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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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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이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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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도 이런 고민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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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도 몇 번씩 제스와 노아에게 동시에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고, 어느새 여자가 되어 거리감 없이 다가오는 아이리스의 행동에 다급히 감정을 잘라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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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잠깐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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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낙 급박한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오다 보니 깊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자각이 너무 늦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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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사랑 못 받고 컸다는 거! 사랑에 집착하는 것도 알아! 아는데…! 이,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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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못 받고 커서 다가오는 사랑은 전부 삼키고 본다?
    ​
    ​
    문제는 자신에게 애정을 보인 존재가 네 사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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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던 네스트 조직원들의 애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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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건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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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고백했던 사람들도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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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애정과 사랑에 집착한 거라면 눈동자에 애정을 한가득 담은 채 자신에게 고백하던 모든 여자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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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론 리안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전부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진실이었다고 해도 네 사람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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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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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머릿속은 저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끙끙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을 마구 쓸어내리기도 하고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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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난 얼굴만 이쁘면 전부 사랑하게 되는 헤픈 사람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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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매우 크게 삽질하기 시작했을 그 시점, 엘렌시아 그녀가 리안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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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카만 세계의 유일한 빛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리안이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나아가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흥분으로 머릿속이 마비되어 튀어 나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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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주인 만난 제스처럼 아니, 강아지처럼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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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응? 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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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반사적으로 뱉은 비명과 달리 통증은 없어 금방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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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마,마왕? 엘렌시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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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평소 보이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어디다 던져둔 건지 환하게 웃으며 리안을 끌어안았다. 리안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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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가 많이 닿아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하필 제 감정을 자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감각이 맞닿은 온기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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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러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하고 거리를 두고 떨어지고 나서야 리안을 이성을 붙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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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를 통해 리안이 알게 된 정보는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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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 그녀는 죽은 후 주마등을 보던 중 벽을 부수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수 없어 모르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엘렌시아의 표정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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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리안도 죽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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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빠르게 이어지던 생각을 잘라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망스럽고 -… 한편으로 기대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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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이라도 그와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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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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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가 죄악감에 잠겨있는 사이 리안은 그녀와 헤어진 후 있었던 일들을 제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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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와 동굴로 대피한 후 눈을 도르륵 굴리며 볼을 붉히는 모습에 엘렌시아는 죄책감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질척한 질투에 빠져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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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수인들이 모여있던 야영지에 대해 설명을 하다 ‘발정 사건’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전보다 더 붉혔다. 엘렌시아는 말 없이 리안의 옆에 더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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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통 감정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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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만 있다면 창문 하나 없는 탑에 가둬두고 자신만 보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미는 걸 느끼며 그녀는 가만히 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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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덜 귀여웠어도 가둬버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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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을 보니 화르륵 타오르던 감정도 누그러져 버렸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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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얼굴에 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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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니다. 그녀는 마왕성에서 살며 온갖 잘생긴 얼굴들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동했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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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는 개미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관심이 안 생기는 것처럼 그녀 또한 마왕성에서 일하는 이들이 어떤 성별을 가졌든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리안을 만나지 않았다면 본인을 무성애자라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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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그녀는 ‘리안’에게 약할 뿐이었다. 그가 제대로 된 이목구비조차 없는 슬라임이었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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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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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새삼 제 감정이 사랑이 아니면 어쩌나 했었던 고민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엘렌시아가 제 감정을 확신하는 사이 리안의 설명을 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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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렸을 땐 이 끝도 없는 어둠 속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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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너는 어쩌다 여기에?’란 의미를 담아  마왕을 바라보았다. 온전히 자신만을 담는 시선이 좋아 그녀는 대답 없이 집요하게 리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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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적이 3초 정도 이어지자, 리안이 귓바퀴를 붉히며 눈동자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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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마왕의 미모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 오래 바라보기 힘들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떨리는 걸 느끼며 리안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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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 그런 리안에게 새하얀 손이 성큼 다가와 턱을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매혹적으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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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할 땐… 나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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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눈빛과 말투는 명령이나 다름없어 리안은 홀린 듯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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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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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그녀가 눈꼬리를 휘어 유혹적으로 웃으며 부드럽게 리안의 턱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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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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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는 듯한 목소리가 오싹할 정도로 듣기 좋아 입을 살짝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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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와아.. 이, 이게 홀린다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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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자신이 노아와 제스가 있던 감옥이 아닌 마왕성에서 눈을 떴다면 그녀에게 홀려 세상을 가져다 바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선 마성의 기운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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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며 한입에 꿀꺽 삼켜질 것 같은 위기감이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제스와 함께 있을 때 느끼던 위기감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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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정말 짐승이 먹이를 물어다가 사냥하는 느낌이라면 엘렌시아는 뱀이 먹잇감을 온몸으로 칭칭 감아 천천히 녹여 먹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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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다 잡아먹힌다는 결과는 같았지만 엘렌시아 쪽이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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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녀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놓을 뻔한 이성을 붙잡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리안을 보며 엘렌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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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 생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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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릿속에 ‘역시 마왕은 마왕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온갖 잔혹한 생각이 가득 찼지만 빠르게 흩어졌다. 어차피 그녀는 죽어 실행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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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모르는 사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리안은 벌써 30번도 넘게 감금당했다. 리안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와 3m 정도 거리를 두고 앉을 만큼 오싹한 사실이지만 그가 이를 알 방법은 없었다.
    ​
    ​
    엘렌시아는 어떻게 해야 리안을 한입에 꿀꺽 삼킬 수 있을까 눈을 번뜩이며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던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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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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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다는 수줍은 마음은 살아있을 때나 가질 수 있는 사치이자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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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진 죽음의 길을 벗어난 순간부터 그녀는 언제 소멸 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매초가 그녀에겐 그 어떤 것보다 귀했기에 내숭을 부릴 시간 따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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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이라도 제 흔적이, 기억이 리안에게 남길 바라며 솔직한 충동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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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렇다고 선을 넘을 생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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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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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 할 수 있느냐 없느냐 -… 같은 자잘한 생각을 떠나서. 지금 중요한 건 제 욕구나 미련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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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살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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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과 달리 그는 죽지 않았다. 죽음과 가까운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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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붙잡고 싶다는 저열한 욕망이 넘실거렸지만, 그보다 그를 평온한 삶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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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해도… 반드시 그를 살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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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으로 소멸까지 각오한 순간, 저릿한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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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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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게 맞아..?’

