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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땅이 흔들렸다.

       ​

       천장에서 석면이 떨어지고, 유리창은 상하좌우로 춤을 추었다.

       ​

       철근 콘트리트로 지어진 단단한 초소를 흔들거리게 할 수준의 지진. 진도를 예측하고 있었던 에테르를 제외하면 모두가 그 자리에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

       “악…!”

       ​

       로즈마리는 멍때리고 있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도 모르게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었기에 그만 혀를 깨물고 말았다.

       ​

       다른 구천지대계도 넘어지긴 마찬가지였다.

       ​

       로즈마리 다음으로 다릿심이 약한 ‘엔테로 콜리티카’가 벽을 짚으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사태를 예견하고 있던 ‘빌헬름 폰 슈델가이거’조차도 무릎을 꿇고 비틀거렸다.

       ​

       그나마 균형을 잡은 건 다른 사천들.

       

       창천, 호천, 민천은 금세 평형을 되찾고는 일이 벌어진 곳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

       이윽고 누군가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

       번쩍, 하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일섬은 순식간에 자외선 필름을 통과하여 유리창에 투과되었다.

       ​

       “윽…!”

       ​

       한 번 필터를 거친 빛은 비록 세기가 한풀 꺾였을지언정 여전히 눈부신 위력을 뽐내며 시각을 마비시킨다.

       ​

       “이게 무슨…….”

       ​

       클라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

       아프다. 안구가 불타는 것 같았다.

       ​

       레몬즙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눈앞이 시큰거렸다. 클라이스는 눈을 감고 몇 초를 기다렸다. 천천히 심호흡하자 다행히도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자외선 방지 코팅 덕분에 실명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강렬했던 빛은 차츰 약해졌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유리창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클라이스는 조심스레 빛이 들어왔던 곳을 흘깃거렸다.

       ​

       그리고.

       ​

       쿠구구궁─!!

       ​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며 하늘이 솟구쳤다.

       ​

       말 그대로다. 하늘이 솟구치고 있었다. 용트림을 하듯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가 지평선 윗부분을 송두리째 들어 올린 것이다.

       ​

       “저, 저게 도대체…….”

       ​

       전체적으로 버섯 형태를 유지하는 기둥.

       ​

       불기둥의 상층부에선 용암이 분출되는 것처럼 불꽃이 튀어 올랐고, 그 위로는 뭉게구름 형태의 어둠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

       “무, 뭐, 무…….”

       ​

       언어가 토막 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풍광.

       ​

       클라이스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

       연기가.

       ​

       파멸이.

       ​

       그리고 죽음이.

       ​

       하늘을 덮어가며 황무지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광경이, 마치 세기말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

       아포칼립스를 목도한 듯한 기분. 평범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이적인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중이었다. 천천히 커져가는 불기둥을 따라 클라이스의 사고도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흘러만 갔다.

       ​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터뜨리는 손맛이 있지.”

       ​

       폭발을 선두에서 지켜보던 에테르의 금빛 눈동자가 은은하게 타올랐다.

       ​

       에테르는 품에서 마력초를 꺼내 물었다. 그러더니 버니어 캘리퍼스를 꺼내 들며 광구 반경과 불기둥의 높이를 측정해나갔다.

       ​

       삼각법과 차원 분석. 두 가지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대략적인 폭발 위력을 측정해 낸 결과, 에테르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

       “걸작이야, 걸작.”

       ​

       추정 위력은 TNT 50만 톤 이상.

       

       대도시 하나를 초토화하고도 남는 폭발력이다.

       ​

       “저 정도면 세계수뿐만 아니라 엘프 새끼들 수도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

       버섯구름을 보고 안 그래도 혼란했던 클라이스. 에테르의 발언을 듣고 2차 충격에 빠졌는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

       저건, 플레어보다 강력하다.

       

       그동안 플레어를 위해 공부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강한 마법이, 그것도 마수 진영에서 나타났다.

       

       처음부터 인류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

       ​

       그건 아니었다.

       

       이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을 클라이스가 몇 번이나 걷어찼을 뿐.

       ​

       “엘프놈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군.”

       ​

       에테르는 그리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

       “아, 제발…….”

       ​

       털썩.

       ​

       지진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던 클라이스가 다시 한번 주저앉았다.

       ​

       자신의 잘못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다.

       ​

       그리 생각하니 다리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

       “하여튼 초도 생산한 물건으로 이 정도 위력이다. 앞으로 만들 건 저것보다 좋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겠지.”

       ​

       심지어 저것도 약한 위력이라니. 클라이스는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다. 뇌가 표백제에 담겼다가 꺼내진 기분.

       ​

       한동안 핵폭발을 바라보던 에테르가 뒤를 돌며 명령했다.

       ​

       “하지만 이런 큰일은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법. 빌헬름, 저것 이상의 위력으로 최소 다섯 기 이상은 만들어야 한다.”

       “저번에 말씀하신 1백여 기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거나 이거나 똑같은 이야기다. TNT 1만 톤짜리를 열 개 만드나, 10만 톤짜리를 한 개 만드나 똑같잖나.”

       “예, 알겠습니다.”

       ​

       빌헬름도 아직 폭발을 관람한 충격이 가시질 않은 탓에 고개를 뻣뻣하게 끄덕였다.

       

       저번에 본 건 그나마 위력이라도 작았지, 이번 건 아예 각오하고 기다렸는데도 엔진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

       같은 느낌이 든 건 빌헬름뿐만이 아니었다.

       ​

       “여기서 더….”

       “…뭘 더 만든다고?”

