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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스탁핀을 떠나고 하루가 지나 나는 집합 장소에서 아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참나무 밑에서 나는 한벌옷의 망토와 두건을 뒤집어 쓴 채 시간을 축이고 있었다.

     

     

    떠난건 아내들이 빨리 떠났지만, 도착한건 내가 빨랐다.

     

    나는 마차가 아닌 말을 타고 이동하기도 했고, 나보다 아내들이 더 조심해야했기에 어쩔 수 없을것이라 플린트가 이야기했다.

     

     

    애초에 나는 죽은걸로 알려져있기에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들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네르와 아르윈은 각기의 가문에서 금방 추격을 멈출것이라 해도, 가문의 입지상 찾아보는 척은 이어갈 수 밖에 없을테니.

     

    또한, 홍염단 대원들이 시엔을 찾아나설게 분명했다.

     

     

    아무리 바란에게 엽서를 남기고 왔다하더라도, 홍염단 대원들은 나를 위해서 그녀를 찾을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플린트도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아내들을 내게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기다림도 끝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 마차가 이 참나무를 향해 다가오는게 보였다.

     

    “…”

     

    마차 앞에서 말을 몰고 있는 플린트의 모습도 보았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 개방감을 이루말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플린트에게 손을 들어보였고, 플린트도 나에게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내 앞에서 마차를 멈춰 세운 플린트가 말했다.

     

    “기다렸-”

     

    “-베르그!!”

     

    하지만 플린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네르가 먼저 마차 뒤편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안겼다.

     

     

    그녀의 흰머리카락을 가려주던 두건도 벗겨진다.

     

    네르는 나를 꽉 껴안으며, 얼굴을 내 품에 이리저리 비볐다.

     

    그녀는 자신의 온 체중을 내게 실었다.

     

     

    “보고 싶었어, 베르그.”

     

    네르가 말했다.

     

     

    가문을 등지고, 귀족이라는 지위도 내려놓으며 혹여나 우울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이런 네르의 모습을 보니 걱정도 녹아사라졌다.

     

     

    나는 네르를 품에 꼭 안으며,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나도.”

     

    그리고는 그녀에게 답해주었다.

     

     

    뒤이어 아르윈이 굳은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굳은 표정이 깨지고는 환한 미소가 대신 떠올랐다.

     

     

    나와 오랜 눈맞춤을 하던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개방감이 정말 엄청나네요.”

     

    그녀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전달받고 있는 듯 했다.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 나는 가슴이 너무나도 후련했다.

     

     

    아르윈이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으니 물어볼게요.”

     

    “…뭘?”

     

    “당신…이제 제것이라 봐도 되죠?”

     

    -쪽.

     

     

    그러더니 아르윈은 기다려왔다는 듯이 내 입술을 훔쳤다.

     

    옆구리에 매달려있던 네르의 몸이 잠시 경직되었다.

     

     

    아르윈은 이내 쿡쿡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떨어져갔다.

     

     

    마지막으로는 시엔이 마차에서 내렸다.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배를 꼭 부여잡은채, 조심하며 그녀가 내렸다.

     

     

    “몸은 괜찮아?”

     

    그런 그녀에게 나는 먼저 물었고, 시엔은 내 얼굴을 보며 환히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자유네, 벨.”

     

    “그러게.”

     

    “…네 꿈도 이룰 수 있겠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곤 답했다.

     

    “네 꿈도 같이 이루자.”

     

     

    나의 꿈은 평온한 곳에 정착해, 소중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걸 이룰 수 있게 된 지금, 남은 꿈들 또한 천천히 이뤄갈 수 있을게 분명했다.

     

     

    시엔의 꿈은 세상을 이곳저곳 여행하는 것이었다.

     

    어떤면에서는 아르윈의 꿈과도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자리를 잡아, 머물 수 있는 집을 짓고 난 후에는 세상을 이곳저곳 여행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했다.

