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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사실 나는 짐승한테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쪽 세상의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 사람들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의 귀로 개가 짖는 소리를 판단하려고 해봐야 대략적인 감정 정도만 느낄 수 있을 뿐, 그 언어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에 사람만큼 복잡한 언어체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개의 지능을 생각해보면 개가 짖는 행위는 대화라기보다는 바디랭귀지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소리를 추가로 섞는 행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인간들이 짐승과 ‘대화한다’라고 주장하곤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전혀 믿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 귀엽고 치유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나는 친구 집에 가서 가끔 마주치는 개 앞에서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냥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여주거나 한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음, 글쎄.

        

       그리폰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이쪽 세상에서는 ‘짐승의 왕’이라고 여겨지는 존재지만, 사실 이 그리폰을 ‘짐승’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쪽 세계라서 그런 거지, 내 기준으로 보면 ‘환수’에 가까운 존재였다.

        

       게다가 설정상 자기네끼리 사회를 만들고 살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그 사회가 그냥 늑대무리 수준의 사회인지, 아니면 정말로 나름대로 자기네만의 문명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설정집이건, 게임 내의 몬스터 설명에서건, 그리폰은 그냥 보스몹1 정도의 취급이라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을 관통하는 주요 환수치고는 조금 너무한 취급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언니?”

        

       하지만, 뭐.

        

       이게 뭔지 알아볼 정도라면 한 번 ‘대화’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잠깐만.”

        

       문 옆에 서 있던 클레어가 황급히 나를 설득하려는 듯 말했지만, 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있었다.

        

       각자 자리에서 생각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할 일을 하고 있던 일행들의 시선이 모두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여전히 그 깨진 보석을 쥐고 있었다. 아니, 아예 그리폰이 잘 볼 수 있도록 높게 들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긴 했지만, 그리폰은 여전히 그리폰이라, 그 키는 나보다도 훨씬 컸으니까.

        

       내가 가까이 갈수록, 그리폰의 눈에도 경계의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자기를 옭아매던 물건을 눈앞에 드러내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개도 자기를 패던 인간이 가까이 가면 짖으며 경계하는 법이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나는 ‘대화’를 시도했다.

        

       “이 물건은 파괴되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옭아맬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그리폰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다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설명해봐라?

        

       지금 당장이라도 총으로 쐈다가는 죽어버릴 것 같은 상태로 잘도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은 채 그리폰의 얼굴 쪽으로 보석을 더 높게 들어 보였다.

        

       “…….”

        

       그리폰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숙여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보석이 더 이상 빛을 뿜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둘이 서로에게 무슨 소리를 내도 서로 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다만, 나는 그리폰의 눈에 아주 약간, 안도감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자신도 곧 죽을 텐데.

        

       나는 보석을 다시 주머니 안에 넣고, 그리폰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

        

       “…….”

        

       우리 둘이 눈을 마주치고 있는 동안, 주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먼저 근처까지 와서 그리폰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앨리스도 숨을 죽이고 우리 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리폰에게 다가가서 그 몸에 손을 얹었다.

        

       그리폰은…… 새인가? 다리가 네 개 달린 것을 보면 포유류처럼도 보이는데, 일단 생김새를 보면 독수리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적어도 체온이 인간보다 한참 높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그 옛날 팬그리폰은 그리폰을 타고 다녔다는데, 분명 엉덩이에 땀띠 좀 났으리라.

        

       아니면 아프기 때문일까?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깃털인데도, 손이 닿은 부분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우둘투둘한 부분이 만져졌다. 아까도 보였던 그 종양이었다.

        

       “그르르…….”

        

       ‘독수리 머리’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양잇과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아프다는 뜻일까?

        

       “……따라오십시오.”

        

       뭐, 좋아.

        

       어차피 그리폰이 다짜고짜 내 머리를 아그작 씹어먹지만 않으면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건대, 그리폰은 적어도 내 머리를 씹어먹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배고픈 짐승처럼 눈앞에 있는 고기가 무조건 자기 식량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닐지도.

