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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며칠 전의 일이다.

        

       “내가 왜……?”

        

       체육 위원장이 되어달라는 나의 말에, 남다운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야, 운동부 출신이잖아요.”

        

       내 말에 남다운은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꾹 눌렀다.

        

       “그러니까, 내가 운동부 출신이니 체육 위원장을 해라? 학생회 자리 아니냐, 그거?”

        

       “네, 학생회 자리 맞는데요.”

        

       “안 해.”

        

       남다운이 그렇게 대답할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런 쪽으로 뭔가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해 보이지는 않으니까.

        

       애초에 축구부라면서 매번 볼 때마다 교복 셔츠랑 바지도 그대로 입고 있었고. 훈련은 제대로 하는 것 같고, 재능도 분명 있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모든 일이 굉장히 건성인 사람이었다.

        

       바닥에 퍼져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뛰었더니 엄청나게 힘드네. 몸무게는 늘었는데 움직이질 않으니 그동안 했던 운동들이 헛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뭐, 그래도 처음에 뛰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잘 뛰기는 했지만. 지치는 정도도 훨씬 나아졌고.

        

       우레탄 바닥에 일어나 앉았다. 만약 여기가 바깥의 땡볕 아래였다면 이렇게 앉아있지는 못했을 거다. 우레탄이 햇빛을 받아 말도 안 되게 뜨거워졌을 테니까. 다행히도 이 학교는 돈이 엄청나게 많았고, 체육관 위는 닫혀 있었다. 무려 에어컨도 나오고.

        

       이 학교 축구부는 나름대로 강팀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학교 원정이라도 가면 온도 때문에 그대로 퍼지는 거 아니야?

        

       “왜요?”

        

       내가 되묻자, 남다운은 뭘 그런 걸 새삼스럽게 물어보냐는 듯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야 귀찮잖아.”

        

       젠장, 너무 완벽한 이유다.

        

       사실 나도 부회장 자리가 너무 귀찮다. 차라리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옳다구나 하고 얼른 물러났겠지만, 학생회장이 너무 간단하게 낚여버렸다. 심지어 남아있는 교사들도 내 말에 바짝 졸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학생회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이후로 학생회장실에 간 적은 없다. 왠지 볼 때마다 숨넘어가는 회장이 좀 불편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의외로 남다운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뭔가 일을 맡는 것은 엄청나게 귀찮아하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학생회의 일원이 되면 좋은 일도 많은데요.”

        

       “하아.”

        

       내가 설득을 포기하지 않자, 남다운은 한숨을 푹 쉬면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거칠게 긁적이고는,

        

       “그래,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참으로 관대하게도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다.

        

       “그러니까…… 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운동부 관련 예산을 분배할 수 있으니, 축구부 예산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을—”

        

       “안 해.”

        

       “아, 왜요!”

        

       단칼에 거절하는 남다운에게 조금 짜증을 냈다.

        

       “축구부만이 아니라 다른 운동부 예산을 전부 분배해야 한다는 소리잖냐. 잘못 분배하면 다른 곳에서 욕이나 먹지 않겠어?”

        

       “다른 동아리에 친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럼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요?”

        

       “사실 그냥 귀찮아.”

        

       “아!”

        

       다시 한번 짜증 섞인 소리를 냈다.

        

       “그냥 좀 해주면 안 돼요? 네? 제발!”

        

       “뭐, 아, 야, 잠깐만, 이거 안 놔!?”

        

       내가 얼른 기어가 남다운의 바짓가랑이를 잡자, 남다운은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손에 딸려 내려가는 바지를 온 힘을 다해 올리며 외쳤다.

        

       “야, 미쳤냐!?”

        

       “아, 좀 해줘요! 일은 그냥 위원들 시키고 이름만 올리면 되잖아요!”

        

       “아니, 나 말고도 시키면 할 사람 많잖아! 그런 조건이면 다른 운동부에서도 하겠다는 놈이 분명히 나올 텐데!”

        

       “다른 사람들은 못 믿겠단 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외치자, 남다운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오, 뭐지? 먹힌 건가? 역시 좀 불쌍한 척을 해야 하나?

        

       ……쪽팔려.

        

       그렇다. 이 몸은 내가 움직이고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사라의 몸.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명 사라가 남다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아, 맞다. 너 친구 없었지.”

        

       아니, 아무리 나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상처받는데.

        

       “…….”

        

       내가 노려보자 남다운이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내 뒤쪽에 있는 내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 모양이다.

        

       “……야.”

        

       “왜요.”

        

       “이거 진짜 놔라.”

        

       “싫어요.”

        

       “아니, 진짜로 좀 놔. 지금 엄청 위험하거든? 니가 조금만 더 나한테 매달리면 진짜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날 것 같거든? 그러니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좀 놓고 말하는 게 어떻겠냐?”

        

       “……?”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남다운이 보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표정 없이 이쪽을 바라보는 세 명의 소녀가 있었다.

