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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다들 잘 왔어.”

     

    나는 의사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했다.

     

    “다들 알다시피 마왕군 본대가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했어. 왕국이 절찬리에 맞붙는 중이야. 휴고, 수정구 들어온 거 있지.”

     

    “예. 현장 상황은 이렇습니다.”

     

    휴고가 영상을 비추었다.

     

    왕국 국경 평야, 하늘이 벌써 새카맣게 물들었다. 마족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마기가 먹구름처럼 사방으로 퍼져 불길함을 자아낸다.

     

    마왕군이 중간계로 이어진 평원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지평선 끝에서는 속속들이 마계에서 증원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대치하는 왕국군.

    성을 쌓을 여력까지는 안 되었기에, 지난 2년에 걸쳐 왕국은 바리케이트를 구축했다.

     

    긴장한 듯 보이는 최전선의 방어부대. 대부분이 상급 모험가와 왕국 방위대로 구성됐다.

     

    ―후! 후!

     

    마왕군 선행부대가 돌격해서 단숨에 바리케이트까지 뛰어든다. 전투가 개시되고, 순식간에 혈투가 난무한다.

     

    “무시무시하군요.”

     

    “일부에 불과해. 전선에서는 소규모 전투만 일어나고 있어. 이쪽 전력을 파악하려는지 간만 보는 느낌이야. 벌써 한 달째래.”

     

    “오래가지는 않겠군요. 증원이 도착하는 걸 보면 돌파가 가능하다고 판단된 순간 순식간에 밀고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의사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마족은 마물이 아니야. 지능이 있어. 함부로 전군을 움직였다가 역습당할 수도 있으니 전력 손실을 경계하고 있을 거야. 이쪽이 튼튼하면 교착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그 교착 기간을 늘리는 게 우리 목표야.”

     

    “마도사 부대가 마계에 도착할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래. 그 지원을 위해 우리도 의사와 치유사를 파견하려고 해. 의무병 부대지. 지원자부터 편성되는 대로 의약품 가지고 출발하자고.”

     

    “맡겨주십시오. 흑마술 상대는 자신 있습니다.”

     

    휴고가 의지를 보였다. 그가 후국 의무병 부대를 이끌기로 결정됐다.

     

    “다음, 용사 파티에 파견할 치유사.”

     

    “최종 후보는 다섯 명입니다. 병원장님께서 직접 마계와 마왕성의 공략법을 가르치셨죠.”

     

    휴고가 서류철을 넘겨주었다. 리스트업 된 의사들은 내 수제자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어려운 수업을 따라왔다.

     

    의학과 치유술 지식은 물론, 내가 수백 번의 회귀에서 얻은 경험도 전부 전수했다.

     

    “마지막 시험 보자.”

     

    최종 테스트는 마계의 환경과 마왕성을 재현해서 이루어졌다. 마법사도 섭외해 그들이 마지막 사천왕인 리치나, 마왕의 공격에서도 착실히 치유와 정화주문을 공략대로 쓸 수 있을지 확인했다.

     

    그리고 최고점을 받은 합격자가 결정됐다.

     

    “기스.”

     

    “예! 병원장님.”

     

    옛날에 나와 주치의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 정도로 치유술 재능 자체는 특출난 친구였다.

     

    벌써 그것도 7년 전이다. 그간 기스를 지켜본 바로는 상당히 겸손해졌기도 했고, 의학에 꽤 진심이라 뭘 시켜도 잘 따라온다는 점이었다.

     

    “용사 파티에서 잘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마왕의 목을 전리품으로 가져와 보이죠.”

     

    “위험한 자리인데, 걱정은 안 돼?”

     

    “사나이로 태어났는데 이름을 어디 새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은 아깝지 않습니다.”

     

    아주 자신감이 넘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명예욕은 꽤 있는데, 오히려 이런 확실한 동기가 있는 게 좋다고 봤다.

     

    공략 숙지도 완벽하다. 당장 눈앞에 마왕이 있어도 그의 마법을 정확하게 굴러서 피할 수 있을 터였다.

     

    “좋아, 네가 가도록 해.”

     

    “옙. 맡겨주십쇼.”

     

    그렇게 용사 파티의 치유사 자리에는 기스를 뽑아 파견했다.