        

       하긴 사자나 호랑이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키워준 사육사를 알아보고 부모처럼 따른다고 하니까.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손을 떼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나를 따라오고 싶었던 건지, 그리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까 보았던 그 위압감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때의 위화감이 마치 ‘위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위압감이었다면, 지금은 그야말로 짐승의 왕이라는 위엄이 서린 위압감이었다.

        

       그렇게 표현하면 전투 들어갈 때 짐승의 왕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던 내가 조금 민망해지긴 했지만…… 뭐, 다른 사람들한테 직접 말했던 것도 아니니.

        

       그리폰과 눈을 마주친 채 뒤로 몇 발자국 정도 걸어가자, 그리폰은 힘겹게 다리를 뻗어 내 쪽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그걸 확인하고, 나는 뒤로 돌아섰다.

        

       내 앞은 깨끗이 비어있었다.

        

       내 친구들도 내가 무슨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알았는지, 길을 비워둔 모양이었다. 심지어 저 멀리, 문 근처에 기대 앉혀둔 추기경까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퓌요오, 하고 작게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위협하는 것 같은 소리. 그 소리에 추기경은 어깨를 움찔 떨더니 허둥지둥 최대한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다리가 거의 다 치료되었는데도 저러는 걸 보니 말 그대로 패닉에 빠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대로 걸어서 문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동안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내 뒤에서는 뭔가 육중하고 날카로운 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문 앞까지 가는 내내 어깨를 움찔거리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

        

       살짝 열린 문 앞으로 가, 그 앞을 지키고 있던 클레어와 레오의 눈을 마주쳤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천천히 황동 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갑작스럽게 바람이 들이치듯, 치유의 빛이 우리를 감쌌다.

        

       나는 그제야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짐승의 왕’을 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였다.

        

       사실 더럽혀진 깃털의 색이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건 오염이었지 상처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중간중간 깃털이 빠진 곳에 보이던 종양 덩어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여기저기 나 있던 상처가 사라지고 다부진 근육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던 날개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제대로 접혔다. 깨진 부리가, 발톱이 돌아왔다.

        

       인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 속도였다.

        

       그리폰은 몸이 다 회복된 뒤에도 거만한 자세로 서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음…….

        

       잘못한 건가? 괜히 치료해줬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로 다음 순간에 내 머리를 와그작 깨물어 먹지는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나는 한쪽 손을 들어서 복도를 가리켰다.

        

       “가십시오.”

        

       이 말은 알아들었을까? 생각을 알 수 없는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 나는 뭐라고 판단을 하지 못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

        

       내 말을 들은 그리폰은 그제야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하게, 조금 과장되었던 조종당하던 순간과는 또 다른 발걸음으로 앞으로 몇 걸음 걷던 그리폰은, 내 쪽으로 갑자기 몸을 휙 틀었다.

        

       펄럭, 하고 그리폰의 날개가 좌우로 확 펼쳐졌다. 마치 위협하는 것 같은 몸동작.

        

       까놓고 말하자면, 놀랐다.

        

       다만 내가 그 순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놀람의 정도가 좀 많이 지나쳐서 순간적으로 머리 위로 혼이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폰은 미동도 하지 않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웃는 것처럼도 보이는 눈이었다.

        

       그리폰은 천천히 날개를 접더니, 이내 내 쪽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양손으로 치마 끝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이쪽 세상으로 와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던 황실식 인사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멋들어지게 해 보였다.

        

       그리폰은 고개를 들고 미련 없이 몸을 휙 돌렸다.

        

       아주 빠르게 그 네 발이 움직였다. 그 몸집에서 나오는 동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동작이었다.

        

       퓌요오오, 하고, 저 멀리서 그리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폰이 아닌 내가 그 울음소리가 무엇인지 알 방도는 없었지만,

        

       나는 그냥 속 편하게 그게 작별 인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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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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