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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듀엣이라고요? 저랑 엘피 양이요?”

       “일단 가자! 시간이 얼마 없어!”

       

       엘라는 입장권을 그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입장 마감 시각이 인쇄된 곳 아래에는 잉크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은 입장 제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했다. 숫자는 스톱워치에 나오는 것처럼 시시각각 줄어들었다. 엘라가 가리키는 무대의 위치로 가늠해보건대 지금 달려도 시간 안에 도착하기 상당히 빠듯했다.

       

       허수아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얻은 표였다. 이대로 기회를 날릴 수 없었다.

       

       “좋습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합시다.”

       

       그는 루미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가 뛰는 와중에도 그녀는 숨소리 한 번 변하지 않았다. 복잡한 인파 사이를 걷느라 몇 번이나 휘청거렸는데 말이다.

       

       요정의 잠은 어지간해서는 깨울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엘라는 뛰면서 그에게 대회의 규칙을 설명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그들이 매긴 점수에 따라 본선에 진출하는 시스템이었다.

       

       “점수라고요? 그러면 루미 씨와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엘라는 그의 품에 안긴 루미를 흘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깰 것 같지 않은데? 그리고 어차피 언니는 안 돼. 남녀 혼성이어야만 하거든.”

       

       허수아비의 누덕누덕 기운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저는 노래 못 하는데요?”

       

       그가 방송하던 시절, 아무리 큰 금액을 후원받아도 노래 부르는 것만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부르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면,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턱 막혔다.

       

       “에이, 노래는 별거 없어. 자신감이야, 자신감! 그냥 즐기면 돼! 설마 거부할 거야? 어떻게 구한 표인데.”

       

       그녀의 말에 허수아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확실히 이번에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저랑 엘피 양이 같이 부를 만한 노래가 있을까요?”

       “아저씨 죽은 지 17, 18년 정도 됐다고 했지? 걱정하지 마. 나 옛날 노래도 많이 알아. 유명한 거 하나 골라 보지 그래?”

       

       허수아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온 지 반년이 넘었지만, 그가 아는 노래는 별로 없었다.

       

       이곳은 현대처럼 원한다고 노래를 막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축음기가 있기는 했지만, 접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음악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가 노래에 흥미가 없는 게 제일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최근에는 외운 노래가 꽤 있긴 했다.

       <다섯 곡예사>의 연습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극 중 나오는 곡들을 익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엘라에게 그 노래들을 부르자고 할 수 없었다.

       크리스티앙의 미공개작에 나오는 곡을 그가 안다고 나서는 건 너무 수상쩍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곡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섯 곡예사>는 그 소재의 특성상 ‘극중극’이 많이 등장했다.

       

       그것들은 대부분 작가가 극의 분위기에 맞게 창작한 것들이었지만, 딱 하나, 작가가 자신이 이전에 발표한 작품 하나를 넣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20년 전에 발표된 극본이었다.

       18년 전에 죽은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즈는 엘라에게 그 노래를 아냐고 물었고, 엘라는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앙 거네? 난 다 외우고 있지! 좋아, 그걸로 하자!”

       

       그렇게 곡을 정했을 때, 그들은 무대 뒤편의 대기용 천막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안에 들어섰을 때, 마침 무대 스텝이 그들을 찾고 있었다.

       

       “다음 참가자, 준비해주세요! 다음 참가자? 다음 참가자 없습니까?”

       “여기요, 여기요!”

       

       엘라가 손을 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그녀가 내미는 입장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맞춰오셨군요. 지금 공연 중인 무대 다다음에 올라가시면 됩니다. 사회자분에게 두 분의 이름을 알려드려야 하는데요.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오즈, 그리고 이쪽은 엘피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부르실 곡은 정하셨나요? 일단 무대에 한 번이라도 오른 적 있는 곡이라면 밴드가 연주할 수 있는데요.”

       “아, 저희가 부를 곡은…….”

       

       두 사람은 접수 신청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가 함께 가사를 검토하고 호흡을 맞췄다.

       엘라는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뭐야, 그 정도면 충분히 잘 부르는데? 괜히 겸양 떨기는.”

       

       허수아비는 그녀의 칭찬에 쑥쓰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관객들 앞에서는 이상하게 잘 안되더라고요.”

       “설마 무대 공포증? 그런 거 전혀 없어 보였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 이상하게 노래만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분위기를 팍팍 띄울 테니까, 그냥 흥에 몸을 맡기면 돼. 5분짜리 곡이잖아? 딱 눈감고 해보자고.”

       

       엘라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자 그는 안심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그녀만큼 든든한 사람이 또 없었다.

       

       그들의 차례는 금방 왔다.

       스텝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라고 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 근데 언니는 그대로 들고 나갈 거야?”

       

       그녀는 짚으로 만들어진 그의 몸통에 달라붙어 있는 루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떼어내려 했는데, 그녀는 그의 몸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죠. 안고 하는 수밖에.”

       

       그는 한 손으로 그녀가 혹시나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치고, 다른 손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스텝의 안내에 따라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무대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엘라는 그곳에 서서 무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폈다.

