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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세계의 해안선 대부분이 지도에 실리게 된 것은 대항해시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축적된 지리 정보에 인쇄 기술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누구나 집안에 앉아 세계 지도를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촉진함으로써 산업화를 가속하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해안선 안쪽 땅을 헤집고 다니는 ‘탐험가’라는 족속들이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름과 달리 그들은 사실상 도적 떼나 다름없었다. 무기를 들고 아직 지도가 채워지지 않은 땅에 쳐들어가서 그곳의 생물, 기술, 유물들을 약탈했다.

         

       그들의 주된 표적 중 하나가 바로 요정이나 환수 같은 신비한 생물이었다.

         

       그들은 요르문간드 인근 해역을 돌아다니면서 무리에서 떨어져서 홀로 다니는 요정과 환수를 노렸다. 그들은 그것들을 붙잡아 부자들의 수집품이나 전시회의 상품으로 팔곤 했다.

         

       전시회는 단순히 잡은 생물만 가져다 둔다고 끝이 아니었다.

       상품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홍보를 하냐에 따라 수익이 크게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전시회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흥행사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여러 방도를 모색했다. 잡아 온 생물들을 길들여 재주를 익히게 한다거나, 혹은 길거리 재주꾼들의 곡예를 끼워판다거나.

         

       괴물 서커스가 등장한 것도 그 흐름에서였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당시에는 저주 역병의 생존자가 낳은 자식들, 즉, ‘저주받은 이’는 신분 등록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멀쩡히 부모가 있고 고향도 있는데도 무적자가 되는 것이다.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는 건 예사요, 마을에 가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돌면 본보기로 목이 매달리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저주받은 이들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고 숨어 살았다. 그들은 인간 사회와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존재였다.

       그들은 계속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아다니는 흥행사들의 눈길을 끌었다.

         

       흥행사들은 사람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중이 경이로운 것을 보고 감탄하며 고상한 척하는 것에 금방 싫증을 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그들의 은밀한 내적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욕하고 경멸하고 비난할 대상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마침 산업화와 도시화의 가속으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찌든 대중들은 분노를 풀 대상을 원하고 있었다.

         

       괴물 쇼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들이 뒷받침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서커스가 종합 극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지방이나 시골에서는 종종 보이긴 했지만,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폭력성과 야만성 때문에 양지를 추구하는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괴물 쇼를 언급하기를 꺼렸다.

         

       원더스타인이 괴물 서커스를 들고나왔을 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던 것도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다.

         

       엘라는 사법 극장에서 본 무대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귀에서는 낄낄대는 키클링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기 앉아 있던 페르소나들은 옛날 사람들일까? 괴물 서커스가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도 없던 시절의?

         

       그녀는 살짝 주저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돌아봤다.

         

       “있지. 아저씨와 언니가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 서커스는 말이야……. 단장과 내가 만든 공연은 저런 게 아니야……. 괴물 서커스가 맞긴 하지만……저거와는 달라.”

         

       변명처럼 들리지 않을까? 거짓말로 자신을 변호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다행히도 두 사람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아요. 엘피 양이 그렇지 않다는 거.”

       “믿어.”

         

       엘라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아, 진짜. 오늘따라 단원들이 보고 싶네…….”

         

       합숙 훈련 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2주나 숙소에 돌아가지 못했다.

         

       유쾌한 스벤.

       사려 깊은 유라크네.

       순진한 우몬.

       다혈질의 트라이머리.

       과묵한 밴딕.

       소심한 요벨.

         

       그들도 저 안에서와 비슷한 일을 겪었겠지?

       자신이 지나가다 들은 것만 해도 꽤 됐다.

       그러나 말로만 들었을 때하고 직접 눈으로 볼 때하고 그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그녀는 기지개를 크게 켰다.

         

       이러나저러나 여기서 무사히 탈출해야 단원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원더스타인 그 사람도.

         

       “좋아. 좀 불쾌한 쇼이긴 했지만, 다른 단장들이 무사한 것을 알았으니 됐어. 그러니 이제 슬슬 본론에 들어가 보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오즈는 엘라의 표정이 풀린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 말이죠. 원더랜드 안에 흩어져 있는 엘피 양의 동료들을 모으는 겁니다.”

