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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222화. 계기 ( 2 )

       

       

       

       

       

       – 힐끔…

       

       슬쩍 위대하신 분의 눈치를 보던 케넬름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스스로 쫌생이가 아니라며 막 중얼거리고 계셨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영락없는 소인배의… 그것이었다.

       그것마저도 조금 멋있어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하여튼 케넬름은 데이지에게로 향하며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준비한 것과 너무 틀어졌어.’

       

       케넬름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본래 연극의 토대가 된 동화 ‘오크와 잿더미 공주’ 이야기는 썩 무난하게 재밌는 것이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공주와 무리에서 버려진 떠돌이 오크의 이야기.

       ‘계기’를 깨닫지 못한 떠돌이 오크는 그저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었다.

       

       그러한 오크가 우연한 기회로 공주를 구하게 되고, 공주는 오크에게 여러 지식을 알려준다.

       

       시간이 지나며 오크는 공주에게 깊은 정을 느끼고, 이윽고 공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계기’를 각성하여 명예를 아는 전사로 거듭난다.

       

       이후 오크는 무리로 돌아가 당당히 전사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공주는 오크들의 도움으로 왕국을 되찾으며 이야기는 끝났으니.

       

       중요한 것은 오크가 각성한 ‘계기’.

       영혼에 타오르는 불꽃을 싸움과 식탐, 나태 따위의 것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불꽃을 다스릴 수 있는 확고한 마음과 명예, 존중, 수호 따위의 반짝이는 의지를 깨닫는 것.

       

       케넬름의 노림수는 그것이었다.

       동화책에 나온 오크의 ‘계기’를 한스가 깨달았으면 하였다.

       

       우두머리의 자격을 손에 넣은 한스가 올곧은 ‘계기’를 깨우친다면… 그 휘하에 있는 오크들도 한스의 영향을 받아 변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당장 지금 지상을 보기만 해도, 한스의 영향을 받은 오크들이 죄다 땅만 파고 있죠.’

       

       무지성으로 살아가는 오크들에게 우두머리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스가 농사를 짓자고 한 후로 오크들은 무식할 정도로 땅만 파고 있지 않은가.

       

       이를 잘 이용한다면 수많은 오크를 손쉽게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대하신 분이 재미없다고 하시며 시나리오를 왕창 뒤틀어버렸다.

       단순히 재미없다는 이유로!

       

       허나 정말 놀랍게도, 열심히 준비한 연극이 뒤틀린 것에 대해서 케넬름은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신의 의지란 변덕스러운 자연과 같은 것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것.

       그것이 인간이니까.

       

       부들부들. 

       

       신의 변덕으로 연극의 방향이 뒤틀린 것?

       받아들일 수 있다. 신의 변덕이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럼에도… 도저히 케넬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렇게나 이야기가 재미없었다니…!’

       

       충격.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충격적인 진실.

       

       ‘오크와 잿더미 공주’를 무척 재밌게 읽어서 몇 번이나 완독한 케넬름은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 확고한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방금 그 확신에 커다란 금이 가버렸다.

       

       그렇게나 자신의 취향이 구리단 말인가?

       

       시대적으로도 취향적으로도, 먼 옛날의 사람이었던 케넬름은 연극의 시나리오가 그렇게나 재미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밌기만 한데.

       

       기이한 일이다.

       자신이 지상에 있을 적에 가볍게 농담하면 주변 사람들은 웃고 떠들기 바빴는데. 

       

       ‘악마의 두개골로 컵을 만들자는 농담이 제일 반응이 좋았죠.’

       

       이 동화책도 자신이 무척 재밌게 읽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까지 했던 것 아닌가.

       

       오크의 생태계, 영혼의 불꽃이나 ‘계기’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은 학생들의 학술 자료로 쓰일 정도였고, 아이를 재우는 데 가장 좋은 동화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두 장도 안 가서 아이가 잠든다고 했고.’

       

       그녀가 이 책을 권해서 읽었던 사람들의 평도 하나같이 무척 좋았다.

