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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시라바야시 상! 받아요, 이것을!』 

       

       렌까가 검집째로 던져준 검을 받자마자, 적 하나가 나를 향해 날카로운 장도를 찔러들어왔다.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신체의 일부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무기였다.

       

       어차피 기존에 쓰던 공장제 일본도는 깨져나가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렌까로부터 받은 검을 망설임 없이 발도(拔刀)하며, 눈 앞으로 닥쳐오는 적의 칼날을 막아냈다.

       

       —서걱!

       

       그런데, 단순히 적의 칼날만 막아내려고 했던 것이, 적의 경질화된 칼날과 몸통째로 마치 두부 가르듯이 베어내버린 것이다!

       

       『이건……!』 

       

       적들이 잠시 물러난 틈을 타서 나는 렌까가 준 검을 그제서야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치 불꽃이 새겨진 듯한 접쇠공법 특유의 무늬가 박혀있는 검신에서는 은은한 진홍빛이 자체적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아까 렌까가 이 검을 넘겨줄때 말하기를 「히히이로카네(緋々色金)」라는 합금으로 만들어진 검이라고 했던가. 이제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의 금속이었다. 

       

       그래, 저번에 아오끼 소좌의…….

       

       저번, 제2실습장의 북한산성 행궁에서 좀비들과 싸웠을 때. 실버 사무라이가 되어서 돌아온 아오끼 소좌는 푸른 빛이 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대태도(大太刀)를 들고 있었다. 콘크리트도 자르는 무서운 검이던데,그건 「아포이타카라(青生生魂)」라는 금속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지금 렌까가 나에게 준 검 역시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푸른 빛이 감돌던 아오끼 소좌의 그것과는 달리 은은한 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버지한테서 혼인 기념으로 받은 거라고 했었지.’

       

       아오끼의 것과 한 쌍으로 만들어졌던 걸까. 비슷한 느낌의 금속으로 만든 검이니까 아마 맞겠지.

       

       ‘그걸 나에게 줘버리다니.’

       

       아오끼 소좌와의 약혼과 관련된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기 싫다는 것일까. 아무튼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새 검이 필요했었으니까.

       

       나는 칼자루를 양손으로 제대로 쥐고, 적을 견제할 겸 몇 번 휘둘러 보았다. 너무 커서 다루기 어려웠던 아오끼의 대태도(大太刀)와는 달리, 타도(打刀)와 그다지 차이가 없는 태도(太刀; 타치)의 사이즈인 이건 얼마든지 편하게 휘두를 수 있었다.

       

       (*타도打刀: 우치가타나. 흔히 말하는 카타나로, 일반적인 일본도.)

       (*태도太刀: 타치.)

       

       ‘좋아.’

       

       이 검으로 인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아까는 서로에게 직격타를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피로가 누적되는 내가 불리한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적의 직격타를 맞지 않는 것은 그대로지만 나는 적을 벨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면 무서울게 없지. 다만……

       

       ‘마인(魔忍)이라고 했나.’

       

       이 놈들은 깔끔하게 베어낸다고 해서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종류의 마수는 아니었다. 애초에 슬라임을 기초로 만들어진 놈들이니만큼, 자잘하게 분할되거나 다시 뭉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칼날 팔을 아래에서 위로 베어내고, 이어서 놈의 허리를 끊어내며 렌까에게 물었다.

       

       『렌까! 저게 뭔지 알아? 저것도 대동아공영회가 만든 거지?』

       『마인(魔忍)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시라바야시 상을 죽이기 위해 보내온 것입니다!』

       『나를 죽이려고? 아니, 나를 포섭하기로 했던 거 아니었어? 근데 왜?』

       『그게……』

       

       렌까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화르륵!

       

       내가 베어낸 마인을 향해 검을 휘둘러 화염을 방출하며 외쳤다.

        

       『제가 시라바야시 상을 포섭하는데에, 일주일의 기한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정확히 일주일째. 즉 기일이었기에……』

       『일주일?』

       『예!』

       

       허리가 베어져 상하체가 분리된 마인은 단면이 경질화되거나 다시 뭉쳐 합쳐지기 전에, 렌까의 화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오오오오옷!

       

       마인은 본래 슬라임이었던 것을 증명하듯이, 경질화되지 않은 단면부터 화염에 휩싸이자 그 자리에서 발광하듯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나는 녹아내린 마인을 뚫고 날아오는 사슬낫을 피하고, 마인의 신체로 이루어진 사슬을 끊어내며 외쳤다.

       

       『기한이 있었다면 진작 말했어야지!』

       『으읏,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라는게 화성인 타령이었지. 아이고, 고구마 오졌다. 

       

       ‘……뭐, 얘도 나름대로 애 쓴 거겠지.’