리안도 이런 고민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 번씩 제스와 노아에게 동시에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고, 어느새 여자가 되어 거리감 없이 다가오는 아이리스의 행동에 다급히 감정을 잘라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잠깐의 고민이었다.

워낙 급박한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오다 보니 깊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자각이 너무 늦고 말았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사랑 못 받고 컸다는 거! 사랑에 집착하는 것도 알아! 아는데…! 이, 이건 아니지!’

사랑을 못 받고 커서 다가오는 사랑은 전부 삼키고 본다?

문제는 자신에게 애정을 보인 존재가 네 사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던 네스트 조직원들의 애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고.. 고백했던 사람들도 있었잖아!’

그저 애정과 사랑에 집착한 거라면 눈동자에 애정을 한가득 담은 채 자신에게 고백하던 모든 여자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물론 리안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전부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진실이었다고 해도 네 사람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 같진 않았다.

대혼란.

리안의 머릿속은 저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끙끙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을 마구 쓸어내리기도 하고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설마 난 얼굴만 이쁘면 전부 사랑하게 되는 헤픈 사람인 건가…?’

리안이 매우 크게 삽질하기 시작했을 그 시점, 엘렌시아 그녀가 리안을 발견했다.

새카만 세계의 유일한 빛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리안이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나아가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흥분으로 머릿속이 마비되어 튀어 나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주인 만난 제스처럼 아니, 강아지처럼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리안!”

“응? 어억!”

리안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반사적으로 뱉은 비명과 달리 통증은 없어 금방 정신을 차렸다.

“어어? 마,마왕? 엘렌시아?”

“맞아!”

그녀는 평소 보이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어디다 던져둔 건지 환하게 웃으며 리안을 끌어안았다. 리안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여러 가지가 많이 닿아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하필 제 감정을 자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감각이 맞닿은 온기에 집중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하고 거리를 두고 떨어지고 나서야 리안을 이성을 붙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엘렌시아를 통해 리안이 알게 된 정보는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가 전부였다.

차마 그녀는 죽은 후 주마등을 보던 중 벽을 부수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수 없어 모르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엘렌시아의 표정이 흔들렸다.

‘설마… 리안도 죽은건…’

그녀는 빠르게 이어지던 생각을 잘라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망스럽고 -… 한편으로 기대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한순간이라도 그와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

엘렌시아가 죄악감에 잠겨있는 사이 리안은 그녀와 헤어진 후 있었던 일들을 제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제스와 동굴로 대피한 후 눈을 도르륵 굴리며 볼을 붉히는 모습에 엘렌시아는 죄책감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질척한 질투에 빠져 눈을 가늘게 떴다.

