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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진성은 마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에너지를 다루는 방법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에너지라는 것은 그 자체가 주술에 사용할 수 있는 주술의 재료이며, 주술의 결과로 나오는 주물이기도 했으니까.

         

       마법사들이 과학과 결합해 사용하는 마력은 진성에게는 주술을 위한 도구였으며, 무인들이 몸에 쌓아두는 기는 자연 곳곳에 널린 주술의 재료였으며, 마나는 주술을 사용하기 좋은 에너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성은 이러한 에너지를 다른 능력자들처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몸에 쌓아두어야 효율적으로, 대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진성은 그게 불가능했으니까.

         

       에너지를 담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술의 대가라는 것은 이러한 그릇을 뒤틀어버리는 것.

       그릇이 뒤틀리고 깨져나가는데 거기에 멀쩡히 에너지가 담길 수는 없다.

         

       마력을 담는다고 한들 내장이 찌그러지고 문드러지면 그 안에 담긴 마력 역시 찌그러지며 밖으로 흘러나올 것이며, 기를 담는다고 한들 단전 부근이 썩거나 타들어 가면 그 안에 담긴 기 역시 꿈처럼 흐트러질 것이다.

       생명력을 피부 아래에 담는다고 한들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뒤틀리면 그 생명력 역시 빠져나갈 것이요, 소환수를 부리기 위해 친화력을 아무리 쌓는다고 한들 몸이 바뀌고 영혼과 정신이 뒤바뀌며 쌓아온 유대감과 친화력 역시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리겠지.

         

       주술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많은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마나도.

       기도.

       마력도.

       평생을 함께할 소환수도.

       인간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바치는 초월종의 관심도.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진성 역시 에너지를 몸 안에 품을 수는 없었다.

         

       다만 광기에 가까운 정신으로 그 에너지를 움직일 수는 있었다.

         

       정신의 높은 곳에 도착한 이들이 삼매진화(三昧眞火)를 피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신에서 비롯되는 능력은 유용하기는 하나 손색은 있었다.

         

       삼매진화의 불꽃이 화염술사가 피워내는 불꽃보다 작고 약하듯, 정신으로 조종하는 에너지는 다른 능력자들이 쌓아서 사용하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약했기 때문이다.

         

       진성이 의지와 정신력으로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은 가공되고 압축된 에너지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재주를 부리는 것이 신기해 보일지언정 그 효용성과 효율, 위력과 규모는 절대로 그것을 따라갈 수는 없다.

         

       손으로 번개를 뿜어내는 사람과, 수정구슬 속 일어나는 정전기를 이리저리 움직여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대단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재주라는 것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쓸모는 있었다.

         

       댐처럼 많은 물을 담아둘 수도 없고, 비구름처럼 많은 물을 땅에 쏟아낼 수는 없어도 땅을 파서 도랑을 만들어 물길을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진성은 목검에서 마나를 뽑아내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해 그 안에 깃들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마나는 푸른빛을 뿜어내며 뱀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며 허공을 유영했고, 그 끝에 진성의 침대 곳곳에 숨어있던 황금에 도달해 그 안에 깃들기 시작했다.

         

       마나를 머금은 황금.

         

       훌륭한 주술의 재료이자 주물이 완성되었다.

         

       “훌륭하다.”

         

       마나를 머금은 황금은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진성의 손에 들린 뒤 전보다도 더 화려한 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눈길을 빼앗아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 황금이, 화장이라도 끼얹은 듯 한층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변화한 것이다.

         

       그 빛은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흐릿하고 창백한 달빛은 황금에 닿으며 산산이 부서져 이리저리 흔들리는 욕망이 되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빛은 황금의 표면에 일렁이며 제각기 생애 최후의 빛을 내뿜는 별들의 찰나의 아름다움이 되었고, 그저 실용적이기만 했던 가로등은 낮과 밤이 자리를 바꿀 때 실수로 그 자리에 남은 것처럼 황금의 표면에서 이리저리 헤엄쳤다.

         

       흔들리는 빛은 노란색이 되었고, 부서지는 빛은 하얀색이 되었다.

         

       마치 파도가 밀어닥쳤다가 부서져 내리듯, 거품이 되고 물보라가 되어 그대로 사라져버리듯 빛은 끊임없이 밀어닥치다가도 환상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손짓하면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어 사라져버릴 빛이며,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다가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눈부심이었다.

         

       “마나를 아주 잘 머금었구나.”

         

       이는 황금이 마나를 머금고 한층 더 뛰어난 주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화려한 빛을 뽐내고 있던 황금이 포악하기 짝이 없는 마나를 만나서 포식자와 같은 힘을 얻었고, 사람을 유혹하고 마음을 빼앗는 금속의 성질에 그러한 힘이 더해져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변했다.

         

       황금의 원소 기호인 Au이 라틴어 ‘빛나는 새벽(Aurum)’에서 나왔듯, 마치 새벽의 빛을 그대로 머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진성은 마나를 집어넣은 자신마저 유혹하려는 듯 광채를 발하는 황금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을 튕겨 황금을 다시 침대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이제 쉴 때가 되었다는 듯 벗어 던진 옷가지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그 상태 그대로 허공을 잡아 서류 가방을 끌고 와 그 안에 든 것을 확인해보았다.

         

       “흠.”

         

       가방에 들어있는 서류는 전부 사람에 대한 것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년의 날에 열릴 성인식에 도움을 줄 사람들, 성인식에 참여하는 손님들, 초청은 했으나 올지 안 올지 아직 답변이 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신상 명세가 적혀있는 서류였다.

         

       신상 명세라 하더라도 별건 없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디 학교들을 거쳐서 어떤 직책에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등등.

