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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그 시각, 후작성 [골든 캐슬] 지휘본부.

     “……생각보다 힘들군.”

     군청색 머리칼에 안경을 낀 청년은 자신의 쇄골을 만지작거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힘들어.”

     혼잣말이다. 

     지휘본부실에는 아무도 없다.

     누구 한 명 정도는 보좌를 하든 아니면 함께 작전을 짜든 그럴텐데, 이곳에는 청년을 제외하면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 아니다. 할 수 있다, 드리테.”

     청년은 자신을 향해 ‘드리테’라고 칭했다.

     그것은 그가 이 후작령에서 사용하는 이름도 아니었고 아버지에게 받은 이름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어머니, 나의 토스카나. 지켜봐주십시오.”

     드리테 토스카나 테르시안. 

     잭이나 프란츠, 아이작 같은 수많은 가명들 속에서, 그림자로 활동하면서 임무 때문에 꺼냈던 수많은 이름을 내려놓은 채,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을 꺼냈다.

     설령.

     그 드리테라는 이름이라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03’번이라는 칭호조차 가장 인정받고 싶은 ‘아버지’에게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당신의 마지막 후손이 왕국 내전을 이끌어 승리를 거머쥐고, 테르시안 제국을 제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분명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반드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당신의 아들이, 제국의 황제에게 월계관을 물려받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곳에서.”

     드리테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천장이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페르디난도는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놓인 손거울을 쓱 살폈다.

     “노스트럼은…하아.”

     이곳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눈 아래에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있었다.

     “후….”

     토스카나를 되찾는다.

     혹은, 멸망한 토스카나의 후계자가 제국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토스카나의 명예를 되찾는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그림자 교습소에서 살아남았고, 함께 그림자로 자라나던 이들까지 전부 다 잡아먹으면서 그는 성장했다.

     설령.

     황제에 의해 ‘폐기’선고를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03’번의 숫자가 지워지는 형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03번의 자리를 또다른 그림자가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이렇게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노스트럼의 꼴통들을 데리고 지브롤터에게서 승리를 거머쥔다.

     그것만큼 확실한 증명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삐빅.

     드리테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드리테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품에서 반짝이는 물건을 꺼냈다.

     직사각형으로 길쭉한 마석.

     곧 마석이 반짝이더니,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잘 되어가나, 동생?]

     “동생은 무슨. 우리가 언제부터 형제사이였다고.”

     [너무하는군. 그래도 나는 아직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닥쳐라, 프란츠 페르디.”

     프란츠, 라는 이름을 말하자, 마석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와 원을 만들어냈다.

     [그래. 프란츠. 너와는 달리,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은 남자지.]

     거울처럼 만들어진 원형의 안개 너머, 백발에 군청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 나타났다.

     “하,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아들 자리 빼앗긴 거 아닌가?”

     […닥쳐라.]

     프란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아버지를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있다. 노스트럼의, 그것도 지브롤터의 인간 따위에게 아들 자리를 빼앗길 것 같으냐?]

     “이미 빼앗긴 걸 넘어서 후계자로 못까지 박혔는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 그렇지. 하지만 나는 뛰어넘을 것이다. 나의 방법으로.”

     드리테가 비릿하게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후작성의 성벽을 강화하고, 모든 방향으로 마법사들을 배치했다. 흐흐, 마법사들이 확실히 좋아. 자기들은 고급 인력이라고 찡찡거리는 것만 빼면, 마법사 한 명이 소대나 중대 하나 급의 전력을 낼 수 있더군.”

     [노스트럼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기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일텐데? 마스터만 최소 둘일 거다. 감당할 수 있겠나?]

     “오더라도, 버티고 막으면 돼.”

     드리테는 느긋하게 손을 옆으로 뻗었다.

     “성문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으면 그만이다. 바르셀 후작이 사로잡히는 것만 아니라면, 영지전은 계속 지속되거든.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고.”

     [뭘 꾸미는 거냐.]

     “별 거 없어. 노스트럼의…흐흐. 노스트럼 인간들 중에서 제법 악마같은 놈들도 있더군. 후작성도 그러한 경우의 대표주자고.”

     [무슨…?]

     “제국에서 그림자놀이만 하니까 모르지. 현장에 왔으면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여기, 인간적으로 진짜 끔찍한 것들이 한가득 쌓여있거든.”

     [무능왕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

     드리테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땅에 마법진을….”

     

     쾅쾅쾅.

     “…나중에 얘기하지.”

