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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 논리 회로 연산 임계점 도달, DB 검토율 100% ]

         [ Logic gate operation threshold reached, 100% database inspection rate. ]

         

         [ ‘레오나르’라는 단어를 포함하거나 연상시키는 자료 내역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별도의 검색어를 이용하시거나 담당 주무관에게 연락하여 상위 권한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 There is no history of material containing or reminiscent of the word ‘Leonard’. Please use a separate search term or contact the person in charge to request higher-level viewing permission. ]

         

         “……여기도 아니군.”

         

         와장창…!! 우득!

         

         물끄러미 시스템 모니터가 출력한 결과값을 바라보던 레오나르가 팔을 들어서 투명한 패널이 부숴버렸다.

         조각난 강화 유리 파편이 흘러내리고, 실내 제어 장치가 파손되었음을 확인한 출입문이 강제로 폐쇄되려 했지만… 아나스타샤에게서 넘겨받은 인간형 중장갑 드로이드들로 격벽을 막아버렸다.

         

         그답지 않은 화풀이.

         이 짜증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도록 고통을 동반한 피라도 흘러내렸으면 좋으련만. 이 미치도록 비싸고 정교한 인공 육체는 가해지는 압력을 역산해 촉감으로 변환, 인공 수액 내부에서 맥동하고 있는 뇌로 ‘손가락 마디와 벽면이 접촉했음’을 알리기만 할 뿐.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유발한 신경질,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도 이루지 못한 뜻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드러나 있던 옆구리를 찌른 배신으로 인한 노여움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비록 주먹질을 일삼긴 했으나 품위 넘치는 태도로 손을 터는 그는 왜 자신의 별명이 레오나르 경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된 연유는 방금 위에서 나열한 대로, 느끼고 있는 감정에 따라 그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일단 자신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친구가 다른 마음을 품은 건 확실했다.

         보관고에 원래 육체를 담은 냉동 캡슐이 없던 것도, 그 년도 있는 줄 모를 창고가 정확하게 공습 당한 것도 기분은 굉장히 더럽지만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하지만 접속 경로를 우회해서 꽤 높은 관리자 계정으로 시설을 구획별로 조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적한 캡슐은커녕 자기 이름이 언급된 과거 문건조차 나오지 않는 걸 왜일까?

         

         “다음 창고로…!”

         

         유일하게 독백을 들어줄 사람이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임에도 그는 불길함을 애써 지우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전열, 후열, 공중 지원의 밸런스가 보기 좋게 잡혀버린 혼성 병력을 우르르 움직였다.

         

         레오나르라고 이런 몸에 안착하고 나서 곧바로 탈주를 감행한 건 아니었다.

         

         설마 누가 좋아서 현상 수배범이 되었겠나? 적어도 몇 개월은 족히 적응 과정을 거치며 전용 관리 장비들로 케어를 받아야 했던 만큼,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상부에 항의하기도 하고… 평소에 안면이 있던 다른 직원들이나 부하들에게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정보 수집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모든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정도로 딱히 둥글둥글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상벌이나 공사 구분이 명확한 그를 흠모하고 따르는 이들도 충분히 많았으니까.

         

         – 흡!? 식별 부호 EDF-0752 침입자와 조우! 놈이 연구동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몰아넣더라도 거센 반격에 주의하……! –

         

         “저항이 있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신중하지 그랬나?”

         

         그런데 고작해야 2년만에 자신과 관련된 문서가 모조리 증발하고, 이렇게 건물을 헤집고 다니는 와중에도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고?

         

         아무리 조직 개편에, 인사 이동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해도 이건 비정상적이니.

         깁슨이 거짓말을 주워섬긴 걸로도 모자라서 그에게 숨긴 사실이 아주 많은 게 분명했다. 평소에도 얼버무리는 구석이 많았지만… 영락없이 탈주자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는 게 부담되어서 그런 줄로만 믿었거늘!

         

         투카카카칵!!

         

         – 큿!? 씨발…! –

         

         순식간에. 짐승 떼에 병사들이 휩쓸린다.

         

         신호에 따라 집중된 포화에 모습을 드러낸 방위 로봇이 경직된 틈을 타, 날듯이 통로를 주파한 사냥개들이 목표물에 다다르고는.

         누군가가 조련한 맹견처럼 촉수를 찔러 넣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발톱과 치아를 이용해 철저하게 적을 해체… 분쇄하는 걸로 맡은 바를 다했다.

         

         허나 지면을 박차면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건 레오나르를 비롯한 전 병력이 마찬가지.

         제어권을 이양 받은 드로이드들은 물론, 배터리 제한을 걱정해 아끼고 있던 드론들도 전부 날아올라 한 무리의 군세를 이루며 진격하느라 바빴다.

