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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솔직히 법국의 아이디어는 꽤 똑똑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 목숨을 무슨 기계 부품 생각하듯 한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긴 했지만, 시대가 이런 시대 아니던가. 게다가 원래 이런 세계관에서는 종교쟁이들이 누구보다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물론 이쪽 세계의 종교는 세상을 지배할 정도로 강성한 것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서 당당하게 종교재판 따위를 벌였다기에는 자기네들이 재판 당하는 위치에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신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서브컬쳐 종교인 캐릭터 특유의 집단광기는 소재로 쓰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리라.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한테는 기회가 무한히 있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하거나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대답을 듣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된다는 소리다. 설령 저 치유 장치로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급사하는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쿨럭!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리면서 추기경을 방안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말로 듣는 대답을 원하기도 했고, 남은 한 손으로 가리켜보라고도 했다. 다행히 추기경이 고통스럽게 죽기 전까지 몇 초 정도는 시간이 남아서, 대략 추기경이 하고자 한 대답을 추측하기에는 충분했다.

        

       “…….”

        

       열두 번째 정도 되었을까.

        

       그때부터는 굳이 추기경에게 질문도 하지 않았다.

        

       추기경이 죽기 전에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1층 홀의 구석진 곳에 있는 책장.

        

       크고 작은 여러 판본의 경전들이 꽂혀있는 책장이었다.

        

       고전적이네.

        

       저 책 중 하나를 밀거나 당기면 열리는 구조일까?

        

       하지만 법국도 마냥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내가 그곳에 있는 경전 하나하나를 전부 꺼내 보아도, 스위치가 되는 책이 보이지는 않았다. 책장이 옆으로 돌아가면서 비밀 문이 되지도 않았고, 갑자기 바닥이 꺼지면서 지하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추기경을 돌아보았다.

        

       추기경은 아직 살아있었다. 이번에는 굳이 질문을 하진 않았으니까.

        

       몇 번의 질문에서 공통적으로 책장을 가리켰다는 것은 분명히 여기에 방법이 있다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조금 더 복잡한 방법일지 모른다. 단순히 스위치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복잡한, 몇 초 내로 피를 토하며 설명하기에는 다소 긴 방법이.

        

       흠.

        

       마지막으로 꺼낸 경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누구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다짜고짜 책장으로 가 책을 살펴보는 나를 보고, 추기경이나 기사들은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 정도로는 ‘비밀 누설’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아닌지, 아직 아무도 피를 토하지는 않았다.

        

       사실, 경전을 전부 읽을만한 시간은 되었다. 어쩌면 경전의 어느 부분을 소리를 내 읽거나, 경전의 순서를 바꾸거나…… 뭐 그런 방법이 통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문득 2층에 있을 추기경의 한쪽 팔이 생각났다.

        

       음.

        

       *

        

       이쪽 세계에서 마법의 기초에 대해서 대충 배우긴 했지만, 역시 마법이라는 건 물리법칙만큼이나 오묘한 구석이 있다.

        

       물리법칙도 얼핏 보면 이해하기 쉬운 수식으로 이루어진 절대적인 법칙 같지만, 미시세계로 들어갈수록 양자역학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얽히기 시작하며 우리가 이해하기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괴상망측한 내용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마법도 단순히 주문을 외우는 것 이상으로 그 법칙이 복잡했다.

        

       그러니, 나는 어째서 ‘추기경의 잘린 오른손’에 이 장치가 작동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기경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책장의 경전을 만져야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른손의 지문이나 뭐 그런 게 등록되어있었을 뿐인지.

        

       뭐, 내가 굳이 그런 법칙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걸 생각하는 것은 만드는 이들의 몫이다. 이용하는 처지에서는 그냥 열리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소리다.

        

       “결국 당신들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나는 쓰고 남은 오른손을 추기경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팔뚝이 그대로 사라져버린 오른손이라 다시 붙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잘린 자기 오른손을 반사적으로 받았다가, 추기경은 기겁하며 얼른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폰으로 아이들을 죽여버리려고 했던 인간치고는 비위가 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폰이라는 강대한 생물을 조종하려고 했고, 그래서 그 조종을 위해 당신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있었겠죠. 그냥 처음부터 기사들만 남겨두고 당신이 도망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일인데.”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를 경계하고 있다면, 내가 너무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춘 나머지 이런 잔재주 따위는 전부 꿰뚫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내 시선을 직접 보지 못한 이들의 눈에는 지금도 그렇게 보이겠지.