리안은 수인들이 모여있던 야영지에 대해 설명을 하다 ‘발정 사건’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전보다 더 붉혔다. 엘렌시아는 말 없이 리안의 옆에 더 달라붙었다.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통 감정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할 수만 있다면 창문 하나 없는 탑에 가둬두고 자신만 보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미는 걸 느끼며 그녀는 가만히 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조금만 덜 귀여웠어도 가둬버렸을 텐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을 보니 화르륵 타오르던 감정도 누그러져 버렸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내가 얼굴에 약했나?’

아니, 아니다. 그녀는 마왕성에서 살며 온갖 잘생긴 얼굴들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동했던 적이 없었다.

지나가는 개미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관심이 안 생기는 것처럼 그녀 또한 마왕성에서 일하는 이들이 어떤 성별을 가졌든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리안을 만나지 않았다면 본인을 무성애자라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그저 그녀는 ‘리안’에게 약할 뿐이었다. 그가 제대로 된 이목구비조차 없는 슬라임이었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터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그녀는 새삼 제 감정이 사랑이 아니면 어쩌나 했었던 고민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엘렌시아가 제 감정을 확신하는 사이 리안의 설명을 끝을 향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 끝도 없는 어둠 속이었어.”

리안은 ‘너는 어쩌다 여기에?’란 의미를 담아  마왕을 바라보았다. 온전히 자신만을 담는 시선이 좋아 그녀는 대답 없이 집요하게 리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정적이 3초 정도 이어지자, 리안이 귓바퀴를 붉히며 눈동자를 굴렸다.

여전히 마왕의 미모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 오래 바라보기 힘들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떨리는 걸 느끼며 리안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슥, 그런 리안에게 새하얀 손이 성큼 다가와 턱을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매혹적으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물렸다.

“대화할 땐… 나를 봐야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눈빛과 말투는 명령이나 다름없어 리안은 홀린 듯 대답했다.

“네, 네..”

그러자 그녀가 눈꼬리를 휘어 유혹적으로 웃으며 부드럽게 리안의 턱을 쓸어내렸다.

“그래, 그렇지.”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는 듯한 목소리가 오싹할 정도로 듣기 좋아 입을 살짝 벌렸다.

‘와..와아.. 이, 이게 홀린다는 거구나.’

리안은 자신이 노아와 제스가 있던 감옥이 아닌 마왕성에서 눈을 떴다면 그녀에게 홀려 세상을 가져다 바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선 마성의 기운이 흘렀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며 한입에 꿀꺽 삼켜질 것 같은 위기감이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제스와 함께 있을 때 느끼던 위기감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제스는 정말 짐승이 먹이를 물어다가 사냥하는 느낌이라면 엘렌시아는 뱀이 먹잇감을 온몸으로 칭칭 감아 천천히 녹여 먹을 것만 같았다.

둘 다 잡아먹힌다는 결과는 같았지만 엘렌시아 쪽이 더 무서웠다.

리안은 그녀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놓을 뻔한 이성을 붙잡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리안을 보며 엘렌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 생각이라…’

그녀의 머릿속에 ‘역시 마왕은 마왕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온갖 잔혹한 생각이 가득 찼지만 빠르게 흩어졌다. 어차피 그녀는 죽어 실행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안이 모르는 사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리안은 벌써 30번도 넘게 감금당했다. 리안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와 3m 정도 거리를 두고 앉을 만큼 오싹한 사실이지만 그가 이를 알 방법은 없었다.

엘렌시아는 어떻게 해야 리안을 한입에 꿀꺽 삼킬 수 있을까 눈을 번뜩이며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던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었다.

당연했다.

첫사랑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다는 수줍은 마음은 살아있을 때나 가질 수 있는 사치이자 여유였다.

정해진 죽음의 길을 벗어난 순간부터 그녀는 언제 소멸 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매초가 그녀에겐 그 어떤 것보다 귀했기에 내숭을 부릴 시간 따위 없었다.

조금이라도 제 흔적이, 기억이 리안에게 남길 바라며 솔직한 충동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선을 넘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리안이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 할 수 있느냐 없느냐 -… 같은 자잘한 생각을 떠나서. 지금 중요한 건 제 욕구나 미련 따위가 아니었다.

‘리안을 살려야 해.’

자신과 달리 그는 죽지 않았다. 죽음과 가까운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붙잡고 싶다는 저열한 욕망이 넘실거렸지만, 그보다 그를 평온한 삶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컸다.

‘내 영혼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해도… 반드시 그를 살리겠어.’

속으로 소멸까지 각오한 순간, 저릿한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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