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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허어, 닥터 파우스트. 정말 본인이신가?”

     

    앰브로시아가 깡충 내 앞으로 뛰어왔다. 마지막으로 내의원에서 봤을 때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반갑네.

     

    나는 말투만 바꿔서 대답했다. 목소리는 저절로 변성되어 나간다.

     

    “본인입니다. 분명 앰브로시아 성녀님이시겠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못난 제자가 폐를 끼쳤던 모양이더군요.”

     

    “소녀야말로 많이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의사회라는 훌륭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하고 말수가 적은 정체불명의 의사, 파우스트. 그게 지금의 신분이다.

     

    펄럭, 등 뒤에서 휴고가 천막을 닫는 소리가 났다.

     

    원래 용사 파티만 남게 되면 정체를 밝힐 생각도 있었다. 마법사를 제외하면 모두 구면이니 그의 동의만 받으면 될 터였는데.

     

    ‘…왜 여기에 있어?’

     

    사실 여기에 들어왔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상당히 동요해서 인사말을 꺼내다가 혀를 씹을 뻔했다.

     

    아셀라.

     

    그녀가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는 안 보여. 멤버는 이게 전부가 분명한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본래 파티의 마법사였어야 할 수마야가 게이트 설치 부대로 마계 원정에 나선 이유.

    네리아가 내게 계속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

     

    용사 파티의 마법사는 진즉 아셀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기밀 취급되고 있었겠지. 타냐나 리셰도 내게 전하지 못한 걸 보면. 아셀라 본인의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월광궁이 제국 내치를 맡고 있다고만 전해 듣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니고 황족이 직접 최전선에 나선다는 발상이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헤이케의 승낙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네.

     

    “고트베르크의 스승이라 하였느냐.”

     

    아셀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쓰는 어투를 들으니 그녀가 새삼 살갑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이런 장소에 있다는 게 걱정되기도 했다. 타냐나 리셰와 다르게 아셀라는 체계적으로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대답하는 게 내 한계였다.

     

    …거의 3년 만인가.

     

    성인이 된 아셀라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성숙해 있었지만, 뇌리에 깊게 박힌 황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파우스트, 그대가 후국에서 보낸 파티의 새 치유사렷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국의 황녀님.”

     

    “긴장했군. 그 정도 담력으로 본녀를 착실히 보좌할 수 있겠느냐?”

     

    “…피와 흙먼지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존안을 뵈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에.”

     

    아셀라가 고개를 치켜들어 휴고에게 물었다.

     

    “본녀가 여기 있다고 전달하지 않았는가.”

     

    “전하께서 파티의 마법사 직을 맡고 계시다는 사실은 외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저조차 기아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휴고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셀라가 콧방귀를 뀌었다.

     

    “경중을 모르는군. 파우스트, 그대가 고트베르크의 스승이라 한들, 그대의 말뿐이다.”

     

    “하오면?”

     

    “본녀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자를 신용하지 않는다. 목숨은 더더욱 맡기지 않지. 여기 있는 누구나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내 정체를 밝힐 것인가.

     

     

    ―――――――――――

    No. 005 : 마왕군 승리 19% → 26%

    No. 006 : 마신강림 4% → 11%

    No. 022 : 마법 승부 13% → 72%

    ―――――――――――

     

     

    그랬다간 파티의 패배 확률이 높아진다고 상태창이 알려주었다.

     

    라스 고트베르크는 용사 파티에 불협화음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마법 승부.

     

    당장 직면한 리치와의 대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아셀라도 여기 온 목적이 있겠지. 직접 공을 세워서 승계전에 이기려는 생각일지도 몰라.’

     

    헤어질 때 그렇게 안 좋은 형태로 끝났었다.

     

    지금 아셀라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 것 같아.’

     

    그녀의 왼손 약지에 반짝이는 물건이 끼워져 있다.

    언젠가 내가 그녀의 손가락에 직접 끼워줬던 우리의 약혼반지였다.

     

    아셀라가 아직도 나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었고, 여태 나를 정리했던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도 추측이 갔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

     

    변장을 위해 손에 낀 검은 장갑.

     

    그 밑에는 나도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놀랐는데, 아셀라는 오죽할까.

     

    지금 나를 직접 보면 아셀라의 정신 상태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을 테고, 그녀가 난리를 치다가 용사 파티에 악영향을 줄 게 뻔했다.

     

    앞으로 문제없이 마왕을 토벌하고, 아셀라가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황녀님.”

     

    나는 정신을 다잡고 연기를 시작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자신을 치료할 유일한 방법인 의학에 미쳐버린 고독한 남자, 파우스트.

     

    고독한 그는 말수가 적고 직설적이며,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내가 이미지를 그렸던 닥터 파우스트라는 인물상을 말투와 몸짓에 투영해낸다.

     

    “아끼는 제자의 부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전장에 왔건만, 그 말씀은 기분이 상하는군요.”

     

    “가면을 벗으라 했다고 기분이 나쁘다니?”

     

    “사정이 있습니다. 믿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 임무를 다할 뿐입니다.”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앰브로시아가 중재하러 폴짝 끼어들었다.

