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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루크는 시루드를 앞에 무릎 꿇린 채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훈계하기 시작했다.

     

    “서드는 내 친구이고, 상의를 벗고 있던 것은 그의 화상을 확인하기 위해 붕대를 풀어보려고 했을 뿐이다. 헌데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하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마법부터 쏘다니, 내가 널 그리 가르쳤더냐?”

    “아니, 하지만……! 정말 어떻게 봐도 그건 그, 저 형이 잘못하는 걸로 보였단 말이야!”

     

    하지만 시루드도 나름대로 너무나 억울한 사연이 있다.

     

    어떻게 보아도 그래 보이지 않았던가?

     

    같이 걸어가는 남자는 얼굴도 무섭고 음침하게 생긴데다, 루크를 계속 그 무서운 눈빛을 하고 마치 협박이라도 하는 듯이 한시도 떼지 않고 감시하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도착한 곳은 으슥한 곳에 위치한 폐가!

     

    게다가 그 안에 단 둘이 들어가, 몰래 따라들어가니 그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고, 루크는 소파에 눕혀져서……!

     

    “그건 아무리 좋게 보려고 마음먹는다 해도 도저히 좋게 보일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하겠구나, 흠.”

     

    시루드는 억울함이 사무치는지 눈물까지 자아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모습만 본다면 자신도 오해를 하기에 충분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만약 자신이 시루드의 입장이고, 아까까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았다면 확실히…….

     

    ‘흠, 이건 안됐군. 더 혼내선 안 되겠어.’

     

    시루드가 걱정을 한 것도 이 몸이 여자아이의 몸이기 때문이겠지.

    사회적인 통념으로 보면 아이, 그것도 여성이라는 몸은 보호받아야 하는 몸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 시선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자신은 조금 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편이 ‘유리’할지 생각을 많이 해본다.

    과거 9서클급 마나를 심장에 모아두고 있던 때에는 어떠한 것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너무 쌓여 흘러 넘치는 것 같던 체력과 생기, 거의 상시 발동되는 수준이던 ‘인핸스 바디’와 용종 특유의 힘.

    오히려 그런 것들을 의식하며 제어해야했던 때와 지금은 작은 행동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조금씩 마나를 모으고 있는 중이고, 되도록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마나를 모으는 것에 좋으니, 마법적인 수단을 제외하고 타인의 인식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편이 효율적이니 말이다.

     

    때문에 행동이 여타 여아들과 비슷하게 보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예르나도 자신의 ‘어린아이 말투’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적어도 이 몸에 어울리는 처세술은 체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도하는 것은 마법사에겐 너무나 간단한 일이니까.

     

    그런 자신의 ‘연기된’ 유약함에 속아 시루드가 걱정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히려 이 부분은 감사를 해야 마땅할 정도다.

    자신을 걱정해 나서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루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하지만 몰래 뒤를 밟다니,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느냐? 가는 길에 보였다면 그냥 말을 걸면 되지. 그리고, 엘프는 귀가 좋지 않더냐?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다 들었다면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건…….”

     

    확실히, 그런 인식이 있기는 하다.

    보통의 엘프들은 일반적인 다른 종족들보다 귀가 좋은 것은 사실이고.

    수인에 비교하면 몰라도, 인간이나 드워프에 비교하면 확연히 좋은 청각을 지닌 종족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엘프의 기준이다.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약해진다.

    그것은 청각 역시 다르지 않다.

    시루드는 평생을 도시에서 지낸 ‘신세대’의 엘프이다.

    성장기 대부분을 숲보다 비교적 시끄러운 도시에서 지낸데다 헤드셋이니 이어폰이니 하는 음향기기들에 파묻혀 사는 요즘, 그 좋은 청각을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다.

