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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225화. 계기 ( 5 )

       

       

       

       

       

       탓, 타타탓!

       

       제비처럼 표횰하게 절벽을 오르던 데이지가 가벼운 소리와 함께 정상에 내려앉았다.

       손에는 붉은 안개가 겹겹이 쌓여 휘감긴 채였고, 해맑고 순수하던 눈에는 전사의 기백이 가득 들어찼다.

       

       “후우…”

       

       심호흡하며 길게 숨을 뱉는다.

       

       그와 동시에 데이지의 몸에 깃들어 있던 전사의 업(業)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노력 없이 쌓은 업은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과도 같은 것이라.

       

       푸쉬이익…

       

       데이지의 몸 주변으로 짙은 안개가 흘러나온다. 전사의 업을 담은 안개가 소녀의 몸에서 빠져나오다가, 일부분은 소녀의 호흡을 따라 다시 흡수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흡수된 안개는 소녀의 몸 깊은 곳에 잠들었다.

       언젠가 개화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덩어리가 된 채로.

       

       전사의 업을 담은 안개가 점차 소녀의 몸에서 사라지니, 점차 본래의 눈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아…”

       

       온몸에 힘이 풀린다.

       제 것이 아닌 힘에 휘둘려 한계를 넘어서까지 몸을 혹사했으니,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통증을 호소했다.

       

       “아, 으그그! 아으윽…!”

       

       근육통에 비명도 안 나온다. 

       바닥을 뒹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절로 비틀리는 몸짓에도 근육이 아려온다.

       

       햇빛에 말라가는 지렁이마냥 땅을 기어서 데이지가 절벽의 끝으로 향했다.

       

       가만히 누워서 근육통이 끝나기를 기다려도 모자랄 상황에 구태여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 까닭이 있었다.

       

       하나는 절벽을 오르면서 한스-오크의 목소리를 들었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 하늘다람쥐들이…!’

       

       그녀가 절벽을 오르며 쳐내고 던지고 발로 찼던 하늘다람쥐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하늘다람쥐들이 데이지를 향해 끊임없이 몰려든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녀석들에게 살의는 없었다.

       그저 데이지의 몸에 달라붙어서 방해하고자 하였을 뿐.

       

       그것만으로도 절벽을 오르는 다른 이에게는 굉장한 위협이었겠지만, 붉은 안개를 손에 두른 데이지에게는 그리 큰 위기도 아니었다.

       

       데이지는 스스로 힘에 취한 나머지 과하게 대처했다고 느꼈다.

       하늘다람쥐들을 몸에 붙인 채로도 충분히 올라올 수 있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절벽 끝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눈을 뜨면 끔찍한 참사가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다람쥐들이 납작하게 터져서 바닥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면…

       

       꾹 눈을 감은 채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슈왁!

       

       “히야앗!”

       

       무수하게 떼를 지은 하늘다람쥐들이었다!

       

       바글바글하게 무리 지은 하늘다람쥐들이 데이지의 코 앞을 스쳐 지나가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뒤로 넘어진 데이지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하, 하늘다람쥐가… 원래 저렇게 하늘을 날던가…? 아니, 애초에 무리를 지어서 난다고?’

       

       다행스럽게도 절벽 바닥에 하늘다람쥐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커다랗게 무리 지은 하늘다람쥐들은 데이지의 머리 위를 몇 차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경애를 표하는 모습.

       

       귀엽게 생겼지만 하늘다람쥐 역시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강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일까?

       

       그렇게 몇 바퀴 회전하던 녀석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마치 철새처럼.

       

       “…어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데이지가 다시 절벽을 내려봤다.

       

       “!”

       

       한스가 서 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데이지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스ㅡ! 한스! 내 말 들려요?! 한ㅡ스!”

       

       그동안 은근히 ‘한스 님’에서 ‘한스’로 거리를 좁힌 데이지였다.

       열심히 손을 흔들던 데이지가 천천히 손을 멈췄다. 오크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크가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까? 절벽이 너무 높았나? 

       

       “한…스?”

       

       올라갔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간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데이지는 오크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가만히 서 있던 오크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탓!

       

       “크워어!”

       

       높이 뛰어오른 오크의 근육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병사들을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몸집으로 불어난다.

