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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3

       일단 비어있는 위원장과 위원들을 뽑아야 했으므로, 나는 그날 파티에 초대되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모았다.

        

       “야, 너 그런데 요즘 들어 은근슬쩍 운동 빠지는 날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친 남다운에게 한 소리 들었다.

        

       “아뇨, 그, 요즘에는 일이 많긴 했으니까…….”

        

       그렇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일이 자주 터져서 미처 찾아가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핑계가 생겨서 나빴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제는 운동장도 수월하게 돌 수 있을 정도로 체력도 생겼고, 공과 싸웠을 때도 지지는 않고, 비기는 정도까지는 실력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도 체력은 여전히 평균 미만이었다.

        

       아니, 평균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대놓고 덮쳐대는 세 사람보다는 약했다. 게다가 의식 안에선 이렇게 열심히 키운 체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나름대로 건강해지고 먹는 양도 그럭저럭 다른 애들 먹는 것보다 조금 적은 정도까지로 늘어나긴 했지만, 뭐랄까, 이제는 조금 회의감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막말로 보기 흉할 정도로 살이 찌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정말로 나에게 신체적으로 나쁜 짓을 할만한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었고.

        

       “…….”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다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내 의지로 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늘이와 수아에게 끌려가서 운동시켜달라고 한 것은 어쨌거나 우리 쪽이었으니까.

        

       저쪽이 제대로 만족할 때까지는 계속 나가서 운동해야겠지.

        

       아, 진짜 싫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면 갈게요.”

        

       내가 슬쩍 눈을 피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남다운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아직 체력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만두더라도 조금만 더 하고 그만둬.”

        

       그 조금만이 언제까지인지, 그리고 그 완성된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알 길은 없다.

        

       나는 일단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를 도망가듯 황급히 몸을 돌렸다.

        

       지금 우리가 모인 곳은, 지난번에도 그랬듯 저택의 로비였다. 이제는 사용인이 양혜인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우리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건 어디로 새어 나갈 일도 없고, 무엇보다 여기가 내 집이라는 인식이 확고했기 때문에 마음도 편했다.

        

       다 모일 정도로 장소도 넓고.

        

       ……갑작스러운 내 요구에 의자와 테이블을 여럿 준비한 양혜인만 고생했지.

        

       ‘혼자서 다 준비했다’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무서워서 아직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에이, 설마 정말 혼자 했겠어? 경비 서고 있는 하청업체 직원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양혜인 정도 되는 외모라면 부탁했을 때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조만간 사용인을 좀 늘려야겠다.

        

       아무튼, 테이블 몇 개와 간단한 다과가 준비된 곳에 앉아있는 애들을 보면 무슨 작은 연회라도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입고 있는 옷은 전부 교복이긴 했지만.

        

       원래 이런 작품에서 이런 분위기의 장면이 나오면 앉아있는 애들은 보통 귀족이거나, 돈이 많은 학생들인데…… 여기 앉아있는 애들은 대부분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아이들이었다. 다들 조금 겁에 질린 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다. 지난번에 한 번 왔던 거로는 어색한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런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일단은 생각만 해두자.

        

       나는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을 몇 개 정도 올라가 청중을 바라보았다.

        

       “자, 주목!”

        

       손뼉을 짝 치자 이쪽으로 시선이 돌아왔다.

        

       겁에 질린 듯 조금 떨리는 시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죽겠다는 시선. 사실 여기 올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앉아있게 되었다는 다소 무심한 시선.

        

       앉아있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각자 다른 감정이 서려 있었다. 뭐, 상관없다. 이 중에서 내 제안을 받아줄 사람이 몇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거니까.

        

       “제 부탁에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학생회 관련된 일로 여러분과 상의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모여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학생회와 관련 있는 극소수의 인물, 그러니까 류바다를 포함한 세 명 정도의 도서 위원을 빼면 나머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긴, 여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지내던 애들이다. 교내에서 대놓고 차별당하고 무시당하던 애들이니, 학생회와 관련이 있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이름만 적어두고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유령단체라지만 일단 이름만 올려도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 새겨지니까. 자기네끼리 돌려먹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이번 학생회는 손아름이나 류바다 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아주 조금은 나았던 것 같긴 하지만,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전학 가버린 위원장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완벽한 선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저는 이번에 공석이 된 학생회 부회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눈에 흥미가 돌았다.