       

       무대의 크기, 밴드의 위치, 관객들의 시선, 분위기, 사회자의 호흡.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것들이 노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그녀는 뭔가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본능이 뭔가 2% 정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녀는 이전 참가자들이 심사위원의 점수를 기다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스텝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기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라이브 연주하시게요? 물론이죠!”

       

       스텝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몸에 맞는 크기의 기타를 하나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자마자 재빨리 현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소리를 조율했다.

       

       “피크는 있나요?”

       “네.”

       

       엘라는 품에서 동전만 한 크기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장미 모양을 한 납작한 배지였다. 루즈에서 획득한 ‘별’이었다.

       

       그 순간, 사회자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 참가자는 오즈와 엘피!”

       

       보통 여기서 참가자는 관객들의 함성을 받으며 뛰어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엘라는 나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함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10초 정도.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때, 기타를 튕겼다.

       그 순간, 객석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녀가 낸 기타 소리는 짧은 소절에 불과했고,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코스 요리의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처럼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허수아비는 바로 뒤를 따랐다.

       

       그녀는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뚜벅뚜벅 무대를 가로지르더니, 사회자가 자기소개를 부탁하려는 것을 재빨리 끊어버리고 그가 내민 마이크를 낚아챘다.

       

       “여러분!”

       

       그녀는 가볍게 기타 줄을 한 번 튕기며 재차 소리쳤다.

       

       “앉아 있을 거예요?”

       

       객석은 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관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갑자기?”

       “몸이 저절로 반응해버렸어.”

       “갑자기 막 흥분되는데?”

       

       그녀는 그 광경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그래. 이거지.

       

       2%가 부족해서 내본 퍼포먼스였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신이 내는 모든 파장이 평소보다 더 객석을 흔든다는 게 느껴졌다.

       이게 이곳 주민들이 말한 ‘산 자의 울림’인가 싶었다.

       

       “모르는 사람 없을 거라고 믿어요! 크리스티앙의 작품 중 하나인 <멀어버린>에 실린 곡이죠! <세상에서 제일 평범한 마을> 가겠습니다!”

       

       관객들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박자를 깔아 주었다.

       다들 아는 노래였다.

       

       그녀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관객들의 호흡과 발맞춘 밴드의 리듬을 따라 기타를 튕겼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원더랜드 전체가 전율했다.

       

       

       ***

       

       

       <멀어버린>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비스에 기거하는 마귀였다. 그는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겁먹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동료 마귀의 꾐에 넘어가 내기를 하게 됐다.

       

       지상의 어느 시골에 겁이 없기로 유명한 여인이 있는데, 그 여자를 협박이나 다른 재주 없이 오직 외모만으로 겁에 질리게 만들면 자신이 아끼는 보석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귀한 물건이 탐이 난 마귀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내기를 수락했다. 인간 여자 따위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자신을 보기만 해도 자지러질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마을을 찾아가서 본 것은 눈이 멀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속은 걸 알고 길길이 날뛰었으나, 약속은 약속인지라 물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여인을 놀라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을 나간 낮에 마귀는 여인을 찾아가 자신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생겼는지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집안일만 매일 반복하는 이 따분한 일상에 끼어든 이 재밌고 친절한 손님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세상에서 제일 평범한 마을>은 마귀가 여인에게 자신의 고향을 설명해주면서 나오는 곡이었다.

       

       어비스를 어떻게든 평범한 마을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애쓰는 마귀의 꼴이 처음에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하려고만 하던 것과 대비되어 여인에 대한 마귀의 마음이 바뀌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웃기면서도 따뜻한 곡이었다.

       

       사실 이것은 대회에서 부르기에는 전략적인 면에서 좋지 않은 곡 선정이었다.

       이 곡은 마귀 마을을 표현한 소품이나 배경, 그리고 마귀 주민 배우들의 호응이 있어야 그 느낌이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축제 분위기에서, 극의 서사적 맥락 없이, 오직 두 사람만 무대 위에 서서, 노래만 뚝 떼서 부르는 것은 곡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러나 엘라는 자신의 기량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메꿨다.

       

       자리에 앉아 어수선하게 떠들던 관객들을 일으켜 세워 자연스럽게 노래의 호응 부분을 따라부르도록 만들었으며, 군데군데 빈 부분은 그녀의 애드리브와 연기력으로 채워 넣었다.

       

       설사 극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녀를 보면 극중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허수아비는 자신 없어 하던 것과 다르게 그녀가 주도하는 흐름을 잘 쫓아 왔다.

       그는 짧은 시간에 자연스럽게 마귀의 역할에 빠져들었다.

       

       사악한 것을 평범하다고 포장하려고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이 왠지 원더스타인의 몸에 깃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는 무대 위를 방방 뛰어가며 신나게 곡을 열창했다.

       

       그러나 배역에 몰입했던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던 걸까?

       

       눈먼 여인이 부르는 마지막 소절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여인이 상대가 악마라고 해도 사랑하겠다는 암시를 담고 있었다.

       

       그 부분을 부르는 엘라의 눈동자는 진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얼핏 보면 눈물이 맺힌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표정을 마주 본 순간, 그는 미처 마지막에 불러야 하는 마지막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어어 하는 사이에 밴드는 곡의 마무리를 연주해버렸고, 드럼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무대는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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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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