     

     

    [No. 005 : 마왕군 승리 19%]

     

     

    상태창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알려주고 있었고, 남은 건 시간에 맡겨볼 수밖에.

     

    나는 지금까지 많은 역사를 바꿔왔다.

    사천왕 중 셋을 미리 쓰러트렸고, 용사 파티를 미리 구성했으며, 마계의 텔레포트 게이트 설치도 빨라졌다.

     

    본래 미래에서 마왕과 결판을 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년 후다. 그 3년 동안 인간계는 마왕군에 침략당해 제국 일부를 제외하면 쑥대밭이 됐었다.

     

    그때보다 모든 게 빨라진 덕에 아직 대륙이 이만큼 멀쩡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

     

    지금껏 배드엔딩을 지우며 달려온 결실을 수확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직감이 들었다.

     

     

     

    얼마 후 고트베르크 의무병 부대와 기스가 파견되었다. 전장의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최전선에서 리치가 등장했다고 한다. 강력한 독성 마법을 맞아 1차 방어라인이 무너져서 본대가 후퇴하게 됐는데, 우리 부대 덕에 전선 유지력이 증가해 2차 방어라인에서 다시 한 달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동시에 마침내 텔레포트 게이트가 설치 직전이라는 낭보가 들어왔다.

     

    용사 파티가 마침내 출정해 리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계에 있다고 모습을 보여줘 적을 방심시키고 마왕성을 기습하는 작전이다.

     

    리셰는 첫 전투에서 마족과 언데드를 무려 열 부대 이상 쓰러트렸다고 했다.

     

    “오라버니, 전장에는 안 나가실 거죠?”

     

    소식을 들으며 연합군에 보급할 포션을 만들고 있으니 네리아가 내게 물었다.

     

    “그렇지? 왜?”

     

    “어, 음… 오라버니께서 위험한 곳에 가시는 건 절대절대 반대하는데요. 그게… 아이참,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리아는 전쟁 얘기만 나오면 안절부절 못 하고 답답해했다.

    불안할 만도 하지. 나는 7년 동안 키가 10센티도 안 큰 여동생을 무릎에 올려놓고 제약 작업을 계속했다.

     

     

     

    용사 파티의 출정 2주 차, 비보가 들려왔다.

     

    “기스가 전사했다고?”

     

    급한 소식이라 특급 전서구로 날아왔다.

     

    듣자 하니 전투에서 예상외의 활약을 보인 모양인데, 자신감에 차서 너무 적극적으로 나선 나머지 리치의 고위계 마법을 정통으로 맞고 즉사했다고 한다.

     

    타냐가 직접 적어 보낸 보고서니 정확한 내용임이 틀림없었다.

     

    “아이고.”

     

    방심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열심히 가르친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어쨌든 본인이 바란 대로 용사 파티의 영웅으로서 이름을 남기게는 됐다. 그의 희생을 기려 국장을 치러주기로 했다.

     

    “어쩐다.”

     

    다른 후보들이야 남아 있지만 가장 우수했던 기스도 결국 실수를 저질렀다. 따지고 보면 나도 리치에게 죽었던 경험이 열 번… 여덟 번은 될 터였다.

     

     

    [No. 005 : 마왕군 승리 19% → 20%]

     

     

    스멀스멀 올라가는 배드엔딩의 확률을 보니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단을 내리긴 내려야 했다.

     

    “후국에서 연합군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모두 행세했다고 봐야 해.”

     

    그 결과로 전반적인 확률은 많이 낮췄다.

     

    용사 파티가 직접 패배하는 루트만이 몇 개 살아있는데, 이건 역시 현장에서 직접 컨트롤해야 하는 부분일까.

     

    “네리아.”

     

    “네, 오라버니.”

     

    “내가 용사 파티에 다녀온다고 하면 반대할 거지.”

     

    “아, 으… 그게….”

     

    네리아는 조그마한 주먹으로 한참을 머리를 콩콩대며 고민하고는 결심을 내렸다.

     

    “…저는, 정말, 안 가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 감성적인 바람일 뿐이라서 강요할 순 없어요… 오라버니가 그곳에서 하실 수 있는 일도 많을 테고, 오라버니를 지켜주실 믿음직한 분들도 계시니까요.”

     

    “타냐도 있고 자매님도 있고, 무엇보다 리셰도 있으니까. 사실 여기보다 더 안전할지도 몰라.”

