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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EP.222

     

   넓고 황량한 전장.

   절벽이 무너져 내린 이후로 흙먼지만 쌓이던 전장에 또다시 돌풍이 불어 닥쳤다.

     

   백색 무복을 입은 금안의 여인이 서슬 퍼런 장검을 뽑으며 요괴가 무리 지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밤하늘의 월광月光을 연상케 만드는 금빛 눈동자.

   그녀의 온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내공이 흘러나오자 인상을 찌푸리던 이매망량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오!

     

   놈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자 화영의 눈이 더욱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첫 등장부터 꾸준히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놈의 정신 상태가 몹시 거슬렸다.

   고작 저런 마음가짐으로 본문의 무공을 가늠하려 했다는 사실이 가증스러웠고 무인의 진심을 고작 한낱 장난거리로 여기려는 저 태도가 아니꼬웠다.

     

   “요물아, 진정 놀이를 원하느냐?”

     

   그녀의 물음에 이매망량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화영을 대놓고 무시하기 위해 띄운 놈의 조소. 하지만 화영은 놈의 도발에 동요하지 않은 채, 맞웃음을 지었다.

     

   “좋다.”

     

   월광신보 月光神步

     

   “본녀가 잠시 어울려주마.”

     

   흘러나오던 푸른 강기가 화영에게 흡수되는 듯싶더니 그녀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가 놓친 그녀의 움직임.

   이곳의 그 어떤 화신도, 성좌도 그녀의 잔상을 따라잡지 못했으며, 그것은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이매망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팟!

     

   그녀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한 번의 도약으로 놈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도깨비의 손이 그녀를 향해 올라갈 때, 그저 어깨를 밟았을 뿐이었다.

     

   무영각법 無影脚法

   만근추 萬斤錘

     

   투콰아아앙!!!

     

   -크아악!

     

   이매망량이 괴성을 지르며 그녀에게 노리고 뻗은 손을 회수했다.

   괜히 화영을 잡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어깨가 터져 버렸을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상황.

     

   놈이 고개를 들어 화영을 쏘아본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화영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놈의 비정상적인 반사 신경에 경이로움을 느낀 것이다.

     

   화영을 바라보던 이매망량이 빠르게 아가리를 벌린다.

   들숨을 쉬는 것으로 보아 뭔가 말을 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괜히 성좌가 된 건 아니로구나.”

     

   화영은 이매망량의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며 전율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무인들과는 결이 다른 괴물.

   어쩌면 이 싸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신났군.”

   “……저 모습이 말입니까?”

   “대충 봐도 그렇지 않은가? 새로운 유형의 상대랄까… 물론 인간보다는 영물이나 괴물을 상대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새로운 무공만 봐도 신이 나는 법인데 오죽하겠나. 심지어 이명이 살아 있는 무공서인데.”

   “……”

     

   무인들은 하나같이 다 어딘가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물론 내가 만난 화영과 탈람바르가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도깨비의 입에서 뿜어진 거대한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으며 전쟁의 시작을 알린다.

     

   하늘을 향해 포효한 요괴들이 눈을 부라리며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엔리코가 헤라클래스를 선두로 보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막대를 꺼내 들었다.

     

   “근데 나도 슬슬 몸이 가렵단 말이지. 누굴 상대하면 되겠나? 나도 저런 재밌는 놈이 상대면 좋겠는데.”

     

   탈람바르의 말에 나는 요괴들의 선봉에서 헤라클래스의 머리통을 날리는 한 꼬마 아이를 발견했다.

     

   “혹시 저 성좌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으음? 날 더러 저런 꼬마를 상대하란 말인가? 아쉬운데.”

   “제가 한 차례 싸워 봤는데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목을 쳤는데 살아 있었거든요.”

   “불사의 존재라…… 흥미롭군.”

     

   탈람바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등에 걸친 검을 살며시 잡았다.

     

   “아, 혹시 자네 그거 아는가?”

   “뭘 말씀이십니까?”

   “이 팔 말이야. 자네가 잘랐던 거.”

   “……어? 그러고 보니.”

     

   탈람바르의 말에 나는 붕대가 칭칭 감긴 왼손과 팔이 그의 어깨에 멀쩡히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13층에 올랐을 당시, 그는 나와의 비무를 통해 왼팔을 잃었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그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내심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던 부분이었는데.

     

   “그게 왜 붙어 있습니까?”

   “방금 자네 굉장히 무례했네.”

     

   그가 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곧장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웬걸. 그의 손이 멀쩡히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반사적으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친구가 붙여 줬어.”

   “……토끼가요?”

   “생각보다 치유 능력이 좋아. 어디에서 괴물 팔 하나를 들고 오더니 턱! 붙이고 지잉- 하니까 연결되더군. 내 팔이 아니라 아직 감각이 좀 무딘 느낌이 있긴 한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자세히 보니 붕대가 감긴 틈으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평범한 몬스터나 인간의 팔을 붙인 건 아닌 모양.

