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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4

    <224 – 나 화났어>

     

    꼬마숙녀는 마냥 순진한 아가씨가 아니다.

    재단의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런 아가씨가 마냥 착한아이일 리가 없었다.

     

    “아카디아 공녀라면 당신들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상대가 나빴습니다.”

    “끄륵, 큭!”

    “제게 그 이야기를 전한 시점에서 저는 당신들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공녀가 꼬마숙녀를 미워하게 되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삐에로가면단은 오크노디를 따른다.

    그들은 아이를 유괴하는 인신매매조직이다.

    노예거래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들이 깡통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시점에서 지젤의 정보원들은 그 얼굴을 알아보고 그들의 실체를 이미 전달하였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협박에서 지젤은 오크노디의 서커스훈련법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도 짐작해낼 수 있었다.

    오크노디는 저들의 교육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인격이 형성될 어린 나이부터 잘못된 성장을 거쳤다.

    순수함 속에서 때때로 내비치는 섬뜩한 일면은 저런 자들의 교육으로 인해 잘못 주입된 상식이겠지.

    어쩌면 이미 손을 더럽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삐에로가면단을 미끼로 쓴 것이라면.

    자신을 교육하고 잘못된 상식을 불어넣으며 악의 길을 걷도록 강요했을지도 모를 이들이라면.

    동료, 동기, 친구.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녀와 함께 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해 저들의 손으로 죽거나 팔려나갈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을 오크노디라면.

     

    “당신 같은 것들이 이용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동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실은 무겁지만 그가 오크노디를 저버릴 정도로 충분히 무겁지는 못했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이유와 자격, 행위에 합당한 인과가 있었다.

     

    “끄륵!”

    “쉬이이. 고통은 짧습니다. 조용히 가십시오.”

    “끄르르륵…”

     

    숨이 멎은 시체를 근처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지젤은 손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뒤처리는 부탁합니다.”

     

    정보원들이 청소부 차림으로 쓰레기통을 들고 대로변으로 대놓고 운반하였다.

    더러운 청소부의 등장에 눈살을 찌푸리며 멀리할 뿐, 시민들은 내용물을 의심하지 않았다.

     

     

    * *

     

     

    당했다.

    진흙 위를 구르는 삐에로가면 하나의 등을 짓밟으며 세비체 가문의 간부는 깨달았다.

     

    “공녀님께서 재단의 다른 졸개들과 손을 잡았군.”

     

    와이히엠하이 재단.

    그들과 세비체 가문은 오랜 연을 맺어왔다.

    세비체 가문은 재단이 필요로 하는 어린 아이들을 공급해주고, 재단은 성장한 노예들을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로서 공급해준다.

    명령에는 복종하고 때때로 손을 더럽히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훌륭한 인재들을.

    인적자원의 거래는 곧 상회 간 거래, 조직 간 교류로 이어졌다.

    세대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사람이 없다면 세비체 가문의 부가 한 순간에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게 된다.

    가문이 거대해진만큼 재단 역시 거대해졌다.

    그들이 손을 잡은 재단파벌과 공녀님이 손을 잡은 재단파벌이 다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어렵군. 파벌싸움이라면 절대로 지는 쪽에 선을 대어서는 안 된다…”

     

    여느 파벌싸움이 그렇듯이 힘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파벌에 속한 모두가 줄줄이 잘려나간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줄을 선택할 자격은 없다.”

     

    약자들은 언제나 강요받는다.

    이 손을 잡으라고.

    잡지 않으면 널 그 자리에서 쫓아내겠다고.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네 생명마저도 박탈하겠다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협박으로 시작해서 가문의 치부에 개입하고, 이제는 남의 일이라며 줄을 갈아타기에는 너무 늦었다.

    줄을 잡는 순간, 그들이 그에게도 공범이 되기를 강요했으니까.

     

    “공녀님이 그 비자금을 들고 사라진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

     

    공녀의 모습은 간단히 알아보았다.

    로브 하나 쓴다고 가려질 외모가 아니니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카디아 공녀는 문무를 겸비한 총명한 인재.

