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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
    이대로 엘렌시아가 떠나고 리안이 절망과 체념에 젖어 하얀 문으로 나간다면 소설의 한장면 같은 이야기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안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성숙하지도 않았고, 모든 순간이 비참한 현실이었다.
    ​
    ​
    “안돼, 안돼.. 안돼!”
    ​
    ​
    삐이이 -..
    ​
    ​
    영혼 상태임에도 귓가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시야가 일렁이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거칠어진 숨이 귓가에 윙윙 맴돌았다.
    ​
    ​
    오랜 시간 사랑을 굶주린 영혼은 사랑에 익숙지 않아 수줍었다. 동시에 탐욕스러웠다. 
    ​
    ​
    “빼앗길 수 없어..”
    ​
    ​
    단 한 방울의 사랑도 리안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죽음이더라도.
    ​
    ​
    “엘렌시아는.. 내꺼야.”
    ​
    ​
    무의식중에 뱉어낸 진득한 집착이 흘러내렸다. 초점을 잃은 듯 탁하게 가라앉은 눈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
    ​
    덜컹! 콰앙!
    ​
    ​
    굳게 닫혀있던 하얀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쏜살같이 리안을 향했다. 노아와 제스, 아이리스에 의해 억눌려있던 권능이 제 주인의 부름을 받아 맹렬하게 반짝이며 영혼에 박혀 들었다.
    ​
    ​
    그그극.
    ​
    ​
    리안이 손끝에 힘을 주자 투명한 벽이 일렁이며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울렁이며 요동치는 모습이 숨이 끊어지기 전에 발버둥 치는 벌레 같았다.
    ​
    ​
    엘렌시아는 멍한 얼굴로 무너져 울렁거리며 점차 부서지기 시작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그녀였기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삶과 죽음의 경계가… 손으로 부서진…다고?’
    ​
    ​
    리안이 부숴버리고 있는 건 무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나누는 벽이었다. 저 벽이 무너진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신호가 머릿속에 맹렬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리안을 막지 못했다.
    ​
    ​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남자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
    ​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
    ​
    어렴풋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 짐작만 가능한 엘렌시아와 달리 권능의 힘을 회복한 리안은 이 벽이 무너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
    살아있는 존재가 살아가는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가 합쳐지며 아득한 혼돈이 발생할 것이다.
    ​
    ​
    ‘그래서 어쩌라고?’
    ​
    ​
    그보다 더한 혼돈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이미 살아봤던 리안이었다. 개그 세계에 비하면 죽은 세계와 살아있는 사람의 세계가 합쳐지는 것 정도는 광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
    ​
    콰득,콰드득!
    ​
    ​
    신이 자리를 비워도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의지’가 리안을 막고자 힘을 끌어모았다. 이를 기민하게 인지한 리안은 다가오는 거대한 힘에 반격하고자 한 손으로 경계를 뜯어내고, 다른 손은 힘이 다가오는 쪽으로 들어 올려 공격을 막고자 했다.
    ​
    ​
    쿠구궁….
    ​
    ​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공간이 잠시 떨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세계의 의지는 리안을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
    ​
    이미 망한 세계,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같은 생각으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지만,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리안도 굳이 건드릴 생각 없었다.
    ​
    ​
    아무런 방해가 없으니 경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
    ​
    콰드득,콰르릉! 
    ​
    ​
    소행성이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거대한 폭음과 함께 경계가 무너져내렸다. 정확히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
    ​
    “엘렌시아.”
   “아..”
    “가자!”
    ​
    ​
