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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자.

     현 상황에 대하여,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상황을 요약해보자.

     3줄보다도 더 간단하다.

     한 줄.

     비상식이 현실이 되었다.

     단지 그 뿐이다.

     “으아아아!!”

     정면, 복도에 몰려든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뽑고 달려온다.

     

     철로된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닌, 하얀색을 기조로 하여 황금색선이 이어진 천옷, 그러니까 황금여명 기사단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서걱.

     

     가볍게 베고, 옆으로 치운다.

     베일 때의 표정은 한순간이지만, ‘믿을 수 없다’라는 눈빛을 담고 있다.

     이해한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기 중인 상황에서 기사들과 포커를 치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을 테니, 제대로 환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맞이한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

     “죽어라, 매국노!”

     그나마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지만, 나는 검이 닿기도 전에 내가 들고 있는 깃창을 앞으로 크게 내지른다.

     -깃창을 왜 무기로 쓰냐고? 그야, 당연히 거리가 기니까.

     언젠가, 망국의 공주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머스킷을 가장 잘 다루기도 했지만 그건 원거리 무기로서 쓴 거고, 접근전에서 그녀는 깃발을 끝에 달아둔 깃창을 주무기로 사용했다.

     -깃발을 굳이 걸고 싸우는 이유가 있다면, 언젠가 테르시안 제국의 황궁 위에 멸망한 나라의 깃발을 꽂아넣겠다는 각오겠지.

     깃발을 들고 다녔던 이유는 그러했다.

     

     그렇다면, 창은?

     -당연히, 제일 쓰기 편하니까. 배워서 너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백작.

     망국의 공주는 내게 창을 가르쳐줬다.

     깃발을 펄럭이면서도 창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제와서 이런 걸 배워봤자, 라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혹시 모르지 않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걸 쓰게 될지도 모르지.

     지금이 그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때 배운 게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던 상황에서 쓰이고 있다.

     -이 창술은 노스트럼 왕국의 전통 창술이다. 나의 조부, 윈체스터 대공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

     원형. 모르가니아, 흑장미의 창.

     -이걸 이용해서 내가 죽이고 싶은 자들의 심장을 찌르고 싶을 뿐이야. 그래, 이왕이면, 이 나라를 좀 먹게 만든 쓰레기들.

     거기에 망국의 공주가 자신의 실전 경험을 섞어서 만든, 약간은 머스킷을 다루는 방법도 들어간 실전형 창술.

     -그 거지 같은 황금여명을 부숴버리기 위한 기술이지.

     노스트럼의 암 덩어리들을 죽이기 위한 창.

     그것이, 지금 나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다.

     푸ㅡ욱.

     “커, 커헉.”

     황금여명의 기사가 피를 토한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듯, 충혈된 눈으로 심장이 찔린 채 나를 올려다본다.

     “이, 이런 힘을, 언제….”

     

     푸화ㅡㅡ악.

     창을 뽑아내자마자 바로 기사는 앞으로 쓰러진다.

     사람이라는 게 때때로 창에 찔리거나 하여 죽어도 몇 시간을 버티고 유언까지 남기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대부분 상급 이상의 존재가 몸에 남아있는 마나와 정신력의 힘으로 버티는 경우다.

     대부분의 인간은 창에 심장이 찔리면 죽는다.

     강력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곧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채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 죽음에 이른 기사들의 단말마가 현재 이 바르셀 후작성 ‘골든 캐슬’에 울려퍼지고 있다.

     “으아아악!”

     “버, 버텨라! 지브롤터 기사단이라고 해도, 크아악!!”

     곳곳에서 베이고, 썰리고, 찔리는 소리가 울린다.

     간혹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곧 그 소리는 3차례 정도 울리고는 금방 사람을 베는 소리로 바뀔 뿐이다.

     ‘도와주러 갈 필요는 없겠어.’

     마나를 펼친다.

     들려오는 소리를 바탕으로,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여, 발끝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후작성 전체의 파장을 읽어내며 전황을 살핀다.

     아래층.

     후작성의 정문으로 들어오는 길을 지브롤터 기사단 중 일부가 막고 있다.

     “나는 로버트!! 지브롤터의 기사로서, 협곡을 수호하는 자! 여기를 지나가고 싶으면, 나를 지나가야 할 것이다!”

     로버트 경이 후작성을 지키는 관문처럼 후작성 정문에 서 있다.