        

       내 일행 중에서 나를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앨리스, 클레어, 레오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 세 명은 이미 내가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내 능력에 대해서 감을 잡은 인물들이었고. 특히 앨리스는 아예 어떤 능력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래, 나라도 그럴 거다. 이런 비밀기지 같은 곳에 들어왔더니 갑자기 여기까지 직통으로 오는 최단코스를 죄다 외워서 안내하고,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약점을 한눈에 알아보고 적을 효율적으로 무력화시킨 뒤 아예 숨겨진 공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찾는다면.

        

       내가 생각해도 ‘개연성 너무 없지 않냐!’하고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데.

        

       “…….”

        

       입을 헤 벌리고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한차례 둘러보고, 나는 다시 열린 바닥을 보았다.

        

       아까 그리폰이 있던 홀 중앙.

        

       그곳의 문이 열려있었다.

        

       내가 원작에서는 본 적 없는 곳이었다.

        

       그래, 그리폰이 ‘거기’ 서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겠지.

        

       법국이 마법으로 급하게 만들어낸 공간일까.

        

       “……같이 가시겠습니까?”

        

       내가 일행을 향해 그렇게 물어보자, 다들 고개를 돌려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볼 때는 조금 전의 당황한 표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괜히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

        

       급조된 곳이라고 하기에는 꽤 넓은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위쪽의 공간처럼 마냥 정돈된 곳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공간을 확보하여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듯한 공간.

        

       굳이 이 아래 만들어진 건, 여기가 가장 안전한 ‘심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황제가 법국을 공격했을 때를 대비해서 무언가를 숨겨두기라도 한 것일까? 법국에 두어서 강탈될 바에는 쉽게 공격할 수 없는 곳을 선정하여 숨겨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생각은 꽤 탁월한 생각이었다.

        

       “이건…….”

        

       칠흑 같은 어둠의 끝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여기저기 깨진 것처럼 금이 가 있었지만, 일부분이 ‘분명하게’ 완성되어있는, 하나의 물건.

        

       “이건, 설마.”

        

       내 어깨 너머로 그 물건을 바라보던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잠깐.”

        

       나는 물건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손으로 뒤쪽의 인원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저건…… ‘지보’였다.

        

       심지어 일부분이 완성된. 법국에 있는 모든 물건을 끌어다가 완성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엄청나게 열심히 조각을 모으고 다닌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극히 일부분이긴 했지만— 그 일부분만으로도 생김새가 ‘명백하게’ 보일 만큼 완성된 조각.

        

       깨진 톱니바퀴의 귀퉁이처럼 보이는 그 물건은, 급하게 파낸 홀의 지하 한가운데 있는 전시대 위에 조용히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다시.

        

       *

        

       시간은 제대로 돌아왔다.

        

       내 능력은 봉인되지 않았다.

        

       적어도 가면녀가 여기 있지는 않았다. 저 지보 조각이 나의 능력을 막는 기능을 하지도 않았다.

        

       어째서?

        

       황제로부터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서 위치를 옮겨온 것이라면 알겠다.

        

       하지만 ‘지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 가면녀가 나타났었는데—

        

       “언니? 무슨 일이야?”

        

       내 어깨 너머로 클레어가 빼꼼 고개를 내밀면서 말했다.

        

       “……조심할 필요가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지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까이 갈수록, 지보는 점점 더 빛났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는 듯, 여기서 우리가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듯—

        

       ……아.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지보가 ‘환영’하고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니었다.

        

       직감으로 느끼거나, 어떤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보에서 점점 강하게 흘러나오는 빛이 향하고 있는 곳이,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보에서 갈라지듯 나온 빛은, 내 뒤쪽 양쪽에 서있는 클레어와 앨리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클레어 쪽을 향하고 있는 빛이 훨씬 더 강했다.

        

       “……하.”

        

       그리고 나는 그제야, 게임상에서 클레어가 사망한 뒤 황제의 계획이 산산조각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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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독자 여러분께 가장 듣기 좋은 말을 꼽아보라면 역시 잘 보고 있다는 한마디입니다. 제 글을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글 쓰는 보람이 느껴지고, 한글자 한글자 써나가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세상을 써내려가는 것은 즐겁지만, 그 즐거움을 나눌 상대가 없다면 결국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질리게 되겠죠. 여러분께서 꾸준히 저의 글을 따라와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꾸준히 읽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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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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