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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221 – 그녀를 구하는 방법>

     

    “그럼 이만.”

     

    우아하게 기품을 잃지 않고 돌아서는 아카디아의 뒷모습에 한때 그녀의 추종자였던 이들은 괜한 불안감을 느꼈다.

    가문이 망하면 아카디아의 위세도 끝이라고, 자신들도 그녀처럼 변방세력을 규합하고 1인자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건만.

    화려한 아가씨의 몰락을 기대한 것과 달리, 아카디아는 너무나도 의연하게 버텨내었다.

     

    “그래봤자 잠깐이겠지.”

    “정말로 가문이 망해도 저렇게 의연할 수 있겠어?”

    “어차피 손을 잡지 않으면 공녀님은 끝이야.”

     

    지고쿠는 아카디아의 길안내를 하면서도 그녀의 안내 겸 호위를 맡으라던 지젤의 부탁이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도 없었으면 저 배은망덕한 금발머리 짐승들은 힘을 써서라도 그녀를 모욕하려 들었을지 몰랐다.

     

    “세비체의 별종답게 배짱은 있네.”

    “…그래보였다면 다행이네요.”

     

    떨리는 목소리. 흔들리는 걸음소리.

    앞을 보며 걷던 지고쿠는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였다.

    누구나 오크노디처럼 멘탈이 강한 건 아니다.

    강해보이고 싶어도 진심으로 강한 건 아니다.

    그녀는 그저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고쿠는 더 이상 아카디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젤에게 가는 길.

    아카디아가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슬픔을 억누르든, 그 시간은 누구도 엿보지 않는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것이 원수의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가문의 업보를 외면하지 않은 아카디아를 향해 지고쿠가 보이는 최소한의 예우였다.

     

    “옛다. 호송의뢰 완료다. 부탁은 들어줬으니 탄약보급 건은 이제 퉁친 거야.”

    “수고하셨습니다, 지고쿠씨. 이 건으로 다시 찾는 일은 없을 겁니다. 혹시 괜찮다면 추가보급을 조건으로 다음 의뢰를…”

    “일 없어.”

    “그렇군요. 그럼 그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예우는 갖췄다. 이 이상은 사치다. 아카디아는 그녀의 친구도 뭣도 아니니까.

    지젤의 앞에 아카디아를 데려다놓은 지고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지고쿠가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지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보안에 신중을 기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아카디아 공녀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가문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멸문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정도는요.”

    “당장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공녀님께서도 경쟁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려는 알력싸움에 휘말려서 아카데미에서 쫓겨나실 겁니다. 제가 대책을 생각했습니다.”

    “들려주세요.”

    “현재 최대의 관건은 세비체 가문의 치부가 담긴 노예거래장부입니다. 장부는 현재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산하 길드가 소유하고 있죠. 훔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카데미의 교수님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을 지켜주는 곳이 아니었나?

    외부세계의 규칙 따위, 드래곤 교장의 고집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할 텐데.

     

    “교장님은 학생을 지키는 방침을 유지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 밑의 교수들마저 같은 생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전 아카데미를 그만 둘 생각이 없어요. 아카데미가 쫓아내지 않는다면 나갈 생각도 없고요.”

    “하지만 아카디아 공녀님이 아카데미에서 버티지 못할 정도의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거듭되고 공공연한 모욕이 이어진다면 그때도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건…”

    “흔들리지 마십시오. 어차피 재단이든 아카데미든 공녀님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는 자들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시면 아카데미에서 나가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목숨도 건사하기 힘들 겁니다.”

     

    독한 말로 일깨워준 현실에 아카디아의 눈에 오기가 어렸다.

     

    “티토소가에게 들었어요. 노예장부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그 장부, 어떻게 하면 처리할 수 있죠?”

    “매입해야 합니다. 아카데미측도 디스트로이어 교수도 모두 거래가 가능한 상대입니다. 포인트만 있다면 충분히 거래가 가능하겠죠.”

     

    지젤은 오히려 확신했다.

    거래야말로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바라는 바라고.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에게도 소문이 퍼질 정도로 순순히 정보를 흘릴 리가 없다.

    이건 시험이다.

    가만히 두려움에 떨다가 두려움에 질려 아카데미를 제 발로 나설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가문의 치부를 넘기고 자신을 도와 거래를 할 것인지를 묻는 시험.

     

    “가문의 치부가 담긴 장부… 얼마나 많은 포인트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물건을 매입하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인가요?”

    “암흑상회의 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포인트 공금의 절반인 20만 포인트를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넘길게요. 어차피 이 위기를 견디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지분이에요.”

    “그럼… 제 계산으로는 앞으로 최소 30만 포인트를 더 모아야 합니다. 장부의 가치는 대략 50만 포인트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기한은 얼마나 남았죠?”

