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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로즈마리가 가르쳐 준 방법이란 이러했다.

       

       ‘일단 파업하지 마. 진정성을 보이란 말이야. 하지만 완성하진 말고.’

       ‘하지만 완성하지 못하면…….’

       ‘클라라 하스펠트는 내가 어떻게든 보호해 줄 테니까.’

       

       구천지대계 4석이 직접 클라라의 신변을 보호해준다니.

       

       물론 이렇게만 되면 딜레마 자체는 해결된다.

       

       ‘어디까지나 능력 부족이지, 의지 부족으로 보이게 하진 말라고. 이것만 잘 지켜도 반은 성공한 거야.’

       

       로즈마리의 도움이 있다면 클라이스도 마음 놓고 에테르에게 사죄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진정성은 보여야겠지만. 적어도 필사적으로 연구를 마무리 지을 필요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잘 됐으면 좋겠네.”

       

       클라라의 한숨 섞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이스는 우울한 낯빛으로 출근 준비를 마쳤다. 옷깃을 쥔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런 마수가 왜 우리를 도와주려는 건지.”

       “그러게.”

       “만약 이것도 놈들의 계략이면 어떡하죠?”

       “클라이스.”

       

       클라라는 픽 한숨을 쉬었다.

       

       “일단 믿어보자고.”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마수를 대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 클라이스였다. 게다가 당사자인 로즈마리에게 얻어맞은 전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야 어찌어찌 협력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다녀올게요.”

       

       동이 트기 직전. 클라이스는 클라라와 인사를 나눈 뒤 연구실로 출근했다.

       

       루틴이 이러니까 대학원생이 따로 없었다. 꼭 대학원을 두 번 다니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

       

       오늘도 에테르는 말이 없었다. 기껏해야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는 정도.

       

       “…죄송합니다.”

       

       클라이스의 하루 일정은 사과로 시작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을 미안하다고 말한 뒤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죽을 기세로 작업한다.

       

       마석을 분류하고, 합성하고, 임계온도를 측정하면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밤낮없이 일하느라 벌써 소모한 냉각제의 양만 물경 수 톤에 달했다.

       

       이런 기세는 하루가 다 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다음 날이라고 다른 건 없었다.

       

       출근하고, 사과하고, 작업실에 앉아 작업하고, 시간 되면 밥 먹고. 그러다가 12시가 되면 피곤한 몸으로 퇴근.

       

       사람이 몰입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있던가?

       

       “아….”

       

       클라이스는 벽걸이에 놓인 시계를 보며 탄식했다. 벌써 약속했던 3주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에테르는 손목시계를 보고는 넌지시 내뱉었다.

       

       “오늘이 그날이군.”

       “…….”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3주간 성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황화물을 사용하여 영하 70도 정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기적적으로 찾아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온 초전도 물질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며 돌아간다. 클라이스의 눈동자가 위와 아래를 번갈아 움직였다. 작업은 해야 하는데, 손의 떨림이 도무지 멈추질 않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만.”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클라이스는 무언의 탄식을 흘렸다.

       

       끝났구나.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이제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었다. 클라이스는 최선을 다했고, 그런데도 에테르가 내준 목표를 완성하지 못했다.

       

       에테르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겨를이 없었다.

       

       클라이스는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결국 못 만들었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에테르는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들어가서 쉬어라.”

       “……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시간 됐으니까 들어가서 쉬라고. 세 번 말 않는다.”

       

       에테르는 화를 내지 않았다. 언니를 길라흐에게 다시 보내겠다는 협박도 늘어놓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일까. 클라이스는 머뭇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짐을 싸서 일어났다.

       

       “어땠어?”

       

       별실로 돌아오자 로즈마리가 곧바로 물었다. 로즈마리는 긴장하고 있는 건지 어깨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었다.

       

       “별다른 말씀 없으셨어요. 그냥 들어가서 쉬라고…….”

       “흐음.”

       

       로즈마리는 그제야 어깨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 소리를 늘어놓으며 제멋대로 납득했다.

       

       “3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사과했지?”

       “네.”

       “일도 열심히 했고 말이야.”

       “그랬어요.”

       “완벽해.”

       

       만개한 꽃이라도 된 것처럼 로즈마리의 표정이 활짝 풀어졌다.

       

       “뭐가 완벽하다는 건데요?”

       

       하스펠트 자매는 로즈마리의 사고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리야. 아주 약간이지만.”

       “약간?”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로즈마리는 푸흐흐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세상을 멸망시키느니 마느니 하지만 우리 언니가 사이코패스는 아니거든? 오히려 엄청 신중해. 계획도 가장 치밀하게 세우고, 머리 쓰는 것도 세상에서 제일이지. 그런데 클라이스 하스펠트, 그날 이후로 네 모습이 어땠지?” 

       “그날이라는 건…….”

       “다 같이 핵실험 한 걸 보았던 날 말이야.”

       

       클라이스는 침음을 삼켰다.

