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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음. 그래서 누가 이길까?”

         

       “왕 소협이 제법 실전경험이 풍부한 편이나 그래도 구대문파의 적통제자와 비견될 정도겠습니까? 게다가 붕사인 형님이시라면 더욱 그렇지요.”

         

       붕사인은 붕 자 배의 곤륜파 제자로 별호는 옥루검이라 했다. 감수성이 뛰어나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고 슬픈 사람을 보기만 해도 운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그런가. 저기요, 배당이 어찌 되나요?”

         

       “왕 소협이 칠십팔 할 구 푼. 붕사인 도사가 일 할 한 푼 입니다.”

         

       “음. 그러면 왕 소협으로 한 냥 주세요.”

         

       청이 왕 소협의 승패권을 샀다.

       그에 제갈이현이 딴지를 걸었다.

         

       “누님, 굳이 은자 한 냥 씩이나 버리면서 뻔히 질 무인의 승패권을 사십니까?”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거 아냐? 붕사인 도사에게 걸어봐야 겨우 동전으로 열 문 따는 건데, 혹시라도 왕 소협이 이기면 또 몰라 따는 은자가 일곱 개 좀 안 되겠네.”

         

       “딱 망하기 좋은 생각이 아닙니까.”

         

       “뭐, 큰돈 거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비무가 시작되었다.

         

       의외로 의자를 쓰는 무공은 좋아 보였다.

       일반적인 네모난 것이 아니라, 노포에서 이 인 용으로 쓰는 가로로 길쭉한 그 의자였다.

       좌석의 테두리는 철판을 덧대 보강하고 의자 다리는 성기게 철사를 감아놓았다.

       특제 의자를 요리조리 휘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방일체,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내밀어 다리로 찌르고, 걸어 돌리거나 밀며 관절을 노리거나 철판 댄 모서리로 후려치거나 하며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붕사인이 연신 물러나며 걷어내기에 급급한 꼴이었으니, 왕 소협의 승기였다.

         

       “뭐야, 잘 싸우는데?”

         

       “저 정도의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하지만 곤륜의 진정한 힘은 아직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험한 곤륜산을 자유롭게 노니는 용과 같은 그 신법을 빼고 곤륜파 무인에게 승패를 논하겠습니까.”

         

       “흠. 그정돈가…….”

         

       그리고 비무도 점점 격렬해져 무려 삼십여 합이 넘게 지속되는 것이다.

       그에 청이 다시 말했다.

         

       “그 진정한 힘은 도대체 언제 펼쳐지는 건데?”

         

       “이런. 면목이 없습니다.”

         

       제갈이현의 식견은 근육남 중 최고였지만 역시 근육남의 한계를 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붕사인 도사의 검이 턱! 하고 의자 가운데 떡하니 틀어박혔다. 왕 소협이 그에 힘차게 의자를 비틀어 밀어내니 견디지 못한 검이 뚝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승자, 남녕 출신의 왕 방!”

         

       그에 관중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청의 비무 결과가 비무회 최고의 이변이었다면, 이번 비무는 두 번째의 이변이었으니 또다시 승패권으로 거금을 날린 이들이 속출한 것이다.

         

       “역시 배당에 역으로 거는 게 정통이라니까. 봐바, 앉은 자리에서 일곱 냥이나 벌었잖아.”

         

       “정확히는 일곱 냥이 아니라, 여섯 냥 하고 팔십 구 문입니다, 누님.”

         

       “제갈아. 추하구나. 패배를 받아들이렴.”

         

       그러자 제갈이현이 분한 탄식을 뱉었다.

         

       “크윽. 어찌 인간의 지성이 짐승의 야성에게 패배해야 한단 말인가!”

         

       “제갈이는 향이에게 감사하렴. 향이 아니었으면 아주 짐승 같은 한 방을 날려주었을 것이야.”

         

       “훗. 제가 굳이 아향을 데리고 나온 이유를 이제야 깨달으셨습니, 악!”

         

       “아주 꼭 매를 벌어요.”

         

       “아니, 어떻게 이 각도에서 이렇게 강맹한 일격으로 정수리를……!”

         

       이 성 성취를 이룬 유류연련 수련의 덕택이었다.

       관절의 가동범위가 넓어지니 서문수린류 핵공격의 양각과 부각 역시 월등히 확장이 된 것이다.

         

       그래, 고통을 버틴 보람이 쪼금은 있긴 한가보다, 하고.