    “길어야 12시간입니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있습니다. 12시간이 아니라 1시간도 걸리지 않을 방법이 두 가지가.”

     

    지젤은 공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추종자들에게 모금을 받는 겁니다. 이것이 쉬운 길입니다.”

    “…불가능해요. 어제까지의 저라면 자신 있게 그 길을 택했겠지만 저들은 결국 제가 아닌 가문의 위세에 빌붙던 이들이었어요.”

    “그럼 어려운 길을 고르는 수밖에 없겠군요. 세비체 가문의 일원들이 피신한 은거지의 정보를 디스트로이어 교수에게 판매하십시오.”

    “가문을 배신하라는 말인가요?”

    “그 표현은 잘못되었습니다.”

     

    지금은 배신을 운운할 때가 아니다.

     

    “제국법에 의해 취급이 금지된 노예매매를 자행한 시점에서 세비체 공작가문은 ‘마인’의 낙인이 찍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세력과 한발 앞서 먼저 선을 그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누명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가문의 어르신들이 돈에 미쳐 민생마저 저버린 수전노라고 해도 마에 영혼을 팔정도로 막장인 자들은 아니었다.

    그녀는 또한 알고 있다.

    진실은 그렇지만 누구도 믿지 않을 것임을.

    제국진영과 변방진영.

    아카데미 내에서의 팽팽한 균형은 향후 981기 학생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세계 각국의 패권주자들의 균형을 암시한다.

    그 일축을, 세비체 가문이 부활하여 변방진영의 결속을 강화할 가능성을 일소시킬 수 있다.

    제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변방의 기회주의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안데르센 대공자와 아카디아 공녀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했던 변방세력의 구심점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가 나타났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그녀의 등에 주저않고 칼을 꽂으려고 드는 상황.

     

    ‘이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니.’

     

    한 발만 까딱 잘못 내딛어도 단숨에 인생이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처지가 될 수 있다.

    지젤이 제시한 거래.

    이것이 차악이다.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한 방책.

    아카디아가 목숨을 건사하고 아카데미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녕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굴욕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슬픔을 억누르며 그녀가 응하려는 순간,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응~ 그게 문제라는 말이죠?”

     

    오크노디.

    맹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근처 테이블 위에서 들렸다.

     

    “꼬마숙녀? 언제부터, 아니 어떻게 여기에…?”

     

    분명 엿듣는 이가 없도록 철저하게 문단속을 했는데.

    지젤의 황망한 시선은 아랑곳 않고 오크노디는 테이블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괴며 아카디아와 지젤의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에요. 그보다 그거, 안 해도 돼요.”

     

    작고도 명량한 얼굴.

    그 개구쟁이의 얼굴에 악동스러운 장난기가 일었다.

     

    “결국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부하로 부려먹는 도둑길드에서 세비체 가문의 노예매매장부만 훔칠 수 있다면 포인트를 주고 사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오크노디. 설마 당신이…?”

    “넹. 저한테 맡겨주세요!”

     

    가장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 돕겠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지젤이 저를 돕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어요. 그는 저의 사업파트너. 제 명예가 실추되면 암흑상회도 끝이나 마찬가지죠.”

    “저도 동감입니다. 무모한 소리는 자제해주십시오, 꼬마숙녀분.”

    “귀여운 디. 당신은 저와 그런 계약관계를 맺고 있지 않잖아요. 대체 왜 그렇게까지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는 거죠?”

     

    오크노디는 테이블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계약은 없죠. 그래도 저와 아카디아 사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다고요?”

     

    아이의 눈은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아카디아한테는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도와줄 수 있어요. 아카디아를 돕는 것이야말로 주간이벤트보다 소중한 이벤트인걸요!”

     

    아카디아는 눈앞의 소녀를 와락 껴안았다.

    이 작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다니,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오크노디는 달라.’

     

    결심이 들었다.

    이 아이의 순수함에는 꼭 보답해야 한다고.

     

    “지젤 씨는 제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었죠. 실은 장부를 털지 않고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장부가 아닌 다른 곳을 털면 가능해요.”

    “어디를 털겠다는 겁니까?”

    “비상시에 대비해 세비체 가문의 재산을 숨겨둔 비밀창고가 있어요.”

    “아카디아님. 그 재산은…!”

    “알아요, 지젤. 이번 풍파만 넘기면 세비체 가문의 가주로서 재기하는데 도움이 될 밑천이라는 것쯤은.”

     

    그럼에도 그녀는 결심했다.

     

    “가문의 이름을 이를 기회를, 부유한 미래를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저를 돕겠다는 이 순수한 아이를, 오크노디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겠다고.”

     

    오크노디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도둑길드의 장부 대신, 세비체 공작가문의 비자금을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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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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