     

    “자, 두 분 다 진정하시오. 앞으로 서로 등을 맡겨야 할 동료 아니오이까. 파우스트군, 그대의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건 소녀가 대신 사과하겠소.”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셀라 전하의 말씀도 아예 이해 못 할 이야기는 아니잖소이까. 이를테면 마족이 그대로 위장해서 접근한다면 우리는 그대가 진짜인지 알아볼 방법이 없소.”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

    우리 앰브로시아, 성녀님이 되어서 마음씨가 더 넓어졌구나.

     

    가슴 칭찬을 하고 싶은 욕구를 꾹 참으며 대답했다.

     

    “가면을 벗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보통은 저를 무서워 하더군요.”

     

    “무서워한다?”

     

    아셀라가 코웃음을 쳤다.

     

    “하물며 마왕의 앞에 선들 본녀가 두려워할 것 같은가?”

     

    “그래 보입니다.”

     

    그리 대답하고 나는 천천히 뒤통수에 손을 가져갔다. 달칵, 잠금장치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투둑 흘러내리는 가면을 들어 휴고에게 넘긴다. 그도 이 아래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기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얼굴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나는 붕대 끝을 찾아 핀을 제거한 후, 천천히 붕대도 손에 둘둘 말아 제거해 나갔다.

     

    한 바퀴 한 바퀴, 붉게 물든 천이 풀려나갈 때마다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파티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리셰는 동정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타냐는 심각해졌으며, 발렌은 고개를 돌리고 구역질을 참으려 했다.

     

    “그, 그대. 괜찮소이까?”

     

    앰브로시아가 내게 물었다. 마침내 모든 붕대를 푼 나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뻥 뚫린 코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

    얼굴의 반은 화상으로 피부가 자글자글 녹아내려 두개골에 달라붙었고, 나머지 반은 새빨간 뼈 그 자체다. 머리카락은 기대조차 할 수도 없다.

     

    몇 개 빠진 이빨이 다 드러나 흉측하게 튀어나왔다.

     

    나는 감기지도 않는 한쪽 눈을 부릅뜨고 아셀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마족의 저주입니다. 가능한 모든 수술과 치유술을 동원해서 겨우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요. 황녀님, 이것이 제 맨얼굴입니다.”

     

    나는 아셀라에게 한 발짝 다가가 물었다.

     

    “이제 신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형수술을 한 건 아니다.

     

    실제로는 [위장 포션]을 사용했다. [강화]로 얼굴과 체형만 변형하는 효과로 만들어서 외모를 바꿨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다른 연합군에도 알려져서는 안 되기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사용한 방비책이었다. 재료로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언데드를 썼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아셀라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고는 그 긴 속눈썹을 내깔았다.

     

    “파우스트, 궁금한 것이 있구나.”

     

    “말씀하시죠.”

     

    “고트베르크와 비교하면 그대의 의술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제자 이기는 스승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이템박스가 열렸다. 그게 뭔지 알아본 앰브로시아가 감탄했다.

     

    안에서 거즈를 꺼내 약을 적시고 얼굴에 붙여나간다.

     

    “그 못지않은 실력으로 여러분을 치료해드리겠다고 약속드리죠.”

     

    ―화악!

    신성력을 발휘한다. 치유주문을 시전해 얼굴을 감싼다.

     

    주문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붕대를 감았다. 핀으로 고정해 마무리하고 가면을 썼다.

     

    “좋다. 출전을 준비해라.”

     

    아셀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도중, 그녀가 속삭이듯 물었다.

     

    “…고트베르크가 본녀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던가?”

     

    여기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대답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

     

    아셀라가 마스크를 쓰고는 막사 입구를 펄럭이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

     

     

     

    닥터 파우스트라는 자가 나타났을 때, 아셀라는 티는 내지 않았어도 내심 상당히 동요했다.

     

    ‘라스의 스승이라고?’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부으려는 욕구를 간신히 참아냈다.

     

    라스의 의학 스승이라면 자신보다도 먼저 그와 만났을 것이 아닌가. 그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도 그와 함께 있었다면.

     

    라스가 후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그의 병원은 어떤 모양인지.

    구혼하는 여자는 없었는지.

    …내 이야기는 안 했는지.

     

    ‘…아니, 잠깐만.’

     

    조금 냉정을 되찾으니 아셀라는 파우스트에게서 수상함을 느꼈다. 말투와 행동거지가 어딘가 켕기는 게 있는 기색이다.

     

    라스의 성격이라면 후국에서 파견한 치유사가 실패했을 때 어떻게든 확실하게 무마하려 할 터였다.

     

    가장 확실한 방법을 생각해 보면.

     

    ‘직접 파티에 참가하려 할 텐데?’

     

    아셀라는 앞으로 나가 그를 관찰했다.

     

    …체형은 다르다. 체취도. 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가면을 벗기를 요구했다.

     

     

    파우스트의 맨얼굴이 드러났을 때, 아셀라는 내심 기대했다.

     

    그가 자신이 라스라고 밝혀주기를.

     

    라스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가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라스가 아니었다. 뼈가 다 드러난 얼굴을 보면 어지간한 분장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아셀라는 잠깐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자신을 책망했다. 라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져서 파우스트에게 물어보았다.

     

    “…고트베르크가 본녀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던가?”

     

    돌아온 대답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의 차가운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긴, 수도 없이 살해당한 분노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겠지.

     

    하마터면 목적을 잊어버릴 뻔했다.

     

    지금은 싸우는 일에만 집중한다.

     

    ‘전부 끝내고 만나러 가겠어.’

     

    내게 그럴 자격이 생기고 나면.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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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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