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이 떨어졌다.
말을 타고 전장에 난입한 윌리엄을 본 양측의 병사들이 동시에 한 생각이었다.
병사들을 뛰어넘어 성문을 가로막듯이 선 기사.
단 한기였지만, 그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맘루크들은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문 안으로 진입을 허용하면 진다.’
성문이야 좁은 곳이기에 어떻게든 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 있지만, 성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지리라.
놈들이 불을 지르기만 해도 성 내부는 지옥이 될 테니.
윌리엄은 랜스를 고쳐 쥐고 바닥에 긴 선을 그었다.
“너흰 못 지나간다.”
지나가려면 나를 죽이고 지나가라.
광오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선언에 맘루크들이 일제히 그를 노려보았다.
“은공.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길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후방을 잡은 무인들이 놈들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야 해.”
병력의 대부분을 후방에 배치하고 포위망을 좁히고 있으니, 놈들을 압사시키기 전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
나는 손에 쥔 양산형 랜스를 역수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어디 한 번 과녁 성능 좀 볼까.”
오러 소모가 크지만, 좁은 곳에서 이만큼 훌륭한 방법도 없지.
“저놈이 창을 던지려 한다! 막아라!”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은공에게 털끝 하나도 손 못 댑니다!”
난무하는 검강.
공기를 찢어발기는 외침.
수많은 목소리가 섞여 만들어낸 현세의 지옥.
윌리엄은 그 속에서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의 끝에는, 파르스가 있었다.
‘놈을 잡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를 무슨 수로?
경지가 올라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격차를 어떻게 메꿔야 하는가?
합공으로?
아니면 함정?
독이라도 써야 할까?
과연 그 수단들을 준비하는 동안 얼마만큼의 희생이 필요할까?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그는 창을 던져야 했다.
그러기 위한 준비였고, 이기기 위한 과정이었으므로.
이내 윌리엄의 손에서 창이 던져졌다.
땅을 양해 비스듬히 날아가는 창.
동시에 창을 향해 수많은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쳤다.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과 함께 진형이 흔들렸다.
“선두는 후열과 교체하도록!”
압둘의 명령과 함께, 부상을 입은 맘루크들이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맘루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르스. 쥐새끼처럼 뒤에 숨어있을 작정인가?”
윌리엄의 도발에 파르스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기가 왜 앞에 나서야 하냐는 대답을 담은 반응에, 윌리엄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건가.’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윌리엄과 경지가 엇비슷한 부하가 여럿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실력과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는 법.
윌리엄은 등에서 한 자루의 랜스를 꺼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어차피 죽느냐, 죽이느냐 두 가지 선택밖에 없지 않은가.
윌리엄의 손에 들린 랜스가 오러 블레이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방금 던졌던 창보다도 더 많은 오러가 실린 창.
윌리엄은 무기가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 오러를 밀어 넣은 창을 파르스를 향해 투척했다.
윌리엄이 던진 랜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파르스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노골적인 공격.
파르스는 그제서야 느긋하게 검을 뽑아 들고 검에 오러블레이드를 씌웠다.
“…!”
그리고는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의 검에서 튀어나온 모랫빛 오러 블레이드가 랜스를 두부를 자르듯이 반으로 갈라버리고 윌리엄에게 달려들었으니까.
‘절삭력은 여전하군!’
윌리엄은 곧장 랜스를 꺼내 오러를 잔뜩 밀어 넣었다.
성문의 폭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일뿐더러, 피한다 쳐도 다른 병사들이 피해를 볼 터였으므로.
그리고, 다시 한번 랜스가 그의 손에서 발사되었다.
랜스에 실린 기세는 여전히 무시무시했지만,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오러블레이드는 여전히 강맹한 기세를 품고 있었기에, 윌리엄은 곧장 현철로 된 랜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랜스는 허무하리만치 반으로 잘려 땅에 처박혔다.
