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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좆됐다.

       ​

       이것이 로즈마리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

       개씹좆됐다.

       ​

       천박한 표현이지만 뭐 어쩔 건가. 세계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

       “아아아악─!!”

       ​

       로즈마리는 괴성을 내지르며 철병팔진을 주파했다.

       ​

       덜컥!

       ​

       임시 숙소의 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한다. 거북 인형에 머리를 파묻으며 팔다리를 팡팡거리자 사방으로 먼지가 날아올랐다.

       ​

       “어떡하지, 어떡하지……!”

       ​

       클라이스가 알아서 사과를 한 것까지는 좋았다. 로즈마리도 딱히 에테르가 연구하는 걸 건드리지 않았고 말이다.

       

       게다가 하스펠트 자매의 행동을 보고 인간적인 감정이 들도록 유도하는 것까지 했다.

       ​

       나름 치밀한 계획이었다. 성공 확률도 충분히 있었다.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될 것이다.’

       ​

       그런데 까놓고 보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계획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머리 아파.”

       ​

       푹신푹신한 이불 위에서 온갖 방향으로 굴러대던 로즈마리는 소금물에 절인 시금치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잠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

       로즈마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

       여기서 가만히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래서야 현실 도피이지 않은가. 로즈마리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다시 동그란 블루베리로 돌아왔다.

       ​

       “솔직히 내키진 않는데.”

       ​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

       목이 마르면 흙탕물이라도 마셔야 하는 것처럼, 일이 급박해지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로즈마리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세 나라를 멸망시켜 왔고, 구천지대계 4석이라는 지위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

       그러나 이러한 지위 또한 금안족의 유토피아에서 쌍둥이 언니들과 룰루랄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발판.

       ​

       그 발판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로즈마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읏차.”

       ​

       서둘러 채비해야 한다.

       ​

       얼마 전 클라라의 죽음을 위조하기 위해 얻어 놓은 시체를 삼베에 싸서 챙겼다. 그 다음에는 마전지를 포함한 마도구를 배낭에 넣었다. 그 외에도 군것질거리나 생필품을 빠짐없이 넣었다. 절대로 수학여행 가는 거 아니다.

       ​

       “이쯤 하면 됐겠지.”

       ​

       물품은 충분하다.

       ​

       철병팔진에서 준비를 마친 로즈마리는 에테르가 연구하는 시간대를 틈타 그녀의 개인실로 몰래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

       ​

       **

       ​

       ​

       클라이스는 죽은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숨이 끊어진 동태처럼 흐리멍덩했다.

       ​

       “…….”

       ​

       아직도 그 버섯구름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

       플레어보다 강하고, 위험하고, 심지어 밝기까지 했던 마법.

       ​

       원리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한때 천대했던 에테르가 직접 완성한 마도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

       ‘저, 저게 뭔가요?’

       ‘원자폭탄.’

       ‘네?’

       ‘원자폭탄. 핵무기의 일종이다.’

       ​

       그야말로 혁명적인 마법이었다.

       ​

       화계마도의 위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평가받는 시대에, 금안족 소녀 하나가 ‘핵무기’라는 새 지평을 열어버린 것이다.

       ​

       문제는, 그 소녀가 이제는 인간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

       “아…….”

       ​

       클라이스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

       전부 내 잘못이다.

       ​

       그깟 플레어 하나 때문에 여리고 순진했던 소녀를 울린 업보가 이제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구나.

       ​

       잘못에 대한 대가라면 언제든지 짊어질 수 있었다. 애초에 이제부터 그러기로 결정한 클라이스였다.

       ​

       하지만.

       ​

       “어떡하죠….”

       ​

       만약 자신 때문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하여 이 세상에 싹튼 수십억 인구의 목숨이 모조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면…….

       ​

       그런 종말이 다가온다면, 이 잘못을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가?

       ​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머리가 아팠다.

       ​

       “클라이스, 어디 아프니?”

       ​

       뒤척이는 클라이스를 본 클라라가 걱정스레 물었다. 클라라는 자기 이마와 동생의 이마를 동시에 짚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이상하다. 열은 없는데…….”

       “전 괜찮아요. 그보다도 언니는 몸 괜찮아요?”

       “그럼. 당분간 쉬었더니 정령 꺼내는 것도 여유로워. 그보다는 너부터….”

       “전 진짜 괜찮다니까요.”

       ​

       뺨이 화끈 달아오른 클라이스가 벽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안해서, 클라라를 볼 면목이 없어서 그랬다.

       ​

       주어진 시간은 3주.

       ​

       그 안에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지 못한다면, 힘들게 만난 언니와는 다시 이별해야 한다.

       ​

       “하아….”

       ​

       안 된다.

       ​

       클라라는 길라흐에게 다시 잡혀갈 게 분명하다. 그 뒤로는 또다시 끔찍한 고문이 시작되겠지.

       ​

       클라라의 사지에 갈고리가 파고들 것이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입천장이 꿰뚫릴 것이다. 몸이 결딴났다가 붙여지길 반복할 것이고, 눈이 도려냈다가 복구되길 반복할 것이다.

       ​

       보통 사람은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생고문. 결국 클라라가 참지 못하고 정령을 꺼내 대응하려 하는 순간.

       ​

       제 언니의 운명은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

       길라흐는 클라라의 정령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만약 클라라가 정령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곧바로 갈고리를 휘둘러 두 정령을 포식하고 말 것이다.

       ​

       그렇게 되면 클라라는 더는 정령마도사가 아니게 된다. 마왕성에서 정령을 잃어버린 정령마도사의 최후는 대개 비슷했다.

       ​

       살처분.

       ​

       무조건 살처분이다.

       ​

       마왕군은 봉사단체가 아니다. 사역하는 정령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정령마도사를 과연 먹여주고 재워줄까? 당연히 아니다.