       “어떻게?”

         

       허수아비는 엄지로 밀짚모자를 들어 보이며 도발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실마리는 저희가 전부 드렸는데요. 한번 생각해 보겠어요?”

       “오, 여기서 수수께끼를 내시겠다? 기다려 봐.”

         

       엘라는 원더랜드에 대해 알아낸 정보들을 종합해보았다.

         

       흩어진 친구들을 모으는 방법은 크게 2가지였다.

       자신이 그들을 찾거나, 아니면 그들이 자신을 찾게 하거나.

         

       전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후자는 금방 떠오르는 게 있었다.

         

       “티케터. 맞지?”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이곳에는 수만 개의 극장이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를 빌려서 공연을 하는 거죠. 공연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태그’죠. 일행분들이 이곳에 반나절만 머물러도 티케터의 존재에 대해 모를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둔한 분이라도 하루면 이걸 어떤 용도로 사용해야 하는지 깨닫겠죠. 어떤 태그를 달아야 그들이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나시려 하는 분들과 공통된 코드가 있습니까?”

         

       그의 말 뒤에 루미가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붙잡힌 세 사람이 혹시나 불지 않았을 만한 것으로 말이야.”

         

       엘라는 그들이 함께 보낸 2주를 되돌아봤다.

       레이나, 마야, 카렌, 클라라, 루엘로, 그리고 자신까지.

       6명은 함께 연습하고, 함께 놀고, 함께 잠들었다.

         

       그 과정에서 여섯 명이 공유하는 키워드 정도는 당연히 있었다.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에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축제 기간입니다. 무명의 곡예사는 극장을 빌리기 힘들죠.”

         

       그 말을 들은 엘라는 뭔가 떠오른 듯 번쩍 고개를 들더니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 멀리 중앙 광장에 세워놓은 수십 개의 무대가 보였다.

         

       무대마다 내는 소리와 색깔이 달랐다. 거기다 무대 위의 사람이 짧은 주기로 교체되고 있었다. 어떤 경연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기 말하는 거지?”

       “하하,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엘피 양이 경연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산 사람의 재주는 여기서 강력한 울림을 선사한답니다. 어지간한 곡예사라면 저곳에서 쉽게 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엘라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원더랜드의 무대에 서다니.

       모자 아래 드러난 그녀의 입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미쳤는데? 아저씨, 그거 되게 마음에 드는 계획이야!”

         

       그녀는 그렇게 당장이라도 계단을 뛰어 내려갈 듯 굴다가 갑자기 걸음을 딱 멈췄다.

         

       “어, 그런데 아저씨하고 언니는 괜찮아? 우리 도와줬다고……벌 받는 거 아냐?”

         

       처음 두 사람을 고용할 때만 해도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던 그녀였다.

       하지만 형벌이라는 것을 보고 나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루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 마도사 놈들은 한 짓이 워낙 고약해서 저런 꼴을 당한 거야.”

       “엘피 양을 잡았던 순찰대원들을 생각해 보세요. 재주를 보여준다고 하니까 풀어줬다면서요? 여기는 생각보다 훨씬 허술한 곳입니다.”

       “그래? 정말이지? 음, 그렇다면 좋아! 어서 가자고!”

         

       그녀는 그렇게 기세 좋게 외치고는 오즈의 등에 매달렸다.

       루미도 마찬가지로 그의 몸통을 붙잡고 어깨 위에 몸을 실었다.

         

       허수아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다닐 겁니까?”

       “이제 인정해. 여기선 네가 우리 탈것이야.”

       “하하, 아저씨 출발!”

       “정말 곤란한 사람들이군요. 그럼 꽉 잡으세요. 조금 빠를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이 채 말릴 틈도 없이 땅을 박차더니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우아앗, 야!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이야!”

       “오옷? 아저씨, 자신 있어?”

       “물론이죠!”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렸다.

       허수아비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층계참에 무사히 착지했다. 이제 이 작대기 팔다리에도 제법 익숙해진 그였다.