     

    “그쵸. 그리고… 으음… 흡!”

     

    네리아가 차고 있던 팔찌를 풀고는 냅다 내 주머니에 넣었다.

     

    “부적이에요! 아, 이것도! 이것도요!”

     

    귀걸이도 떼고, 머리끈도 풀고, 온갖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는 네리아. 부적도 이만큼 있으면 목숨을 백 번은 지켜주겠는데.

     

    “고마워. 조심히 다녀올게.”

     

    “네… 꼭 무사하셔야 해요.”

     

    네리아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 그런데 오라버니께서 직접 가시는 건 협약상 문제 되진 않나요? 분명 법국도 그렇고 시비가 걸릴 텐데요.”

     

    “걸리지. 당장 자리가 비었으니 법국에서 충원을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걸. 거기에 국가 중역인 내가 들어간다고 하면 온갖 사유를 붙여올 게 분명해.”

     

    “그럼 어떻게 해요?”

     

    “이거 쓰고 가려고.”

     

    나는 마스크를 들어 보였다.

     

    까마귀의 형상을 한 역병 의사 마스크.

     

    의사회의 상징이다.

     

     

     

    ***

     

     

     

    “용사님.”

     

    “아, 고마워요.”

     

    리셰는 타냐가 넘겨준 물병을 받아들었다. 단숨에 들이키고 한숨 돌린다.

     

    “물도 좋은데, 식사는 아직이야? 배고파.”

     

    엘프 궁수, 발렌이 불평했다. 앵무새처럼 배고프다는 말을 하던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은 평소처럼 무시했다.

     

    용사 파티는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들이 위치한 왕국 국경 2차 방어선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마왕군은 끝이 없네요.”

     

    “예. 말로는 들었지만 엄청난 물량입니다.”

     

    저들도 병력 손실을 고려해 선봉대로만 조금씩 전투를 걸어오고 있었다. 물량이 압도적이니 이쪽을 쉬지 못하게 공격하며 조금씩 말려서 후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차라리 그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벌써 끝을 모르고 중간계 지평선까지 가득 들어찬 마왕군이 총공세를 벌여온다면 왕국, 공국까지도 몇 개월 안에 삽시간에 함락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치유 끝났소이다. 더 불편한 곳은 없소?”

     

    성녀, 앰브로시아가 물었다.

     

    그녀가 생채기를 지워준 황금의 마법사가 팔을 슬쩍 들어 살폈다.

     

    “실력이 형편없구나.”

     

    “내 어이가 없군. 소녀가 어디서 형편 없단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오, 원.”

     

    앰브로시아가 툴툴대며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마법사, 아셀라는 콧방귀를 뀌었다.

     

    후국에서 파견한 그 치유사도 그랬고, 치유사들은 원래 이 정도인가.

     

    자신의 주치의만 한 실력을 바라는 게 큰 욕심인가 싶어졌다.

     

    “바깥이 소란스럽군요.”

     

    타냐가 천막을 들추었다. 휴고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법국입니다. 파티에 자국 치유사를 편성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기에 쫓아냈습니다.”

     

    “치유사는 후국에서 새로 파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마침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누가 오든 마찬가지야.”

     

    휴고와 타냐의 대화에 아셀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어차피 죽어 나간 그 얼간이처럼 별 도움 안 될 게 뻔하지. 상관없으니 아무나 받아.”

     

    탁, 마법사 아셀라가 도도하게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아까워. 당장에라도 싸워야 해.”

     

    그때 바깥이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휴고가 상황을 보고는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을 때, 그는 한 명의 의사와 함께였다.

     

    “도착했습니다. 후국에서 파견한 파티의 새 멤버입니다.”

     

    천막 안으로 의사가 들어섰다.

     

    그의 모습을 보고 파티원들이 침묵했다.

     

    백의가 아닌 새까만 흑의.

     

    얼굴을 모두 덮는 역병 의사 가면.

     

    그가 불길한 숨소리를 내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낮은 톤으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용사 파티 여러분.”

     

    수도 없이 죽음을 봐온, 의사보다 장의사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닥터 파우스트라고 합니다. 후국에서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닥터 파우스트시라고요?”

     

    그 이름을 들은 타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다. 의사회 소속이지요. 그리고.”

     

    파우스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 고트베르크의 스승 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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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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