    변장하고 잠복했다고 몰라볼 공녀님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아카데미로 향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가문에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거나 이대로 달아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철없는 녀석들.”

     

    한숨이 앞선다.

    저들의 손은 대장 격인 자신보다는 덜 더러우니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 건가?

    짧다.

    짧아도 너무 짧은 생각이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모르겠습니다. 왜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겁니까?”

    “가문이 망하더라도 그 재산을 노리는 추적자는 끝까지 우리 뒤를 쫓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산에는 우리들의 목숨 또한 포함되어 있다.”

    “…!”

    “더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야 하나?”

    “도망칩시다. 간부님도 함께 간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네게는 이보다 알기 쉬운 설명이 필요했군.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도 부족했어.”

     

    간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서 새어나온 연기가 마지막까지 잠적을 권하던 부하의 얼굴을 감쌌다.

     

    “컥! 컥, 커헉!”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목을 부여잡고 가슴을 쿵쿵 치며 괴로워하는 부하.

    그의 원망어린 시선에 세비체 가문의 감시자들을 이끄는 감시대장 클라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나는 몇 번이고 기회를 주었다. 허튼 생각은 말라고. 순순히 포기하라고. 그래도 너는 알아먹지를 못했지.”

    “크허억! 흐어어어어…!”

     

    호흡을 빼앗긴 부하의 다급한 몸부림은 그저 몸부림에 불과했다.

    몸이 건재해도 감히 승리를 논할 수 없었을 실력차이가 있는데 심지어 지금은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몸에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클라우드는 마구 휘두르는 칼질을 피해 가볍게 검손잡이를 손으로 빼앗아 쥐고 다리를 걷어차 고꾸라뜨렸다.

    무기를 떨어뜨리고 목을 쥐며 바닥을 기는 부하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평생을 가문에게 쫓기며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바에야 이 짧은 고통이 차라리 낫다.

     

    “보아라. 이것이 배신자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죽음이다.”

     

    비참한 몰골로 숨이 멎은 이를 보며 다른 감시자들의 눈에 공포심이 어렸다.

     

    “사랑과 우정을 꿈꾸는 학창생활. 내일과 미래를 꿈꾸는 직장생활. 그런 것은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가문은 은혜를 베풀었다. 재단 또한 은혜를 베풀었다. 그 은혜를 갚아라.”

    “상대가 재단의 다른 파벌의 지원을 받는 공녀님과 수석장학생이어도 말입니까?”

    “너희를 키워준 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니까.”

    “…무얼 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이제야 올바른 소리를 하게 되었군.

    클라우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아카데미까지는 거리관계상 한 번의 전송진으로 이동할 수 없다. 우선 아카데미로 넘어가는 마지막 전송진을 이용하기 전에 따라잡는다. 그 뒤에는…”

     

    언제나 당돌했던 공녀님의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이제는 아쉬움을 느껴야겠지.

     

    “그 뒤에는 나의 마법으로 비를 내리겠다. 비가 내리는 동안 전송진은 작동할 수 없지. 그 10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설욕할 기회다.”

     

    실패하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세비체 가문 감시대의 추적이 시작되었다.

     

     

    * *

     

     

    “하필이면 비가 내리네.”

     

    다음 전송진이 가동하기까지 기다리던 아카디아가 창밖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으에, 싫다…”

    “디는 비가 싫나요?”

    “비가 내리면 까다로운 이벤트가 찾아오는걸요.”

    “후후. 그러네요. 주간이벤트로 집중호우보가 찾아올 때에는 정말 깜짝 놀랐죠? 아침에 보트를 타고 등교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그렇기도 하고요.”

     

    언제나 그렇듯 묘하게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를 하는 오크노디.

    이에 지젤은 슬그머니 정체를 감추고 자신을 경호하던 비밀호위에게 다가갔다.

     

    “경계상황은 어떻습니까?”

    “방금 막 통신방해마나역장이 펼쳐졌습니다.”

    “…!”

     

    무언가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생각하기 무섭게 전송소 창문을 깨고 불이 붙은 폭탄이 날아들었다.