        

       하늘이와 수아와 소희였다.

        

       ……아,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남자한테 매달리고 있구나. 그것도 무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평소에 저 세 명 한테는 크게 매달리지 않았으니까.

        

       “…….”

        

       나도 그 세 명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쪽 먼 곳에서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들렸다.

        

       “대단하다, 우리 에이스!”

        

       “…….”

        

       남다운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축구부 부장의 목소리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남다운의 바지를 잡고 늘어지던 나를 봐서인지, 내가 남다운에게 매달리고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매달린 게 맞긴 하는데.

        

       절대로 저쪽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차라리 한 번 사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다운은 바로 자기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부장에게 집어던졌다. 일말의 망설임도, 주춤거림도 없는 시원시원하고 멋진 동작이었다. 물론 부장이 맞지는 않았지만.

        

       “어이쿠, 이것 참, 연인들끼리의—”

        

       물론 다음 말이 끝나기 전에, 남다운의 다른 쪽 신발이 부장에게 날아갔다.

        

       물론 부장은 그것도 피하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런 거 아닌데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하자,

        

       “그런 일이 아니라면?”

        

       부장은 진짜 한 대 때리고 싶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저, 부장님, 아까부터 세 사람의 시선이 부장님한테 향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밤길 조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하지는 않고, 그저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냥 남다운 선배한테 학생회 체육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중이었어요.”

        

       “체육 위원장?”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는 듯, 부장은 눈을 크게 뜨고 남다운 쪽을 보았다.

        

       “지금 위원장들 자리가 거의 다 비어있어서요. 사람을 새로 채워서 이번에는 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한사코 거절만 해서.”

        

       “이득도 없는 일만 하는 자리를 굳이 찾아 들어가는 바보가 어딨냐.”

        

       ……여기 있네요.

        

       젠장.

        

       사람이 말실수 한 번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러게. 말실수 한 번 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그런다.

        

       너가 부추겼잖아! 너가!

        

       “어…… 체육 위원장이면 그거냐? 학교 내에서 운동부 관련된 예산이나 운동회 계획 짜는 애들 대장?”

        

       “그렇죠. 위원도 아니고 위원장이니까.”

        

       물론 위원들의 찬성도 필요하겠지만, 그 위원의 남은 자리를 내 파벌로 꽉꽉 채워 넣을 거니 큰 문제는 없었다. 이 학교 예산은 우리 손에 달린 셈이다. 그렇다고 진짜 마음대로 막 굴리다가는 문제가 터질 테니 나름 조심해야겠지만.

        

       “…….”

        

       부장은 입을 헤 벌리고 남다운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뭔가 불길함을 느낀 모양이다.

        

       “왜요?”

        

       남다운이 부장에게 물어보자,

        

       “다운아! 부탁 좀 하자!”

        

       부장이 갑자기 남다운의 발밑에 턱 무릎을 꿇었다.

        

       “뭐, 뭐야, 왜 이래요!?”

        

       그리고 그 부장이 남다운의 다리를 턱 잡았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기에, 남다운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하긴 아까 내가 잡았을 때도 피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남다운은 부장 등을 퍽퍽 때렸다.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지만, 왠지 나라도 저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서 오히려 남다운이 더 딱했다. 남자가 바지에 매달리는 광경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너가 위원장 좀 맡아주면 안 되겠냐? 축구부 예산이 날이 갈수록 줄어……!”

        

       “아니, 내년이면 졸업할 사람이 굳이……”

        

       “야, 그래도 내가 축구부 부장이야! 아무리 그래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새 공이 안 들어오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응? 그리고 우리도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예산이 많이 들어!”

        

       “운동부 예산이 그렇게 편향적이에요?”

        

       “거의 다 운동회에 써버렸으니까.”

        

       나의 질문에 부장이 답했다.

        

       “아…….”

        

       과연, 전시행정이라는 말인가.

        

       “아, 선배, 이건 좀 놓고 말합시다, 네?”

        

       “안된다. 차라리 나를 짓밟고 가라!”

        

       “한쪽 다리를 잡고 있어서 밟지도 못해요!”

        

       남다운의 목소리가 그렇게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

        

       ……뭐, 결과적으로, 부장의 피지컬과 내 설득으로 인해, 남다운은 이렇게 체육 위원장을 하게 되었다.

        

       표정은 썩어있지만.

        

       그렇게 싫으면 끝까지 하기 싫다고 하지……같은 말을 하면 안 되겠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해 목을 풀고, 나는 다시 말했다.

        

       “체육 위원장인 남다운 선배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남다운은 썩은 표정 그대로 고개를 까딱 숙였다.

        

       하지만 청중들 사이에선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하긴 잘생긴 사람이 좀 찌푸려봐야 얼마나 못나지겠어.

        

       참고로 남자애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나는 너희들 이해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들에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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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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