         

         갑자기 서두르는 이유? 아직까지 통신 채널에 돌아오지 않는 동료, 아나스타샤가 정확히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유지해주고 있는 시설 봉쇄가 풀리면 저렇게 한두 대씩(Two-man cell) 뜨문뜨문 나타나는 정도로 견제가 끝날 리가 없었다.

         

         당장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파악되던 이쪽 군세의 위치도 실시간으로 보고되며 건물 전체가 하나의 강철 괴수처럼 태동해서 안에 들어온 귀찮은 벌레 무리를 씹어 먹어버리겠지.

         

         “칫…!”

         

         그래서 레오나르는 가는 길목에 있는 창고만 빠르게 개방하며 달렸다.

         

         담긴 의미는 많이 변질됐지만 약속했던 대로 오랜만에 깁슨 녀석의 면상을 보기 위해, 정말 농담으로도 내킨다 하기 어려웠지만 원흉이었던 썅년과 담판을 짓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기에.

         

         – 병기 작동을 중지하고 정지하라! 이는 엑사테크에 대한 명백한 적대 행위이며… 왁!? –

         “반푼이 따위가. 손님 대접을 이리 좆같이 하면서 대체 뭘 한가롭게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군.”

         

         독자적인 회선을 제외한 네트워크가 차단되며 유기적인 부서 간 공조도 끊어졌는지, 고지식하게 내부 규정이나 읊던 웬 말단 바보의 로봇이 성난 해일에 집어삼켜졌다.

         

         불청객 입장이니 소독 수칙을 준수할 필요도, 시간 잡아먹는 정화 설비들을 차례 지키며 통과해줄 까닭도 없겠다 이대로 안까지 단숨에 주파한다. …정확히는 주파하려 했다.

         

         그런 계산을 끝마친 레오나르의 발길을 붙잡은 건 다름이 아니었다.

         

         [ …시설 내 모든 직원들에게 알립니다. 현 시간부로 네트워크 보안이 정상화되었음을 통지합니다. 무차별적 데이터 해킹 위협이 사라졌으므로 경보 단계를 코드 블랙에서 레드로 변경. ]

         [ 추후 통지는 공용 방송이 아닌 기존과 동일한 부서별 공지에 따라 이루어질 예정이므로 침입자 배제 및 구역 사수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

         

         “!!”

         

         후방으로부터의 지원이 기어이 끊어졌다.

         그녀가 당했나? 주변에 호위를 겹겹이 쌓는 타입인 만큼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리였나? 충고대로 내뺀 거라면 차라리 홀가분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여태 그가 최소한의 저항만 격파하면서 미친듯이 이동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서포트를 책임져주던 아나스타샤의 덕분.

         

         고가의 장비가 흘러 넘치는 엑사테크도 연구소라는 특성상 유형의 물질 자산보다는 무형의 지식 재산에 더 중요한 게 많아서.

         또 어차피 안에 들어온 놈이 뭘 훔치더라도 무사히 들고 나가지 못하면 도둑질은 성립하지 않으니까.

         

         덜컹… 덜컹, 덜컹. 파캉!!

         

         적색 조명이 살짝 옅어지자마자, 개방된 천장으로부터 소형 포탑과 순찰 드론이 튀어나왔으나 이미 방어 프로토콜과 그 과정을 인지하고 있던 레오나르의 지휘에 따라 침착하게 격파되었다.

         

         단,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역 단위의 스캐닝은 그로서도 피할 방법이 없었으니 이제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건 불가능해졌다.

         

         지지부진하게 적에게 끌려다니며 누적될 손해가 자산 단가보다 높아질 경우, 여차하면 건물 한 획을 통째로 격리한 다음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게 이들.

         

         이렇게 된 이상 속전속결로 죽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증오만을 마음껏 토해내고 가주겠다…는 위험한 결심이 내면에서 확립되려던 찰나.

         

         삐이— 하는, 한 줄기 이명 같은 통화음이 레오나르의 수신기를 울렸다.

         

         마켓으로부터의 업무 연락이나 지시에 사용하는 것과는 신호음부터 다른, 행여나 신호를 놓치지 않도록 일부러 불쾌감을 느끼게 설계된 위성 통신 서비스 특유의 소리.

         

         “……감히, 이런 상황에서 먼저 다시 전화를 걸 정도로 네 낯짝이 두꺼운 줄은 미처 몰랐군. 여러모로 헛산 기분을 느끼게 해줄 속셈이라면 성공했다. 축하하지.”

         

         “씨팔… 일을 존나게 키운 게 누구인데, 혼자 개고생하는 사람을 그딴 식으로 비꼬는…! 아니, 아무튼. 한 명만 생포해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이 꼬맹이밖에 안 보여서 잡긴 했는데… 네가 고용한 해커팀, 이 년도 포함된 게 맞지?”