         

       진성은 손에 들린 서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 서류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인맥을 만들고 친목을 쌓을 때 사용하는 매뉴얼이었다.

         

       “커다란 선물이로군.”

         

       이것은 선물이었다.

         

       이양훈이 주는, 성인식 축하 선물.

         

       “흠.”

         

       진성은 손에 들린 서류에서 이양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매뉴얼’에서는 이양훈이 가지고 있는 부채 의식과 정, 그리고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죄책감은 간단하다.

       이양훈의 헛짓 때문에 나비효과 같은 일이 발생해서 박진성의 부모가 이상한 짓을 벌였고, 그 때문에 그의 부모가 죽었으니까.

         

       단순하게 본다면 이양훈은 진성이 부모를 여의게 한 원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그 과정에 우연이 섞이고 섞여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딱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양훈은 진성이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해 자신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진성이 자신을 원망해도 할 말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정작 그 당사자인 진성은 그러한 마음을 하나도 품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 정도로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 나비가 어찌 제 날갯짓이 태풍이 될 줄 알고 있을 것이며, 그 태풍이 사람들의 목숨을 해칠 줄 알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작은 것이 곧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기도 하는바, 이는 운명이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느니.’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맺고 끊음이 쉬운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이양훈은 진성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헛짓거리에 대해 후회하고, 거기서 진성에 대한 미약한 죄책감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떠올리곤 했으리라.

         

       그리고 부채 의식 역시 이러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렇기에 애국단과 호국회가 이양훈에게 결자해지를 요구하며 진성을 맡으라고 했을 때 흔쾌히 그를 맡았으리라.

       그들이 요구한 것은 ‘박진성이 성인이 되는 해까지 모자람 없는 지원을 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으니, 거액의 돈과 좋은 숙소, 황금 같은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딸밖에 없는 집에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남정네 하나를 들여놓고 키우는 과정에서 정이 쌓였으리라. 자식이 잘 들어오지 않았기에 진성에게 가질 수 없었던 아들을 투영했을 수도 있고, 진성이 이세린과 이아린과 잘 지내는 것을 보고 가족으로서의 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진성이 벌이는 기행 때문에 진성과 그 사이에 세워져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조금씩 얇아졌을 수도 있으리라.

         

       본디 사람이라는 존재는 서로가 부딪치는 과정에서 더 친밀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쌓여온 감정을 담아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의 손에 들린 매뉴얼.

         

       이는 피로 이어진 가족은 될 수 없었지만 그런데도 분명히 한 식구였던 진성을 위해, 그의 앞날이 밝게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이양훈의 호의가 담긴 물건이었다.

         

       진성은 이 ‘깊은 호의’가 담긴 선물을 감사히 받았다.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인맥을 쌓고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개조하고 주술로서 초월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선물이 큰 도움이 될 것이었기에.

         

       그렇기에 진성은 이 선물을 달게 받았다.

         

       회귀 전, 어렸을 적에야 이것이 부담스럽다며 빠져나왔었지만….

         

       그때의 진성과 지금의 진성은 달랐다.

         

       나이도.

       생각도.

       경험도.

         

       ‘주는 것은 받고, 나중에 그 고마움을 돌려주면 되는 것이지.’

         

       그리고 이러한 이양훈의 선물은 진성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양훈은 이양훈대로 ‘주술 불모지인 한국에 오랜만에 나타난 주술사’를 자랑할 수 있으며, 그 희귀하기 짝이 없는 토종 주술사와 그 누구보다 친하다는 이점을 이용해 인맥을 쌓을 수도 있고 정부와 좋은 관계를 쌓을 수도 있다.

       여기에 시류와 행운만 어느 정도 따른다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인맥과 가벼운 이미지를 커버할 수 있으리라.

         

       ‘재계 서열을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광양 그룹은 ‘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만큼 여러 곳에 발을 뻗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양훈은 재벌총수로 불리고 있었고.

         

       하지만 재벌이라고 해도 다 같은 재벌은 아닌 법.

         

       대한민국 건국 당시부터 차근차근 세력을 뻗은 다른 재벌들과,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류를 잘 타 부상한 재벌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졸부 느낌이 강한 이양훈은 재벌총수로 불리기는 했지만 크게 존중받지는 못했다.

         

       무시와 존중의 그 사이.

         

       허례허식보다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무인이나 마법사들이 키를 잡은 곳에서는 이양훈을 존중하고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나, 반대로 정치나 권력이나 언론 등의 허례허식이 강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곳에서는 이양훈을 뒤에서 무시하곤 했다.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사업을 잘 확장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품격이 부족하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양훈이 저택에 마구잡이로 전시해놓은 비싸기만 한 물건들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은 이양훈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에서 만들어진 풍경일지도 모른다.

         

       ‘심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쯧쯧. 모든 것에는 적당한 것이 있는 법이거늘.’

         

       하지만 여기서 진성이 등장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희귀하기 짝이 없는 주술사라는 존재.

       그것도 신뢰성을 검증해야 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호국회와 애국단이라는 거대한 두 단체와 연관이 있는 데다가 이양훈의 손에 길러진 양자와도 같은 존재다.

       심지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집에서 살면서 검증까지 끝마쳤다.

         

       신분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된데다가, 재벌의 손에 길러졌을 테니 친(親)권력자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한 주술사다. 거기에 러시아에서 같은 주술사와 싸워서 사람을 구하기까지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기까지 하다.

         

       당연히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목표물인 진성뿐만 아니라 이양훈에도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황금 같은 인맥이 만들어지게 되리라.

         

       ‘선물을 주는 것조차 이득과 연관되어 있으니, 정말 타고난 장사치로다.’

         

       진성은 피식 웃으며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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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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