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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부웅

        

       치열하되 명예로운 결투는, 승자에 대한 찬사와 패자에 대한 존중으로 끝난다고 하던가.

        

       -부웅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결투가 명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나 패자에게는.

       

       치열했던 결투의 끝.

        

       사망한 도적의 시체 위에서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는 승자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단체로 박수 대신 폭소를 쏟아내고 있었다.

       

       인터넷방송이 아닌 실제 콜로세움이었다면, 천지를 진동시킬만한 소리가 울려퍼졌을 정도의 웃음소리가 담긴 채팅이었으나-

        

       -부웅

        

       배경음악조차 끝나버려 고요한 스튜디오에는, 부웅- 부웅- 하는 효과음과,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승자가 누구인지만큼은 이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나오나 특유의 웅장한 배경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

       .

       .

        

       흔한 게임 방송의 화면 구성이었다. 화면의 대부분은 게임이 차지하고, 오른쪽 구석에 자그마한 캠 화면이 떠있는.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시선은 그 작은 네모에 쏠려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른쪽 구석의 자그마한 캠 화면 속.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하며 좌절하고 있는 아저씨는, 실은 게임의 뼈대를 만들다시피 한 사장이었고-

        

       그 옆자리에 앉아 입꼬리를 움찔거리고 있는 여자는, 그 아따먹이었으니.

       

       업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오나 시즌1에서 랭킹 1등을 달성했고, 불과 몇 주 사이에 온갖 빌드를 창시하여 전파했다.

       

       거기에 그리 전파한 빌드들은 긴급 패치로 제동이 걸리기 전까지 대부분 메타를 점령했고-

       

       심지어 그녀가 개발한 빌드 중 하나는,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일등공신이라며 샤라웃을 받기까지 했더랬다.

       

       거기에 스트리머로서는, 현재 트위트 실시간 최다 시청자수마저 달성하고 있었으니-

       

       대부분의 나오나 방송인이 꿈을 꾸기도 어려운 업적들이, 그녀에게는 이미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사장을 불러서 실시간으로 두들겨 팬다’라는, 대부분의 나오나 방송인들이 악몽에서도 달성하고 싶지 않을 업적도 함께 이루기는 했지만.

       

       물론, 리드미컬한 키보드 소리에 맞춰 몸을 살짝씩 흔들거리는 중인 그녀가, 그런 걸 신경쓰고 있을 리는 없었다.

       

       애초에 사제에게 지팡이를 돌리는 모션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도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그녀의 지팡이는……한 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타이밍 맞춰 키보드를 두들겨가며 커맨드를 입력한 결과였다.

       

       그리 열중하는 사이, 웃음을 참을 생각도 흘려보낸 건지.

       

       예나의 불그스름한 입술은, 어느새 대놓고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드디어 만족했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띄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자. 그러면, 패자의 사진을 출력해볼까요.”

        

       아니, 아니, 잠깐만요. 이게 누가 장례식 대상이 되냐도 정하는 거였어요? 합의한 사진도 따로 있었잖-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거예요.”

        

       -흐흫

        

       그녀의 방송을 자주 시청하던 이들로서는 제법 당혹스러운 장면이었다. 당연하게도, 정성스러운 도발 때문은 아니었다.

        

       캠방은 처음이라지만……승리의 기쁨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 아니었나. 어떤 극적인 승리에 대해서도 ‘도적이 정말 좋았네요’ 정도가 최대의 표현이었다.

        

       일대일 결투라서 특별한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이런저런 사유로 시청자를 잡아다 일대일을 붙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역 챌린저 시청자의 목을 베어냈을 때도, 높낮이조차 없는 목소리로 ‘다음 분, 찾아볼까요’라고 읊조릴 뿐이었는데.

        

       하물며, 겨우 다이아……그것도 게임사 사장을 상대로 이겨놓고 저렇게 환하게 웃을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그만큼 패러데이에 대한 원한이 깊었던 걸까.