    검은 공간에서 엘렌시아가 손을 내밀며 함께 가자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리안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
    ​
    이미 죽어버린 자신이 살아도 괜찮을까? 끝내… 외신을 막지 못한 자신이 -… 살 가치가 있을까?
    ​
    ​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탓인지 유일한 희망 앞에서도 쉽사리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리안이 붙잡아 당겼다.
    ​
    ​
    “..!”
    ​
    ​
    한걸음, 두걸음. 당황한 사이 그녀는 새하얀 세계에 들어서고 말았다. 리안이 그녀를 보며 씩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영원히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
    ​
    “함께 가자, 엘렌시아!”
   “..응.”
    ​
    ​
    그녀의 발목을 붙잡던 온갖 이유가 그 미소 앞에 하얗게 바스러졌다. 그녀라고 어찌할 바가 있을까? 사랑하는 이가 함께 가자고 손까지 붙잡는데 따라갈 수밖에.
    ​
    ​
    그렇게 두 사람은 활짝 열린 문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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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엇?”
    “응?”
    ​
    ​
    새하얀 빛이 흘러넘치는 문을 눈을 질끈 감으며 통과하고 눈을 뜨니, 리안은 개그 신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것도 턱받이를 한 상태로.
    ​
    ​
    “뭐…뭐야!? 으아아! 내가 왜 이런 꼴을?!”
    ​
    ​
    개그 신은 이제 막 옹알이를 할 시기의 아기가 입을 법한 옷을 리안의 체형에 맞춰 크게 만들어 입혀놓은 상태였다. 막 리안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놓으려는 듯 커다란 쪽쪽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
    ​
    “또! 또 당신 짓이지!?”
    “어라? 어라라라?”
    ​
    ​
    부끄럽기 짝이 없는 꼴에 흥분한 리안이 그녀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멍한 얼굴로 멍청한 소리를 흘리며 흔드는 대로 흔들려주었다.
    ​
    ​
    “…시간차로 회복될 거면 미리 알려주라고! 힝!”
    ​
    ​
    겨우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제 마음고생이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든 말든 리안은 어이가 없어 손으로 이마를 치려다가 손이 손 싸개(아기들이 손을 입에 넣지 않도록 손까지 덮여있다.)를 보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
    ​
    “왜 하필 이런 꼴을…! 당신은 내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으으음, 0살이지 아무래도? 이제 막 신이 됐으니까?”
   “무, 뭔 어,예? 네?”
    ​
    ​
    우다다다 개그 신을 나무라려던 리안은 ‘0살’,‘신’ 발언에 혀를 살짝 깨물고 말았다. 개그 신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뻗어 리안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화려한 헤일로를 끌어당겼다.
    ​
    ​
    제자리를 찾으려는 듯 강한 반발감이 느껴졌지만, 그녀에겐 개미의 허우적거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
    ​
    “봐봐, 이런 것도 생겼고 ~ 등에 날개도 생겼잖아 ~.”
    “뭔 날개가… 우악! 이게 뭐야?!”
    ​
    ​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뒤를 슬쩍 돌아본 리안은 새하얀 날개 세 쌍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세 쌍의 날개는 격한 감정에 반응해 그대로 활짝 펼쳐졌다.
    ​
    ​
    강한 외신을 꼭꼭 씹어 삼킨 덕분인지 날개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했다. 부드러운 빛 가루 따위가 흩날리는 게 신성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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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이게..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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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니 제 등짝에 붙은 날개를 바라보던 리안이 휙 고개를 돌려 개그 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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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 또 장난치는 거죠!?”
    “에엥? 내가 그렇게 자주 장난을 쳤나?”
    “몰라서 물어!?”
    ​
    ​
    흥분한 리안이 재차 그녀를 짤짤 흔들려는 순간, 그녀가 두 손을 들어 항복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뒤로 물러났다.
    ​
    ​
    “알았어! 진짜 제대로 된 증거를 보여주면 되잖아!”
    “증거가 아니라 장난이겠죠! 빨리 이 이상한 거 치우고 옷도 돌려줘요!”