     본래는 테르시안 제국을 상대로 그 어떤 적도 넘어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지브롤터의 수호자가 지금은 후작성으로 들어오려는 기사단의 앞에 서서 태산과도 같이 검을 뽑고 있다.

     “무, 무슨…! 오러라니, 그런 거 들은 적 없다고!”

     “크윽, 지브롤터가 몰래 키우고 있던 또다른 마스터인가! 가문 내에서 혈육 이외의 마스터를 키우다니!”

     “속였구나, 크림슨!!”

     누군지는 몰라도 남의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건방지게 외친다고 로버트와 다른 기사들이 물러서지는 않는다.

     “이곳을 지나가고 싶다면, 나를 꺾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후방, 로버트를 위시한 기사 10명.

     그리고 그 사이.

     “카를로스 경! 진정하시오! 우리는, 크윽…!”

     “네놈! 잘 만났다! 렘버리에서의 굴욕, 이곳에서 갚아주마!”

     “크윽, 제국에 붙은 배신자들 주제에!!”

     카를로스를 위시한 상급 기사 10명이 후작성 내부의 중요 구역을 점거하기 위해 곳곳을 달리고 있다.

     

     앞 길을 가로막는 기사들을 억제하고, 때로는 기절시키고 때로는 검으로 베고, 미리 확인된 자료를 통해 ‘검정’으로 판별된 이들은 가차없이 죽인다.

     죽음 없는 전쟁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적진 한 가운데에 처들어왔으나, 저들을 가만히 전부 포로로 만들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

     죽일 자는 죽인다.

     죽여야 할 자는 무조건 제거한다.

     우리는 지금, 노스트럼의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중이다.

     ‘그냥 노스트럼의 종양만 있는 것도 아니지.’

     로버트 부대와 카를로스 부대가 순수하게 황금여명과 싸우고 있다면, 나머지 9명은 현재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크윽, 이 여자, 보통이 아니야! 103, 392! 함께 싸운다!”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 걸 봐선, 네놈들도 폐세자로구나!”

     “크윽, 아는 여자다! 마스터라도, 무조건 죽인다! 모두, 약을 써!”

     “오오냐! 들어와라! 모두, 흡혈귀 사냥을 시작하자!!”

     “””예, 리프트 경!!”””

     그림자 속에서의 전투.

     제국의 폐세자와 통제를 벗어난 그림자, 자신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거나 황태자로 총애를 받고 싶어하는 자들이 멘테 경의 부대에 덤벼든다.

     “쓰으읍, 하아.”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

     지독할 정도로 코를 찌르는 인간의 피 냄새에 더불어, 구강섭취하여 전신에 흘러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백은의 향기가 후작성에 가득하다.

     정정.

     깊은 곳에서부터 새어나오고 있다.

     마치 동굴 가장 깊은 곳에서 백은을 피웠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숨만 쉬어도 백은에 중독되는 것처럼.

     ‘역시, 맡겨놓으면 편하긴 편하네.’

     로버트 경의 부대가 밖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고.

     카를로스 경의 부대가 후작성 내부 병력을 소탕하고.

     멘테 경이 내전에 개입한 그림자들을 처리하고.

     그리고 나는-

     “저기있다! 그레이 지브롤터! 죽여!!”

     “주, 죽이면….”

     “우리를 죽인 놈들이다!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죽여버려!!”

     그 모두를 상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오르는 걸 막아!”

     “막을 수나 있고?”

     복도에 한가득 모인 기사들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눈다.

     그래도 이번에는 급하게 나온 건 아닌지, 전신갑옷을 입은 채 진영까지 갖춘다.

     “흐음.”

     투구 사이로 보이는 미약한 붉은 불빛.

     노스트럼의 쓰레기들 사이, 나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작정한 폐세자들이 흡혈귀 특유의 썩은내를 풍기며 살기를 감추려고 한다.

     ‘냄새가 난다고, 냄새가.’

     하지만 어쩌나.

     이쪽은 백은을 10살 때부터 흡수해왔고, 회귀 전에도 10년 넘게 ‘순정’으로 빨았던 인간이다.

     “어떻게 한다. 저기 복도 끝이 집무실이긴 한데….”

     “키샤아아앗!!”

     “……하.”

     후작가 기사 중 일부가 짐승같은 포효를 내지른다.

     그 포효에 옆에 있던 다른 기사가 당황하며 주춤거릴 정도.

     “음식에 백은이라도 탔나? 강제로 하위 흡혈귀로 만들어버리게.”

     “죽어라, 매국노!!”

     “그러니까, 아직 매국노 아닌데.”