        

       그래, 그렇겠지.

        

       다시 강조하자면, 여기 있는 애들은 거의 다 장학생들이다.

        

       학비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장학생으로 들어온 만큼, 당연히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성적이 굉장히 좋았겠지.

        

       나름대로 공부에 자신감이 넘치던 아이들이다. 여기 와서 무시당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었을 뿐.

        

       아마 ‘돈 많은’ 애들이 장학생들을 무시한 데는 계산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면도 있었으리라. 성적이라는 것은 돈을 부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시험을 보지 않아도 평균 점수는 나오는 나 정도가 아니라면, 이 학교 선생들도 돈을 받고 성적을 대놓고 조작해주지는 못했다. 시험문제 유출 정도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고 장학생들은 시험문제가 유출되건 말건 애초에 성적이 잘 나오는 애들이지.

        

       사람을 무시하는 데는 ‘내가 잘나서’라는 이유도 존재하지만, ‘잘난 놈을 깎아내리고 싶어서’도 존재한다. 어떤 위업을 세운 사람에게 ‘그딴 거 이론적인 거라 아무 의미 없다’ ‘그냥 앞으로 가기만 했어도 될 일 아니냐?’ 따위의 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돈이 많은 것과 실력이 좋은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잘난 지는, 내가 상대를 ‘무시할 힘’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이 파벌의 수장인 내가 부회장이 되면 그 ‘무시할 힘’이 생긴다.

        

       게다가 몇몇 학생들은 이미 학생회가 마비 상태라는 것을 소문으로 듣기라도 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몇 개월을 무시당하면서 살았던 애들이다. 역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

        

       그게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둘째치기로 하고.

        

       “원래 부회장이라는 자리는 그렇게 권력이 강한 자리가 아니지만…… 지금 학교 상황을 보시면 아시죠?”

        

       청중들 사이에서 가볍게 웃음이 일었다.

        

       내가 자신들을 힐책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긴장감이 돌던 분위기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이건 좋은 일이다. 나는 원하는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했을 때 아무도 나오지 않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으니까.

        

       “아마도, 학교의 중요한 자리를 정하는 걸 제가 거의 다 할 것 같아서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자리에서 사람을 뽑아보려고 합니다. 아, 물론 오늘 하루 만에 다 정할 생각은 없어요. 정기적으로 자리를 가지면서 어느 자리에 누가 올라가면 좋을지 생각해보도록 하죠.”

        

       나는 말을 잠깐 쉬었다. 다들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서 나를 보고 있다.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서 올라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힘이 없으니까 못 올라갈 뿐이지.

        

       ……물론 나는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이 학교에 ‘일부러’ 들어온 이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었다. 돈이 없으니 실력으로 인생을 펴 보려고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당연히, 손에 힘이 들어오면 그냥 놓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여기 있는 분들이 모두 느슨한 관계로 묶여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통성명도 안한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이런 자리가 제일 먼저 만들어져야 했겠지만, 지난번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원래는 파벌이니 뭐니 없이, 그냥 돈 많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만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어쩌겠어. 세상이 나를 그냥 두지를 않는데.

        

       차라리, 최대한 내가 직접 힘을 휘두를 필요 없도록, 그래서 앞으로 평화로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미리 방파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회는 그런 방파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이 있어야겠지.

        

       방학이 오기 전에, 그 일들을 모두 끝내자.

        

       그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게 과연 우리 생각만큼 쉽게 될까?

        

       “…….”

        

       사라의 말에, 청중들을 돌아본다. 아직 다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내가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게, 과연 그게 쉽게 될까?

        

       묘한 열정을 가진 채 나를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나는 몸을 살짝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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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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