       “허풍도 유분수지요. 흐, 흐흐, 흐흐흐…….”

       ​

       나머지 창천, 호천, 민천은 저마다 난색을 표했다.

       ​

       유일하게 웃고 있는 건 상천뿐.

       ​

       에테르는 씩 입매를 비틀며 물고 있던 담배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마력초를 왼손 중지와 약지 사이에 비스듬히 끼웠다.

       ​

       일반적인 파지법은 아니었다. 평소 양손으로 글을 쓰면서 펜을 놀리다 보니 이런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담배를 쥐는 버릇이 생긴 것뿐이다.

       ​

       “자, 이제 사천 중 최약체가 누구지?”

       ​

       모두가 입을 벌리며 멍때리고 있던 사이.

       

        에테르가 물었다.

       ​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길라흐였다. 그는 얼굴에 느껴지는 열감을 소매로 지워내며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

       “그, 그야 당신이지요.”

       ​

       툭, 하고 반사적으로 내던진 말이었다.

       ​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최상급은커녕 상급 정령 몇 체를 상대로도 싸우지 못하던 이 등신 같은 년이, 저런 괴물스러운 병기를 만들었다고?

       ​

       그래서 나와 동급에 서려 한다고?

       ​

       절대로 안 된다.

       ​

       “저것은 순전히 저 폭탄의 위력. 당신의 강함과는 상관이 없죠.”

       ​

       결국 길라흐가 선택한 길은 하나. 바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

       “당신이 저 무기를 설계했다는 건 대충 알겠습니다. 인정해요. 하지만 당신이 직접 구사하는 마법은 아니잖아요? 제가 인정했으면 당신도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인정해야죠. 안 그래요? 흐하하하!”

       ​

       생각해 보니 논리적으로 말이 되긴 되는 것 같다.

       ​

       제아무리 에테르가 만든 무기가 대단하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무기일 뿐이지. 에테르가 직접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않나.

       ​

       좋아. 건수를 잡았다.

       ​

       길라흐는 신명나게 웃으며 쏘아댔다.

       ​

       “심지어 저런 건 설계도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흐흐! 뭐 기술이 대수인가요? 제조가 그리 어려운 작업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아, 그러셔?”

       ​

       에테르는 코웃음을 쳤다.

       ​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

       “그러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만약 이런 걸 보여 주어서 서열 정리를 하고자 했던 거라면 유감이라는 말밖에 드릴 수 없겠네요! 그리고 저런 게 있다고 해서 당신이 마냥 최강인 줄 아는 모양이신데….”

       ​

       횡설수설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당황하긴 당황했나 보다.

       ​

       그야 급박하겠지. 핏줄부터 다르다면서 에테르를 무시해 온 것이 길라흐였으니 말이다. 마왕군으로 묶이지 않았더라면 언제 무력충돌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두 사람이었다.

       ​

       “우습군요. 저런 정도의 위력으로는 마왕님은커녕 민천조차도 쓰러뜨리기 어려울……!”

       ​

       길라흐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사이.

       ​

       에테르는 고민하지도 않고 다음에 꺼낼 말을 골랐다.

       ​

       “그렇다면 더 강한 걸 만들면 되겠군.”

       “……예?”

       ​

       길라흐가 미간을 찌푸렸다.

       ​

       지금 내가 말을 잘못 들은 건가?

       

       “아까도 얘기했거늘……. 그래, 네놈은 대가리가 금붕어 수준인 것 같으니 친히 다시 설명해주겠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사천의 서열을 재정립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전엔 이제 누가 최강이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그건 네놈이 실험하기 전부터 도발해서 받아준 거고. 주된 목적은 그게 아니다. 세계수를 걷어내고 공의 로드스톤을 가져오는 것이지. 하여 마왕을 봉인에서 끌어내는 것이 본관 계획의 소목표라고 할 수 있다.”

       “…….”

       “그리고 저런 걸 보여줬는데도 본관이 가장 약하다고 말한다면야, 뭐.”

       ​

       얼음장보다도 냉한 시선이 길라흐를 쏘아본다.

       ​

       길라흐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

       이 이상 무어라 씨불였다간 이년이 더욱더 정신 나간 짓을 하리라는 걸 육감으로 알아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

       “중요한 건 서열이 아니지.”

       ​

       정정한다. 가만히 있어도 할 것 같다.

       ​

       에테르는 뒤를 돌아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 순간에도 버섯구름은 제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클라이스는 허탈해하며 화끈거리는 얼굴을 쓸어내렸고, 로즈마리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

       “핵심은, 저런 성과에도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있다.”

       ​

       저런 폭발을 보고도 조금 웃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얼굴이라니.

       ​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을 더 할 생각인가?”

       ​

       보다 못한 파스모가 씻누런 이를 갈아대며 물었다.

       ​

       그러자 에테르는 스태프를 집어넣었다. 손을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로 나머지 사천 앞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보건대 마치 강단에 선 석학과도 같았다.

       ​

       “이 이상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고?”

       ​

       에테르는 피식 웃었다.

       ​

       “그렇다. 이 정도면 마왕님의 부활은 물론, 정령계 침공에도 충분할 터인데.”

       “충분? 어떤 새끼가 그래?”

       ​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았다.

       ​

       저 정도 폭발력이 되어야 그나마 봐줄 만하다는 거지, 입이 헤벌쭉해질 만큼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

       “……그렇다면 자네 목표는 정령 너머에 있다는 이야기로군.”

       “잘 아는구나.”

       ​

       이 말을 해도 되려나.

       ​

       잠깐 고심하던 소녀의 입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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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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