     [잠깐, 아직-]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드리테는 마석에 흐르는 마나를 거둔 뒤, 마석을 품 안에 집어넣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큰일났습니다, 베르게슨 집사장!”

     “…베르게네스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급하게.”

     “저, 적이!!”

     황금여명의 기사 한 명이 달려와 밖을 가리켰다.

     “지브롤터가 기사단을 이끌고 습격해왔습니다!”

     “…기어이 저질렀군요. 단기전을 노리는 거겠죠. 괜찮습니다. 기사단을 재배치하여, 놈들이 오는 길목마다 준비된 함정을-”

     “배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배…?”

     “예!! 붉게 칠한 배가 그대로 지금 후작성을 향해!!”

     “……설마!!”

     드리테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으로 향했다.

     “황제가 기어이 지브롤터에ㅡ”

     그리고는 하늘을 계속 훑어봤다.

     “……없는데?”

     “하늘이 아닙니다! 어디를 보시는 겁니까! 저들은 지금, 배로 땅을 달려오고 있습니다!”

     “배가 땅을 달린다고?”

     “마도자동선에 바퀴를 달아서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속도는 일반 열차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빠릅니다!”

     “…휴, 다행이군.”

     드리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육지로 오는 거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마지막 방어선만 지켜내면 되니. 성벽으로 병력을 보내라. 마법사들을 보내어, 성벽에 실드마법을 펼쳐 대기시키도록 하라.”

     “아, 네!”

     “그리고….”

     드리테는 허리에 찬 검을 가볍게 뽑았다.

     

     “놈들이 달려오는 방향을 계산하여, 여유가 있는 마법사들을 전부 다 불러. 일직선으로 달려온다면, 배가 알아서 땅에 처박히게 만들어야지.”

     “지, 집사장님…?”

     “전권은 내게 있고, 바르셀 후작께서는 내게 모든 전술을 맡기셨지. 그렇다면….”

     드리테는 벽에 걸린 후작성 지도를 검끝으로 가리켰다.

     “오는 길에 함정을 판 다음, 놈들이 꼼짝도 못하게 만들어서 포위하여 섬멸하면 그만이다.”

     * * *

     숲을 지나, 평야를 지나, 강을 건너, 농지와 영지민들이 사는 평야를 지나.

     “슬슬 보이는군.”

     첩보자료, 사진으로 봤던 후작성-골든 캐슬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전방, 목적지 도착 약 4분 전.”

     “도련님!!”

     “참아. 버텨.”

     콰ㅡㅡㅡ앙!

     “폭발마법에 직격당하는 것도 아니고, 기술자들이 다 안티매직실드 차체에 걸어뒀는데 믿으라고.”

     “자꾸 휘청거립니다!!”

     “알아. 이 정도로 달리는데 그러면 휘청거려야지.”

     무게가 엄청 무거운 것도 아니고, 마도엔진과 풍석 이외에는 대부분의 부품과 차체가 나무로 되어있다.

     아무리 겉에 얇은 강철판과 마석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고 해도, 무게 자체가 시속 300km 이상 될 정도로 미친듯이 달리는 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사실.

     그렇다면 지금 이 배는 어떻게 달리는 것인가?

     달리는 게 아니다.

     사실상, 뒤로 뿜어져나가는 풍석의 출력으로 앞으로 그냥 ‘날아간다’라고 보는 게 맞다.

     쿠구구궁!

     중간에 바닥에 스치듯이 부딪치는 바퀴와 땅의 충격으로 인해 진동이 크게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와악!”

     “훈련이라고 생각해. 이 정도 진동도 버티지 못해서야, 지브롤터 최정예라고 할 수 있겠나?”

     

     상급 기사 정도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그런 자들로만 모았기에, 만일 한 명이라도 검을 놓치고 넘어진다거나 미끄러진다거나 하면 진심으로 실망할지도 모른다.

     “로버트 경.”

     “예, 예!”

     그나마 가장 잘 버티고 있는 로버트 경을 향해 묻는다.

     “이것도 못 버티면, 엘프들 만날 자격 없는 거겠지?”

     “으윽…! 예ㅡㅡ!”

     로버트가 악을 쓰며 외친다.

     그러자 카를로스 경을 비롯하여 다른 기사들 또한 표정을 굳히며 바닥에 수평으로 박아넣은 검에 전신을 맡긴다.

     “훗.”

     “…이봐, 도련님.”

     내 옆에서 풍석에 마력을 불어넣던 멘테 경이 쓰게 웃는다.