       

       올곧고 거대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화산처럼 이글거리며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것이 불꽃의 올바른 쓰임새.

       

       텁, 텁!

       

       절벽을 두 손으로 붙잡고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절벽의 중간까지 도달했다.

       

       “빠르다…”

       

       엄청난 속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데이지가 살짝 혀를 내둘렀다.

       

       신께서 오크가 시작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이해가 간다.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절벽의 정상까지 거의 다 올라온 오크.

       데이지가 조심스레 뒤로 물러나며 오크가 설 자리를 만들어 줬다.

       

       

       “어, 그으…”

       “크후으ㅡ”

       

       말없이 태양을 등지고 선 오크가 데이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라면 곧장 붙잡았을 것이지만… 어쩐 일인지 데이지는 조금 머뭇거렸다.

       

       ‘…뭐지? 뭐가 조금… 달라졌는데.’

       

       분위기? 기세? 아니면, 눈빛?

       

       오크의 뭔가 변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도 흐릿한 무언가가.

       

       텁.

       

       잠시 고민하던 데이지가 오크의 손을 꽉 붙잡았다.

       

       분위기가 변하면 어떻고, 눈빛이 변하면 어떻겠는가.

       결국 앞에 서 있는 이가 한스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인 것을.

       

       데이지의 손을 맞잡은 오크가 천천히 데이지를 일으켰다. 데이지는 그제야 오크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역시… 변했다.

       

       이전의 흐리멍청하게 풀린 눈이 아니다. 또렷하고 총기가 깃든 눈동자.

       깊이 관찰하면 그 눈동자의 깊은 곳에 뭔가 이글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

       “…”

       

       오크와 데이지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쩐지 어색해진 공기.

       

       데이지는 바뀐 오크의 분위기에 당황하고 있었고, 오크는 뭔지 모를 눈빛으로 데이지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그, 저어…”

       

       어렵사리 데이지가 말문을 열었다.

       오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데이지는 그것을 묻고 싶었다.

       

       “크우… 데이지.”

       

       오크가 똑바로 말을 했다.

       특유의 강세가 들어간 발음 없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어, 어?! 지금 또, 똑바로 말을ㅡ!”

       “쿠흐으ㅡ 다친 곳은… 없니?”

       “네…?”

       

       깜짝 놀란 데이지.

       오크가 이렇게 또박또박 말을 하다니? 설마 기억이 돌아왔단 말인가?

       

       “한스 님! 혹시 기억이… 돌아오신 건가요? 인간일 때의 기억이 나세요?!”

       “한… 스? 그래, 기억나. 한스, 한스…”

       

       오크가 한스라는 이름을 몇 번인가 중얼거렸다.

       

       “그게 나의 이름… 그래, 맞아. 한스는 내 이름이었어.”

       “맞아요! 정말, 정말로 기억이 돌아오셨군요!”

       

       데이지가 근육통도 잊은 채 폴짝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기분 탓인지 인제보니 오크의 눈빛도 한스의 눈빛과 닮은 것 같았다!

       

       “끄후으으… 한스, 한스… 나는, 농부? 아니야, 사도…? 만신… 전?”

       “괜찮으세요? 한스 님! 한스!”

       

       오크가 혼란스러운지 머리를 부여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했다. 인간 시절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

       

       데이지가 혼란스러워하는 한스의 허리춤에 매달려 열심히 등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계기’를 말미암아 타오르는 불꽃이 머릿속에 자욱하게 낀 안개를 태운다. 흩뿌려지는 불씨에 안개는 속절없이 사라질 뿐.

       

       타오르는 불꽃은 오크의 것이기도 했으나, 오크의 우두머리가 된 한스의 것이기도 했으니.

       

       ‘계기’ 또한 한스의 것이었다.

       

       한참이나 잘게 흔들리던 한스의 눈동자가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제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투박한 초록색 발, 두꺼운 초록색 손, 헐벗은 초록색 상체.

       

       초록색, 초록색… 오크?

       뭐지? 왜 오크의 손과 발이 보이는 거지?

       

       “크우…아, 아?”

       

       내 몸이… 초록색이네?

       한스의 입이 크게 벌어지더니 데이지와 눈을 맞췄다. 

       

       “한스 님!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저예요, 저! 데이지!”

       “아, 어… 초록…? 내, 가? 오…크?”

