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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며칠이 더 흘렀다.

     

    바란은 이날도 새벽부터 기상해 마을을 둘러보았다.

     

    최선의 노력으로 베르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고 있었다.

     

    소중했던 누군가가 한순간 사라지는 경험은 익숙해지기 쉬운게 아니었다.

     

    당연하게 있어야할 자리에, 상대가 없다는 걸 느낄때면 그 공허함이 남달랐다.

     

     

    어느새부터 바란도 베르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그 이유로 당장에 더 힘든것일 거다.

     

     

    “…하아.”

     

    바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바란은 많은 손님을 예상중이었다.

     

    왕가인 드레이고 가문조차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여정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상황이었다.

     

     

    아담이나 베르그 없이 국왕을 마주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란으로서는 그것조차 일종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일마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게일은 베르그의 부탁대로 그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힘을 썼다.

     

    몸에 생겼던 상처도 이제는 안정되어, 전보다 더 많은 일을 부담했다.

     

     

    둘은 아직 깨어나지 않아 텅 비어버린 스탁핀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게일이 먼저 말한다.

     

     

    “…바란, 어제 라이커 부인이 방에서 나왔네.”

     

    “…”

     

    바란은 그 변화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며 되물었다.

     

    “…그러셨습니까?”

     

     

    게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리고…자네와 대화가 하고 싶다더군.”

     

    “저와요?”

     

     

    사실 바란은 시엔, 네르, 혹은 아르윈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 없었다.

     

    베르그를 지키지 못한게 자신의 잘못인것만 같아 일종의 죄책감이 있었다.

     

    그녀들이 눈 앞에서 무너져 내려 자신을 탓하기 시작한다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럴 그녀들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이르니 나중에 찾아가보게.”

     

    “…그러죠.”

     

     

    바란은 시엔이 전할 말이 무엇일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저 미약한 긴장감을 느끼며 거리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끼익…끼익…

     

    그때,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마차가 보였다.

     

    “…?”

     

    한 개로 그치는것도 아니었다. 여러 마차가 차례로 마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손님이 벌써 찾아온겁니까?”

     

    바란이 게일에게 물었고, 게일 또한 아는바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가문 문양도 없고…그러지는 않은 듯 한데. 또 지원물품일지도 모르겠군.”

     

     

    둘은 누구 하나 말을 먼저 꺼낼 것도 없이 그 마차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를 좁히고 나서야 마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베르그의 친구, 플린트가 몸을 담근 상단의 마차들이었다.

     

    말을 타고 가장 앞선 곳에서 나선 플린트가 말한다.

     

     

    “…떠나간 제 친구를 위해 지원물품을 가져왔습니다.”

     

     

    바란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러실 것 없었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요.”

     

    바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드립니다.”

     

    플린트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검은 속내가 전혀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상단에서 물품들 좀 팔고 오라 명령하더군요. 뒤쪽의 마차 4개는 제가 드리는 선물이고, 앞의 3개는 팔고자 가져온 것들입니다.”

     

     

    물품을 판다고 말한 플린트였지만, 그가 이미 가져온것만 하더라도 성의는 차고 넘쳤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이다.

     

    이만큼의 성의를 보였다면, 물품을 팔고 가더라도 바란으로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이해합니다.”

     

     

    플린트는 제 상단의 병사들에게 고갯짓을 해 선물 마차를 이끌고 갔다.

     

    이내 플린트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넨 후 지나쳐간다.

     

     

    긴 마차행렬이 바란과 게일 옆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마차는 이상한 생기를 스탁핀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치 멈춰버렸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것만 같았다.

     

    애도의 시간은 이제 끝이 났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듯 했다.

     

     

    바란은 혀를 찼다.

     

    어쩌면 이제는 나아가야하는 순간이 온걸지도 몰랐다.

     

     

    .

    .

    .

    .

     

     

     

    -똑똑.

     

    바란은 시엔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언제가 적절한 시간일까 계속해서 고민하다, 죽과 비슷한 식사와 함께 점심시간에 그녀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을테니, 그걸 챙겨주고자 한 것이다.

     

    시엔이 임산부라는 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몸 건강에 힘을 많이 써야만 했다.

     

     

    ‘들어오세요.’

     

    “…”

     

    하지만 이번에도 예상과 달리 시엔은 씩씩한 목소리로 바란에게 답했다.

     

    장례가 끝난 이후부터 보인 시엔과 네르, 그리고 아르윈의 괜찮은듯한 태도에 바란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방에만 틀어박혔을뿐, 상태는 매우 양호한 듯 했다.

     

     

    -끼이익.

     

    바란은 식사를 들고 집무실에 들어섰다.

     

    베르그의 온기를 찾는것인지, 시엔은 계속해서 이곳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

     

    하지만 그는 안에서 목격하게 된 것들에 놀라고 있었다.

     

     

    시엔은 수많은 서류를 홀로 처리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멀쩡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서류에서 눈조차 떼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고개를 든 시엔이 바란이 들고 온 식사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 식사 했는데.”

     

    “…”

     

     

    바란은 시엔이 제 몸을 챙겼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혼란함도 같이 느꼈다.

     

    그는 멋쩍게 그 음식들을 바라보다 옆에 내려놓았다.

     

     

    “…다행이네요.”

     

    그러며 시엔의 앞까지 다가갔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어서요. 긴 이야기는 아니에요. 짧은 부탁이에요.”

     

     

    바란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시엔의 부탁을 수용할 준비를 했다.

     

    “뭐든 말씀하세요.”

     

     

    시엔은 같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사라지면, 이 땅은 바란이 다스려주세요.”