        

       아니면 그동안 캠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 사실은 이길 때마다 모니터 너머에서 저리도 밝게 웃고 있었던 걸까.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웃어?』

       『BEATEN BY A LITTLE GIRL LOLZ🤣 BEATEN BY A LITTLE GIRL LOLZ🤣 BEATEN BY A LITTLE GIRL LOLZ🤣 BEATEN BY A LITTLE GIRL LOLZ🤣』

       『나 뿔이 아파… 나 뿔이 아파… 나 뿔이 아파… 나 뿔이 아파…』

       『👎FATALITY👎 👎FATALITY👎 👎FATALITY👎 👎FATALITY👎 👎FATALITY👎』

       『눈웃음 미쳤네 진짜』

       『❤ATM❤ATM❤ATM❤ATM❤ATM❤ATM❤ATM❤』

       『아플게 없어서 배나온 유부남까지 뿔이 아프냐 걍 잘라라 새끼들아』

       『도적 말고 아따먹을 너프해야겠는데』

       『STREAMERBETS.AO <- BET ON ATM TO MAKE FREE $$$』

       ㄴ영구차단되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쒸이,,불,,,고뇬 참,,천년묵은,,구미호 같은 것이,,,50년전,,,수줍던 말자가 떠오르누나! 그때부터,,아껴온,,,,내,,정기를,,기꺼이,,내어주리다!』

       ㄴ영구차단되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LOVE FROM GERMANY 💖』

       『이쁘긴 해』

       『제발 컨셉 역하게 잡은 새끼들도 고소하자』

       『 🙇 ALL HAIL ATM THE GODDESS OF BEAUTY 🙇 ALL HAIL ATM THE GODDESS OF BEAUTY 🙇 ALL HAIL ATM THE GODDESS OF BEAUTY 🙇』

       『와』

       『 🚑 🚑 🚑 🚑HELP! JD’S PRIDE GOT SLAUGHTERED! 🚑 🚑 🚑 🚑』

       『저 얼굴로 티배깅은 그냥 포상 아니냐?』

       『사장 아재 표정보솤ㅋㅋㅋㅋㅋ』

       『외국인 왜케 많아 시발』

        

       어느 쪽이든, 채팅창은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지 오래였다.

       

       시청자 수는 10만명을 돌파하고도 계속하여 상승하고 있는 상태. 예나는 졸지에 전세계 트위트 시청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트리머가 되어버렸으나-

       

       그런 상황을 알기나 하는 건지.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갔던 그녀는, 손으로 무언가를 팔랑거리며 카메라 앵글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캠을 가리듯 펼쳐 보여주는 것이-

       

       “음……잘 나오지 않았나요. 특별히 아까 사진 대신 조금 더 옛날 사진으로 해드렸어요. 이유는……음. 아니에요.”

        

       큼지막하게 출력한 J. Dox의 사진이었다. 약 10년 전, 아직 머리가 풍성하던 대학생 시절의.

        

       당연하게도, 또다시 실시간으로 위키의 논란 항목이 갱신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방송을 지켜보던 예나의 팬들은, 그녀가 그런 논란이나 지적 따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더랬다.

       

       무슨 계기로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건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오늘은 언제나와 같은 마이페이스로 돌아온 모습을 보여왔기에.

       

       팬으로서는, 이제 제발 운 좋게 논란을 피해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직접 논란을 피할 생각은 전무한 스트리머를 좋아하게 된 이들의 업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라리 지금 사진으로 해줘요.”

        

       “죄송해요. 저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아요.”

        

       다시 한번 조용히 웃은 예나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덧붙이고 있었다.

        

       “이기고 튀었던 사람 말은 더더욱 안 듣고.”

        

       스튜디오에 설치된 성능 좋은 마이크도 못 잡아낼 정도의 작은 소리.

        

       작은 세트장 안에는 한국어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기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채 흩어질 속삭임이었다.

        

       .

       .

       .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장례식을 치르는 건 부담스러웠던 걸까.