       소수마공의 약점을 알게 된 이외에도 도움이 된 측면이 있기는 있네.

         

       청의 아름다운 하얀 손은 정을 대고 망치질을 해도 멀쩡할 정도로 튼튼하지만, 관절을 꺾는 데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맞다, 다음 수련이 칠 일 후…….

         

       청의 눈에서 슬그머니 광택이 흩어졌다.

         

       아무리 무공이 좋다고는 해도 그런 고문 같은, 아니지. 고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고문이었다.

       그것도 딱 불구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손속을 둬서, 관절을 반만 끊고 힘줄을 붙어만 있도록 팔 할쯤 찢어내는 아주 정교한 고문이 아니던가.

         

       “누님?”

         

       “아. 어. 응. 왜?”

         

       “이번에도 역배당을 노리시겠습니까?”

         

       청이 잠시 덜덜 떨고 있던 사이에 몇 개의 비무가 지나서, 이번에는 고산파의 누구라고 하는 제자와 역시 무소속 우 소협의 비무였다.

         

       “그럼. 사나이는 한 번 정했으면 올곧게 나아가는 법이지. 여기요, 우 소협에게 한 냥이요.”

         

       그리고 제갈이현은 또 패배했다.

         

       “맹신현뇌라더니, 야수의 담대함도 기를 필요가 있겠는걸? 그렇게 이리 재고 저리 재니 따질 못하는 거야.”

         

       “크윽……! 이런 치욕이……!”

         

       비무가 진행되면서 청이 느낀 바는, 역시 정파 무인들이 선량하긴 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파 혹은 어느 세가 출신이라 하면 한자리 정도 선업이거나 혹은 낮다고 해도 악업이 오십 점을 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속 없이 출전하여 예선을 통과한 무인들은 딱 두 자릿수 중후반의 악업을 지녔으니 세 자릿수에만 미치지 않았다.

       청의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야 악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비 악인쯤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정파의 젊은 무인들만 출전하는 게 아니었어? 혼자 공부한 사람들은 그냥 신청하면 다 받아준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록 소속이 없는 무인이라 해도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협의로 이름난, 엄중한 검증을 통과한 협의지사들입니다.”

         

       “그래……?”

         

       그런 것치고는 악업이 좀 높지 않나?

       물론, 다른 이들이 청처럼 악업을 숫자로 딱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비무회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무소속으로 출전하여 예선을 돌파한 무인들(무소속 무인이라면 낭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낭인이 멸칭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감이 좋지 않은 쪽에 속했다)의 승리가 이어진 것이다.

         

       제갈이현이 그만큼 패배했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또한 안전한 배당으로 편하게 금전을 따려던 이들의 패배이기도 했다.

       덕분에 장내의 분위기가 점점 축축 늘어지는 것이, 군데군데 거의 울기 직전인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소림 제자 월봉의 비무 순서였다.

         

       “누님, 이번에도 역배에 거시겠지요?”

         

       “흠. 글쎄. 저기요.”

         

       청이 마침 지나가는 승패권 상일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지금 배당이 어찌 되요?”

         

       “월봉 화상에게 삼 리-”

         

       “뭐에요? 삼 리요?”

         

       청이 되물었다.

       삼 리면 청의 고향식으로 쓰면 1.003배가 되니 만 원 걸어서 삼십 원을 따는 짜디짠 배당이었다.

         

       “팔 리가 맞습니다. 신천의 손 소협에게 팔백이십할(82배)이 걸렸는데 이참에 인생 역전을 노려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역배도 역배 나름이지 말도 안 되는 싸움에 걸 이유는 없었다.

       손 소협에게 거는 돈이 어찌나 없었는지 승패권 상인이 한숨을 푹 쉬고는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음. 배당이 미쳐 돌아가네.”

         

       “그야 월 자 배의 소림파 무승이면 무학 대사의 제자라는 뜻이 아닙니까. 천하제일인의 제자가 나섰는데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손 소협에게 안 거십니까?”

         

       “사부님이 내 준결승 상대라고 하시더라. 그러면 무조건 올라온다는 뜻이지, 그런데 삼 리 따자고 승패권을 사기도 뭐하네.”

         

       그러자 제갈이현의 표정이 떪었다.

         

       “누님, 어찌 입이 하나인데 말씀을 두 개로 하십니까? 분명 말씀하시기로 사나이는 한 번 정했으면, 이런, 크윽……!”