     “지금 이렇게까지 기울었는데, 이거 버티라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상급 기사 이상이라면 40도 정도 기울어진 갑판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마도자동선의 앞부분이 높게 들린 채 달리고 있다.

     아마도 옆에서 본다면 앞바퀴 몇 개는 허공에 뜬 채로 헛돌고 있을 터.

     “괜찮습니다. 이럴 줄 알고, 뒷바퀴 두 쌍은 열차용 철바퀴로 바꿔달아놓았으니까.”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멘테 경이 밖을 가리킨다.

     “마법사들이 비룡을 타고 마법을 폭격하는 것도 안 통하는데,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겠죠. 만일 그런다면….”

     멘테 경의 지적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벽 앞, 우리가 달리는 바로 앞에서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있겠죠.”

     마나가 느껴진다.

     기울어진 갑판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도자동선의 차체 너머로 보이는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황금으로 찬란하게 물든 성벽.

     성벽에는 우리 마도자동선의 차체보다 더 단단한 실드마법이 펼쳐져있고, 그 성벽으로 향하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방패를 든 채 서 있다.

     “저거 깔고 가버리면 다 죽겠죠?”

     “죽일 거야?”

     “죽일 생각도 있긴 한데, 저들도 자동선에 치여 죽을 생각으로 나온 건 아닌 것 같군요.”

     “도, 도련님!!”

     

     갑판 선수쪽에 있던 카를로스 경이 소리친다.

     “저 녀석들, 우리 가는 길에 [머드 필드]를 깔았습니다!”

     “오호.”

     

     머드 필드.

     마법이다.

     순간적으로 평지에 고열을 일으키고 수분을 뿌려, 넓은 구역을 비가 내린 렘버리 캠프마냥 진흙탕으로 만드는 상급 마법이다.

     “폭은?”

     “성벽까지 가는 거리, 약 300m 이상!!”

     “아무리 300으로 달린다고 해도, 그 정도면 진흙탕에 그대로 처박히겠군.”

     과연.

     

     “마냥 멍청이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더 충격을 많이 받겠어.”

     나는 풍석을 향해 다가가, 아래쪽으로 향하는 레버에 손을 뻗었다.

     “멘테 경. 위를 부탁합니다. 저보다는 출력 약하게.”

     “그거, 하는 거야?”

     “네.”

     이 마도자동선이 붉은 충격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

     “그거 하려고 여기까지 이거 끌고 왔는데, 안 하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골든캐슬, 후작성으로 향하는 성벽은 그다지 높지 않다.

     “출력, 최대로.”

     나는 멘테 경과 함께, 거의 동시에 캐롤라인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병을 꺼낸 뒤.

     그대로, 우리의 손에 부어버렸다.

     

     * * *

     그 시각, 지브롤터 백작성 서재.

     “…놀랍군. 실시간으로 이렇게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을 볼 수 있다는 게. 마법의 힘 없이.”

     “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도공학의 힘이죠. 후후.”

     서재의 벽에 투과되는 영상은 지브롤터 협곡이 아닌, 하늘에서 땅을 비추고 있는 조감도와 같은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붉은 충격호가 달리고 있다.

     적진을 향해.

     선수를 들고, 적의 무수한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건….”

     “아, 큰일이다.”

     바토리 소장은 손톱을 깨물었다.

     “자기네 영지 도로를 저렇게 늪지대로 만들면서까지…!”

     “그거, 가능한가?”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아요. 이미 모든 계산은 다 끝마쳤으니까.”

     바토리 소장이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제발…!”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저들이라면 할 수 있을 걸세.”

     크림슨 변경백은 담담히 찻잔을 들었다.

     “그레이라면.”

     그 순간.

     파ㅡㅡㅡㅡ앙!!!

     거대한 폭발 소리와 함께, 붉은 충격호의 아래에서 불꽃이 뿜어져나왔다.

     “와.”

     자동선의 위에서 뿜어져나오는 풍석의 바람보다도 더 강력한, [화염폭풍]마법이 좌우로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그 출력은, 그 파괴력은.

     “날았다.”

     이미 상체가 들린 채 달리던 붉은 충격호가, 멀리 뛰기를 하는 것처럼 붕 떠오르기에는 충분한 마력이었다.

     “…….”

     스크린을 바라보던 바토리 소장은.

     “하아….”

     신음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 * *

     “응?”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술을 마시다, 창 밖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가, 점프를 하네?”

     붉은색 마도자동선이, 금빛으로 물든 성벽 위를 향해 맹수처럼 도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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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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