    “아이참… 내가 착하니까 도와준다. 진짜.”
    ​
    ​
    그녀를 그리 말한 후 가볍게 손을 튕겼다. 그러자 리안의 옷이 아기 옷에서 화려한 황금색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새하얀 옷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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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시대 옷인지 옆구리부터 등까지 훤히 노출되었고, 골반에서 끈으로 묶여 고정되었다. 상의에서 이어진 하의가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왔는데 이건 안에 바지고 뭐고 없어서 원피스나 다름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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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 제대로 된 옷을 달라고 망할 신아!”
    “으이잉! 그거 그리스 로마 신화 스타일로 -… 어어..! 알았어! 그만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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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다시 한번 더 손을 튕기자 원피스 -… 아니 상의가 길게 길어져 발목까지 내려오고, 그 안쪽에 하얀 바지가 생겼다. 변태 코스프레 복장이 그나마 판타지 세계 신관 복장처럼 변했다.
    ​
    ​
    ‘여기서 더 바꿔달라 조르면 더 이상한 옷을 가져올지도 몰라. 저 망할 신이라면 백퍼센트 그럴 거야.’
    ​
    ​
    마음 같아선 등도 덮어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이상하고 노출 많은 옷을 가져와 장난칠 게 뻔했기에 빠르게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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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목표는 이 날개다.’
    ​
    ​
    훤히 드러난 등이야 날개만 없다면 치렁치렁한 하의 쪽 천으로 덮어버리면 될 일이다. 날개를 없애고 장난친 값으로 바느질 도구를 달라고 하면 옷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다.
    ​
    ​
    “쳇.”
    ​
    ​
    리안이 더 이상 불만을 보이지 않자 개그 신은 작게 혀를 찼다. 리안이 눈치 빠르게 함정을 빠져나가자 얼굴 위로 진한 아쉬움이 넘실거렸다. 예상대로였다.
    ​
    ​
    “후우… 자, 이제 이 거슬리는 -…”
    ​
    ​
    날개를 없애달라고 하려는 순간, 그녀가 리안의 뒤쪽을 가리키며 “아앗! 저건!”하는 어처구니없는 연기를 펼쳤다.
    ​
    ​
    개그 세계 특, “아앗 저건?!”하는 상황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며 무시하면 이상한 게 날아와 공격한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면 “속았죠? 멍청하죠?”하는 말과 함께 뒤통수가 갈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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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 방법은 단 하나! 두 방향 다 볼 수 있도록 몸을 반만 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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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도있게 몸을 반만 돌렸다. 앞, 뒤 모두 한꺼번에 확인하기 딱 좋은 각도로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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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날개가 눈앞에서 펄럭거리며 신성한 빛을 흩뿌렸다. 문제는 날개의 주인이 리안이 아니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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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날개가 대비될 정도로 새카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천사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붉은 눈동자 속에 리안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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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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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엘렌시아가 떠나고 리안이 절망과 체념에 젖어 하얀 문으로 나간다면 소설의 한장면 같은 이야기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안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성숙하지도 않았고, 모든 순간이 비참한 현실이었다.