         

       제갈이현이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훗. 아직 멀었구나. 너 낙양에서도 이거 한 번 당하지 않았었나? 내 비슷한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팽 형님이 당하셨지 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보고 배운 바가 없다는 거 아닌가?”

         

       “크흑……!”

         

       제갈이현이 또다시 분한 척을 했다.

         

       그때 비무장에 소림 제자 월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천하공부출소림!

       -무학 대사의 제자!

       -천하제일인의 후인!

         

       그에 청이 슬그머니 부아가 상했다.

       뭐야, 내가 나올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이기고 나니 야유를 퍼붓더니만.

         

       그와는 별개로 여인들의 꺅꺅 새된 비명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청이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스님의 특성상 민머리인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고.

         

       배당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작부터 승패가 정해진 수준이라서, 비무보다는 지도 대련에 가까운 꼴이었다.

         

       기본공만으로도 척척 거리를 좁혀 권장술의 자리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애써 잡은 거리의 우위를 다시 물러나며 포기하는 것이 상대를 배려해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모양이었다.

       서문수린이 당부하기로도 십 합은 나눈 후에 승부를 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청이 염탐한 보람도 없었다.

       청이 보기에 무공이 그리는 선이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간다는 정도였다.

         

       “되게 직선적이네.”

         

       “천하공부출소림이라, 모든 무학의 기본을 내었다고 하는 소림이니, 무공의 근본이 본래 저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하게, 더 빠르게, 보다 효율적으로.”

         

       “최초의 무공은 월녀검법이잖아. 그러면 근본이 월녀검 아닌가? 왜 소림이야?”

         

       “월녀검법은 형形만 존재하는, 그러니까 진의가 빠진 초식의 흉내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초의 무공이라기보다는 최초의 무술이라 해야 이치에 맞겠지요.”

         

       월녀가 월국의 병사들에게 월녀검법을 가르칠 때는, 세상에 무학은커녕 무술이라는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았다.

       그러니 동작의 작용과 기능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로 겉모습만 대충 베낄 수밖에는.

       그것만으로도 월나라 병사들은 일당백, 능히 대적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갖췄다.

       이것이 검의 기술, 검술이라는 말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였다.

         

        지금도 월녀검법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공 중 하나였다.

       물론, 청이 익힌 진체본과는 완전히 다른 삼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십 오 합으로 월봉이 깔끔하게 비무를 끝냈다.

       제갈이현이 월봉의 비무를 평가했다.

         

       “모처럼 소림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인가 싶었는데, 결국 육합권 선에서 정리가 되고 말았군요. 참으로 아쉽게 되었습니다.”

         

       “육합권? 저자거리에서 파는 그거?”

         

       육합권은 청도 익혔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흰색 테두리 무공들은 그냥 싼 맛에 익혀두었으니 흔하디 흔한 육합권 역시 그 속에 속한 것이다.

         

       “소림의 육합이니 당연히 훨씬 정교하고 깊이가 있겠습니다만, 소림의 육합권이 널리 퍼져서 그 육합권이 된 것이라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덧붙여서 이렇게 저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무공의 권장술들은 거의 전부가 소림 칠십이절예라고 하는 기본공에서 나온 열화판이라고. 천하공부출소림이라는 말이, 적어도 권장법 그러니까 무투가에 한해서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음. 결국 진짜배기 무공은 못 본 거네. 직접 상대를 해 봐야 좀 알 수 있으려나.”

         

       제갈이현이 소림사 소개의 주석으로 단 무공들은 결국 구경하지 못했다.

       나한신권, 백련신권, 가사복마권, 나한십팔장, 대력금강장, 백보신권, 탄지신통, 금강지에 연대구품 등등 검색하는 족족 보라색 신공절학은 어디 가고 고작 육합권이라니.

         

       그렇게 잠룡비무회 이틀 차, 육십사 강이 막을 내렸다.

         

       비무회라는 것이 연속으로 마구 싸워서 제대로 된 기량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래도 일정이 좀 느긋한 경향이 있었다.

       다음 일정은 나흘 후로 삼십이 강 비무가 하루에 펼쳐지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아픈 옷 입고 대련이나 하면서 감각에 익숙해지면 되겠다고.

         

       이쯤이면 다들 가족들하고 어느 정도 볼일도 다 보았겠으니, 반검쌍도회 회원들이 다시 뭉쳐도 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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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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