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4

   벨마가 자신의 두 손으로 입을 가로 막고 내가 입을 닫음에 따라 이 자그마한 공간에 침묵이 자리 잡는다.

   

   뒤편에 서 있는 두 남자는 곁눈질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은 거겠지. 여태까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해보았을 때는 별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지금부터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하겠지만 이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려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리가 있나. 기껏해야 벨마를 다그치는 것 정도겠지.

   

   “벨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대뜸 고함을 내지르는 행정 교수를 보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으음. 할배가 고민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었더니 나도 이 쪽 능력이 늘었나봐. 상황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 버리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두 사람을 조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카데미 내부이기에 안전이 지켜지는 데에도 한계가 있거든.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귀족의 억지로부터 이들을 지켜줄 뿐. 저들의 잘못이 명확하다면 굳이 귀족과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것이 상당한 지위를 갖춘 인물이라면 더더욱.

   

   단적으로 말해 내가 두 사람을 고발하면 둘의 아카데미 생활은 끝나버릴 거다. 그 뿐만 아니라 귀족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잘은 몰라도 처벌의 수위는 상당할 거다. 평민이 귀족을 건드린 일이니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라도 엄하게 대할 터.

   

   문제는 그렇게 해버리면 벨마도 휘말리게 될 거라는 거지. 어쨌든 그녀도 이 일에 연루되어 있으니까.

   

   평민으로 시작하면 싫든 좋든 자주 보게 되는 캐릭터인만큼 난 그녀에게 정을 가지고 있다. 굳이 그녀까지 묻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 생각해보니까 문제가 하나 더 있네.

   

   이 두 사람이 어중간하게 처리된다면 평민 집단이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강하게 적의를 보일 거라는 것. 위협적이진 않지만 귀찮단 말이지.

   

   <네 마음대로 한 번 해보거라.>

   ‘네?’

   <어차피 네가 좀 실수한다고 해서 크게 틀어질 상황도 아니잖으냐.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실력이 늘지.>

   

   그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여쭤본 건데 이런 대답을 돌려주시면 곤란한데요. 한 번 투정을 부려보았지만 할배는 완고했다.

   

   <중간중간 조언을 해 줄 테니 최대한 알아서 해 보거라.>

   

   어쩔 수 없나. 만약 문제가 생기면 몽땅 다 할배 탓이니까 알아서 해결하라 그래야지.

   

   할배에몽의 배신에 마음이 쓰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머리를 굴렸다.

   

   우선 정해야 하는 건 지금 내가 처리하고자 하는 목표.

   

   첫 번째는 벨마의 안전. 두 번째는 평민 집단이 감히 내게 대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처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후자를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윗놈들이 갈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 경고하면 저 알아 몸을 사릴 테니.

   

   어려운 건 전자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벨마의 평온한 아카데미 생활은 사라져 버릴 것 같거든.

   

   가만 내버려 두면 다른 평민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 같고. 내가 얘 건드리면 같이 조져주겠다 말을 하더라도 외톨이가 될 뿐이지 않은가.

   

   항상 옆에 데리고 다니는 거? 그 방법도 생각은 해봤다. 근데 머릿속으로 그 풍경을 상상해 본 후에 바로 폐기해 버렸다.

   

   입이 험한 나. 인상이 험한 조이. 제멋대로인 프레이. 가끔 찾아오는 3왕자 아서.

   

   이 속에 소심한 평민 여자애를 던져 넣으라고? 이건 그냥 괴롭힘이잖아. 위에 구멍이 뚫려서 졸업 전에 죽어버릴 걸.

   

   으으. 뭐 적당한 방법 없나?

   

   믿고 맡겨 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 비시!

   

   존재감이 희미해 여태까지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벨마를 향하는 괴롭힘은 내가 다 조져 놓으면 알아서 사라질 테고. 친구문제는 비시한테 떠넘겨 버리면 대부분 해결되겠지! 비시 걔는 나와는 다르게 친구가 많아 보였으니까!

   

   명쾌한 해답을 찾아낸 나는 기쁨의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행정 교수와 평민 남자는 여전히 벨마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잘못을 떠넘기지 못하는 순간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안타까운 일이다.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하는 저들은 이미 화살이 쏘아졌음을 모른다. 활시위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것이란 헛된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 알려줘야지. 저들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다?♡ 내가 입을 열어도 된다고 했던가?♡ 왜 자꾸 돼지들이 꿀꿀대는 소리가 나지?♡”

   

   내가 다시금 입을 열자 다시금 이 곳에 적막이 감돌았다. 세 사람의 불안한 시선이 나를 향한다.

   

   입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면 할 말이 참 많은 듯 했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잡다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내 생각이 바뀔 리 없었으니까.

   

   “거기 조잡하게 생긴 평민 나부랭이♡”

   

   난 우선 남자 학생을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어? 생긴 것처럼 뇌도 대충 만들어진 거야?♡ 태어날 때부터 미완성이구나?♡ 쿡. 재밌는 사람이네♡”

   

   그의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 것을 확인했지만 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녀석이 폭발해서 달려들더라도 간단히 박살낼 자신이 있었기에.

   

   “있지~♡ 내가 요즘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거든?♡ 개허접 평민들이 허접 성녀랑 가까운 날 질투한다지 뭐야?♡”

   “…예?”

