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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그림자 정부라고 아는가.

        

       음모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로서,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정부 세력의 뒤에, 사실은 민중의 선택을 받지 않은 존재들이 있어 민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득과 영구적인 권력을 위해 암약하고 있다는 존재다.

        

       음모론자들이 손에 꼽는 단체로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빌더버그 회의 등이 있다.

        

       ……그런데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는 뭐 그렇다 쳐도 이쪽 세계에서는 빌더버그 회의는 실제로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전 세계의 경제인, 왕실과 귀족 관계자, 국제 금융계 인사 등, 세상을 움직일 힘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향후 세상이 어떻게 굴러갈지를 논하는 자리라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미국에 있던 거대한 회사보다는 한국에 있는 거대한 회사가 그 음모론에 훨씬 어울릴 것 같긴 하다.

        

       미국에 있는 거대한 회사가 미국을 쥐고 흔들 수는 없지만 유진 그룹은 진짜로 한국을 쥐고 흔들 수 있을 거 같거든. 나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락 말락 하는 나라를 흔들 수 있으면 그런 회의에서도 목에 힘 좀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여도 이쪽 세상에서는 제일 큰 회사이기도 하고.

        

       ……뭐, 그런 단체들이 이쪽 세상에도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은 둘째치고 말이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사라는 고등학생일 뿐이고, 그렇게까지 거대한 스케일의 음모에 빠질 일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말만 그럴싸하지, 실제로는 그냥 친목회 비슷한 거라는 말도 있고.

        

       아무튼, 다소 뜬금없이 음모론이니, 그림자 정부니 하는 소리를 꺼낸 것은 그런 것을 진지하게 논해보자는 심오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여러모로 그런 단체답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놀랍게도, 그 단체를 구성하는 인원들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의 파벌이라 구성인원이 고등학생뿐이라서……라는 이유도 있기는 한데, 그보다는 이 그룹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평범한 서민 가정의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였다.

        

       나, 하늘이, 수아, 소희, 이렇게 네 사람을 제외하고 스물한 명. 나에게 직접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백 퍼센트 장학생들이고, 그 장학생들을 통해 초대장을 받은 이들 중에는 그래도 중소기업 정도 되는 기업의 자식들이 조금 섞인 모양이다.

        

       그리고 스물한 명이라는 인원이 꽤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회 위원장들과 위원들로 채우다 보면 대부분이 한 자리씩 가지게 된다. 마침 학생회의 반 이상이 공석이었으므로, 이 스물하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학생회를 문자 그대로 점령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 서민들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십 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회사를 물려받을 존재.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심각하게 현자 타임이 와버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나는 나와 같이 계단 위에 올라와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럼, 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분부터 자기소개해 주세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선도위원장인 손아름이었다.

        

       손아름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안녕하십니까! 저는 손아름입니다! 1학년이며, 앞으로 선도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가 폈다.

        

       “아쉽게도, 선도위원은 여기 있는 위원장을 빼곤 전부 이미 회장이 채워버렸어요.”

        

       내 말에, 로비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 사실 무시당해서 그렇지, 학생회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권력을 드러내기 좋은 곳이 바로 선도위원 자리였다. 만약 그 자리에 나를 반대하는 이들이 들어가서 이쪽 파벌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뭐, 그런 걱정은 굳이 할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거기 손 드신 분. 질문 있으신 가요?”

        

       “네.”

        

       머리를 짧게 깎은 남학생이었다. 내 말에 벌떡 일어난 그 남학생은,

        

       “선도위원에 학생회장의 사람이 들어갔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아주 직설적인 질문을 했다.

        

       뭐, 좋다. 괜히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깔끔하게 질문해주는 쪽이 더 좋았으니까. 괜히 말 지어낼 필요가 없잖아.

        

       “학생회장의 사람은 아니에요. 정확히는 선도위원장의 이름을 보고 지원한 학생들이죠.”