“안돼, 안돼.. 안돼!”

삐이이 -..

영혼 상태임에도 귓가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시야가 일렁이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거칠어진 숨이 귓가에 윙윙 맴돌았다.

오랜 시간 사랑을 굶주린 영혼은 사랑에 익숙지 않아 수줍었다. 동시에 탐욕스러웠다.

“빼앗길 수 없어..”

단 한 방울의 사랑도 리안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죽음이더라도.

“엘렌시아는.. 내꺼야.”

무의식중에 뱉어낸 진득한 집착이 흘러내렸다. 초점을 잃은 듯 탁하게 가라앉은 눈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덜컹! 콰앙!

굳게 닫혀있던 하얀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쏜살같이 리안을 향했다. 노아와 제스, 아이리스에 의해 억눌려있던 권능이 제 주인의 부름을 받아 맹렬하게 반짝이며 영혼에 박혀 들었다.

그그극.

리안이 손끝에 힘을 주자 투명한 벽이 일렁이며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울렁이며 요동치는 모습이 숨이 끊어지기 전에 발버둥 치는 벌레 같았다.

엘렌시아는 멍한 얼굴로 무너져 울렁거리며 점차 부서지기 시작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그녀였기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손으로 부서진…다고?’

리안이 부숴버리고 있는 건 무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나누는 벽이었다. 저 벽이 무너진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신호가 머릿속에 맹렬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리안을 막지 못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남자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어렴풋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 짐작만 가능한 엘렌시아와 달리 권능의 힘을 회복한 리안은 이 벽이 무너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살아가는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가 합쳐지며 아득한 혼돈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보다 더한 혼돈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이미 살아봤던 리안이었다. 개그 세계에 비하면 죽은 세계와 살아있는 사람의 세계가 합쳐지는 것 정도는 광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콰득,콰드득!

신이 자리를 비워도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의지’가 리안을 막고자 힘을 끌어모았다. 이를 기민하게 인지한 리안은 다가오는 거대한 힘에 반격하고자 한 손으로 경계를 뜯어내고, 다른 손은 힘이 다가오는 쪽으로 들어 올려 공격을 막고자 했다.

쿠구궁….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공간이 잠시 떨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세계의 의지는 리안을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망한 세계,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같은 생각으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지만,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리안도 굳이 건드릴 생각 없었다.

아무런 방해가 없으니 경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콰드득,콰르릉!

소행성이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거대한 폭음과 함께 경계가 무너져내렸다. 정확히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엘렌시아.”

“아..”

“가자!”

검은 공간에서 엘렌시아가 손을 내밀며 함께 가자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리안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이 살아도 괜찮을까? 끝내… 외신을 막지 못한 자신이 -… 살 가치가 있을까?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탓인지 유일한 희망 앞에서도 쉽사리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리안이 붙잡아 당겼다.

“..!”

한걸음, 두걸음. 당황한 사이 그녀는 새하얀 세계에 들어서고 말았다. 리안이 그녀를 보며 씩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영원히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함께 가자, 엘렌시아!”

“..응.”

그녀의 발목을 붙잡던 온갖 이유가 그 미소 앞에 하얗게 바스러졌다. 그녀라고 어찌할 바가 있을까? 사랑하는 이가 함께 가자고 손까지 붙잡는데 따라갈 수밖에.

그렇게 두 사람은 활짝 열린 문을 통과했다.

***

“엇?”

“응?”

새하얀 빛이 흘러넘치는 문을 눈을 질끈 감으며 통과하고 눈을 뜨니, 리안은 개그 신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것도 턱받이를 한 상태로.

“뭐…뭐야!? 으아아! 내가 왜 이런 꼴을?!”

개그 신은 이제 막 옹알이를 할 시기의 아기가 입을 법한 옷을 리안의 체형에 맞춰 크게 만들어 입혀놓은 상태였다. 막 리안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놓으려는 듯 커다란 쪽쪽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또! 또 당신 짓이지!?”

“어라? 어라라라?”

부끄럽기 짝이 없는 꼴에 흥분한 리안이 그녀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멍한 얼굴로 멍청한 소리를 흘리며 흔드는 대로 흔들려주었다.

“…시간차로 회복될 거면 미리 알려주라고! 힝!”

겨우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제 마음고생이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든 말든 리안은 어이가 없어 손으로 이마를 치려다가 손이 손 싸개(아기들이 손을 입에 넣지 않도록 손까지 덮여있다.)를 보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왜 하필 이런 꼴을…! 당신은 내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으으음, 0살이지 아무래도? 이제 막 신이 됐으니까?”

“무, 뭔 어,예? 네?”

우다다다 개그 신을 나무라려던 리안은 ‘0살’,‘신’ 발언에 혀를 살짝 깨물고 말았다. 개그 신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뻗어 리안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화려한 헤일로를 끌어당겼다.

제자리를 찾으려는 듯 강한 반발감이 느껴졌지만, 그녀에겐 개미의 허우적거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봐봐, 이런 것도 생겼고 ~ 등에 날개도 생겼잖아 ~.”