‘그래도 기세가 약해졌다!’
이번이 승부수.
윌리엄은 최소한의 오러를 제외한 모든 기운을 창 속에 밀어 넣고 앞으로 내질렀다.
이내, 충격파와 함께 윌리엄의 몸이 흔들렸다.
‘영약을 먹어서 어느 정도 격차를 좁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니.’
어느 정도 약화시킨 오러블레이드를 막았는데도 속이 진탕이 되다니.
다행스럽게도 저번처럼 한 번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그때와 다를 바 없는 꼴이 되리라.
하지만, 윌리엄은 속에서 튀어나오는 핏물을 바이저를 들어 올려 뱉어냈다.
결코 성하지 않은 몸 상태.
하지만 그는 금이 간 랜스를 바닥에 꽂아 넣는 것으로 의지를 다졌다.
‘버틴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으므로.
그의 등에서 새로운 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질긴 놈이로구나.”
파르스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
‘조금 더 경지가 높았다면 재밌는 승부가 되었을 것을.’
나이에 비해 강하긴 하나,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경지.
“지금부터, 정면 돌파를 시작한다!”
“알라후 아크바르!”
파르스의 선언에, 지지부진했던 구도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성문이 좁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맘루크들은 멈추지 않았으니.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맘루크들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첫 조우만큼의 기세를 잃어버린 윌리엄의 창은 그의 상태를 대변하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맘루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샤이탄을 먼저 노려라!”
“시발. 샤이탄 같은 소리 하네.”
윌리엄은 동시에 짓쳐 드는 검을 랜스로 쳐내고 창을 휘둘러 달라붙은 맘루크를 견제했다.
맘루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몸을 기울여 옆으로 누웠다. 묘기에 가까운 곡예를 부린 그들의 검에서 모랫빛 오러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젠장!’
하필이면 랜스를 들고 있기에, 접전은 까다로운 상황. 윌리엄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 두른 오러아머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악이 가소롭다는 듯이, 모랫빛 오러블레이드가 그의 다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푸른빛 오러와 노란빛 오러가 불똥처럼 튕겨 나가며 경합을 벌이는 상황.
이대로 가면 다리가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윌리엄은 이를 악물고 랜스를 회수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랜스로 유의미한 피해를 주기 어려운 노릇.
그가 결국 랜스를 포기하고 검을 뽑으려는 순간이었다.
“은공!”
마치 그의 앞을 막아 세우듯이 나타난 검의 벽.
수 백개의 검이 만들어낸 벽이 맘루크들의 오러블레이드를 튕겨내고 말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으악!”
“감히!”
뒤이어 날아온 매화 꽃잎이 맘루크들의 전신을 찢어발기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맘루크들은 저항할 시간도 없이 절명 당했다.
“자네 괜찮나!”
“그럭저럭 버틸 만 합니다!”
전장에서 이런 상황을 겪은 게 한 두 번인가.
숨을 돌린 윌리엄은 랜스를 바닥에 꽂아 넣고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폴암이라도 만들어달라 할 걸 그랬군.’
말을 탄 상태에서는 검을 휘두르는 데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으니.
윌리엄은 차분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아직은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맘루크들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점점 전선이 뒤로 밀리게 될 터.’
당장 뒤쪽에 있는 포위망이 맘루크들을 압박하겠지만, 정면을 뚫어버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발이 풀린 맘루크들이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난리를 칠 것은 뻔할 뻔 자였으므로.
“허허, 완전히 난장판이로구나!”
“팽가의 도를 맛보거라!”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고수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은 채로,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맘루크들을 노려보았다.
‘파르스 놈이 불안하지만, 일단은 놈들부터 막는다.’
“선배님들! 저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놈이 나서면 전원 합공에 들어가야 합니다!”
“알았네!”
“새파랗게 어린놈 상대로 합공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뭐 알았네!”