       

       저번주에 렌까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일제찬양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던 것은 기한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게다가 기한이 지나면 나를 죽인다고 했으니, 렌까는 촉박한 시간 안에 나를 살리려고 그랬던 것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가 베어내고 렌까가 태우는 협동 전법에 의해, 십수명이나 되던 마인은 금세 눈녹듯이 녹아버렸다. 

       

       렌까는 마무리로, 바닥에 녹아내린 마인(이었던 것)에 불을 붙였고, 나는 아직까지도 한구석에 기절해있던 오스에를 본채의 마루 위에 옮겨놓았다.

       

       『후우…….』

       

       나는 머리를 뒤집어쓴 후드를 벗어내렸다. 5월 말의 한밤은 가만히 있으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기온이었지만, 속에 전신타이즈를 입고 한바탕 날뛰었더니 여간 더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근처에서 렌까가 화염을 이리저리 피워대기도 했으니.

       

       ‘옆에 이유하 있었으면 좋겠네.’

       

       이럴 땐 인간 에어콘이 절실해……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인의 소각을 마친 렌까에게 다가갔다. 

       

       『수고했어. 그나저나 어두워서 곤란하네. 전기가 나갔나.』

       『이 저택은 외부 전력이 아닌 자가발전으로 전원을 충당하고 있어요. 정원의 지하에 발전소가 있죠. 아마도, 아까의 마인들이 발전기를 꺼트린 모양입니다만……』

       

       렌까는 그렇게 말을 늘이다가,

       

       『……그나저나, 시라바야시 상. 아까의 이야기 말입니다만……』

       

       의기소침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후우, 인정하지요. 일주일의 기한을 일러드리지 못한 것은 저의 실책이 맞습니다. 다만 본래는 기일이 될 때까지 미뤄질 일도 아니었을 뿐더러, 제가 그동안 사정이 있었기에, 시라바야시 상과의 일을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 

       『그건, 나중에.』

       『예?』

       

       나는 렌까의 말을 끊었다. 갑자기 난입한 마인들은 물리쳤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인형.’

       

       다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악귀들린 인형부터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렌까가 그나마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 지금 렌까에게  설명을 해 두어야 한다.

       

       『잘 들어. 네가 말하는 사정 말인데, 화성인이 어쩌고 그 얘기 하려던 거지. 하지만 화성인 따위는 없어. 인형에 악귀가 들어간 거야.』

       『……예? 까뜨린느에게……?』

       『그동안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네 방이 어질러져 있다거나 인형이 움직여있다거나…… 그건 화성인이 네 방에 들어와서 네 소중한 인형을 뺏어가려던게 아니야. 인형에 악귀가 들어가서 벌인 일이야.』

       『에에엣?!』

       『물론 네가 아끼던 인형이었으니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이게 진짜야. 최근에 네가 많이 힘들었던 거 알아. 너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겠지……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니 화성인 같이 허황된 것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렌까의 어깨를 붙들고 진지하게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성인은, 없어.』

       

       그러자 렌까는 뭐라고 항변하려는 듯,

       

       『그렇지만, 그것은, 확실히—』

       

       하고 뭐라고 외치려 하다가, 이내 한참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는, 

       

       『……과연, 그런…… 그렇게 된 것이군요.』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한 걸까? 정신이 헤까닥하긴 했지만 원래는 기본적으로 눈치도 좋고 머리도 좋은 녀석이었다. 마침내 렌까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시라바야시 상의 설명을 들으니…… 까뜨린느에게 악귀가 빙의되었다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합리적인 설명이네요. 그러니까 적어도, 화성인이 까뜨린느를 훔쳐가려고 했다는 것 보다는요. ……랄까, 화성인이라니, 있을 수 없지요. 제가 잠시 어떻게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래. 화성인은 없어.』 

       『풋……』

       

       렌까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가 싶었는데, 렌까는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해오는 것이다.

       

       『후후. 이건 시라바야시 상이 나빠요.』

       『아니 그건 또 왜.』

       『그렇잖아도 최근 혼란스러웠던 저에게, 이상한 영화를 보여준 탓이니까요.』

       

       결국 그렇게 되나. 화성인 나오는 영화를 보자고 한 내 잘못이라고. 별걸 다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긴 하지만 내가 양해해 줘야지.

       

       아무튼 렌까가 정말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정신병원에 보낼 뻔하지 않았나…… 이건 말해주지 말아야지.

