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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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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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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타고 전장에 난입한 윌리엄을 본 양측의 병사들이 동시에 한 생각이었다.

       ​

       병사들을 뛰어넘어 성문을 가로막듯이 선 기사.

       ​

       단 한기였지만, 그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맘루크들은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성문 안으로 진입을 허용하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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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문이야 좁은 곳이기에 어떻게든 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 있지만, 성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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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들이 불을 지르기만 해도 성 내부는 지옥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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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랜스를 고쳐 쥐고 바닥에 긴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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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흰 못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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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려면 나를 죽이고 지나가라.

       ​

       광오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선언에 맘루크들이 일제히 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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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공.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여길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후방을 잡은 무인들이 놈들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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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의 대부분을 후방에 배치하고 포위망을 좁히고 있으니, 놈들을 압사시키기 전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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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손에 쥔 양산형 랜스를 역수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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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한 번 과녁 성능 좀 볼까.”

       ​

       오러 소모가 크지만, 좁은 곳에서 이만큼 훌륭한 방법도 없지.

       ​

       “저놈이 창을 던지려 한다! 막아라!”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

       “은공에게 털끝 하나도 손 못 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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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무하는 검강.

       ​

       공기를 찢어발기는 외침.

       ​

       수많은 목소리가 섞여 만들어낸 현세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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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그 속에서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

       그의 시선의 끝에는, 파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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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을 잡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를 무슨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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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지가 올라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격차를 어떻게 메꿔야 하는가? 

       ​

       합공으로?

       ​

       아니면 함정?

       ​

       독이라도 써야 할까?

       ​

       과연 그 수단들을 준비하는 동안 얼마만큼의 희생이 필요할까?

       ​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

       결과가 어떻든, 그는 창을 던져야 했다.

       ​

       그러기 위한 준비였고, 이기기 위한 과정이었으므로.

       ​

       이내 윌리엄의 손에서 창이 던져졌다.

       ​

       땅을 양해 비스듬히 날아가는 창. 

       ​

       동시에 창을 향해 수많은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쳤다. 

       ​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과 함께 진형이 흔들렸다.

       ​

       “선두는 후열과 교체하도록!”

       ​

       압둘의 명령과 함께, 부상을 입은 맘루크들이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맘루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

       “파르스. 쥐새끼처럼 뒤에 숨어있을 작정인가?”

       ​

       윌리엄의 도발에 파르스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기가 왜 앞에 나서야 하냐는 대답을 담은 반응에, 윌리엄은 미간을 찌푸렸다.

       ​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건가.’

       ​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윌리엄과 경지가 엇비슷한 부하가 여럿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실력과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는 법.

       ​

       윌리엄은 등에서 한 자루의 랜스를 꺼냈다.

       ​

       “그래. 끝까지 가보자.”

       ​

       어차피 죽느냐, 죽이느냐 두 가지 선택밖에 없지 않은가.

       ​

       윌리엄의 손에 들린 랜스가 오러 블레이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방금 던졌던 창보다도 더 많은 오러가 실린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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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무기가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 오러를 밀어 넣은 창을 파르스를 향해 투척했다.

       ​

       윌리엄이 던진 랜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파르스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

       노골적인 공격.

       ​

       파르스는 그제서야 느긋하게 검을 뽑아 들고 검에 오러블레이드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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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리고는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

       그의 검에서 튀어나온 모랫빛 오러 블레이드가 랜스를 두부를 자르듯이 반으로 갈라버리고 윌리엄에게 달려들었으니까. 

       ​

       ‘절삭력은 여전하군!’

       ​

       윌리엄은 곧장 랜스를 꺼내 오러를 잔뜩 밀어 넣었다.

       ​

       성문의 폭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일뿐더러, 피한다 쳐도 다른 병사들이 피해를 볼 터였으므로.

       ​

       그리고, 다시 한번 랜스가 그의 손에서 발사되었다.

       ​

       랜스에 실린 기세는 여전히 무시무시했지만,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오러블레이드는 여전히 강맹한 기세를 품고 있었기에, 윌리엄은 곧장 현철로 된 랜스를 손에 쥐었다.

       ​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랜스는 허무하리만치 반으로 잘려 땅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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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기세가 약해졌다!’

       ​

       이번이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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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최소한의 오러를 제외한 모든 기운을 창 속에 밀어 넣고 앞으로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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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내, 충격파와 함께 윌리엄의 몸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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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약을 먹어서 어느 정도 격차를 좁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니.’