       ​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클라이스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렸다.

       ​

       “어떻게, 어떻게 해야…….”

       “왜 그래, 동생? 나한테 얘기해 봐.”

       “아, 아니에요 언니….”

       ​

       그렇다고 이걸 언니와 상의할 수는 없었다.

       ​

       ‘언니가 다 감내할게. 연구는 그만두렴.’

       ​

       고민을 털어놓으면 클라라는 분명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여 대륙의 멸망을 늦추려고 하겠지.

       ​

       사실 클라이스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클라라 한 명을 대가로 세상의 멸망을 뒤로 늦추는 선택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쯤은.

       ​

       하지만 자신은 인간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선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제아무리 세계를 위해서라지만, 어떻게 자기 가족을 쉽게 내칠 수 있단 말인가….

       ​

       차라리 클라이스가 모든 죄를 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까짓 목숨 따위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었다.

       ​

       물론 이 경우에는 클라라가 반대하겠지만…….

       ​

       덜컥.

       ​

       별실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

       “…….”

       “…….”

       ​

       하스펠트 자매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

       “뭐.”

       ​

       시큰둥한 목소리. 로즈마리는 매고 온 배낭을 내려놓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곧 그녀는 커다란 카트를 낑낑거리며 끌고 들어왔다.

       ​

       “…그, 그게 뭐지?”

       “알면 다쳐.”

       “여긴 왜 온 거고?”

       “거 성질 더럽게 급하네. 기다려 봐.”

       ​

       갑자기 나타나 짐을 이것저것 풀어놓는 로즈마리의 모습에, 하스펠트 자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

       마치 하는 행동거지가 여기로 피난 온 사람 같지 않은가.

       ​

       달깍.

       ​

       로즈마리는 문을 완전히 잠그고는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

       “클라이스 하스펠트.”

       “…저 말인가요?”

       “그래, 너. 조금 전에 그 버섯구름 봤지? 언니가 만든 걸작 말이야.”

       “…….”

       “대답.”

       “네.”

       “그거 얘기하러 온 거야. 너도 궁금하던 참이지?”

       ​

       클라이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

       궁금하긴 했다. 대체 원리가 어떻길래 저만한 위력을 낼 수 있는지가 말이다.

       ​

       하지만 지금은 학구열보단 걱정이 앞섰다. 과연 저걸 엘프국 수도나 제국에 떨어뜨렸을 때, 어느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

       “저 원자폭탄이라고 하는 거, 언니가 이름 붙인 거야. 나도 자세한 원리는 몰라. 그러니까 물어볼 거면 에테르 언니에게 물어보고…. 일단 내가 아는 건 피치블렌드 마석만 있으면 저 정도 위력은 파스타 면발 뽑아내듯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정도야.”

       “피치블렌드….”

       “지금 그 마석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

       클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저기, 둘이 갑자기 무슨 얘기하는 거야?”

       ​

       한편 클라라는 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

       “아, 그렇지. 너한테도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어야겠는걸.”

       

       로즈마리는 대뜸 설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클라이스는 의문이 들었다. 말해도 되나 싶은 정보까지 속속들이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해서 우리는 에테르 언니가 만든 폭탄을 가지고 신록의 세계수를 불태울 거야. 그래야만 마왕님을 부활시킬 수 있거든.”

       “그게 무슨…….”

       ​

       얼빠진 표정을 짓는 클라라.

       ​

       카우렐리아에 ‘핵’인가 뭔가 하는 걸 떨어뜨려서 쑥대밭을 만드는 게 작전이라니.

       ​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언니, 제가 봤어요. 그건 정령마도로도 구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어요. 틀림없이 가능할 거예요.”

       “클라이스….”

       ​

       로즈마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

       “아무튼 이 멍청한 녀석들아, 내가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아듣겠어?”

       ​

       로즈마리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자신만 쏙 빼놓고 두 사람끼리 대화하려는 걸 막기 위함이다.

       ​

       에테르, 아카샤. 두 언니에게 배웠다. 대화할 땐 무조건 주도권을 자신이 갖도록 유도하라고.

       ​

       그 조언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이후 로즈마리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소상히 전달할 수 있었다.

       ​

       자잘한 건 치우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이러했다.

       ​

       “이대로라면 우린 다 죽어.”

       ​

       클라이스도, 설명을 들은 클라라도 무어라 반문하지 못했다.

       ​

       그만큼 자명했다. 클라이스는 낯빛을 굳혔다. 그것을 본 클라라도 상황이 촌각을 다투고 있음을 알아챘다.

       ​

       “하스펠트와 마왕군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지. 우린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너흴 죽였고, 너흰 그런 우리를 막고자 필사적이었어. 알아. 역사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우린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쯤은.”

       “……당신.”

       “당장 내가 살았던 금안족 왕국도 네놈들 조상 손에 멸망했어. 따지고 보면 나도 너희가 싫어. 가증스러워. 죽여버리고 싶어.”

       ​

       하지만.

       ​

       “그럴 수가 없어. 서로를 미워하느라 다 끝나버렸거든.”

       ​

       로즈마리는 그리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클라이스를 쏘아보았다. 의도된 행동이었다.

       ​

       “우리가 힘을 합쳐서 막지 않으면 다 끝장이야.”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

       “좋아. 우선 클라이스 하스펠트.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고민 있지?”

       “주인님의 연구를 계속 돕느냐 마느냐…… 말인가요?”

       “그래. 딜레마잖아. 그 딜레마를 쉽게 깨부수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런 방법이 있어요?”

       ​

       얼굴이 밝아지는 클라이스를 보며, 로즈마리도 피식 웃었다.

       ​

       “그럼,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메모해 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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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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