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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이 작자가 여행이라는 것을 할 리가 없는데.”

         

       진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류를 바라보았다.

          

       윌리엄은 유럽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 사업이니 뭐니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이 그냥 가문이 제공해주는 돈을 펑펑 쓰고 다니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여행이라는 취미를 가질 리는 없었다.

       영국에서 나갈 때는 오직 여자를 꾀거나 사치를 부릴 때뿐이었으며, 요트나 크루즈를 타는 것 역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거기서 여자를 꾀고 친구들과 놀기 위한 이유가 컸다.

         

       관광?

       그런 건 이 망나니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어디 대성당이 웅장하고, 어디 경관이 아름답고, 어디 음식이 맛있고….

       이런 게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음식이야 가문에서 돈을 처발라서 고용한 요리사들로 입을 호강시켜줄 테고, 관광지에서 보는 건축물이나 경치는 그냥 ‘굳이 귀찮게 여기까지 와서 봐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헛수고의 산물에 불과할 텐데.

         

       그렇기에 이 망나니가 순수한 마음으로 여행을 왔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특히나 윌리엄이 참여하는 것이 어디 유명한 축제도 아니고, 그냥 성년의 날 행사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인맥을 쌓기 위해 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망나니와 인맥 쌓기라는 단어만큼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 있을까.

       있는 인맥도 찢어버리고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것이 윌리엄이었는데, 굳이 아시아의 자그마한 나라까지 와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이유가 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여자를 꾀기 위해서?

         

       이것은 조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기는 하되 높지는 않았다.

         

       윌리엄은 여자를 밝히기는 했지만,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가슴이 크고 성숙한 여인들만 선호하는 사람이었고, 서양인들보다는 어려 보이는 동양인은 잘 손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편식하는 카사노바라고 하던가.

         

       그러니 동양인을 꾀러 오는 것일 가능성은 작았고….

         

       그렇다면 친구를 만나러 오는 것인가?

         

       ‘그건 조금 가능성이 있겠군.’

         

       윌리엄의 피부색과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분을 나누는 편이었다.

       물론 성격이 개차반이었기에 사귀는 친구들 역시 비슷비슷한 망나니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당장 윌리엄이 끌고 다니는 무인들만 보더라도 동양인과 흑인이었고, 그나마도 부유하거나 특정 국적을 가진 사람들만 받는다거나 하는 커트라인 없이 그냥 자기 마음에만 들면 같이 어울려 다녔다.

         

       아마 망나니 같은 성격만 아니었다면 호방하고 친구를 잘 사귄다는 평가를 받았으리라.

         

       ‘뭐 나랑 얽히지만 않으면 그만일 터.’

         

       진성은 잠깐 들었던 관심을 그대로 내려놓은 채 다음 장으로 넘겼다.

         

       윌리엄이 성인식에 무슨 이유로 오건, 성인식에 행패를 부리건 말건 자신에게만 얽히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성인식에서 사람을 패고 뒤엎는다고 한들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인가.

         

       그가 망나니짓하면서 성년의 날 행사에 똥을 끼얹는다고 한들 진성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도리어 그것을 화제로 삼아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던가.

         

       본디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야기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

       이 윌리엄이라는 망나니가 성년의 날에 참여해서 어떤 사건을 벌이는 것은 충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진성은 침대 위에서 계속 서류를 읽었다.

         

       잠깐 관심을 가졌던 윌리엄이라는 사람은 한낱 이야기이자 사건이 될 뿐, 자신은 방관자의 위치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 채 말이다.

         

         

         

         

        * * *

         

         

         

       넘실거리는 불꽃은 얼핏 그 자리에서만 타오를 것만 같다. 하지만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불꽃을 옮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꽃의 혓바닥은 바닥에 바싹 누워 구경꾼을 태운다.

         

       그것이 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꽃의 속성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이 엘라에게 튀었다.

         

       정확히 말하면 엘라의 전화기로 불꽃 같은 인간이 접근하려 하고 있었다.

         

       [ 부재중 전화 24 ]

       [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13 ]

         

       엘라는 스마트폰에 떠 있는 글자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평소와는 다르게 당장 스마트폰을 벽에다가 집어 던지고 싶다는 듯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고, 쉴 새 없이 울리는 진동 소리에 스트레스가 받는다는 듯 ‘아아악!’ 하는 레이디답지 않은 경망스러운 외침을 외치기도 했다. 그리곤 인상을 팍팍 쓰면서 입 밖으로 ‘F’로 시작하는 욕을 내뱉을 뻔했다가 이성의 도움으로 단어를 완성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입술을 다물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평소와는 다른 이러한 엘라의 모습은 그녀와 항상 붙어 다니는 아나스타시아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동생. 무슨 일인가요?”

