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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사령술사가 피워 올리던 불길한 기운이 흩어짐에 따라 하늘에 펼쳐진 달과 별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허접 주신이 모든 게 끝났다고 이야기했으니 당분간은 쉴 수 있겠지. 방패에다가 몸을 기댄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마지막이 사기를 정화하기 위해서 힘을 쓴 탓일까. 몸이 피곤했다.

   

   사기를 정화하기 위해 여러모로 힘을 쓴 까닭이리라. 물론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이 정도로 죽는 소리를 내기는 좀 그렇지. 알른 가문에서 훈련을 할 땐 이것보다 더한 상태에서도 몸을 움직였으니까. 비슷한 전투를 한 번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상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 꽤 많이 강해졌네. 처음에는 살아남는 것만으로 버거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설마 숲을 정화하는 데까지 성공할 줄이야.

   

   나중에 교수 하나를 붙잡고 대련 좀 해달라고 부탁해봐야겠다. 상성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겠어.

   

   긴 한숨을 내쉰 나는 기지개를 피고서 허접 주신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련 하나를 끝냈으니 그에 걸맞는 보상을 주겠다는 거라면 이번 퀘스트는 중간 중간에 보상이 주어지고 그 끝에 보상이 주어지는 형식이겠네.

   

   으음. 몇 개의 시련을 돌파하면 퀘스트가 끝나는 걸까. 잘만 하면 허접 주신한테 엄청 뜯어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여러모로 시험을 해봐야겠네. 시련의 난이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건지. 보상이 주어지는 횟수는 정해져 있는지. 시련은 어떻게 정의되는 건지.

   

   아아. 머리가 썩은물의 회로로 가득해져버렷!

   

   일단은 내게 지급된 보상부터 확인을 해보자. 그걸로도 여러 가지를 추측할 수 있을 테니까.

   

   [먼 과거 사령술사에 의해 죽어버린 숲을 정화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킬 ‘이제 한은 없으니’가 ‘모든 한은 저물고 말 터이니’로 진화합니다!]

   

   이건 게임에서 봤던 그대로네.

   

   이 스킬의 업그레이드는 먼저 아드리의 퀘스트를 선행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본래 사령전에 특화되어 있던 스킬이 진화해 대 사령전 종결에 가까운 패시브가 되었다만 난 거기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집중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저주 방어 특화.

   

   어지간한 저주는 모두 다 무효화 시켜버리고 고위의 저주라도 약화시켜주는 이 스킬은 얻을 수 있다면 얻어두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좋았어. 이제 저주 관련해서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네. 악신 급이 아니라면 사고 날 가능성은…

   

   아 맞다. 내가 결국 상대해야하는 건 악신이었지. 정정할게. 어지간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어쨌든 좋은 스킬인 건 사실이잖아? 나는 웃으며 다음 보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외면하던 일을 홀로 극복했습니다!]

   [위대한 업적!]

   [사람들은 이 숲을 복구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을 겁니다!]

   

   이 쪽은 평판의 증가와 관련된 거려나.

   

   좀 추상적이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판치가 몇 올랐다로 해주면 안 되나?

   

   체감이 안 된다고. 체감이.

   

   그리고 허접 주신아. 이걸 보상이라고 할 수가 있나? 내가 해낸 일이 결과로 돌아온 것 뿐이잖아.

   

   뭐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를 해줘봐야 네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 왜 꼭…

   

   아냐. 진정해. 여태까지 입을 나불거리다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기억 안 나?

   

   지금은 얌전히 닥치고 있을 시간이야. 눈치 챙겨.

   

   좋아! 다음 보상을 확인해보자!

   

   멋진 주신님께서 어떤 보상을 주셨을지 너무 기대되는 걸?!

   

   [과거의 기사단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소했습니다.]

   [신성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교회 내의 평판이 높아집니다.]

   [십자가에 흔적이 남겨집니다. 주교 이상의 직위를 지닌 사람에게 그를 보여주면 당신의 업적을 알게 될 겁니다.]

   

   …엑.

   

   에엑?

   

   에에엑?!

   

   뭐?! 흔적이 남겨 진다고?!

   

   그 문구를 확인한 나는 다급히 목에 건 십자가를 빼서 확인을 해보았다.

   

   십자가 뒤편에 자그마한 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이건가? 신성한 느낌은 나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네.

   

   <…성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머릿속에서 할배가 갑자기 목소리를 드높였다.

   

   ‘할아버지. 이거 알아요?’

   <당연히 알지! 신께서 남긴 흔적을 어찌 모를까! 허허. 신께서 그대를 주시하고 계셨구나. 이를 보증해 주시다니!>

   ‘읽을 수 있어요?’

   

   역시 할배야! 과거 세상을 구했던 성기사답게 바로 해석이 가능하구나!

   

   기왕이면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제대로 된 내용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우리 주신님께서는 심술궂은 분이라 어떤 장난을 쳐두었을 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이는 읽는 게 아니다. 느끼는 거다.>

   

   할배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후일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그대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어쨌든 그 흔적이 제가 이 숲을 정화했다는 증빙이라는 건 맞죠?’

   <그래. 맞다.>

   

   이건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이루었단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게 게임일 적에는 내가 무언가 업적을 이루었다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졌거든.

   

   방금 막 일을 끝내고 마을에 돌아왔는데 ‘XX! 그걸 해결했다면서? 넌 역시 최고야!’ 같은 대사를 들을 수 있었지.

   

   허나 지금은 아니다. 내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당장 난 메네스테일에서 부활했던 악신을 다시금 봉인한다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게임이었다면 즉시 영웅의 반열에 들었을 만한 일이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그 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아는 이가 없으니 사람들은 메네스테일이라는 도시가 사라지고 마도 제국에 큰 재앙이 닥쳤을 거라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달라진 게 없지.