       

       몇 마디 단말마 비스무리한 것을 중얼거리던 한스는 이내 자신의 몸이 오크의 것으로 변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쿵ㅡ!

       

       커다란 몸이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흙먼지를 자욱하게 날렸다.

       한스의 정신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

       

       

       

       “…ㅁ! …ㅡ 스 님! ㅡ 님!!”

       “우… 으음.”

       

       희뿌연 정신을 뚫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몸, 무거운 정신. 와중 끊임없이 누군가 이름을 부르고 있다.

       

       보그르르릅…

       

       끊임없이 가라앉는다. 어딘가로… 아주 깊은 곳으로…

       온 사방이 차가운데, 가슴 안쪽은 너무 뜨거웠다. 마치 심장에 용암이 흐르는 것 같다.

       

       ‘뜨거워…’

       

       보그르르릅…

       

       “…정말 미안해요. 이, 이런 걸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공기방울이 귀를 타고 지나가며 들려오는 환청일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쩐지 미안한 기색이 가득하다.

       

       “이건… 제가 최대한 줄여줄게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만들어 줄게요. 괴롭지 않게.”

       

       용광로처럼 뜨겁던 가슴 안쪽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치 화로의 불을 줄이는 것처럼, 아주 작은 불씨가 된 것이 느껴진다.

       

       “…아주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그건… 이제 당신 영혼의 일부니까.”

       

       여인의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진다.

       

       “그, 정말 미안해요… 이런 ‘계기’를 심어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제가 사과드릴게요.”

       

       왜일까?

       여인은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였다.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아아악ㅡ!

       

       갑작스레 몸이 위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세상이 위아래로 반전하고, 촉각과 후각, 촉각 따위가 정신없이 바뀌면서 온 사방이 빙글빙글 돌다가 뚝 떨어지는 싶더니ㅡ

       

       “허ㅡ억!”

       

       크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일으켰다. 번쩍 눈을 뜨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와락!

       

       “하, 한스 님! 한스 니임! 우와아아앙!”

       

       허리춤에 뭔가 매달렸다 싶어서 살펴보니 데이지였다. 그런데 데이지가 이렇게 작았던가? 무의식적으로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옮기다가 한스는 초록색 손을 보며 흠칫했다.

       

       ‘…아, 마지막 기억에는 분명.’

       

       내 몸이 오크였지.

       질 나쁜 악몽이길 바랐건만. 

       

       데이지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야가 높아진 것이다. 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아.’

       

       이 길의 끝.

       그곳에 다다르면 자신은 인간으로 돌아가리라.

       

       슥슥-

       

       한 손으로는 습관적으로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고, 다른 손으로는 제 몸을 살폈다.

       

       꾹꾹 근육을 눌러보고, 꽉 힘을 주기도 하면서 바뀐 몸을 살핀다. 한참을 누르고 주무르며 바뀐 몸을 살피던 한스가 표정을 구겼다.

       

       ‘뭔 힘이…’

       

       약하다.

       인간일 적 자신의 몸에 비하면 한참이나 약하지 않은가.

       

       꾸욱ㅡ

       

       있는 힘껏 주먹을 쥐어봐도 턱 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이래서야 겉보기에만 요란한 과시용 근육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도대체 뭐지?’

       

       심장 근처가 은근하게 따뜻하다. 마치 숯불이라도 대고 있는 것처럼 아주 작은 열기가 느껴졌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오는 목소리는 낮게 깔리며 잔뜩 갈라지는 저음.

       한스는 바뀐 제 목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으으… 한스 니임. 저, 저는 한스 님이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쓰담쓰담-

       

       우는 데이지를 열심히 달래며 한스는 저 앞을 바라봤다.

       

       하늘로 뻗어진 길고 장엄한 다리가 보였다.

       마치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다리처럼, 끝도 없이 길게 뻗어진 다리다.

       

       “!”

       

       다리를 살피던 한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다리의 위에 걸친 뭉게구름의 사이.

       

       ㅡㅡㅡ!

       

       “허…”

       

       구름을 뚫고 거대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데이지의 어린 나이는 이세계 근로법(없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바…!! 아쉽게도 중원을 피바?다로 만들 천마 데이지의 천마재림은…!! 다음 기회로…!! 어쩌면 머나먼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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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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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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