       

       위대하신 분에게 굳이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이유도 애독자의 욕심이었다.

       위대하신 분께서 동화책의 재밌고 감동적이고 교훈 가득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즐겨주셨으면 했다.

       

       어찌 보면 애독자로서 케넬름이 신에게 역으로 전도를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전도하는 입장에서 책의 줄거리를 미리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읽어본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투가 어딘가 어색했던 것 같기도…’

       

       정말 재미없고 따분했나?

       

       도리도리.

       

       그럴 리 없다.

       자신의 취향이 낡았을 리가.

       

       …진짜로? 설마.

       

       복잡한 상념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케넬름은 한 손에 날개 달린 신발을 들고 데이지에게로 향했다.

       

       

       

       *****

       

       

       

       탓, 타탓!

       

       “키싯! 키시싯!”

       “저리 비켜!”

       

       촤아아악!

       

       신발에 달린 날개가 파닥거리더니, 데이지의 작은 몸이 놀랍도록 높게 솟구치며 대지를 박찼다.

       날카로운 턱이며 발톱 따위가 스치며 데이지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아슬아슬했다.

       식은땀 한 방울이 데이지의 뺨을 주륵 흘렀다. 쉴 틈 따위는 없다.

       지금도 갖가지 벌레와 동물들이 데이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캬하아악!”

       “키익! 킥키이익!”

       

       살벌하기 그지없는 울음과 다르게 눈에 보이는 동물들은 토끼나 다람쥐, 사슴벌레처럼 흔하고 귀여운 녀석들이다. 아마 여인들이 봤다면 좋아하지 않았을까?

       

       키샤아악! 

       

       물론 눈을 시뻘겋게 뜬 채로 아가리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몰골을 봤다면 기겁했겠지만.

       

       이런 것에 놀라기에는 고향에서 봤던 역병쥐가 훨씬 더 징그러웠다.

       역병쥐는 거의 성인 남성의 체구를 자랑했는데, 이것들은 훨씬 작지 않은가?

       

       ‘달려드는 것도 정직해서, 정신만 바짝 차리면 쉬워!’

       

       그간 구경한 한스의 훈련을 떠올린다. 중요한 것은 눈을 감지 않고, 대담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

       

       데이지의 앞에 펼쳐진 지형은 모두 네 개.

       정글과 사막, 높은 절벽과 공중에 떠 있는 다리.

       

       각기 다른 지형을 가위로 잘라서 붙인 모양새로 각 지역의 경계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지금 데이지가 있는 정글에서는ㅡ

       

       “키히익!”

       “크헤에엑!”

       

       실로 다양한 동물과 곤충이 데이지의 뒤꽁무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멀리서 본다면 데이지가 각양각색의 동물들을 이끄는 대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뒤에 살벌한 동물들을 달고 얼마나 달렸을까.

       정글의 습하고 끈적한 공기가 데이지의 피부에 눅눅하게 달라붙었고, 턱 끝까지 내몰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타타탓! 탓, 타악!

       

       “헉! 여, 여기가! 흐읍! 어디지!”

       

       설상가상으로 무작정 달리다 보니 길을 잃었다.

       다음 지역으로 가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신발에 달린 작은 날개가 힘차게 날갯짓하며 데이지의 몸을 위로 밀어 올렸다.

       작은 날개는 마치 거대한 불사조의 그것처럼 힘차게 움직였고, 데이지의 몸은 가볍게 떠올랐다.

       

       부웅ㅡ

       

       “찾았다!”

       

       커다란 야자수 위로 솟아오른 데이지가 황금처럼 빛나는 사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향을 정했으면, 이제 달리면 된다.

       

       파아앗ㅡ

       

       작은 날개 옆으로 작은 바람이 일렁이더니, 신발에 옅은 녹빛이 깃들었다.

       

       바람의 축복이 깃든 작은 날개가 더욱 열심히 날갯짓하며 데이지를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놓았다.

       

       타탓.

