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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2

       

       

       저택의 본채와 욕탕 별채의 사이에서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던 그때.

       

       그곳의 소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저택 부지의 안쪽이지만, 정원을 지나, 드넓은 저택 부지의 맨 가장자리에 있는 철제 대문에 이르면 그 소란도 전해지지 않아 고요하기만 하다. 

       

       대문 안쪽의 차고에는 렌까의 자가용인 1937년형 뷰익 스페셜이 주차되어 있고, 그 옆에 흡사 경비실처럼 붙어있는 조그마한 문옥(門屋; 문간방).  

       

       렌까를 아침저녁마다 자동차로 모시기 위해 당직을 서는 운전수들이 묵는, 다다미 석 장짜리 단칸방이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은, 경성분조 부분조장 다까히로의 부하이자 요 며칠동안 임시로 렌까의 운전수를 맡게 된 빡빡이 하루조.

       

       민머리에 험상궂은 인상의 하루조는, 그 안에서 가스등을 켜놓고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탁자 위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시라바야시라는 조선인 생도가 들어간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까지 별 소식은 없었다. 그 조선인 생도는 정말 렌까 아가씨를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렌까 아가씨로부터 신임을 받는 조선인 생도라니.’ 

       

       하루조는 심지어 다까히로 부분조장조차도 이 조선인 생도를 깍듯이 모시고 있었다. 그뿐이랴, 렌까 아가씨의 그림자같은 심복인 오스에도 시라바야시를 꽤나 신뢰하는 듯 했다.

       

       분명 무슨 수가 있을테니, 렌까 아가씨의 심복인 오스에가 시라바야시를 모셔왔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조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렌까 아가씨는 정말로 정신병일까.’

       

       정말 정신병이라면, 정신병원으로 보내지는 것은 아닐까? 듣기로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불구자가 되어 나온다던데…… 

       

       시마즈구미 경성분조는 애초에 시마즈 가문의 당주가 제 딸에게 권력을 쥐어주기 위해 만든 자회사라는 것쯤은, 나름대로 간부급인 하루조 역시 알고 있었다. 렌까가 분조장 자리에서 밀려나면 그 자리에 다까히로나 다른 사람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경성분조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이 컸다.

       

       즉, 렌까가 온전치 못하면 하루조는 하룻밤 사이에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시마즈구미는 다른 엽사조합으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는 만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들어가기도 어려우리라.

       

       게다가 성질 더러운 오니(鬼; 도깨비)같은 선배 다까히로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 역시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가씨를 어떻게 모셨기에 저렇게 되었냐」며 책임을 물어온다면, 어쩌면 손가락 하나나 둘 쯤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하루조가 저택 안쪽으로는 들어가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다까히로 부분조장이라면 모를까 그 밑은 간부급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허가받지 않는 이상, 렌까가 거주하는 본채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젠장. 내일 아침이 되면 뭐라도 나오긴 나오겠지.’

       

       자그마한 문옥 안에서 뒹굴거리던 하루조는, 잠들기 전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음?』

       

       저택의 정원 곳곳을 밝혀야 할 전등불이 전부 꺼져 있었다. 문옥 안에서는 전기를 안 쓰고 조그맣게 가스등만 켜놓고 있었기에 몰랐던 것이다.

       

       『젠장. 전기가 나갔나?』 

       

       저택에 전기가 나간 것이 분명했다. 정원 지하에 발전소가 있었는데, 종종 고양이나 쥐같은 것들이 들어가 누전을 일으켜 휴-즈가 나간다거나 하는 일이 이따금씩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루조가 전기계통에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시간에 기술자를 부르기도 힘들고, 단순히 발전기 스이치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면 되는 경우도 있어서 우선 확인해보기로 했다.

       

       하루조는 차고의 잡동사니를 뒤적거려 뭔가를 꺼냈다. 전쟁을 하는 병사나 광산의 광부들이 쓸법한 철두(鐵兜)의 앞에 조그만 손전등이 달린 물건이었다.

       

       하루조는 그것을 머리에 쓰고 조명을 켠 채로 밖으로 나왔다.

       

       ‘젠장. 왠지 으스스한걸.’

       

       저택의 대문은 정원과 본채가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깊은 산속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머리에 달린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을 나아가는 것은 어지간한 강심장이라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칼잡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하루조 역시 인적없는 어두움이라든가 귀신이라든가는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게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인 정원을 향해 나아가던 하루조는……

       

       『우왓! 뭐, 뭐냐!』 

       

       저 앞, 헤드랜턴 조명에 밝혀진 뭔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웬 인형이, 제 발로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란 것은 인형도 마찬가지!

       

       ‘옴마! 쟈는 또 뭐여!’

       

       인형, 까뜨린느는—아니 방숙자는 그녀대로 깜짝 놀랐던 것이다.

       

       방숙자는 연못에서 튀어나온 마인이고 뭐고 황급히 저택을 벗어나려고 부지런히 걸어, 대문 근처까지 다 와서 마음을 놓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과 자신을 비추는 빛을 보고 놀라서 고라니마냥 얼어버린 것이다! 

       

       ‘환장하겄구만! 쟈는 또 누구여! 내가 어떻게 여까지 왔는디……!’ 

       

       방숙자가 보니, 머리에 손전등을 단 사내는 험상궂은 인상에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저 대머리가 자신을 쫓아온다면 인형의 짧은 보폭으로는 결코 도망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

       

       ‘이대로 붙잽히면 끝인디…… 숫제 그걸 할수밖에는 없는가.’