         

       아나스타시아는 쪼르르 달려가 엘라의 몸에 푹 안겼다. 그리고는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퀭해진 자기 동생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엘라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자, 껴안은 그 자세 그대로 엘라의 배에 얼굴을 푹 파묻고 이리저리 움직여 간지럼을 태웠다.

         

       “꺅, 자, 잠깐만. 간지러워요!”

       “그럼 빨리 말하세요!”

       “아, 알았어요! 말할 테니까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한참을 아나스타시아의 공격을 받은 엘라는 자신이 졌다는 듯 다급하게 항복선언을 외쳤고, 아나스타시아를 떼어놓고 자신의 배에 남은 간지러움의 여운을 완전히 없애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에요. 귀찮고 짜증 나고 역겨운 사람 한 명이 지금 마구마구 연락하고 있어서요….”

       “귀찮고, 짜증 나고, 역겹고?”

         

       입에 담는 것조차도 싫다는 듯한 엘라의 모습에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엘라는 잠시 그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가, 다시 아나스타시아가 자신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그녀를 막아 세우고 이름을 입에 담았다.

         

       “윌리엄 R. 아르투아라고 하는 사람인데….”

         

       엘라는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자기 혓바닥이 오염되는 것 같은 기분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인간에 대해서 어린아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자칭 언니에게 설명해주려고 하니 더더욱 꺼려지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엘라의 고민을 알기라도 하듯, 아나스타시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망나니 말인가요!”

       “네?”

         

       엘라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망나니라는 단어를 듣고 깜짝 놀라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었다.

         

       “동생의 악몽에서 가끔 등장하던데요?”

       “아….”

         

       엘라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스타시아가 엘라의 가슴께에 기형종으로 있을 당시, 엘라의 꿈을 즐겨왔다고 설명해줬던 것이 기억이 난 것이다.

         

       하지만 곧 엘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잠깐만요. 제 악몽을 봤다고요?”

       “네? 당연하죠. 이 언니는 동생이 꾸는 좋은 꿈도, 야한 꿈도, 악몽도! 전부 봤답니다!”

       “아니 잠….”

         

       엘라는 과거에는 가볍게 넘겨버렸던 설명의 무게를 깨닫고 말았다.

         

       그때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이상한 주술사에게 납치가 되지를 않나,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을 때 웬 이상한 꿈속에서 아나스타시아를 만나지를 않나, 언니라고 주장하는 아나스타시아에게 반쯤 홀린 듯 이끌려서 꿈의 세계를 구경하기도 했고, 자신이 엘라의 가슴팍에서 같이 살았다는 말도 들었고, 꿈의 세계에서 이상한 주술사를 만나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하나하나가 엘라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들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때 당시에는 꿈을 공유했다는 아나스타시아의 설명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꿈을 공유한다는 사실보다 자기 가슴팍에 기형종의 형태로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을 뿐.

         

       하지만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오며 언니라는 존재에 익숙해진 지금은…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버시! 제 프라이버시는요?!”

         

       꿈이라는 것은 무의식의 발현이자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산물.

         

       당연하게도 입에 담기도 어려운 비밀이나 생각들이 들어있고, 그녀가 보고 들었던 것이 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나스타시아는 생생하게 보고, 즐기고,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동생. 잘 들어요.”

         

       아나스타시아는 경악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엘라에게 진리를 말하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형제자매라는 것은 말이에요.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 자라는 거랍니다.”

       “네, 네?”

       “그렇기에 제가 귀여운 동생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저는 언니고, 엘라는 동생이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악몽에서 윌리엄이라는 이상한 망나니가 아그네스 스승님에게 청혼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 나와도! 윌리엄이 아그네스 스승님을 자신의 하렘에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와도! 윌리엄이 액션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구하는 남자 주인공처럼 멋지게 등장해서 아그네스 스승님을 반하게 하는 장면이 나와도!”

         

       그녀는 과거 엘라가 꿨던 악몽을 하나하나 예시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 이!”

         

       퍼억!

       

       “아얏!”

       

       결국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에게 베개로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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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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