“뭔 날개가… 우악! 이게 뭐야?!”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뒤를 슬쩍 돌아본 리안은 새하얀 날개 세 쌍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세 쌍의 날개는 격한 감정에 반응해 그대로 활짝 펼쳐졌다.

강한 외신을 꼭꼭 씹어 삼킨 덕분인지 날개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했다. 부드러운 빛 가루 따위가 흩날리는 게 신성 그 자체였다.

“아니, 이게..왜..?”

멍하니 제 등짝에 붙은 날개를 바라보던 리안이 휙 고개를 돌려 개그 신을 바라보았다.

“장난! 또 장난치는 거죠!?”

“에엥? 내가 그렇게 자주 장난을 쳤나?”

“몰라서 물어!?”

흥분한 리안이 재차 그녀를 짤짤 흔들려는 순간, 그녀가 두 손을 들어 항복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뒤로 물러났다.

“알았어! 진짜 제대로 된 증거를 보여주면 되잖아!”

“증거가 아니라 장난이겠죠! 빨리 이 이상한 거 치우고 옷도 돌려줘요!”

“아이참… 내가 착하니까 도와준다. 진짜.”

그녀를 그리 말한 후 가볍게 손을 튕겼다. 그러자 리안의 옷이 아기 옷에서 화려한 황금색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새하얀 옷으로 바뀌었다.

어느 시대 옷인지 옆구리부터 등까지 훤히 노출되었고, 골반에서 끈으로 묶여 고정되었다. 상의에서 이어진 하의가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왔는데 이건 안에 바지고 뭐고 없어서 원피스나 다름없었다.

“악! 제대로 된 옷을 달라고 망할 신아!”

“으이잉! 그거 그리스 로마 신화 스타일로 -… 어어..! 알았어! 그만 흔들어!”

그녀가 다시 한번 더 손을 튕기자 원피스 -… 아니 상의가 길게 길어져 발목까지 내려오고, 그 안쪽에 하얀 바지가 생겼다. 변태 코스프레 복장이 그나마 판타지 세계 신관 복장처럼 변했다.

‘여기서 더 바꿔달라 조르면 더 이상한 옷을 가져올지도 몰라. 저 망할 신이라면 백퍼센트 그럴 거야.’

마음 같아선 등도 덮어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이상하고 노출 많은 옷을 가져와 장난칠 게 뻔했기에 빠르게 포기했다.

‘다음 목표는 이 날개다.’

훤히 드러난 등이야 날개만 없다면 치렁치렁한 하의 쪽 천으로 덮어버리면 될 일이다. 날개를 없애고 장난친 값으로 바느질 도구를 달라고 하면 옷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다.

“쳇.”

리안이 더 이상 불만을 보이지 않자 개그 신은 작게 혀를 찼다. 리안이 눈치 빠르게 함정을 빠져나가자 얼굴 위로 진한 아쉬움이 넘실거렸다. 예상대로였다.

“후우… 자, 이제 이 거슬리는 -…”

날개를 없애달라고 하려는 순간, 그녀가 리안의 뒤쪽을 가리키며 “아앗! 저건!”하는 어처구니없는 연기를 펼쳤다.

개그 세계 특, “아앗 저건?!”하는 상황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며 무시하면 이상한 게 날아와 공격한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면 “속았죠? 멍청하죠?”하는 말과 함께 뒤통수가 갈겨진다.

생존 방법은 단 하나! 두 방향 다 볼 수 있도록 몸을 반만 돌린다!

절도있게 몸을 반만 돌렸다. 앞, 뒤 모두 한꺼번에 확인하기 딱 좋은 각도로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어…?”

새하얀 날개가 눈앞에서 펄럭거리며 신성한 빛을 흩뿌렸다. 문제는 날개의 주인이 리안이 아니라는 거였다.

하얀 날개가 대비될 정도로 새카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천사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붉은 눈동자 속에 리안을 담았다.

“엘..렌시아?”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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