        

       내 말에,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시선이 손아름에게 팍팍 꽂혔다. 손아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무리 체제에 순응하고 산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자길 무시하는 존재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돈 많은 사람들에게 적게 든 많게든 무시당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런 이들과 커넥션이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도 나와 사라를 무시하는데 적게나마 가담했던 사람들이니 따지려고 하면 따질 것이 엄청나게 많지만, 그렇다고 학교 내의 모든 사람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나는 일단 이 사람들이 이해해줄 만한 설명부터 하기로 했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 중에서, 저와 언제나 붙어 다니는 세 사람을 제외하면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손아름 학생입니다. 초대장도 제일 먼저 받은 사람이고요. 아마 선도위원에 지원한 학생들은 어떻게든 ‘저에게’ 줄을 대고 싶은 학생들일 거로 생각합니다. 그 중간단계로 손아름 학생을 선택한 거고요.”

        

       나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일입니다. 그때마다 무조건 밀어내는 것 보다는,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면 이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괜한 적대감을 심어서 적이 단결하게 하는 것 보다는, 계속 분열한 상태로 두는 것이 좋겠죠.”

        

       파벌의 구심점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파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아있는 자들은 다시 뭉쳐서 파벌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뽑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 분열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싸우며 힘이 약해지면, 컨트롤하는 우리야 편하고 좋다. 기왕이면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적어도 올해까지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학생회장은 아직은 반항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요. 그렇죠?”

        

       내가 손아름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흠칫 어깨를 떨고는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제가 본 학생회장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을 일으킬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답이 되었을까요?”

        

       “네, 감사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머리카락이 짧은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 자리에 올 때마다 존댓말을 써서 그런지, 어째 분위기가 중세 판타지의 귀족회의스러워지는 것 같은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그럼, 선도 위원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넘어갈게요.”

        

       잠시 입을 다물고 좌중을 둘러본다. 따로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손아름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손아름도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두 칸 올라가서 내가 옆으로 갈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럼 다음은……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분일 거예요.”

        

       장학생들은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고, 당연히 도서실 이용 빈도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높다. 공부가 아니면 졸업 후에 대학교에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독서실을 따로 끊거나 학원에 다니기에는 이 동네는 너무 비싸다. 제일 가성비 있는 것은 학교 도서실이나 열람실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지난번에 도서실에 갔을 때 몇 명 없던 학생들도 대부분 장학생이었고.

        

       “아, 안녕하세요. 류바다입니다…….”

        

       침묵.

        

       어, 소개가 그걸로 끝?

        

       “……류바다 선배는 도서 위원장입니다. 이전부터 쭉 맡고 있었어요. 도서 위원은 수가 적지만, 모두 장학생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대신 그렇게 설명했다.

        

       류바다와 몇 번 더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서 위원의 경우에는 다른 위원들과 다르게 정말로 학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하므로, 추가 장학금이 나온다고 한다. 물론 대학교에서 하는 근로장학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이다.

        

       당연히 돈 많은 학생들은 나름대로 교육도 받아야 하고, 매일 사람도 별로 안 오는 도서실에 남아 책꽂이에 꽂힌 책의 순서를 정리하거나, 도서 대출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대출도 해주어야 하는 그 일을 굳이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덕분에 도서 위원들은 모두 정말 책을 좋아하거나, 그 몇 푼의 돈이라도 아쉬운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이번에는 따로 물어볼 말은 없었던 모양이다.

        

       “…….”

        

       음……. 뭐.

        

       대충 예상은 했다. 도서 위원이라고 해도 책으로 뭐 대단한 권세를 누릴 수 있을 수가 없으니까.

        

       나중에 학교 내에서 장학생끼리 만날 일이 있으면 장소로 주선해달라거나 해야지.

        

       내가 류바다에게 눈짓하자, 류바다는 주변 눈치를 조금 보면서 손아름 옆까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다음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듣던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나온 소리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 탄식 소리에 부러움에 배가 아팠겠지만…… 지금은 여기서 더 여자를 늘리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별로 부럽지는 않았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지만, 의외로 인기 많은 삶이란 것은 고달픈 것이다.

        

       “다음은, 체육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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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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