       ​

       어느 정도 약화시킨 오러블레이드를 막았는데도 속이 진탕이 되다니.

       ​

       다행스럽게도 저번처럼 한 번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그때와 다를 바 없는 꼴이 되리라.

       ​

       하지만, 윌리엄은 속에서 튀어나오는 핏물을 바이저를 들어 올려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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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성하지 않은 몸 상태.

       ​

       하지만 그는 금이 간 랜스를 바닥에 꽂아 넣는 것으로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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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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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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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등에서 새로운 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여전히 질긴 놈이로구나.”

       ​

       파르스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 

       ​

       ‘조금 더 경지가 높았다면 재밌는 승부가 되었을 것을.’

       ​

       나이에 비해 강하긴 하나,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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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정면 돌파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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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후 아크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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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스의 선언에, 지지부진했던 구도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성문이 좁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맘루크들은 멈추지 않았으니.

       ​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맘루크들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

       하지만 첫 조우만큼의 기세를 잃어버린 윌리엄의 창은 그의 상태를 대변하듯이 흔들렸다.

       ​

       그리고, 맘루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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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탄을 먼저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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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 샤이탄 같은 소리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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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동시에 짓쳐 드는 검을 랜스로 쳐내고 창을 휘둘러 달라붙은 맘루크를 견제했다.

       ​

       맘루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몸을 기울여 옆으로 누웠다. 묘기에 가까운 곡예를 부린 그들의 검에서 모랫빛 오러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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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

       하필이면 랜스를 들고 있기에, 접전은 까다로운 상황. 윌리엄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 두른 오러아머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

       하지만 그런 그의 발악이 가소롭다는 듯이, 모랫빛 오러블레이드가 그의 다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

       푸른빛 오러와 노란빛 오러가 불똥처럼 튕겨 나가며 경합을 벌이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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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가면 다리가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윌리엄은 이를 악물고 랜스를 회수했다.

       ​

       하지만 현 상황에서 랜스로 유의미한 피해를 주기 어려운 노릇.

       ​

       그가 결국 랜스를 포기하고 검을 뽑으려는 순간이었다.

       ​

       “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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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그의 앞을 막아 세우듯이 나타난 검의 벽.

       ​

       수 백개의 검이 만들어낸 벽이 맘루크들의 오러블레이드를 튕겨내고 말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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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악!”

       ​

       “감히!”

       ​

       뒤이어 날아온 매화 꽃잎이 맘루크들의 전신을 찢어발기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맘루크들은 저항할 시간도 없이 절명 당했다.

       ​

       “자네 괜찮나!”

       ​

       “그럭저럭 버틸 만 합니다!”

       ​

       전장에서 이런 상황을 겪은 게 한 두 번인가. 

       ​

       숨을 돌린 윌리엄은 랜스를 바닥에 꽂아 넣고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

       ‘폴암이라도 만들어달라 할 걸 그랬군.’

       ​

       말을 탄 상태에서는 검을 휘두르는 데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으니.

       ​

       윌리엄은 차분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

       ‘아직은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맘루크들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점점 전선이 뒤로 밀리게 될 터.’

       ​

       당장 뒤쪽에 있는 포위망이 맘루크들을 압박하겠지만, 정면을 뚫어버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

       발이 풀린 맘루크들이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난리를 칠 것은 뻔할 뻔 자였으므로.

       ​

       “허허, 완전히 난장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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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가의 도를 맛보거라!”

       ​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고수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은 채로,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맘루크들을 노려보았다.

       ​

       ‘파르스 놈이 불안하지만, 일단은 놈들부터 막는다.’

       ​

       “선배님들! 저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놈이 나서면 전원 합공에 들어가야 합니다!”

       ​

       “알았네!”

       ​

       “새파랗게 어린놈 상대로 합공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뭐 알았네!”

       ​

       최선두에 서서 전선을 유지하는 노고수들을 누가 늙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

       먼 옛날 조자룡이 그랬던 것처럼, 노익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니.

       ​

       달려드는 맘루크들에 맞서 윌리엄과 순찰대원들은 끝나지 않는 혈전을 이어갔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공방.

       ​

       맘루크들의 집요한 공격에 전선이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저 뒤쪽에서 명령만을 내리고 있는 파르스의 존재 탓이었다. 