       

       깃털처럼 가볍게 땅에 내려온 데이지가 곧장 땅을 박찼다. 신발에 달린 날개가 바람의 축복을 머금고 데이지의 몸을 떠밀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한계까지 내몰린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비단 뒤에서 쫓아오는 동물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릇한 정글의 영역과 황금빛 모래가 흐르는 사막의 경계는 서로 다른 색의 종이를 붙인 것처럼 이질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후윽, 후읍ㅡ!”

       

       파아악!

       

       아스라이 흩날리는 모래를 향해 데이지가 몸을 던졌다. 부드럽게 푹푹 꺼지는 모래가 데이지를 받아냈고.

       

       “키시식…”

       “삐익, 삐애액…!”

       

       눈이 충혈된 동물들이 정글의 경계에서 멈춰서더니 데이지를 노려봤다. 저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듯, 차마 사막에 발을 들이지는 못하고 정글의 끝에서 서성거렸다.

       

       “하아… 하아아ㅡ 으아아… 힘들어…”

       

       동물들이 넘어오지 못하는 걸 확인한 데이지는 그제야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진이 쏙 빠진다.

       

       날개 달린 신발의 도움으로 굉장히 빠르게 달릴 수 있었지만, 엄연히 데이지 본인의 체력으로 달린 것이다. 

       

       한계까지 혹사당한 다리는 터질 듯 부풀었고, 몸의 수분은 모조리 땀으로 빠져나갔는지 타오르는 갈증마저 느껴졌다.

       

       거기에.

       

       “더, 덥다…”

       

       고작 한 걸음 나왔을 뿐인데 정글의 습한 공기와는 다른, 바싹 마르고 뜨거운 사막의 공기가 작열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탈진해서 쓰러질 것이다. 지친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힐끔.

       

       사막에 발랑 드러누운 데이지가 마른하늘에 걸린 일곱 개의 별을 바라봤다. 

       

       “…”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샐쭉하게 뜨며 입을 삐죽 내밀었을 뿐.

       

       이 자리에 신실한 이가 있었다면 어딜 감히 눈을 그렇게 뜨냐며 대경했을 터지만.

       

       쿠구구구…

       

       자비롭고 지혜로운 여섯 번째 신께서는 다행히 어린아이의 투정 아닌 투정을 못 본 척하지 않으셨다.

       

       땅이 가볍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마냥 오아시스가 나타난 것.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야자수와 파랗게 반짝이는 호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따위도 예쁘게 포장된 채로 있었다.

       

       “우와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벌떡 몸을 일으킨 데이지가 허공을 향해 꾸벅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역시 신께서는 쫌생이 따위가 아니시다. 어린아이의 투정도 이토록 자비롭게 받아주시다니!

       

       신나게 오아시스로 달려간 데이지가 호수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하아! 살 것 같다.”

       

       갈증을 해결하니 허기가 몰려온다.

       

       

       

       파아앗ㅡ!

       

       

       

       샌드위치를 향해 군침을 삼키며 다가가던 데이지의 몸에 작은 별가루가 내려 앉았다. 반짝이는 별이 닿자 퉁퉁 부은 근육이 가라앉았고, 한계까지 혹사당한 몸에 생기가 돌아왔다.

       

       비록 샌드위치에 눈이 돌아간 데이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는 분명한 신의 배려였다. 어린 나이의 데이지를 위한 작은 축복.

       

       “츄릅ㅡ 맛있겠다…”

       

       문득 데이지의 머리 위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부자연스럽게 휘청하며 부러지더니ㅡ

       

       빡!

       

       “아야!”

       

       요상한 궤적으로 떨어지며 데이지의 머리를 찰싹 때렸다. 마치 누군가 데이지의 머리를 향해 나뭇가지를 떨어트린 것처럼.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222화에 소제목도 2네요!!
    와! 222화에 소제목도 2네요!!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저… 쫌생이가난밴댕이소갈딱지 신!! 가슴이 웅장하다!!! 헉…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미친 날씨입니다…!! 어서 빨리 털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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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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