최선두에 서서 전선을 유지하는 노고수들을 누가 늙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먼 옛날 조자룡이 그랬던 것처럼, 노익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니.
달려드는 맘루크들에 맞서 윌리엄과 순찰대원들은 끝나지 않는 혈전을 이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공방.
맘루크들의 집요한 공격에 전선이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저 뒤쪽에서 명령만을 내리고 있는 파르스의 존재 탓이었다.
파르스의 존재 탓에 달려드는 맘루크들에게 전력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니 맘루크들을 처리하기가 까다로워진 것.
그리고 맘루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으니, 그들도 전선을 밀어붙이기 위해 더 강하게 수비군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젠장! 벌써 관절이 뻐근하구나!”
“뭐 그렇다고 도망칠 작정이요?!”
“아니지! 제자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치겠나!”
‘상황이 좋지 않다.’
윌리엄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차라리 뒤로 물러나서 넓은 공간의 이점을 살려야 하는가?’
그가 망설이던 순간이었다.
“…슬슬 때가 되었구나.”
파르스는 전장에서 눈을 돌려 성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뚫린 성문과 정반대 방향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냐!”
“북쪽 성문이 뚫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
“마인들입니다. 마인들이 북쪽 성문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알라의 전사들이여! 진격하라!”
“알라후 아크바르!”
‘어쩐지 지지부진하게 굴더니만!’
더 거세게 전선을 밀어내는 적들.
‘타개할 방법! 방법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없이 눈알을 굴리던 그의 눈에 금이 간 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윌리엄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순찰대는 제각기 강력한 일격을 날려 적의 발을 묶고 몸을 뒤로 뺏다. 경공을 배우는 무림인들이기에 가능한 동작.
윌리엄은 모두 빠진 것을 확인하자, 온몸에 퍼져있던 오러를 검에 밀어 넣었다.
마나코어에 오러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정도로.
“같이 죽자!”
“은공!”
윌리엄의 검이 금 간 벽에 마구 휘둘러졌다.
평범한 검이라면 튕겨 나갔겠지만, 오러블레이드가 씌워진 검은 성벽을 두부처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뜻은, 성벽의 붕괴를 뜻했으니.
“젠장! 도망쳐라!”
윌리엄의 난도질을 버티지 못한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사태에 가까운 재해가 벌어지자, 땅이 울리고 모두가 혼란에 휩싸여 뒤로 빠지기에 바빴다.
하지만 맘루크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들이 너무나도 깊게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포위당한 상태라는 것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후퇴하거라! 뒤를 뚫는다!”
떨어져 내리는 돌덩어리들. 파르스는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 떨어져 내리는 바위들을 하나하나 쳐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맘루크드은 말머리를 돌려 성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재난에서 모두가 빠져나갈 수는 없는 법.
“알라후…아크바르…”
“알라시여…!”
상당수의 맘루크들이 돌덩어리에 깔려 명을 달리했다.
‘죽겠군…’
윌리엄의 몸이 휘청였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에 오러를 죄다 끌어 쓴 탓에 그의 눈에 천국이 비치기 시작한 상황.
이대로라면 그 또한 바위에 깔려 죽음을 면치 못 하리라.
하지만 그의 늙은 말은, 그를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곧장 고개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은공!”
무너져내리는 통로를 질주하는 한 마리의 노마.
풍운은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돌덩이를 재주좋게 피해 성벽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돌덩이를 피하는데 모든 기운을 다쓴 풍운이 쓰러져 거친 몸을 몰아쉬었다.
“은공!”
윌리엄의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는 천국에 간 중세기사가 연재됩니다.
tmi:무림과 기사, 이슬람과 마교는 서로 내력의 성질이 다릅니다.
무림:육각형(가장 균형이 잡혀 있는)
기사:방어에 더 투자해서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약한 딜탱
마교:마기 특유의 성질로 인해 파괴력+디버프 느낌
이슬람:방어관통 특화
같은 느낌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