         

       그는 무려 열 몇 개의 계단을 한 번에 뛰어내렸다. 그는 두 사람이 잘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 도약을 준비했다.

         

       “아저씨, 계속 가는 거야!”

       “야, 이 씨! 그만둬!”

         

       루미가 그의 목을 조르며 만류했지만, 그걸로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연이어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내려갔다. 그때마다 루미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고, 엘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30초도 되지 않아서 바닥에 내려설 수 있었다.

       루미는 눈물 맺힌 눈으로-그녀는 바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그를 노려보며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고, 엘라는 배를 붙잡으며 재밌었다고 깔깔거렸다.

         

       그들은 광장을 가로지르며 경연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무대들을 둘러봤다.

       노래부터 시작해서 곡예에 코미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들이 많군요.”

       “어디가 좋을까?”

       “엘피 양이 원하는 곳에 가죠.”

       “좋아! 그럼 목록 좀 볼까? 예약 좀 하려고 하는데요!”

         

       엘라의 외침에 따라 티케터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실력을 아는 오즈와 루미는 그녀가 어떤 공연을 고르든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엘피의 요청을 들은 티케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모두 마감됐습니다, 고객님.”

         

       티케터는 오늘 경연의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모두 며칠 전에 표를 구매한 사람들이라 말했다.

         

       “그럼 다음 경연은 언제인데?”

       “앞으로 6일 뒤입니다, 고객님.”

         

       6일이라는 말에 엘라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이거 큰일인데.”

       “그 사이에 3명의 형이 집행될 수도 있겠군요.”

       “음, 그것도 그렇지만, 바깥에서 우리를 찾지 않을까 걱정이네.”

         

       엘라가 초조하게 혀를 날름거렸다.

       안 그래도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이틀이 다 되어 갔다.

       지금 예테린푸르크에서는 어떤 소란이 일어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허수아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축제 기간은 루터마인의 축복이 원더랜드를 성벽처럼 두르고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한마디로 이곳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말입니다. 이곳에서 100일을 보내도 밖에서는 하루밖에 안 지납니다.”

       “어? 그럼 지금 밖에서는 30분 정도밖에 안 지났단 말이야?”

         

       오즈와 루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 여유롭게 굴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6일이면 그래도 너무 길어. 3명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럼 현장에서 대기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객님? 취소 표는 실시간으로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티케터의 말에 엘라는 크게 반색했다.

         

       “그런 것도 있어?”

       “네. 공연을 포기한다는 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일어나곤 합니다.”

       “가끔? 어, 그러면 그거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야?”

       “일단 나오기만 한다면요. 경연의 입장권에는 즉시 이동 기능이 없어요. 예를 들어 3분 뒤 입장권이 취소되면, 무대에서 3분 거리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살 이유가 없죠. 그래서 취소된 표는 많이들 버려집니다.”

         

       엘라는 두 사람을 돌아봤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취소된 표를 알아봐 줘. 뭐든 좋아.”

         

       그렇게 세 사람은 티케터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길 기다리며 근처에 있는 무대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과연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철학을 숭배하는 사람들답게 무대에 오를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오즈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근처 벤치에 몸을 파묻었고, 루미는 피곤했는지 아예 그의 몸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이거 오늘 중으로 되려나.”

         

       그렇게 말을 내뱉은 순간, 저 멀리서 무대를 구경하던 엘라가 그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왔다.

         

       “뛰자! 무대가 반대편에 있어!”

       “네? 무슨 말이에요?”

       “표를 구했어!”

         

       엘라는 손에 든 것을 흔들어 보였다.

       그곳에는 입장권이 들려 있었다.

         

       “5분 뒤 시작이야! 서둘러!”

       “먼저 가세요! 루미 씨가 잠이 덜 깼어요! 저희는 뒤따라갈게요!”

         

       그의 말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저씨가 필요해! 듀엣 가요제란 말이야!”

       “네?”

         

       허수아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기 님, 22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새로운 배경에 새로운 소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해 머리를 많이 썼는데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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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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