       

       이 순간 방숙자의 마음속에서 떠오른 그것은, 예전 인체모형에 갇혀있을 때 보인 적이 있는 영혼의 힘이었다.

       

       예전에 그랬듯이 영혼 에너지를 확장시켜 마치 염동력처럼 쓴다면, 저 대머리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방숙자는 주저했다.

       

       예전에 인체모형에 갇혀있었을 때에는 몸 밖의 영혼 에너지를 확장시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이성을 잃고 폭주했을때 뿐이었다.

       

       지금 이 인형에 갇힌 뒤로 이 자그마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몸 밖으로 영혼 에너지를 끌어다 쓰다가 자칫 이성을 잃고 폭주해 악귀가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안할라면 말든가 할라면은 어여 혀야지. 어차피 모 아니면 도여.’

       

       방숙자는 용기를 내어 보았다. 지금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왠지 지금은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시방은 뭔가 달라도 다르니께.’

       

       방숙자가 스스로 느끼는대로 이 인형은 예전의 인체모형과는 뭔가 달랐다. 뭐가 다른가 하면, 그녀의 영혼이 깃들 수 있는 그릇이 달랐다. 인형에 누적되어 있는 생력의 결이 달랐던 것이다.

       

       예전 인체모형에는 단순히 치유학과 학생들이 무감정하게 발휘한 치유력이 쌓여 만들어진 생력이었다면, 지금 이 까뜨린느라는 인형에 만들어진 그릇은 렌까의 애정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생력.

       

       그것은 더욱 끈적하고, 더욱 농밀했다. 이 인형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와, 그동안 이 인형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달리 말하면 훨씬 안정적인 느낌이었고, 그래서 방숙자는 지금이라면, 스스로의 통제력을 잃지 않고서도 영혼 에너지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방숙자는 인형의 몸 안에 억눌러져있던,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바깥으로 방출했다. 그와 동시에 인형으로부터 밝은 빛이 터져나왔고, 

       

       『웃……』

       

       그 모습을 본 하루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빛이 마치 자신을 붙잡는 듯한 느낌에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우와아아아아앗—!』

       

       

       

       ***

       

       

       

       —우와아아앗!…… 아아앗!…… 아앗!…….

       

       『뭐야?!』

       

       렌까와 함께 걷던 나는 멀리서 들려온 사내의 비명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렌까! 너도 들었지?』

       

       렌까 역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렸습니다! 대문의 있는 방향……!』

        

       렌까의 말마따나 메아리처럼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저 멀리, 대문 방향이었다.

       

       ‘하루조가 당했구나!’ 

       

       인형이 저택을 빠져나가려다가 대문에서 대기중이던 하루조와 맞딱드린 것이 분명했다.

       

       『젠장! 저택을 탈출하려는 건가!』

       

       악귀들린 인형이 무엇을 했는지는 몰라도, 인명피해가 일어난 이상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나는 칼을 빼들고 렌까와 함께 대문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우웃, 빛이!』

       

       렌까가 미간을 찌푸리며 외친 것처럼, 어딘가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다름아닌, 어둠 속의 공중에서부터 말이다.

       

       『뭣……!』

       

       달도 별도 뜨지 않은 어둠 속에서 허공에 떠 있는 인간의 형상! 그것은 은은한 빛에 둘러싸여있어 형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고, 마치 지상을 내려다보듯 숙인 머리에서도 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화, 화성인……』 

       

       렌까는 어지럽다는 듯이 손등으로 눈앞을 가리고는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앗…… 보세요…… 화성인은 있었습니다…… 화성인의 살인광선……』

       『렌까!』

       

       렌까는 기우뚱하며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렌까가 바닥에 넘어지기 전에 겨우 붙잡았지만, 그녀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기껏 화성인따위 없다고 설명해서 정상으로 돌려놨는데,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또 망상병이 도지기라도 한 것인지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제길…… 그나저나, 저건?’

       

       나는 렌까를 일단 바닥에 눕혀놓고, 곧바로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며 허공의 괴물체(?)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뭐야, 하루조잖아……?”

       

       자세히 보니, 공중에 띄워져 있는 것은 머리에 헤드랜턴을 쓴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하루조였다. 입도 틀어막히고 팔다리도 묶인 듯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 같이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하루조가 공중에 띄워져있는 것이나, 하루조를 둘러싼 은은한 빛은 인형에 들어간 악귀의 소행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런 짓을 벌인 인형을 찾아내기 위해 칼을 든 채로 주위를 살폈다. 

       

       ‘……저기에 있군.’

       

       공중에 뜬 하루조에게서 눈을 돌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니, 렌까의 금발 인형 까뜨린느가 정말로 귀신이 들린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됐어야! 내가 해낸겨!] 

       

       여전히 영혼 라디오를 머리에 쓰고있던 내 귀에 들려오는 것은 나이 어린 여자아이의 들뜬 목소리.

       

       [인제는 미치지 않고서도 맘대로 힘을 쓸 수 있게 됐다니께!]

       

       그것도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이긴 하지만 내가 익히 아는 목소리였으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주제에 즐거운 듯이 폴짝폴짝 뛰는 인형을 보며 허탈하게 내뱉었다.

       

       “……방숙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까뜨린느—방숙자 각성!

    어쩐지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 길게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지만, 이번주 안에 끝낼 수 있을 듯 합니닷……!

    그리고 여담이지만 지금 작중 날짜는 1939년 5월 31일 밤인데, 현실세계의 지금도 5월 31일이네용. 신기하죵?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당!!!
    맛저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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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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