     

     

    아내들과 한번씩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플린트를 돌아보았다.

     

    그와 자연스레 악수를 나눈다.

     

     

    “고생했어, 플린트.”

     

    “뭘. 이쯤이야 쉽지. 아직 일이 끝난것도 아니잖아. 이곳에 너와 네 부인들을 내버려두고 갈 수 있는것도 아닌데.”

     

     

    나를 뿌듯한 눈길로 바라보던 플린트가 말했다.

     

    “그래서. 정착할 곳은 정한거야? 어디로 데려다주는게 편할려나?”

     

    “…”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어디에 정착을 해야하는건지 생각해둔건 없었다.

     

     

    따지고 본다면 우리는 꽤나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다.

     

    엘프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걸 생각한다면…아르윈의 귀는 꽤나 튀었다.

     

    네르의 하얀 꼬리와 머리카락도 분명 시선을 붙잡는 요소였고.

     

    한때 성녀였던 시엔의 얼굴또한 이곳저곳 알려져 있을게 뻔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이, 얼굴에 흉터가 난 인족과 함께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나면…언젠가 우리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사람도 분명 나타날 것이었다.

     

     

    우리에 대한 소문이 가라앉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한 동안은 숨어지내야 할게 분명했다.

     

    또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신분을 숨길 방식을 찾거나.

     

     

    “…정착할 곳이라.”

     

    나는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갔다.

     

     

    용병 생활을 하며 돌아다닌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뒤져가며 괜찮았던 장소를 물색했다.

     

     

    눈동자를 굴려 시엔을 바라보자,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민을 시작한 듯 했다.

     

    시엔 또한 경험해본곳이 많았다.

     

    몸이 나약했던 시절, 부모님과 이곳저곳을 다녀보기도 했고…성녀가 되어 이리저리 이동했었다.

     

    그런 곳 중에서도,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베르그?”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아르윈이 옆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

     

    “…정착하고 싶은 곳이 없다면…제가 한 곳 추천해도 괜찮나요?”

     

    “추천?”

     

     

    아르윈은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예쁜 호수가 있어요. 호수 근처에는 상주하고 있는 사람도 적고요. 말을 이용해 조금만 이동한다면 작은 마을도 있어요. 만약 집을 짓고 산다고 하신다면…그곳만한 곳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어떻게 아는 곳이야?”

     

    “셀레브리엔 영지에 갇혀 있을 때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거든요. 그리고…”

     

    아르윈은 잠시 고민하듯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사실 당신과 이혼하고 처음으로 가본 곳이기도 해요. 하지만…당신이 없으니 생각보다 무미건조해서…생각보다 예쁘지 않아서 잊고 있었는데…”

     

    “…”

     

    그러다 아르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이 있잖아요? 다시 한 번 방문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그 곳이 아름답다 느낄 수 있을것만 같아요.”

     

     

    “…”

     

    나는 아르윈의 이야기에 숨을 들이쉬었다.

     

    이별 이후 힘든게 나뿐만 아니었다는 걸 또 이렇게 확인한다.

     

    하지만 그 무거운 감정이 들어차기 전에, 나는 마음을 털어냈다.

     

    이제 우리가 함께라는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는 네르와 시엔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네르와 시엔은 그런 내게 답해줄 뿐이었다.

     

    “네가 원하면 어디든.”

     

    “난 너랑만 있으면 돼, 베르그.”

     

     

    나는 그 대답들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플린트에게 말했다.

     

    “플린트. 도와줄 수 있지?”

     

    플린트도 시원하게 답했다.

     

    “당연하지, 베르그.”

     

     

    ****

     

     

    그렇게 서로의 어깨를 붙인채 하루종일 이동하다, 우리는 야영지를 차렸다.

     

     

    그 임시숙소 앞에서, 우리는 불을 피워놓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차근차근 짜기 시작했다.

     

     

    “잠자리는 번갈아 가면서 자요.”

     

    아르윈이 제안했다.

