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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두 사람의 여정은 순탄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헤엑, 헤엑….”

         

       금여울은 눈앞에 놓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짜고 딱딱한 육포로 배를 채우는 법도 익숙해졌고, 밤만 되면 짐승이 그르렁대고 벌레가 몸을 기어 다니는 숲에서 잠드는 데에도 익숙…까지는 아니어도 어떻게든 잠들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백우진이 기특하다 여길 정도로 애쓴 그녀였으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은 점이 하나 존재했으니.

         

       풀썩!

         

       “나, 헤엑, 더 못 걷겠어…, 미안….”

         

       다름 아닌 부실한 체력이었다.

         

       그녀는 옛날부터 몸 쓰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돈 쓰러 다니고, 나들이 가는 건 좋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놀이일 뿐.

         

       금여울의 기초 체력은 부실하다 못해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그럼 저기 가서 쉬자.”

       “저기? 저기 어디…?”

       “저어기, 커다란 바위 있잖아.”

       “아, 알았어….”

         

       그럴 때마다 백우진은 그녀를 몇 걸음이라도 더 걷게 한 뒤에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지친 그녀를 안고 뛰어가는 것도 생각했으나, 구태여 그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약하다.

         

       인간의 육신은 한계에 다다랐을 때 한 걸음 더 내딛는 데에서 한계를 넓힐 수 있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이번 여정을 통해 그녀가 조금이나마 더 강인해지길 바랐다.

         

       집으로 가는 길은 기쁠지 모르나, 그 끝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사정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른 걸음을 더 걸어간 그녀는 커다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흐익…, 헤엑…, 흐윽….”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은 위태로운 표정에 백우진은 쓰게 웃었다.

         

       ‘적어도 요령은 안 피운단 말이지.’

         

       하루에 몇 번씩 지쳐 쓰러지면서도 꾀병으로 힘들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백우진은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매일 떠받들어지게 살아서 그런가.’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싫다고 하면 안 시키는 집에서 자랐으니, 굳이 거짓을 말하거나 꾀를 부릴 이유가 없었겠지.

         

       ‘다음 마을은 어느 정도 남았지?’

         

       백우진은 며칠 전 들른 마을에서 지금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반나절 정도인가….”

         

       조금만 부지런히 걸으면 오늘 밤에는 객잔에서 편하게 잘 수 있을 듯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안주로 한 잔 할 수 있겠어.’

         

       며칠째 제대로 된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려니까 슬슬 지겨웠는데 잘 됐다.

         

       대략 반 시진쯤 지났을까.

         

       백우진은 상념에서 깨어나 바위에 기대고 앉아 있는 금여울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걸 보니 까무룩 잠이 든 모양.

         

       “으음….”

         

       호흡이 굉장히 느려진 걸로 봐서는 제법 깊게 잠든 것 같은데, 이를 어쩐다.

         

       “지금 출발 안 하면 늦을 텐데….”

         

       더 늦게 출발했다간 가까스로 마을에 들어서더라도 객잔에서 묵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깨우자니 또 미안하고.’

         

       백우진에게는 무척 널널한 여정이었으나, 금여울에게 있어 요 며칠은 강행군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마을에서 떠나온 지 꽤 되었으니 체력 또한 많이 떨어졌을 터.

         

       “에이, 오늘만 봐준다.”

         

       결정을 내린 백우진은 곤히 잠든 그녀를 조심스레 등에 업었다.

         

       주변에 기막을 얇게 둘러 그녀를 보호한 뒤, 곧장 신법을 운용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으응….”

         

       금여울이 눈을 뜬 것은 붉은 태양이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즈음이었다.

         

       부스스한 상태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요 며칠간 느껴본 적 없던 신체의 활력이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느꼈다.

         

       “여긴…?”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금여울.

         

       “난 분명히 숲속에서 잠들었는데?”

         

       어딜 봐도 이곳은 마을 안의 객잔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도 제법 고급스럽고, 편안한 객실.

         

       백우진이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이곳까지 달려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또 폐를 끼쳤네….”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녀도 안다.

         

       그가 제 걸음 속도에 맞추어 여정을 진행하는 것만으로 크나큰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그것마저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등에 업혀 왔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인다.

         

       “나 정말 쓸모없는 애네.”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때는 무얼 해도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좋다고, 잘한다고 칭찬하고 웃어주었으니.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진정 자신이 잘해서 듣는 칭찬이 아니라, 가족들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그렇게 생각하니 가족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불길한 생각을 애써 털어낸 뒤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때.

         

       그녀는 한껏 흐트러진 의복의 옷매무새를 여미고서 객실을 나섰다.

         

       그가 어디에 있을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녀는 곧장 객잔 일 층에 있을 식당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백우진 또한 끼어있었다.

         

       그는 마을에 들를 때면 저렇게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곤 했다.

         

       말동무라도 되어 주어야겠다 싶어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할 때였다.

         

       “저어, 공자님…. 혹시 혼자 오셨나요?”

       “빈자리가 무척 적적해 보이시는데…, 저희가 공자님 잔을 채워드려도 될까요?”

         

       난데없이 나타난 두 여인이 그녀보다 앞서 백우진 앞에 서서 교태를 부려대기 시작한 것.

         

       반짝이는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매단 여인들은 딱 봐도 이 지역에서 이름 좀 날리는 여인들인 듯했다.