     가장 먼저 달려드는 기사를 향해, 정확히 앞으로 창을 크게 찔러넣는다.

     푸ㅡ욱.

     투구의 안구 부분을 정확하게 찌르는 일격.

     그 창 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은 분명 사람이라기보다는, 무기를 향해 끈적하게 피가 늘러붙는 감각은 분명히 흡혈귀의 것이었다.

     “매국노가 누군지.”

     “으아아아!!”

     창을 회수하기도 전, 얼굴이 꿰뚫려 죽은 기사의 양옆으로 다른 기사들이 달려온다.

     ‘하나는 쓰레기, 하나는 그림자.’

     황금여명의 기사는 나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듯 달려오고 있고, 폐세자 쪽은 빈틈을 노렸다고 생각하는 건지 내 심장만을 바라보며 투구 아래에서 씩 미소를 짓고 있다.

     -그레이. 인간은 말이야, 모든 부위가 곧 무기가 되는 법이야.

     ‘하.’

     원래 쓰던 무기가 아닌 다른 무기를 쓰니, 가장 먼저 떠오른 조언이 하필이면 합스베르크 황제의 조언이다.

     ‘하지만 안 쓸 이유는 없지.’

     마스터급에 이른 자는 몸 자체가 무기.

     -검에 오러를 흘리는 것도 가능한데, 장갑이나 신발은 못할 게 없지 않나.

     ‘그 말대로.’

     나는 앞으로 찌른 창대를 움켜쥔 다음, 가볍게 바닥을 뛰며 크게 수평으로 다리를 휘둘렀다.

     창대를 주축으로 하여 몸까지 크게 회전시키는 돌려차기.

     

     하지만 그 발 끝에는 분명히 ‘오러’가 반짝였고, 정순한 마력으로 빚어진 오러는 순식간에 적들을 베었다.

     푸화ㅡㅡㅡ악!!

     황금여명의 기사와 폐세자가 동시에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피분수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이미 렘버리 캠프에서 몇 번이고 봤던 모습이라 이제는 익숙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걸 봤어도 저들은 이걸 처음 보는 셈.

     “미, 미친…! 뭐, 뭐야!!”

     “오러를…발에?”

     “뭐, 뭐냐고…!”

     “뭐긴.”

     나는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창을 회수했다.

     “지브롤터.”

     깃창을 어깨에 짊어진다.

     얼굴과 정장, 구두에는 피가 잔뜩 튀었지만, 당연히 지브롤터의 깃발에는 피가 하나도 튀지 않았다.

     “500년 동안 제국이 골백 번은 지브롤터의 기사를 상대해왔을 때도 이런 일이 반복되었지. 이게 지브롤터를 적으로 돌렸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솔직히.

     “500년 동안 제국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가문의 기사들을 적으로 돌렸는데, 제국이랑 똑같이 당할 생각 정도는 했었어야지.”

     지금까지의 노스트럼이 너무나도 멍청할 정도로, 우습기만 할 뿐이다.

     “왜 지브롤터는 노스트럼을 상대로 검을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응?”

     “그, 그야….”

     “역사가 그렇기에?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지브롤터를 적으로 돌린 이들이 제국밖에 없어서 그렇지, 지브롤터는 적이 누구든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아. 생각해봐.”

     간단한 이치를, 저들은 망각하고 있다.

     “500년 동안 노스트럼이 이어져온 건 뭐 노스트럼의 수많은 영웅국왕께서 열심히 해온 덕분이라고 치자. 그래. 그분들이 왕으로서 수많은 영웅을 발탁하고, 그 영웅들의 핏줄이 지금에도 이르러 수많은 귀족 가문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도 다 노스트럼의 고귀한 핏줄 덕분이라고 하자고. 그건, 사실이니까.”

     노스트럼 왕가는 절대적인 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절대적인 왕권을 가지고 있는 노스트럼 왕국이.

     “500년 동안 수십 번은 대가 바뀌었는데, 왜 그 수많은 영웅을 발탁한 국왕들이 지브롤터를 지금까지 가만히 놔뒀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

     왜 지브롤터 가문은 그대로 놔뒀을까.

     “당연하지.”

     

     가만히 놔두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들 멋대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이 되었을 때, 왕국 전체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지브롤터가, 너무나도 비상식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 이 전쟁에서.”

     나는 가볍게, 창을 빙글 휘둘렀다.

     “상식은, 죽었다.”

     500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역사에 따라, 모든 이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내려오던 ‘상식’.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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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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