       

       에테르가 자신에게 연구하라고 지시하던 것이 세계를 멸망시킬 아이템이라는 걸 알고서도 그녀를 도왔다.

       

       미안하다고.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안다고. 죽어도 싸다고.

       

       그런 각오로 울며 밤을 지새우지 않았나.

       

       “바로 그거야. 내가 저번에 진정성이라고 얘기했던 거.”

       “아…….”

       “처음부터 에테르 언니는 시험할 생각이었던 거야. 자신이 저런 걸 보여주며 세상을 망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네가 어떻게 나올지를.”

       

       클라이스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왜 에테르가 자신을 핵실험 장소에 끌고 갔는지.

       

       애당초 클라이스를 위해 기획된 이벤트였던 것이다. 로즈마리도 이 점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야 알 정도로 치밀했다.

       

       “만약 그날 이후로 태업이나 파업을 했다면? 일하긴 했어도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더라면?”

       “…끝장났겠구나.”

       

       두 하스펠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로즈마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음 계획을 꺼냈다.

       

       “이건 1단계에 불과해.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언니의 마음을 조금씩 돌릴 거야.”

       “어떻게 말인가요?”

       

       로즈마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뱉을 말을 몇 번이고 고심하고 나서야 확신이 섰다.

       

       “2단계는 일리야드에서 시작할 거야.”

       

       

       **

       

       

       핵폭발인가 뭔가 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길라흐의 머리에는 핏발이 안 서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재수가 없군요.”

       

       실험이 끝나고 일주일 뒤. 길라흐는 식어버린 대지로 향했다.

       

       “…….”

       

       철과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모조 세계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바닥은 움푹 파여있었고, 주변에는 유리화된 결정이 즐비했다.

       

       트리니타이트.

       

       고온 고압에 의해 대지가 압축되어 만들어진 인공 마석이었다.

       

       “흐, 흐흐.”

       

       트리니타이트를 주워 바스락거리던 길라흐의 입꼬리가 괴상하게 뒤틀렸다.

       

       “마왕님께서 부활하시면 필히 당신을 잡아 드시라고 조언해야겠군요.”

       

       이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강함이면 ‘포식’하기 적당하다.

       

       아니, 오히려 마왕님이라면 상천을 흡수하고도 남으신다.

       

       그는 자신보다 강한 자들을 잡아먹으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기에.

       

       에테르의 강함은 ‘무력’이 아니라 ‘지식’의 강함이었다. 본체는 비교적 약하니 먹어서 얻을 수 있는 건 지식뿐이다.

       

       그러나 최강의 지식이 최강의 무력과 만났을 때.

       

       마왕님께선 비로소 정령계를 평정하실 수 있으리라.

       

       “이거, 나중이 기대됩니다.”

       

       길라흐는 혼잣말하며 황무지에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정령마도사들을 고문하고 놀며 시간을 때웠다.

       

       정신없이 살육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3주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어디 맛있는 정령 없으려나요.”

       

       한동안 철병팔진에서만 놀던 길라흐는 입맛을 다시며 마왕성으로 들어왔다.

       

       클라라 하스펠트라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이후, 괴롭히며 놀던 정령들은 죄다 하급이었다.

       

       죽여도 시원찮은 새끼들.

       

       도무지 성에 차질 않았다.

       

       “흠?”

       

       길라흐는 저도 모르게 에테르의 방문 앞까지 와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길라흐는 에테르를 싫어하였으니까. 괴롭히거나 자랑할 목적이 아니라면 이곳에 올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런 길라흐가 상천의 연구실 앞까지 걸어온 이유는 하나.

       

       “좋은 냄새가 나는군.”

       

       길라흐의 레이더가 정령의 기척을 탐지했다.

       

       마법을 쓰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말 그대로 ‘기척’만 느껴진다. 사람이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것처럼 말이다.

       

       길라흐는 정령의 기감을 잡아낼 수 있었다. 설령 그 정령이 마법을 사용하는 중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도 정령만 잡고 살아온 탓에 남들은 불가능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정령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마수가 바로 길라흐였다.

       

       “절대로 아닌 척하더니…. 혹시 연구재료로 쓰고 있는 겁니까? 흐흐흐흐!”

       

       길라흐는 갈고리 팔을 흐느적거리며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하고 문을 열자 휑뎅그렁한 방 하나가 나타났다.

       

       길라흐는 으음, 하며 옅게 신음했다.

       

       “아무도 없군요.”

       

       내부에는 기역자 책상 하나와 스탠드, 의자 두 개와 옷장 하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가구가 없었다.

       

       단 하나. 더 안쪽으로 향하는 방문이 있는 걸 제외하면.

       

       “이쪽인가요?”

       

       길라흐의 입매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안쪽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싱싱한 정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길라흐가 한껏 기대감을 품으며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순간.

       

       “이 씨발새끼가 드디어 미쳤나.”

       

       등 뒤로 대뜸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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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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