       ​

       파르스의 존재 탓에 달려드는 맘루크들에게 전력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니 맘루크들을 처리하기가 까다로워진 것.

       ​

       그리고 맘루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으니, 그들도 전선을 밀어붙이기 위해 더 강하게 수비군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

       “젠장! 벌써 관절이 뻐근하구나!”

       ​

       “뭐 그렇다고 도망칠 작정이요?!”

       ​

       “아니지! 제자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치겠나!”

       ​

       ‘상황이 좋지 않다.’

       ​

       윌리엄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

       ‘차라리 뒤로 물러나서 넓은 공간의 이점을 살려야 하는가?’

       ​

       그가 망설이던 순간이었다.

       ​

       “…슬슬 때가 되었구나.”

       ​

       파르스는 전장에서 눈을 돌려 성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

       뚫린 성문과 정반대 방향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

       “무슨 일이냐!”

       ​

       “북쪽 성문이 뚫렸습니다!”

       ​

       예상치 못한 소식. 

       ​

       “마인들입니다. 마인들이 북쪽 성문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

       “알라의 전사들이여! 진격하라!”

       ​

       “알라후 아크바르!”

       ​

       ‘어쩐지 지지부진하게 굴더니만!’

       ​

       더 거세게 전선을 밀어내는 적들. 

       ​

       ‘타개할 방법! 방법이 필요하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없이 눈알을 굴리던 그의 눈에 금이 간 벽이 눈에 들어왔다.

       ​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

       윌리엄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순찰대는 제각기 강력한 일격을 날려 적의 발을 묶고 몸을 뒤로 뺏다. 경공을 배우는 무림인들이기에 가능한 동작. 

       ​

       윌리엄은 모두 빠진 것을 확인하자, 온몸에 퍼져있던 오러를 검에 밀어 넣었다.

       ​

       마나코어에 오러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정도로.

       ​

       “같이 죽자!”

       ​

       “은공!”

       ​

       윌리엄의 검이 금 간 벽에 마구 휘둘러졌다. 

       ​

       평범한 검이라면 튕겨 나갔겠지만, 오러블레이드가 씌워진 검은 성벽을 두부처럼 가르고 지나갔다.

       ​

       그리고 그 뜻은, 성벽의 붕괴를 뜻했으니.

       ​

       “젠장! 도망쳐라!”

       ​

       윌리엄의 난도질을 버티지 못한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사태에 가까운 재해가 벌어지자, 땅이 울리고 모두가 혼란에 휩싸여 뒤로 빠지기에 바빴다.

       ​

       하지만 맘루크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

       그들이 너무나도 깊게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는 점이다.

       ​

       그리고 포위당한 상태라는 것도.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후퇴하거라! 뒤를 뚫는다!”

       ​

       떨어져 내리는 돌덩어리들. 파르스는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 떨어져 내리는 바위들을 하나하나 쳐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맘루크드은 말머리를 돌려 성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하지만 갑작스러운 재난에서 모두가 빠져나갈 수는 없는 법.

       ​

       “알라후…아크바르…”

       ​

       “알라시여…!”

       ​

       상당수의 맘루크들이 돌덩어리에 깔려 명을 달리했다.

       ​

       ‘죽겠군…’

       ​

       윌리엄의 몸이 휘청였다.

       ​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에 오러를 죄다 끌어 쓴 탓에 그의 눈에 천국이 비치기 시작한 상황.

       ​

       이대로라면 그 또한 바위에 깔려 죽음을 면치 못 하리라.

       ​

       하지만 그의 늙은 말은, 그를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곧장 고개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

       “은공!”

       ​

       무너져내리는 통로를 질주하는 한 마리의 노마.

       ​

       풍운은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돌덩이를 재주좋게 피해 성벽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

       그리고, 돌덩이를 피하는데 모든 기운을 다쓴 풍운이 쓰러져 거친 몸을 몰아쉬었다.

       ​

       “은공!”

       ​

       

       윌리엄의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금까지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는 천국에 간 중세기사가 연재됩니다.

    tmi:무림과 기사, 이슬람과 마교는 서로 내력의 성질이 다릅니다.

    무림:육각형(가장 균형이 잡혀 있는)

    기사:방어에 더 투자해서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약한 딜탱

    마교:마기 특유의 성질로 인해 파괴력+디버프 느낌

    이슬람:방어관통 특화

    같은 느낌입니닷.

    다음화 보기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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