   

   이 숲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으니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킨 사람을 찾아 헤매겠지만 내가 벌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이 일을 해결했다 소리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겠지.

   

   왜냐고?

   

   평판 안 좋지. 나이 어리지. 불경하기로 소문나있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믿는 쪽이 오히려 바보 아닐까.

   

   허나 이 성흔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대하고 신성하시며 공정하신 주신이 남긴 흔적이다. 어찌 이를 부정하겠는가.

   

   그래요! 주신님! 이런 걸 원했다고요!

   

   키야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내 평판도 팍팍 올라갈 거야.

   

   교회 측에 감사인사를 받을 수 있을 테고, 어쩌면 이 일을 가지고 음유시인의 노래가 만들어질지도 몰라.

   

   <여아야. 이를 교회에 가져갈 생각이더냐?>

   

   그런 생각을 하며 히죽거리던 중에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그럼 안 되나요?’

   <생각해 보거라. 지금의 교회에 주목 받아서 좋을 일이 있을 것 같으냐?>

   

   …아. 평판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다가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작금의 교회가 어떤 모습을 했는지를.

   

   주신 교회는 자신의 말을 따라 줄 인형을 필요로 하지 진정 신의 뜻을 따르는 자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곳에다 나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고 외치면 어떻게 될까.

   

   결말이야 뻔하다. 메스가키 스킬 탓에 반골 기질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난 분명 루시에서 루/시가 되겠지. 나는 아직까지 교회에 반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니까.

   

   흐아앙. 거의 1년 만에 좋은 쪽으로 평판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주신님께서 드디어 그럴 듯한 걸 내놓았는데! 이걸 자랑할 수 없다고? 강제로 힘순찐을 해야 한단 말이야?!

   

   억울해! 억울하다고!

   

   속으로 울분을 토해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개 같은 교회. 빨리 박살을 내든가 해야지.

   

   [‘사령술사의 일기’가 지급됩니다.]

   

   게임 속과 같은 보상으로 시작되었던 정산은 게임 속과 같은 보상으로 끝을 맞이했다.

   

   사령술사의 일기. 아드리의 어머니가 남긴 유품.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이건 사령술과 관련된 물건이니까.

   

   얌전히 아드리한테 넘겨주자.

   

   “놀랍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정산 창을 끄자마자 뒤 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루카. 저 녀석 계속 이 근방에서 날 따라다니면서 구경하고 있었던 건가.

   

   지금 나온 것도 이야기 할 타이밍을 재다가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무언가를 지니고 있나 보구나.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럴 거에요.’

   

   이 녀석의 근본은 만능형 도적이니까. 자취를 감추기 위한 아이템은 당연히 구비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어중간한 보스보다도 얘가 까다롭다. 꼼수 없이 정공법으로 박살내야 하거든.

   

   내가 게임 속 공략법을 되새기는 동안에도 루카는 제 할 말을 이었다.

   

   “채 반나절만에 숲을 정화하다니! 이야.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 군요. 신의 게시라도 들으시는 겁니까? 주신 교회의 기사단도 이런 위업은 이루지 못할 겁니다!”

   

   루카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저자세를 유지했다.

   

   왜 이러는 거야? 얘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자신이 있건 없건 간에 일단 뻗대면서 재수 없는 척을 해야 하잖아.

   

   또 변수야? 그새 또 무슨 변수가 생겼다고?

   

   “알른 영애. 당신의 당당한 태도에는 그만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무지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과의 말씀 이외에는 드릴 것이 없군요.”

   

   나의 당혹은 루카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순간 극에 달했다.

   

   이 미친 새끼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방심시키려는 수작인가?

   

   “그리고 하나 더 사과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일은 여러모로 민감한 것들이 많아서요. 자칫 잘못흘러가면 제 생명이 위험하거든요.”

   

   루카가 자신의 팔찌에 마력을 흘려 넣는다. 그가 과거에 구한 마도구 중 하나. 사람의 정신에 개입하는 마법이 담긴 물건.

   

   기억을 지우려는 거구나.

   

   하아. 난 또 뭐라고.

   

   저건 예상했던 바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

   

   팔찌에서 푸른 빛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내 머릿 속에 무엇인가가 새겨지는 것을 느낀다.

   

   이거 영 기분이 별로네. 의식이 점멸하는 게 꼭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가 찾아왔을 때랑 비슷해.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는 게 느껴진다.

   

   눈꺼풀이 감기고.

   

   생각의 텀이 길어지더니.

   

   할배의 목소리마저 희미…

   

   째애앵!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부상한다.

   

   다시금 눈을 뜬 순간 내 앞에 보인 것은 흘려내린 안경을 들어올리지도 못할 만큼 당황한 루카의 모습이었다.

   

   어라?

   

   나 지금 저항한 거야!?

   

   젠장. 조졌다.

   

   그냥 무난하게 입막음 되고 넘어가는 편이 낫다. 마법이야 나중에 해제하면 그만이니까.

   

   저항해버리면 일이 꼬여.

   

   루카 이 녀석이 입막음을 하려 들 거 아냐.

   

   내 쪽으로 다가오는 루카를 보며 메이스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이 녀석을 상대로 이기는 게 가능한가?

   

   하. 이건 좀 바보 같은 생각이네.

   

   가능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해야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자. 루카. 첫 수는 뭐야?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법을 쏘아대면서 갉아먹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나를 죽이기 위해 단검을 휘두를 거야?

   

   뭐든 해 봐.

   

   공략해줄 테니까.

   

   몸에 신성을 돌리며 루카의 움직임을 눈에 새겼다.

   

   그는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

   

   응?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알른 영애!”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살! 무릎 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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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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