을…! –

         

         상대가 뭔 분위기를 잡고 있는 틈을 타 냅다 일어나서 다시 사무실 쪽으로 달려나갔다.

         

         어딘가 조작이 불편한듯, 녀석이 우그러진 쇳덩이에서 팔을 곧장 뽑아내지 못한 건 기쁜 오산이었다.

         

         뒷문으로 나가는 길을 저 망할 게 몸으로 막고 있기도 했고.

         사실 움직임이 저렇게 부자연스러울 줄 미리 알았다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역으로 달려드는 게 무조건 맞았지만… 아으 결과론적 얘기는 나중에 하자.

         

         어차피 제대로 된 명령도 담지 못한 채 급하게 전기만 쐈더라도 별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방금 창고 근처에서 벌어진 개싸움에만 드로이드 서른 대는 휘말려 들어간 걸로 봤는데 아직도 포위망을 유지하던 기기가 남았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아까 분대장이 외곽팀이 어쩌구저쩌구 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하긴 메가코프 직원들이 병신도 아니고, 예상 외의 사태가 터졌어도 기존 목적을 완수하고자 인원 배분을 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 쓸데없이 성실한 새끼들.

         

         – 어이, 거기! 이제는 도망갈 곳도 없지 않나? 레오나르 놈… 아니지. 그쪽 의뢰주와 맺은 계약과 놈이 무슨 정신머리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아는 대로 순순히 얘기해준다면 죽이지는 않겠……. –

         

         쿵… 쿵!

         

         “후으… 후우!”

         

         흐트러진 호흡을 억지로 되돌렸다.

         놈이 뭐라 씨부리는 소리와 실내에서 드로이드가 연주하는 발소리가 합쳐져서 스트레스를 극도로 자아내서 짜증났지만 가까스로 짓뭉갰다.

         

         외부에서 맹렬하게 저항하는 도중인 감염체 군단을 불러들일까도 잠시 고민했는데, 과연 좀비 사태는 초반에 제압하는 게 최고라고. 아직 몸집이 충분히 불어나지 못한 그들에게 어거지로 와서 나를 도우라고 해봐야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았다.

         

         급한대로 이놈을 떼어낸다 하더라도 더 두껍고 견고한 포위망에 노출될 게 뻔하다. 어쨌든 드로이드는 계속 충원될 수 있으니까.

         단지 그걸 나도 이점으로 써먹을 수 있다 여기고 승부에 나섰던 셈인데 하필 가장 약한 타이밍에 가장 위험한 급소를 찔렸다.

         

         그래…… 내 약점은 직접 전투지 역시.

         이래서 여태 죽어라 조심하면서 다녔던 건데, 괜히 자리를 비운 어딘가의 바보가 원망스러워지려고 하네. 지금 딱 멋지게 나타나면 인정해준다 정말.

         

         제로야… 상대가 하필 엑사테크에 후방 지원 업무래서 괜찮을 거라고 여긴 건 나도 마찬가지긴 하다만, 내 팔자가 이렇게 사납다. 그러니까 제발 빨리 돌아와줄래? 응?

         

         지이익….

         

         입고 있던 자켓의 지퍼를 쭈욱 당겨 내리자 드러난 맨살에 서늘한 공기가 스쳐 지나며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는 벗은 외투를 허리춤에 질끈 묶었다.

         

         왜 갑자기 스스로 방어력을 낮추냐고?

         다소 즉흥적이었던 증식형 바이러스 아이디어와는 달리, 이런 식으로 압도적인 스펙을 자랑하는 기계형 적과 싸워야 할 순간을 대비해 생각해둔 게 있어서 그렇다.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원거리에서 해킹해서 내키는 대로 주무를 수 있다면 최고.

         그렇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는 지금처럼 돌연 마주쳐버린 상황에서 내가 무작정 손을 뻗고 달려든다고 무사히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전부 끝이기에.

         

         집중해서 네트워크의 바다로 입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태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으로 발동한 내 능력은, 정확히는… 손이 기점이 아니다.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상상해서 그렇지 본래는 피부라면 어디든 가능한 특성이었다.

         

         실제로 -그야 진짜 실제는 아니지만!- 네오 헤이븐에서는 포로 이벤트에서 해당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는 묶인 상태에서도 일정 확률로 감옥에 오작동을 유발해서 나갈 수 있었으니까. 현재의 나도 가능하리라 믿고 연습을 좀 했다.

         

         막말로. 근접전 성능 폐급을 자랑하는 아나스타샤가 이치에 맞지 않게 먼저 비장의 한수가 있는 것 마냥 달려들 이유 따위는 없지 않은가?

         정신을 집중해서 닿기만 해도 이긴다면 되려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차분히 기다리는 게 맞지!

         

         – ……엑사테크에 시비를 걸 정도로 담대한가 싶었는데 돌연 실성했나? 그 빈약한 몸은 뜬금없이 왜 드러냈. 아니, 피차 귀찮게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정신이 나갔다면 그냥 잡아가면 될 노릇이지. –

         

         ‘너 이 십……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나중에 꼭 찾아낸다.’

         

         “거… 마음대로 하시죠.”

         

         끼익… 하는 소음과 함께 문턱을 넘어.

         예의범절은 밥 말아먹은 소리를 지껄이는 오퍼레이터의 조작에 따라 드로이드가 사무실 안으로 진입해왔다.

         

         총구가 겨눠진 만큼 침착하게. 인신공격에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감추듯 천천히 두 손을 머리 근처로 들고 폭력적으로 반항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냈다.