     

    때문에 루크가 서드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들리지도 않았으며, 들킬까봐 숨죽인 채 집중하는 것 만으로 거의 한계라서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지는 전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여자애가 혼자서 험상궂은 남자와 동행하고, 혼자 폐가나 다름없는 구석진 집에 끌려(?)들어가면 당연히 범죄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옷을 벗고 있으니 변태일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어쩔 수 없지, 이건 서드. 그대만 괜찮다면 용서해주겠다. 어쩌겠느냐?”

     

    루크가 서드를 돌아보자, 서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용서합니다. 스승님의 제자인데다……. 한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지요.”

     

    뒷골목에서 빌어먹고 살 적에도 그 규칙은 꽤 통용되는 편이었다.

    한번은 실수로 처벌되지만, 두번째 부터는 자비가 없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멍청한’것이고, 멍청한 녀석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드가 시루드를 용서하는 데에 지금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승님의 말도 있으니 말이다.

    서드는 시루드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며 씨익 웃었다.

     

    “이것으로 우리도 오해를 풀고 화해하지.”

    “……!”

     

    시루드는 서드의 미소를 보고는 안그래도 하얀 피부를 더욱 창백하게 만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명백히 공포에 질린 모습.

    그 표정은 11살짜리 아이인 시루드의 입장에선 꽤 소름돋는 얼굴인 모양이다.

     

    서드는 아무래도 저 표정을 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분명 학교에서의 반응은 괜찮았다고 하여 나아진 줄 알았더니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응.”

    하지만 곧 무언가 다짐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루드.

    벌써 저토록 감정을 제어하는 것에 능숙해지다니, 시루드는 역시 재능이 참 뛰어난 아이다.

    공포에 맞서는 법을 벌써 저렇게 깨닫다니.

     

    그렇게 시루드와 한차례 악수를 나눈 서드는 시루드가 쏘아낸 불길에 타버린 교복 소매와, 화상을 입었는지 조금 그을린 팔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루크는 서드를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

     

    “앉아있거라, 저런, 화상을 입었으니 일단 팔을 식혀야겠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이정도 화상은 금세 나을테니까요.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 회복력은 일반인과 다릅니다.”

    “흠, 그런가? 음, 그랬던 것도 같구나.”

     

    확실히 서드의 회복력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것이 서드가 ‘용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그의 망가진 서클을 무리하게 고쳐냈을 때 일반인은 이미 목숨을 잃었거나,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은 손가락 하나 깜짝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단 하루만에 몸을 회복해냈고, 때문에 별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이별을 했었지.

     

    “하지만 교복은…….”

     

    루크는 서드의 타버린 소매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루드는 그 모습을 보며 머뭇거리다 말한다.

     

    “내가 사줄게, 뭐. 셔츠 하나 정도는……. 사과하는 의미에서.”

    “그래, 그럼 되겠구나. 그래주겠느냐?”

     

    꽤 명확한 해결방법이다.

    루크는 시루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시루드, 비록 오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수습하려는 노력이 참 기특하구나. 그리고, 네 마법실력이 꽤 많이 늘었구나. 마력 은폐도 아주 수준급이었고 말이다. 이미 훌륭한 마법사가 되었어.”

    “그, 그런 것 까지는…….”

    “아니, 칭찬을 할 것은 칭찬을 해야지, 너의 재능은 정말이지 훌륭하다. 아까 쏘아낸 ‘파이어볼’도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잘도 응용해서 만들었구나. 흠잡을 데가 없는 마법이었다.”

    “헤헤, 헤……. 진짜로?”

    “그래. 하지만, 역시 마법을 사람한테 쏘아낼 때는 충분히 재고하고 사용하거라. 그 힘은 타인을 너무나 쉽게 해칠 수 있는 힘이니까.”

     

    시루드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응……. 그런데……. 나 할 말이 있어.”

    “응? 왜 그러느냐?”

    “사실은, 아까 전에 경찰에 신고도 했는데. 어쩌지. 경찰이 오면 뭐라고 답해야 해?”

    “어쩔 수 없지.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수 밖에.”

     

    하지만 서드는 기겁하며 소파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뭐라고?! 경찰을 불렀단 말이야?”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루크는 서드에게 물었다.