     

    쾅!

     

    폭음과 함께 무너지는 균형감각.

    자동방어막 기능으로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화약을 동원한 시점에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폭탄은 어느 나라에서든 사용처가 엄히 한정되는 국가관리물품.

    채굴. 토벌. 전쟁.

    사용하고자 하면 모두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위험물질이다.

    그것을 테러에 사용했다면 상대는 역시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다.

     

    “세비체 가문의 감시자들입니다. 놈들이 이곳까지 쫓아왔습니다.”

    “이걸 포기하지 않고 쫓아왔다고? 아카디아를 죽여서라도 비자금을 되찾을 작정이구나! 당장 아카디아를 지키러 가십시오. 늦었다가는…!”

     

    앞선 폭발음보다 더한 진동과 화력이 모퉁이 너머에서 전해졌다.

    그 충격만으로도 몸이 붕 떠올라 복도 바닥을 나뒹굴게 될 정도.

    설마 이미 늦은 건 아닌지 식은땀을 흘리며 대기실로 돌아간 지젤의 눈에 난장판이 된 대기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카디…!”

     

    이름을 불러서라도 찾아내고 싶다.

    그녀가 무사하다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일이 그릇되지 않았음을 보고 싶다.

    거대한 불안에 떠밀리듯이 열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저 안,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는 아카디아가 대답을 한다면 그 소리는 포연 너머의 적에게도 확실하게 들리고 만다.

    자신의 불안을 달래려는 얄팍한 짓이 그녀를 확정적인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이다.

     

    -동요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카데미의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미래가 너희들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여길 나오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강해져라. 강함은 너희에게 건강한 신체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자신감을 선사한다.

     

    교수들이 강의를 하며 이따금 해주었던 이야기.

    그것들이 지금의 그에게 평정심을 불러 넣어주었다.

     

    ‘이미 소리를 냈어.’

     

    비밀호위의 어깨를 잡아끌며 위치를 옮기기가 무섭게 그들이 있던 곳에서 또 다시 폭탄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광산이라도 털어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끝을 모르는 폭탄의 등장.

    쑥대밭이 된 실내에 유리파편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입니다.’

     

    호위의 마법이 소리가 들린 창가를 강력한 염동마법으로 후려갈겼다.

    창턱을 막 넘어 유리조각을 밟았던 감시자 한 명의 육신이 벽과 충돌하며 뼈가 접혀서는 안 될 방향으로 접히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

     

    지젤의 직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연기 속에서 날아드는 날붙이를 쳐내다가 발치로 구르는 폭탄을 발견한 비밀호위.

    그가 염동마법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역장을 펼치기 무섭게 무형의 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밀호위가 피를 후두둑 쏟아내며 쓰러졌다.

    다음은 자신이다.

    그리고 저 연기 속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아카디아와 오크노디의 차례다.

    지젤은 후회했다.

    만일 이럴 때에 함께 싸울 인력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크노디를 지키고자 했던, 아카디아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자 저질렀던 삐에로가면단원의 살인이 도리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쾅!

     

    몰려드는 초조함 너머, 한 번의 굉음이 그 모든 흔들림을 집어삼켰다.

    뻥 뚫린 건물벽.

    연기 너머로 걸어 나온 누군가가 어디선가 주워든 우산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손장난을 쳤다.

     

    “아 정말. 비 오는 이벤트는 이래서 싫다니깐. 먼지는 잔뜩 먹고, 옷도 엉망진창이 될 뻔하고.”

     

    쏟아지는 빗방울.

    부상자의 신음소리.

    겨누어지는 살의어린 시선들.

    그 모두를 받아내듯이 우산이 슬며시 들렸다.

    순둥순둥한 강아지를 닮은 오크노디의 적안이 어지간히 화가 난 수준을 넘어서 거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역삼각형이 되었다.

     

    “전부 다 죽이지 않으면 안 끝나는 이벤트잖아.”

     

    붉은 색의 광채를 자아내는 눈에 암흑마나가 깃들며 서서히 핏빛광채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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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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