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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영웅의 일생을 담은 서사시에서, 영웅들이 싸우는 모습을 ‘아름다웠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휘두른 검격이 아름답고, 앞으로 내딛는 걸음이 아름답고, 그 결의가 아름답고, 고통에도 절대로 일그러지지 않는 표정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실비아가 싸우는 모습은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실비아의 싸움은 처절했다.

        

       1층에서 2층의 전투를 제대로 살필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뻥 뚫려서 보이는 2층에서 들리는 총소리, 비명, 그리고 살이 베이는 소리를 들으면 그러기 싫어도 그쪽으로 종종 시선이 돌아가곤 했다.

        

       날아오는 검격에 몇 번이나 맞고도 휘청거리지조차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몸에 걸친 그 황동판의 위치를 틀어서 피해를 최소화하며 싸움을 속행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계산된 것처럼, 검격이 날아오기 직전에 걸음을 멈추고, 다른 총을 꺼내고, 탄창을 갈고, 옆으로 구른다.

        

       아카데미에서 지내다 보면 종종 그런 토론을 듣고는 한다.

        

       고대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들이 칼을 든 채 총으로 무장한 현대적인 대대를 만난다면 그 영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전차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전투기 편대의 기관총 세례는 피하지 못할 거라는 결론을 내며 토론하던 학생들은 웃곤 했다.

        

       실비아의 싸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결과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싸움을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앨리스의 눈에는 그 상황이 마냥 단순하게 ‘기술격차’로 인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실비아가 입고 있는 저 갑옷은 제국군도 도입하지 않은—어쩌면 그 존재도 모를—최신병기였고, 실비아가 소지한 총기는 모두 현대 공업의 정밀성을 대표하는 것이었지만, 그 무장을 든 채 사방에서 몰려오는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그것도 수백 미터 바깥에서 조우한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싸우는 것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손에 들고 있는 무기가 무엇이건 크게 의미는 없을 것이다.

        

       실비아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적을 처리했다.

        

       앨리스도 싸워야 할 상대가 있었기에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시선을 들어 위쪽을 볼 때마다 적의 수는 줄어들었다.

        

       실비아는 몸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실비아의 능력을, 앨리스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다면 실비아는, 그 시간 안에서, 저들에게 몇 번이나 베였을까. 몇 번이나 넘어지고, 몇 번이나—

        

       “…….”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전투는 멈췄다.

        

       그리폰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앨리스와 일행을 향해 달려들던 기사들이 순간 당황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아직이다! 끝까지 검을—”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폰이 무력화된 뒤에도 승기는 기사단에게 있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췄더라도 아직은 학생이다. 사람을 베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과 거의 동등한 수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검을 치켜들고 외치던 기사의 가슴에 구멍이 하나 뚫렸다. 활활 타는 구멍이었다. 기사는 피도 토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풀썩 쓰러져 절명했다.

        

       앨리스는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쓰러지지 않은 채 고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흔들림 없이 앉아쏴 자세로, 자기 키만 한 소총을 아래를 향해 겨눈 채 실비아가 말했다.

        

       “그렇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어조였다. 마치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는 듯.

        

       “끝나고 싶다면 끝까지 덤비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만.”

        

       하지만 뒤이어 들린 말은 선언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항복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당신들은 전원 저 꼴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 베여서 상처가 나 있고, 심지어 이마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한쪽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실비아였으나—

        

       그 목소리에 담긴 확신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라, 앨리스는 그 말을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떨그렁, 쇠막대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결국 이곳에 있는 모든 법국의 기사가 검을 떨어뜨릴 때까지.

        

       실비아는 흔들림 없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앨리스는 실비아 등에 독수리 날개가 솟아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점을 못 느꼈을 거라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들었다.

        

       *

        

       좋아.

        

       사실 상황만 두고 보면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행 중에서 한 사람도 죽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영구적인 장애를 입을만한 크게 다친 이도 없었다.

        

       똘똘 뭉쳐서 미리 짜둔 방진을 풀지 않고 철저하게 방어에 매진한 결과였다.

        

       사실 작전 자체는 내가 다짜고짜 튀어 나가면서 상당히 틀어지긴 했다. 그리폰 날개는 베이지 않았고,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위로 뛰어오르지 못한 채 아래에 덩그러니 남겨졌으니까.

        

       하지만 굳이 날개를 베어낼 필요는 없었다. 그리폰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했던 것일까. 그 그리폰의 날개는 이미 꺾여있었으니까. 하긴, 다른 부분의 상태도 절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날개만 멀쩡하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허.

        

       생각해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짐승의 왕,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강대한 존재를 어쨌거나 법국에서는 한 마리라도 강제로 조종하고 있었다는 소리니까.

        

       그리폰이 어린 개체였던 건지, 아니면 어린 시절에 우연히 생포되어 지금까지 길러진 것인지 알 방도는—

        

       —있긴 하네.

        

       “크어…….”

        

       내가 추기경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던 피에 젖은 붕대를 빼내자, 추기경은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손가락 끝으로 잡고 빼내기는 했는데, 내 피와 추기경의 타액이 섞여서 걸쭉하고 기분 나쁜 색깔의 무언가가 묻어나오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얼른 저쪽 구석으로 휙 던져버린 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추기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를 죽이라느니, 절대로 말 못하겠다느니, 뭐 그런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해도 별로 상관없기는 했다. 어차피 나한테는 시간이 무한하게 있었으니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협조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조용히 물어보았지만, 추기경은 여전히 덜덜 떨면서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음.

        

       나는 추기경의 다리를 힐끔 보았다. 그래도 이젠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을 것 같은데. 더 아프지도 않을 것이고.

        

       잘린 팔이 다시 돋아나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싸우면서 손이 잘려 나갔었으니 상대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추기경의 침묵을 긍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이어서 물었다.

        

       “당신들이 이 아래에 진을 치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 황제와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굳이 루테티아가 아니라 제국 접경지역이었다고 해도 되었을 텐데요.”

        

       솔직히,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과 손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인물이라면 황제를 배신하고도 남을 인물이었으니까. 나중에 손을 씻는 과정에서 입막음은 필요했겠지만.

        

       “……그건.”

        

       추기경은 뭔가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두렵다.

        

       그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이었다.

        

       “저는.”

        

       그래서, 나는 추기경의 대답을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력에 자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정도를 조절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과정에서 당신이 정신을 잃으면 다시 일어날 때까지 시간도 걸릴 테고요.”

        

       추기경의 눈이 도움을 청하듯 소피아를 향했지만, 소피아는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긴 대화와 짧은 대화.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싸움이 끝난 이상 당신에게 별다른 악감정은 없습니다.”

        

       솔직히 여기서 더 씨름하고 있기는 귀찮기도 했고.

        

       “…….”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추기경은 이번에는 기사들 쪽을 보았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죄다 꼼꼼하게 손과 발이 묶여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으니까.

        

       결국 추기경에 눈에 체념의 빛이 어렸다.

        

       “……우리가 이곳에 있었던 이유는—”

        

       하지만 세상만사 어디 쉽게 굴러가는 일이 있던가.

        

       추기경이 그렇게 말하며 입을 열자마자, 쿨럭, 하고 피가 울컥 쏟아져나왔다.

        

       하긴, 그 그리폰을 제어할 방법을 알고 있는 법국이었다.

        

       누군가의 입을 막는 방법도 알고 있겠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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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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