     

    “응? 그대는 갑자기 또 왜 그러지?”

    “스승님, 잠시 귀를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왜? 그냥 말하거라. 어차피 여기는 우리 밖에 없거늘.”

     

    서드는 한번 시루드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루크를 보며 침통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조금 어두운 쪽의 이야기라서 말입니다. 저 아이가 들어도 될지.”

    “음……. 그래, 그런 거라면……. 시루드,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시루드는 서드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가려면 루크의 손을 붙잡아 세우며 말했다.

     

    “어? 자, 잠깐만. 또 둘이 같이 어딜 들어가려고! 저 이상한 형이랑!”

    “그 오해는 풀린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또 오해를 하게 하고 있잖아! 애초에 나는 저런 형이랑 네가 왜 친한지도 아직 모르겠다고! 뒷골목에서 처음 만난 것도 이상해! 대체 어떻게 너같은 여자애랑 저 무섭게생긴 형이랑 친해질 수 있는 건데!?”

    “하아, 그건…….”

     

    루크는 그 이야기에 대해 더 설명을 하려다 재촉하는 듯 한 서드의 표정에 하는 수 없이 손목을 비틀어 빼내며 말했다.

     

    “이야기가 급한 듯 하니 이따가 다시 와서 설명하겠다. 정말로 잠깐 이 앞에서 이야기만 할 거야.”

    “……알았어. 하지만 진짜 잠깐만이야!”

     

    그렇게 루크가 시루드를 떼어내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서드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은 사실 제가 구매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버려지고 관심없는 집에 그냥 들어와서 살고 있던 거였죠. 그래서 이렇게 너저분했던 겁니다. 정갈하게 치워두면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고 신고를 당했을테니까.”

    “뭐, 뭐라고? 대체 왜 그런……?”

    “돈이 없으니까요. 딜런트가 죽으면서 시설이나 자금 같은 것이 모두 환수조치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분배되긴 했지만, 저는 그때 신분이 없어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상태였고요…….”

    “그, 그게 사실인가?”

     

    그동안 제집처럼 사용하던 이 집이 사실은 서드가 구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경악하는 루크.

     

    “그 뿐 아니라, 이것저것 불법적인 흔적도 많습니다.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마법을 연습하기 위한 마력흔,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레시피를 제작하며 사용한 마법들도…….”

    “…….”

     

    루크는 어쩐지 ‘스승님이 알려주신’이라는 말이 굉장이 마음에 찔렸다.

    그래, 이 세계에서 ‘허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은 불법이다.

    그것이 어떤 마법이든, 일단은 일반적인 마법으로 나타날 수 없는 마력흔이라면 자연히 불법이 된다.

     

    “도심 속에서 적법한 지팡이를 통하지 않고 허가 받지 않은 마법 사용을 할 경우 ‘마법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벌될 수 있고, 그 종류에 따라 인간족 기준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길 이상 1억길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루크는 과거 법전에서 읽은 구절을 암송하듯 중얼거렸다.

     

    일일이 모든 마법에 허가를 받고 규칙대로 생활하면 물론 최고다.

    때문에 루크도 숲이 아니라면 마법 자체를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엔 불법이라는 것은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당장 자신도 집안에서 ‘연구’를 위해 사용해야하는 마법이나, 한여름 더위에 고통받을 수 없어서 소파에 인챈트를 걸어버린 것도 사실 따지고보면 의원회를 통하지 않은 ‘무허가’였으니 말이다.

     

    규칙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게 만들지만, 솔직히 마법사와 같은 존재들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는 자주 무시되곤 있지만 그렇다.

     

    “그럼…….”

    “경찰은 집 안에는 들이지 말고, 밖에서 이야기하고 돌려보내죠.”

    “그래, 그렇게 하자.”

     

    이제는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경찰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낼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할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드와 시루드는 저렇게 보여도 고작 4살 차이라고 합니다.

    이게 판타지지!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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