       

       『뭐, 영화가 인상적이긴 했지. 막 화성인들이 머리에서 광선도 내뿜고…… 아무튼 확실한 건,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인형에 악귀가 들렸다는 거야. 인형을 찾아야 해.』

       

       렌까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예. 하지만, 시라바야시 상은 인형에 빙의된 악귀를 몰아내실 수 있나요?』

       『전에도 해본 적 있어.』

       『……! 시라바야시 상은 일체 안 해본 것이 없으시군요. 저도 보통의 생도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만, 시라바야시 상이야말로 종종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운 관록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가끔은 시라바야시 상이 저와 동년배인지 의심이 들 정도예요.』

       『뭐, 어쩌다보니……』

       

       왜 갑자기 나이 얘기를 해. 찔리게…… 나는 한걸음 앞서나가며 말을 돌렸다.

       

       『자, 그럼, 그 까뜨린느라는 인형을 찾으러 가 볼까. 너한테는 꽤나 소중한 인형인 것 같으니 어떻게든 해야겠지. 어두우니까 네가 화염 써서 앞을 좀 밝혀주고.』

       

       그렇게 발걸음을 떼려는데,

       

       『저, 시라바야시 상.』

       

       뒤에서 렌까가 걸음을 멈춰선 채 입을 열었다. 나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응? 왜.』

       『이런 저, 이상하지요. 이 나이에, 인형이라든가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

       

       이걸 신경쓰고 있었나. 나보고 어른같네 뭐네 하더만, 자신은 아이처럼 보일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던 걸까. 나는 렌까의 말을 끊고 대꾸했다.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예?』

       『글쎄, 어렸을 때부터 칼만 휘두르고 자라서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녀다운 모습이 있어서 의외였달까.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귀여운 면도 있네, 싶더라고.』

       『……!』

       

       그러자 렌까는,

       

       『……화성인 같은 사람.』

       『뭐? 그건 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데.』

       『몰라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리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시라바야시 상은, 여전히 데리카시—하지 못한 사람이라니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제정신으로(아마도) 돌아온 렌까!!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입니다!!!!!!!!!!!!!!갸아악!!!!!! 정신나갈것같애!!!!!!!!

    …….

    오늘의 TMI는 별도로 없고, 그 대신에 독자분께서 댓글로 질문해주신 것이 있어 여기에 답변을 남깁니다.

    1. 초반에 상태창의 기능으로 인벤토리가 있다고 나오는데 주인공이 사용하지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상태창 시스템이 인벤토리 기능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활성화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왜냐면, 본래(주인공이 살던 21세기에서)는 인벤토리라는게 기업이 소유한 빈 게이트와 연동해서 쓰는 기능인데 지금 시대에는 그런게 없으니까요. 이 시대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이 적석으로 만든 새 게이트를 차후에 인벤토리화시켜 쓰려고 계획중입니다.
    (대강 이런 설정인데, 어쩌다보니 설명이 누락되거나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네요……!)

    2. 늑대인간 에피소드에서 여자애가 늑대나 강아지로 변신하면 성대구조가 달라서 본인이 직접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게 불가능하여 누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서술되어있는데 마지막 결전에서 본인이 직접 늑대에서 인간폼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이건…… 오류가 맞습니다! 스토리 진행을 위해 전개를 쓰다보니 플롯이 꼬여서 설정구멍이 났는데, 도무지 수습할 방도가 없어서 뻔뻔하게 진행했습니다……!

    3. 홍옥례와 처음 마주할때 김구선생님의 비밀결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들키면 같은 조선인이라도 죽여야 하지만 본인의 자비로 살려줄테니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했는데 좀비사건이 끝난후 다시 홍옥례를 마주쳤을때 홍옥례가 자기 태극단원들한테 다 말했으며 그들이 환호했다는 부분에서 기존 서술과 맞지않는데 이부분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이 부분은 작중 내용에서 설명이 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당. 태극단에서 나온 주인공이 홍옥례에게 왜 말했냐며 따지고, 홍옥례는 사과하는 장면이 있었지용? 홍옥례는 자신이 밝힌게 아니라 선배 염안호가 자신을 미행해 알아내서 다 말한 것이며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그리고 염안호는 홍옥례의 기억을 읽어내서 알아낸 것이었죠.

    이것으로 답변이 되었을까용? @_@;;;;;; 걱정…….

    그, 이렇게 설정 오류에 대한 해명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사실 독자분께서 이렇게 지적해주신 것 이외에도……

    작중 서술이 미흡해서 독자분들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있고, 정말로 설정구멍이 나서 오류가 발생한 것도 꽤 있다는 것을, 저도 자각하고 있습니닷……! (도게자 콘) 지금은 최신화의 전개를 위해 미루고 있지만, 나중에라도 좋은 방책이 떠오르면 오류는 최대한 잡을 생각입니다!

    (표지도 새로 그리겠다고 했는데 미루는게 많네용……)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내일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맛저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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