        

       승리의 쾌감을 한참 만끽하는 듯하던 예나는, 결국 액자에 도적의 초상화를 넣었다. ‘슬프네요’라는, 짧은 감상과 함께.

       

       공부라도 해온 건지, 제법 본격적인 절차였다. 술을 따르고, 밥을 말며, 절을 하고, 어디서 구해온 건지 헌화에, 분향까지 하는…….

       

       약식이라지만 꽤나 경건한, 제대로 된 장례식이었다. 정말로 J. Dox의 사진을 넣고 진행해 버렸더라면 제법 논란이 되었을 정도로. 

       

       예나가 두 차례 엎드려 절하는 사이 드러나버린 뒤태만 아니었다면, 나름 엄숙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건한 분위기가 유지되기엔 과한 파괴력이었던 고로.

       

        삽시간에 그녀의 몸매에 감탄하는 이야기로 가득해진 채팅창은, 도질과 20인의 매니저들의 고군분투로도 정리하기 어려웠으나- 의외로, 그러한 혼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응. 나오나, 재밌지 않나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어딘가 후련한 듯이 말하는 예나의 목소리가, 묘한 호소력으로 시청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킨 탓이었다.

        

       “계속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모두 함께.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차피 망할 게임이라고 포기하고 있었던 것도 같은데.”

        

       -흐흫

        

       작은 웃음소리. 사장을 불러놓고 할 악담이 아니라는 채팅이 몇 개 올라왔으나, ‘이제 와서?’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여태 벌인 짓들 중 애초에 사장을 불러놓고 해도 괜찮은 일이 더 드물었으니.

        

       “그래도, 응. 이젠 믿음이 가네요. 이 정도로 게임에 진심인 사장이 있잖아. 패러데이가……분명. 분명, 더 즐거운 시즌 2를 보여줄 거라고 믿어요.”

        

       “……지팡이 돌리는 거나 멈추고 칭찬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본계정이 뭔지 얘기해주면 생각해볼게요.”

       

       “그게 무슨 상관- 아니, 그리고 얘기할 리가 없잖아요. 본 계정 밝혀지면 나오나 맘 편히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어쩔 수 없네요. 저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아요.”

        

       -흐흫

        

       조금 전의 말을 반복한 예나가, 부드럽게 일어나 카메라를 향했다.

        

       절까지 하기엔 조금 타이트했던 걸까. 단정하게 넣어두었던 하얀 와이셔츠는 양복 바지 밖으로 늘어진 상태였다.

        

       그 앞자락이, 예나의 걸음걸이에 맞춰 아주 가볍게 흔들리듯 살랑거렸다.

        

       잠시 진중해졌던 채팅창이 다시 한층 격해졌다. 이젠 매니저들도 손을 놓을 지경이다. 누구일지 모를 1명의 매니저만, 손이 10개라도 되는 양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카메라 앞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카메라 각도를 조절할까 망설이는 듯하던 하얀 손이, 이내 포기한 듯 거두어지고-

        

       허리를 살짝 숙여 얼굴을 앵글 안에 넣은 예나가, 살풋이 미소지었다.

        

       “오늘 방송 즐거웠어요.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약간의 딜레이와 함께 인사말이 영어로 출력되고- 그녀가 방종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걸 깨달은 채팅창이, 당연하다는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가지 마라, 너무 예쁘다, 무슨 화장품이냐, 어디 옷이냐, 제발 한판만 더 돌리자, 노래 한곡만 듣자, 오카리나라도 불어달라……과도한 입력으로 버벅이기 시작한 채팅창은, 제대로 읽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기존 팬들과 몰려든 유동들이 한데 뒤섞여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사이.

        

       “이번에 떠나간 고인이 부활하면……또 올게요. 그러면, 다들 그때까지 안녕히-”

       잠깐, 저도 인사-”

       

       겹치는 오디오와, 카메라 앞에서 흔들리는 새하얀 손을 마지막으로-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방송은 미련없이 종료됐다.

       

       현실을 부정하는 10여만명의 사람들을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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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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