         

         아직도 여기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반드시 찾아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분노를 담아 뒤이을 조롱에 대비했건만.

         

         깁슨은 마치, 자신은 거리낄 것 하나없이 떳떳하다는 듯 짤막한 동영상을 하나를 보내왔으니.

         

         어수선한 실내, 눈에 익은 사무실 바닥.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탄흔과 그을음이 난자한 그곳 지면에 널브러진 소녀가 있었다.

         

         무언가에 강하게 맞은 듯 얼굴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가 눈가를 침범해서 시야가 흐릿할 텐데도 이미 그런 걸 따질만한 의식이 없는지 눈동자의 초점이 맞질 않았고.

         끔찍하면서도 처연하기 그지없는, 명화로 평가받는 한 폭의 그림처럼 한 쪽 팔을 들어올려 뻗은 그녀가 간절하게 어딘가로 향하려다가… 이내 힘을 잃고 완전히 쓰러졌다.

         

         ……그 방향에 있는 건 작업에 쓰라고 빌려준 사무실 컴퓨터, 최후의 최후까지 무모한 계획을 지지하고 현실로 바꿔주던 동료는 이젠 미동조차 없었다.

         뒤로도 몇 초 분의 프레임은 남아있는 영상이었기에 끝까지 지켜봤지만 달라지는 건 전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몰랐겠지만, 자칫 모 기업 인사들이 봤다면 도시 전체가 화마에 휩싸였을 수도 있는 필름임이 틀림없었다.

         

         “………죽였나?”

         

         실시간 촬영이 아니라 녹화된 화면이라는 걸 알았던 만큼 레오나르는 뜨거우면서도 서늘한 감각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걸 애써 억누른 채로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걸 보여주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배반한 주제에 재차 얼굴을 들이밀었는지.

         우선은 놈의 뜻대로 놀아주겠다. 상황 파악이 먼저고 복수는 그 다음이다.

         

         “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꼴을 보니 네가 고용(Recruit)한 용병이 맞는 모양인데….”

         

         거기서 잠깐 말을 끊은 깁슨이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을 긁으려는 악질적인 연극이라기보단 일종의 설교나 훈계를 하기 전에 말을 고르는… 그런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

         

         “정신 좀 차려라. 언제까지 그 좋은 머리랑 몸 가지고 그런 신세로 지낼래? 따로 연구도 계속하던 걸 보면 연구자로서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그 언쟁은… 한참 전에 더는 안 듣겠다고 끊은 것 같은데…!!”

         

         “참석자가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니 영원히 논쟁이 안 끝나는 건 생각해봤고? 하여간, 이제 전산망이 돌아와서 그… 소장도 네가 돌아온 걸 알았으니까. 일단은 올라와라. 자꾸 찢느니 죽이느니 하지만 말고, 얘기를 좀 하자 우리.”

         

         저 멀리 복도 끄트머리에 어느샌가 포진해 있던.

         연구동을 지키기 위해 증원된 병력들이 깁슨의 나긋나긋한 설득과 동시에 천천히 총구를 내리고 옆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들이 이 위성 전화를 엿들은 건 아닐 거고 윗선에서 받은 지시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이쪽의 병력을 움직이지 말거나 무장 해제하라는 요청조차 없었으니, 독 안에 몰아넣으려는 게 아니라면 상대는 정말 여기까지 와서도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건데.

         

         “…….”

         

         부숴야 할 원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레오나르는 특별한 대답없이 서서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폭이라면 몰라도 인질 구출까지 염두에 둔다면 여기서는 이 장단에 맞춰 행동하는 게 맞다고 자신을 타이르며.

         

         

         

         ……한편 그 시각.

         재수없으면 영영 눈을 못 뜨거나,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론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기절했던 아나스타샤가 겨우 눈을 떴다.

         

         살아만 있다면 다음 기회도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잠시뿐.

         

         “이게… 시발 뭐여.”

         

         다만 오게 된 연유도, 이게 가능한 원리도 모를 뿌연 모래먼지가 가득한 한 정비소의 풍경이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엣!

    휴일을 정해서 천만다행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날, 바로 오늘이네요.

    띠링띠링 님의 10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릴 적 저는 이해 못하겠지만, 얼굴에 코인을 맞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네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파이어폭스로 글을 수정하려고 하면 지연 입력에… 밀림 현상에… 건드린 적도 없는 문장까지 깨지고 난리가 나는데 크롬은 완전 멀쩡하네요?!
    진작 알았으면 오타 고치면서 오타 추가하는 사태가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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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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