     

    네르와 함께 살아가던 시절의 규칙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요.”

     

    나와 함께 가장 오래 살았던 시엔도 그에 대한 반기를 들어올리지 않았다.

     

    그녀는 네르와 아르윈에게 많은 존중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네르는 시엔과 우리 아이의 목숨을 살렸고…아르윈은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

     

    행복한 미래를 거머쥔 것은 모두 그녀들의 덕이었다는 걸, 시엔도 잊지 않는 듯 했다.

     

     

    “…잠자리…”

     

    네르가 곁에서 그 말을 속삭였다.

     

    “…”

     

    정말 우리가 몸을 섞을 날도 머지 않았음을 떠올리는 듯 했다.

     

    네르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았다.

     

    눈동자만을 굴려 나를 힐끔힐끔 살피기까지 했다.

     

     

    “…”

     

    하루종일 느낀 것이었지만, 나는 네르의 눈빛속에 내려앉은 성욕이 보이는 듯 했다.

     

    시엔을 통해 여성의 신호들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차이었다.

     

     

    네르는 손을 잡아도 묘하게 야하게 잡았고, 입술도 자꾸만 나를 보며 적셨다.

     

    곁에 있으면 그녀가 계속해서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꼬리마저도 자꾸만 내 몸을 툭툭 건드렸고, 몸마저 전체적으로 뜨겁기까지 한 그녀였다.

     

     

    “…”

     

    나도 물론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생각보다 그 과정은 멀리 있는게 아닐까 생각중이었다.

     

    일단은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을 당장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

     

    그렇게 있다보니 또 네르와 눈이 맞는다.

     

    항상 부끄럽게 시선을 회피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게슴츠레 눈을 뜨며, 꼬리를 살랑였다.

     

     

    결국 먼저 눈을 피한건 나였다.

     

    지금 이런 분위기를 가져봤자 해소할 창구가 없을테니.

     

     

    “집은 일층짜리로 가볍게 짓고 싶은데. 괜찮겠지?”

     

     

    그에 시엔이 말한다.

     

    “방이 좀 많아야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우리들 각각의 방과…아이들의 방. 창고도 필요할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다 이야기해. 지금 말해놓아야 다 포함시키니까.”

     

    화톳불 반대편에 앉아있던 플린트가 말했다.

     

     

    “집 짓는 것 까지는 도와줄테니까, 필요한건 뭐든 말만해. 여차하면 사람들도 좀 불러오면 되겠네.”

     

     

    아르윈이 말했다.

     

    “드워프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빨리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가능하면, 그래보자.”

     

    “전 다른것보다 빨리 당신과의 보금자리를 가지고 싶어요.”

     

    “…더 필요한건 없고?”

     

    “술을 둘 수 있는 창고가 있으면 좋을 듯 해요. 당신께 술을 따라드릴 수 있게.”

     

     

    나는 아르윈의 말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내 마지막으로 네르를 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눈을 야하게 뜨고 있었다.

     

     

    “…네르, 넌?”

     

    그런 그녀의 신호들을 무시하며 내가 물었다.

     

    “…”

     

    네르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안방벽은 두껍게 만들어줘. 소리…같은게 안 새어 나가게.”

     

    “…”

     

    “…”

     

    “…”

     

    우리 모두가 네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굳었다.

     

    의도를 숨기려고 한 것 같지만 숨겨지지는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 침대는 크게.”

     

    하지만 이어지는 네르의 말에, 딱히 의도를 숨기려고 한 것 같지는 않았다는걸 깨닫는다.

     

     

    “…”

     

    네르의 순간적인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힘들었던 시기는 모두 끝났다는걸 알아서 그럴까?

     

    긴 세월 끝에 다시 이어졌으니 이러는 걸까?

     

    마음을 참는게 어려워져서 그러는 걸까?

     

     

    “…”

     

    그러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아.”

     

    그리고는 깨닫는다.

     

     

    보름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음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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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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