   “처음에는 별 신경 안 썼어. 그야 내 잘못인 걸. 내가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 질투하는 거니까♡ 근데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참 많이 생기더라고♡”

   

   남자의 앞에서 내가 오늘 겪었던 여러 불행을 나열했다.

   

   보통이라면 그저 불운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일들. 너무 과민하신 거 아니냐는 말을 할 수 있는 일들.

   

   허나 남자도. 행정 교수도. 벨마도. 그런 변명을 떠올리지 못했다. 도발 때문에 활활 타고 있는 저들의 머릿속에 어찌 정상적인 생각이 스칠 수 있겠는가.

   

   “자. 조잡한 평민?♡ 뇌가 부족한 너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줄게♡ 네 조잡한 입술이 좀 가벼워지면 네 잘못도 좀 가벼워 질 거야♡”

   

   남자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저기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 모양새이려나.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썅년일까? 건드려선 안 됐단 생각이 들게 하는 무서운 년일까? 어느 쪽으로 가던 좋은 사람으로 비치진 않겠네.

   

   남자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불안감을 느낀 걸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행정 교수가 목소리를 냈다.

   

   “…알른 영애?! 지금 무슨 이야기를.”

   “돼지씨?♡ 넌 가만히 꿀꿀대고 있으렴♡ 안 그럼 진짜 돼지우리에 처박아 줄 테니까♡ 아. 참. 마조 변태라서 그 쪽이 좋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

   

   네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아카데미 측은 나한테 잘못을 저지른 게 좀 많아.

   

   입학식 때의 일. 아서와 대결할 때 있었던 일. 그리고 아카데미 거리에서 악신의 사도에게 습격당한 일. 모두 다 각 잡고 따지기 시작하면 일이 커지는 것뿐이지.

   

   덕분에 교장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밖에 없단다.

   

   네가 루카만큼 인맥이 넓고 평판이 좋다면 골로 보내기 어렵겠지만 넌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잖아?

   

   사회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머리가 날아가기 싫다면 닥치고 있는 편이 좋을 거야.

   

   평민의 지위로 아카데미에 오랫동안 머문 그는 내 말 뜻을 어렵잖게 눈치 채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눈치를 조금 더 빨리 발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뭐 어때. 이제부터는 아주 잘 해 줄 건데. 살고 싶어서라도 여러모로 내 편의를 챙겨주지 않겠어?

   

   목줄이 걸린 노예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금 남자 쪽을 바라본다.

   

   행정 교수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그는 내 눈을 마주하고는 어깨를 떨었다.

   

   “말…말하겠습니다.”

   

   *

   

   평민 집단의 주축이 되는 것은 보통 2학년이다.

   

   1학년들은 아카데미에 관해 아는 바가 없기에 집단 내에서 큰 역할을 하기가 어렵고.

   

   대부분의 3학년들은 졸업. 그리고 졸업을 하고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평민 집단의 결정권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도 2학년 학생 중 한 명이다.

   

   대상의 아들로 태어나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육을 받은 끝에 소울 아카데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는데 성공한 마네는 오늘 있었던 일을 여러 사람들에게 듣고서 머리를 싸맸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이야기였다. 알른 가문의 영애를 건드렸다니!

   

   마네는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아비의 위광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망나니였지만 최근에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드높은 재능을 펼쳐 보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날선 성미는 여전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사람.

   

   읽고 있던 종이를 내던진 마네가 책상을 내리치자 그 근처에 있던 이들이 어깨를 움찔거린다.

   

   “누가 지시한 거야?”

   

   귀족에게 장난을 치는 것? 해선 안 될 행동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 상대만 잘 고른다면 큰 문제가 되진 않으니까.

   

   허나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루시 알른은 건드려서 좋은 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왕을 상대로도 제 성격을 그대로 내비치는 미친년이다.

   

   한참은 깔보고 있을 평민이 상대라면. 그것도 그 평민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이라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마네는 확신했다. 이 일이 평민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대답해!”

   “…저. 마네.”

   

   마네가 재차 소리를 치자 회의실에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목소리를 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뭐?”

   “어차피 일을 저지른 녀석한테 떠넘겨지고 그만이야. 짜증나는 귀족한테 장난치고, 마음에 안 드는 1학년들 교육 좀 시키고. 평소에도 하던 일이잖아?”

   “그래. 맞아. 어차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고.”

   “성녀님에게 편애받는 썅년한테 좀 장난 칠 수 있는 거 아냐?”

   “…야. 돌았어? 그게 무슨.”

   “왜! 뭐!”

   

   멍청한 이들 몇 명의 이야기를 들은 마네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한 명의 돌출행동이 여러 명이 얽힌 일이라고?

   

   오. 위대하신 주신이시여. 어찌 이런 병신들을 제 동료랍시고 놔두셨나이까.

   

   아. 저도 병신이라서 그런 겁니까? 인정합니다. 바로 탈출하지 않고 여태까지 병신들을 이끌었으니 저도 병신이지요.

   

   기도를 하다 참혹한 현실을 깨달은 마네는 저들에게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이라도 병신 무리에서 탈출하기 위해.

   

   “좀 비켜 줄래? 닿으면 허접 냄새가 옮아버릴 것 같단 말이야.”

   

   회의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마네는 보고 말았다.

   

   평민 기숙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알른 영애의 모습을.

   

   자신을 포착한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날카로운 웃음을.

   

   오. 씨발. 신이시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