         

         항복했다 생각하고 무방비하게 접촉해준다면 그걸로 좋다. 설령 겉이 절연 재질로 되어있어도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진다면 나로서는 이득이다.

         후방에서 기습당했을 때 깜짝 놀라서 어질러진 집중력도 어찌저찌 돌아왔으니 이 녀석만 제압해서 방패 삼아 나가면 된다.

         

         조금 치사하고 굴욕적이긴 하지만, 어찌 굴러가도 유리해진다는 계산 하에 의도적으로 취한 저자세.

         상식적으로 따져서 큰 허점은 없다고 여겼다. 연기가 어색해서 거짓 항복이라는 걸 간파 당하더라도 이 모습은 여러모로 방심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했으니까.

         

         –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게 아주 시건방져. –

         

         그렇지만 그런 계획은. 내가 여지까지 너무 품위 있고, 상호존중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사람들을 만난 탓에 망각했던 진실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세상에는 우매함의 봉우리라는 게 존재한다고.

         잘나신 메가코프의 관계자 중에서 애매하게 높은 직책에 있는 것들은, 때로는 사막에서 돌아다니는 무법자들보다도 더 병신 또라이 같은 새끼들이 많다는 것을.

         

         부웅…!!

         

         그저 내가 눈을 마주하느라 고개를 들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 다시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무쇠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요구대로 항복하러 나온 상대를 저런 걸로 후려갈기겠다고? 정말? 씨발, 하운드로이드랑 붙어도 넘어질 만큼 상대적으로 날렵한 몸체라고 해도 전투 목적 드로이드가 가진 출력량이 얼만데?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

         

         두 눈이 부릅떠진다.

         머리속으로는 수십 줄기의 뇌전이, 심장을 당장 터트릴 것처럼 펌프질하라 요구하면서도. 느려진 시야가 마치 주마등처럼 보여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내 지시에 복종하라느니, 안전한 곳까지 안내하라느니. 미리 떠올려 놨던 온갖 구체적인 명령들은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신에 급하게 떠올린 건 본능적인 거절. 생존이라는 간결하고도 절박한 명제를 건 낭떠러지에서의 발악.

         

         

         멈춰, 이 개새끼야아아—!!

         

         

         반사적으로 몸을 향해 당긴 팔뚝에서 영양제 먹던 힘까지 끌어올린 벼락이 뿜어졌다.

         아직 닿지 않은 상태. 하지만 없는 솜털마저 곤두선 피부와 과할 정도로 가까워진 합금 팔 사이에 낀 절연체 층, 공기를 가르고 뿜어진 그건 분명 벼락이었다.

         

         파지지지직!!

         

         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중앙부로. 꼴 보기 싫은 오퍼레이터 놈은 비록 멀쩡하겠지만 드로이드의 심장과 뇌에는 명확하게 닿았다.

         

         겨우 살았다. 이 인간한테 얼굴이 팔린 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급제점 이상이니 이제는 정말 안심해도 좋으리라.

         

         …………정말로?

         

         만약 이게 전부 모니터 너머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불과했다면 나는 쌩쌩한 모습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내 능동적인 대응이 현실이라 가능했다면, 이 후폭풍 또한 지독한 현실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으드득.

         

         멈추라고 명령했으니 멈춘다. 내 능력에 저항할 수단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당연하다.

         

         그러나 저 십새끼가 있는 힘껏 내갈긴 둔기가 그런다고 정말 바로 멈추냐면 글쎄, 발산된 신호가 중추 신경계를 접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당연히 소요되겠지.

         또 운동 에너지는? 사람이 마음먹고 팔을 휘두르다 멈춰도 끝에 가서는 흔들리고, 관절이 운동을 다 제어하지 못하면 정한 경계선을 살짝 넘지 않던가?

         

         우수하기 그지없는 엑사테크 정예 드로이드도 이미 닿아버린 물체에 전가되는 충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는 뜻이다.

         

         쿠당탕탕! 부딪히고 넘어진다.

         

         넘어졌다는 것조차 추측이다. 일그러지고 뒤집힌 시야와 의식이 흐릿해짐에 따라 느슨해진 올가미로부터 벗어나는 무수한 제어권들을 토대로 날아간 내 몸뚱아리가 어디 처박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일 뿐.

         

         원래 실렸던 힘에 비한다면 가볍게 맞은 건 틀림없다.

         다만 그 가벼움을 버틸 수 없는 측에 속했다는 사소한 문제점이 내 패인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외투를 허리가 아니라 머리에다 싸맬 걸. 그럼 피라도 덜 흘려서……. 아니, 그래도 버티는 건 힘들었으려나.

         

         최초로 전신이 아프고 얼굴 근처가 뜨끈한 감각에 공포심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 온기와 통각마저 아득히 멀어지는 감각이 몸서리쳐지도록 두려웠다.

         

         ‘…망할.’

         

         괜한 객기를 부렸다는 후회가 먼저, 뒤를 이어 이길 기회가 분명 많았는데 전부 바보같이 놓쳐버렸다는 분함이, 마지막으론 현실적인 걱정이 치솟았고.

         

         ‘진짜 여기서 이대로 기절하면 안 되는데… 분명 지원 병력이 더 몰려올 텐데…… 하.’

         

         그렇게 나는 깨어날 기약조차 불분명한 무의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각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전투씬은 무조건 오늘 내로 다 쓰고 만다…! 하고 쓰다보니 마감 시간이 훌쩍 넘었네요.
    기왕 늦은 거, 내일 치라고 생각할까~ 잠깐 못된 생각을 했는데 이걸 또 반으로 자르면 집으로 암살자가 오겠다 싶어서. 네.

    맛있게 드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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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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