         

       그 증거로 주변에 앉은 사내들이 그녀들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웬만한 사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인들이 먼저 구애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확실히 사내놈이 잘생기긴 했구먼.”

       “역시 남자도 잘생기고 봐야….”

         

       질투와 시샘, 선망과 동경이 한데 아우러졌다.

         

       금여울은 슬쩍 뒤로 물러나 그들을 지켜보았다.

         

       새삼 그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뭇 여인들과 겨뤄도 모자람 없는 백옥같은 피부에 우물처럼 깊은 눈과 짙은 눈매.

         

       그것은 자신과 같은 젊은 여인들에겐 치명적인 것이었으니.

         

       ‘받아들일까…?’

         

       그는 제법 담백하지만, 성욕이 없는 사내는 아니었다.

         

       요 며칠간 조금만 틈이 보이면 몸을 바치겠다던 제 말을 끄집어내서 웃어대곤 했으니.

         

       두 여인의 눈빛은 가히 정인을 바라보는 듯 애틋했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녀들을 곧장 품에 안을 수도 있을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내가 무슨 생각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내용.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시녀들 몰래 숨겨두고 보았던 춘화집에서 본 것이었다.

         

       잘생긴 공자가 여인들을 마구 후리고 다니는 내용이었던가.

         

       내용 자체는 당장 불쏘시개로 써버리고 싶을 정도로 저열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들의 정사만큼은 그녀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에 나타난 사내와 여인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하였기에.

         

       문득 춘화에 그려져 있던 그림에 저들의 얼굴이 치환되었다.

         

       “윽…!”

         

       무언가 죄를 짓는 듯한 기분.

         

       그와 동시에 가슴을 무언가가 꽉 옭아매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남녀의 정사가 과연 무엇인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것이 백우진은 아니었으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조용히 부여잡은 채 그녀는 기다렸다.

         

       백우진이 과연 그녀들에게 어떤 답을 내릴지.

         

       가득 찬 술잔을 비워낸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혼자였다면 두 분을 앉혀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을 터인데.”

         

       잠시 말을 끊은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의 틈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던 금여울에게 정확히.

         

       ‘…착각인가?’

         

       어쩌다 눈을 마주친 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올곧게 뻗어 나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일행이 있는지라.”

         

       그러면서 백우진은 금여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리 안 오고 뭐 해.”

         

       별안간 쏟아진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금여울에게로 향했다.

         

       “오오…, 수수한 차림새에도 미색이 바래지 않는구나.”

       “과연 저 공자가 두 여인을 마다할 만하구먼!”

       “저놈의 거시기는 일 촌밖에 안 될 거야…, 그래야만 해….”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금여울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사내들 사이를 지나쳐 백우진에게 다가갔다.

         

       “호, 호호….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 그럼 저희는 이만.”

         

       금여울의 미색을 보고 패배감을 느낀 여인들은 빠른 속도로 객잔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뭐해? 앉지 않고.”

       “아, 응.”

         

       멍한 표정으로 그의 맞은편에 앉은 금여울.

         

       기분이 묘했다.

         

       두 여인을 물리치고 자신이 선택받은 것만 같은 느낌.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이 허리춤까지 끌어 올려지는 감각이 몸을 휘감는다.

         

       “저기…, 고마워. 나 잠든 사이에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그녀가 수줍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백우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만 특별히 봐준 거니까 다음은 기대하지 마.”

       “응.”

       “배고플 텐데 식사부터 해. 시킨지 얼마 안 돼서 따뜻할 거야.”

         

       그리 말하며 백우진은 제 앞에 차려져 있던 음식들을 그녀의 앞으로 돌려놓았다.

         

       며칠간 육포만으로 연명해온 탓에 군침이 흐른다.

         

       “스읍….”

         

       그러나 그녀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최대한 조신하게 행동했다.

         

       불과 하루 전이었으면 곧장 닭다리를 손에 쥐고 마구 뜯어 먹었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를 본 백우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숭 떨지 말고 팍팍 먹어. 이 마을 지나면 또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생존 본능 사이에 놓인 저울이 한쪽으로 기운다.

         

       일단 먹고 보는 쪽으로.

         

       한 손으론 닭다리를 뜯고 다른 한 손으론 열심히 젓가락을 놀린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정무학관과 흑사무관.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으음…, 아무래도 정무학관 아니겠어? 최근에 거기 후기지수들이 엄청나다며.”

       “그래도 상대가 흑사무관 아닌가. 거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 일상인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얼마나 강하겠냐고.”

       “그것도 그렇구먼.”

         

       묘한 소식이었다.

         

       정파와 사파.

         

       중원을 양분하는 두 세력의 대표적인 후학 양성 기관이 친선전을 겨룬다라.

         

       ‘갑자기 무슨 일이지?’

         

       친선전이라곤 하나 그것이 절대 가벼운 행사는 아닐 터다.

         

       정과 사.

         

       양쪽 모두 서로에게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족속들이니.

         

       “조만간 정무학관에서 친선전에 나설 대표를 뽑는 비무를 펼친다고 하던데.”

       “오오…, 그것 참 재미있겠구먼.”

         

       대표 선발이라.

         

       어쩌면 조금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제시간에 연재를 하지 못해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최근에 새벽에 글을 쓰다 보니 이따금 까무룩 잠이 들어버릴 때가 있네요…

    운동을 시작하니 더욱 체력이 부족하여 빠듯하네요.

    언제쯤 건강이 좋아질런지…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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