     

   멀리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토끼가 자랑스럽다는 듯 엄치를 치켜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나는 이만 저 놈을 상대하러 가보겠네. 왼손이 생기긴 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쓸지는 모르겠군.”

     

   그가 등 뒤의 검을 뽑으며 곧 싸움이 붙을 꼬마 성좌를 바라봤다.

     

   “조심하십시오. 여우인지 늑대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본체는 요괴라 힘이 강합니다.”

   “기대감 심어 주지 말게. 실망이 커져.”

     

   무심한 대답을 끝으로 도약한 탈람바르.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장막 뒤의 감시자를 바라봤다.

     

   “아, 내 차례요? 내가 누굴 맡아주면 되겠소?”

     

   여전히 장난기가 넘쳐나는 표정. 하지만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긴장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명, 너는 나와 적진으로 간다. 저 검은 우두머리 옆에 천을 뒤집어쓴 성좌를 상대해 줘”

   “흠…… 쉽진 않겠군. 알겠소. 그대가 저 시커먼 놈과 싸울 동안 절대 방해가 안 되도록 신경 쓰도록 하지…… 근데……”

     

   가만히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장막 뒤의 감시자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왜 나한테는 반말이시오? 저 둘한테는 깍듯하게 경어를 쓰시던데.”

   “……그러게?”

     

   너무 가벼운 첫 인상 때문인가.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가 그에게 묘한 친근감을 느끼며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진지하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이 동했을 뿐.

   내가 자신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못마땅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뭐, 솔직히 까고 말해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소. 불만도 없고… 아니, 오히려 이게 맞는 상황이긴 하오.”

   “……응?”

   “나중에 말씀드리겠소. 일단 갑시다. 다들 박터지게 싸우는데 우리만 띵가띵가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그의 말에 나는 정신을 다잡으며 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마따나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을 우리의 승리로 이끄는 것.

   내가 놈을 빠르게 처치할수록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싸움이었다.

     

   ***

     

   -죽어! 죽어!!

     

   백요의 전투는 그 누구보다 거칠었다.

   헤라클래스가 쏘아 낸 마법을 온몸으로 달려들어 부셔버렸고 순간적으로 신체를 본체로 변형시키며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혼돈이 이매망량에게 부탁했던 난장판을 그가 만드는 형세가 되었다.

     

   그가 화신들이 싸우는 공간으로 뛰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는 커다란 공터가 생겨났다.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피하게 된 그의 동선.

   하지만 그 순간에 그의 공간에 발을 들인 성좌가 있었다.

     

   “아주 망나니가 따로 없군. 나더러 이런 단순 무식한 놈을 상대하라고?”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유유히 걸어 나온 남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백요를 바라봤고 백요는 그의 표정을 보며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건방지구나. 감히 13층 언저리에 머무는 성좌 따위가 격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나에게 뭐라?

     

   백요의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진다.

   눈빛만으로 상대를 찢어 죽일 것 같은 위압감.

   하지만 아쉽게도 백요의 상대는 적이 위협을 한다고 겁을 집어 먹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기술도 뭣도 없이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재미가 없는데.”

     

   그는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화영이나 김시인이 재밌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자신은 가지지 못한 스타일리쉬한 전투방식을 사용했기 때문.

     

   그냥 힘 싸움을 할 거면 그냥 돌산을 깨부수고 바다에 들어가 검을 휘두르는 게 백배는 나았다.

     

   타아앙!!!

     

   그래서 그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최대한 빨리 놈을 해치우고 김시인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뭣…

     

   서걱!

     

   튕겨지듯 날아든 탈람바르의 신형이 백요를 스치고 지나갔다.

   보법이나 신법 따위는 없었다. 그저 힘으로 땅을 박찼고 검을 휘둘러 놈의 목을 쳤을 뿐.

     

   백요의 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탈람바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꿈틀!

     

   놈의 신형이 쓰러지는 동시에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폭발하더니 조금 더 키가 자란 놈이 연기를 뚫고 탈람바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오!”

     

   놈의 손톱이 탈람바르의 가슴을 길게 할퀴며 지나간다.

   조금만 더 깊었어도 치명상을 면치 못했을 상처.

   하지만 탈람바르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자잘한 상처 따위가 아니었다.

     

   “……”

   -놀랐나? 나는 죽지 않아! 오히려 죽일수록 더 강해진다. 고작 목숨이 하나뿐인 너희 하등한 인간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백요의 말에 상처를 슬쩍 만진 탈람바르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뭐?

   “지금부터 열 번만 더 강해져라. 그럼 정말 재밌어질 것 같군.”

     

   누군가에게는 허세로 들릴 만한 발언.

     

   하지만 백요는 보았다.

     

   탈람바르의 얼굴에 펼쳐진 징그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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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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