     

     

    하지만 이어지는 시엔의 말에, 바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시엔은 자신이 없어지는걸 상정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당장 시엔이 보이는 굳건함도, 그 말에 갑작스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살 예고 같은 그 말.

     

     

    “말씀이 지나치시-!”

     

    “진정하세요, 바란.”

     

     

    순간적으로 언성을 높일뻔한 바란에게 시엔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자살 예고 같은게 아니니까.”

     

    “…”

     

    “…그저, 제 몸이 언제나 건강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해두는 이야기에요.”

     

    “…”

     

    “언젠가 출산도 해야할텐데, 그때 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구요. 그래서 하는 이야기이니, 걱정 마세요. 저도 아이를 두고 세상을 등질만큼 멍청하지 않아요.”

     

     

    바란은 이어지는 시엔의 변명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시엔이 이어갔다.

     

     

    “베르그라도 같은 말을 했을거에요. 당장의 저는 베르그의 아내였기에 이 영지의 실질적인 관리자가 된 것이지…더 적합한 지도자는 바란이었을거라고.”

     

    “…”

     

    “베르그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바란도 저도 똑같잖아요?”

     

    “…후.”

     

    바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의가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자연스레 나온 한숨이었다.

     

     

    “…그런 말 마시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베르그 단장도 그걸 원하셨을테니까.”

     

    “전 건강할거에요. 혹시나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잖아요.”

     

     

    시엔의 확고한 말에 바란이 결국 답했다.

     

    “도와드릴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요. 확실하게 저와 약속해주세요.”

     

    하지만 이번에도 시엔은 바란의 말을 끊어내며 부탁했다.

     

     

    “제가 사라진다면…바란이 이 영지를 지켜주세요. 베르그는 당신을 가장 신뢰했으니까.”

     

    “…”

     

    “이미 게일에게도 같은 말을 해둔 상황이에요.”

     

     

    시엔의 부탁을 들어주기 싫은게 아니었다.

     

    오히려 바란의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했다.

     

    베르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떠났으니, 그 열매를 수확할 일만 남아 있었다.

     

     

    베르그의 공로로 영지는 다양한 가문들의 지원물품으로 풍족한 상황이었고, 농사일도 제대로 배운만큼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이런 풍요로운 땅을 지배한다는건…자신뿐만이 아니라, 후손들까지도 살길이 열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히도, 바란은 그 열매는 자신의 몫이 아닌 베르그의 몫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베르그가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의 유족이라도 그가 일궈낸 모든걸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시엔이 모든걸 넘겨주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바란은 눈을 들어 시엔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시엔은 너무나도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 말을 전하고 있었다는 걸.

     

    후련한 표정으로 바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란, 약속해줘요.”

     

    시엔이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이 상황속에서 바란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전의 망설임도 전부 내려놓는다.

     

    시엔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약속 드리겠습니다.”

     

     

    ****

     

     

    시엔은 바란이 몸을 돌려 떠나는 순간, 모든 채비를 끝냈다.

     

    시엔은 책상 밑에 준비해두었던 옷으로 순식간에 갈아입기 시작했다.

     

     

    허름하고 수수한 옷.

     

    평소 입고 있던 고급진 옷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그녀는 방의 창문을 타고 넘어 집 뒤편의 숲으로 들어섰다.

     

    바란의 약속을 받은 순간, 더 이상 이곳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탈출로가 이른 아침 도착했다는 건 그녀도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었다.

     

     

    베르그는 친구 플린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상단에 포함되어 있던 플린트인만큼, 그의 마차에 몰래 숨어타기로 계획을 짰다.

     

    모습이 들킬 일도 없고, 여행하는 동안 몸에 부담이 갈 일도 없다.

     

    베르그가 원하는 곳으로 몰래 데려다 줄 수 있는 플린트이기도 했다.

     

     

    시엔은 지난 며칠동안 베르그를 보지 못한 사실에 조금씩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죽음에서 돌아온 베르그라, 더더욱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전히 건강한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마지막 준비가 끝나는 순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떠한 짐도 챙기지 않았다.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약지에 끼워져있는 반지만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에 베르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게 가장 중요했다.

     

    영지도, 작위도, 그에 따라오는 모든 편리함도 그녀에게는 베르그가 없다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이른 오후였지만 시엔은 몸을 숙인채 계속해서 이동했다.

     

    귀족, 혹은 전 성녀가 행동할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도 그녀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베르그의 곁에서 성장하던게, 원래 그녀의 모습이었다.

     

     

    이내 숲에서 그녀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플린트.

     

    그와 말없이 눈을 마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플린트는 준비해두었던 큰 밀짚모자를 시엔에게 건넸다.

     

    시엔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을 가린채 이동했다.

     

     

    그 수수한 차림을 보며, 그녀의 정체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내 한 마차에 그녀가 도착했다.

     

     

    시엔은 망설임 없이 마차에 들어섰다.

     

    플린트 또한, 망설임 없이 마차를 툭툭 때리며 출발을 명령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막히는 부분 없이 계획은 진행이 되었다.

     

    네르와 아르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동해온다고 전해들었다.

     

    당장은 혼자 이동하면 되는 상황인 것이다.

     

     

    “…..”

     

    시엔은 멀어져가는 스탁핀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 거리를 보는것도, 이제는 마지막이었다.

     

     

    “…”

     

    시엔은 두 손을 맞잡았다.

     

    베르그와 혼인을 한 이후로 올린적 없던 기도.

     

    하지만 지금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기도하는게 아닌, 그저 모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 땅에 축복이 내리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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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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