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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Q. 귀하에게 뒤통수 맞은 사람이 굉장히 화가 많이 났던데, 본인이 저지른 일이 맞으십니까?

         A. 맞기는 한데 그이가 왜 화가 났는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대체 시발?’

         

         내가 정녕 똑바로 들은 게 맞긴 한가?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 공간이니까, 의사 전달 과정에서 너무 날 것 그대로인 감정이 혼합되어서 표현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는 하다.

         

         왜 지리적으로 외딴 곳에 살거나 특이한 역사를 국가들은 간혹 ‘보통’과 괴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 않나?

         

         하이테크를 선도하는 엑사테크의 기술이라 해도 에나마 제(?)인 내게 통로(Path)를 뚫는데 호환성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넓은 마음과 배려심을 가지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겠냐!?

         

         아무리 연구소장 본인으로부터 당장 죽이진 않겠다는 희망적인 말을 듣기는 했어도.

         그다지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전후 사정만 대강 파악하는 대로 내가 구속된 위치가 어디인지… 빠져나갈 여건은 되는지를 점검하는데 남은 정신을 집중하는 게 옳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안전 지대 확보 겸 쿡 찔러본 수풀에서 머리 아홉 개 달린 뱀 같은 게 튀어나오는 건 반칙이잖아요.

         내가 당사자에게 전해들은 얘기라 하면 기껏해야 ‘그 이기적인 썅년.’ 이라던가, 해석하기도 어려운 Une chienne… 어쩌구 하는 문장형 욕설. 그리고 가능하면 꼭 죽이고 싶다는 멋진 살인 예고 정도?

         

         레오나르라는 공통된 제시어가 주어졌어도 이걸로 어떻게 일방적 연인을 자처하는 눈 돌아간 사이코패스랑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아니, 오히려 애매하게 아는 입장인 게 더 위험한 줄타기 아니야??

         

         “우리 자기도 참…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생일날에 수술받을 수 있게 맞췄는데! 깜짝 선물로 안겨주려고 그의 사원증에, 보안 인증서에, 평소 목소리와 화상 데이터를 조합해서 사전 동의 영상까지 위조 의뢰를 넣느라 통장이 텅텅 비었는데!

         

         이 자기밖에 모르고 사는 착한 아내에게 로맨틱한 사랑의 속삭임 한마디는 못 해 줄 망정, 삐쳐 가지고 벌써 몇 년을 가출 중이라니까?? 뭐, 밀린 애정 표현은 그이의 몸으로 알아서 받아내고 있기는 한데…… 정말 미스터 깁슨이 각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진작 찾아서…!”

         

         “그… 그렇군요……?”

         

         자신이 일부러 깨우지 않는 이상 내가 저항하거나 특별한 문제를 일으킬 수단은 없다 확신하는듯, 엘렉트라는 한층 더 가벼워진 입을 내키는 대로 나불거렸다.

         

         지적을 하자면 끝도 없이 죄목이 나올 것 같은 불법과 수상쩍은 단어의 향연을 일삼으면서도, 어딘가 황홀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향해 나는 머리를 비운 텅 빈 공감을 먹이로 던져주었고.

         

         잠시나마 레오나르가 다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의심한 게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당신은 거의 확정적으로 무죄입니다, 아마도.

         

         스멀스멀.

         불가해한 광기의 발상에 평정이 흔들리자 괜스레 통제 하에 놓였던 심상 세계의 배경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기술적 결함이나 공격받은 것도 아닐진대 단순한 기세에 눌려서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허나 사람이 품는 감정 중 가장 뜨겁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가장 쉽게 풍화되는 것도 분노라 하지 않았나? 반대로 숭고하고 긍정적이어야 할 애정을 이렇게 뒤틀린 채로 오래 품은 건….

         

         …아, 왠지 과거에도 더럽게 유사하고 끔찍한 선례를 겪어봤던 것 같다.

         

         “그래서, 꼬마가 이상한 충동질을 부추긴 게 아니라면 신혼 신부를 장장 2년이나 내버려둔 나쁜 남자께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갑자기 이렇게 시설을 헤집어 놨을까? …핫!? 설마 그이도 선물 준비를 하느라!!?”

         

         “……엄청 맹목적인 목적 의식을 토대로 그가 직접 주도하긴 했죠.”

         

         더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란 판단 하에 영혼 없는 대답을 던지면서도 참으로 어마어마한 이기심 겸 편의적인 사고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열렬한 세상 누군가에겐. 엑사테크 신봉자에겐 노화와 질병, 그리고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강철 초인의 삶이 인생의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멋대로 강요한 시점에서 기틀이 된 관계가 완전히 무너질 거라는 상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는 게 모든 걸 설명하지 않을까?

         

         흔히 다방면에 걸쳐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성격적 장애를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 성격장애)라 일컫는다 하였으니.

         

         이른 시기에 연구소장 직에 오를 만큼 유능했던 미시즈 엘렉트라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행동에 들어간 노력과 욕망으로 레오나르가 느꼈을 배신감과 공포를 뒤덮어버린 것이리라. 역으로 상대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않았다 지독하게 믿으며.

         

         어느새 내게 레오나르의 소식을 추궁하겠단 원래의 목적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따져선 올 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 여겨지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는 모양인지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비틀린 미소를 짓는 미친 년을 외면했다.

         

         더는 정서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 피곤하기도 뒤지게 피곤할뿐더러, 저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언제 태세를 전환해서 날 보고 남편 옆에 서있던 여자라며 칼 들고 달려들지 모른다. …씁, 억울하네.

         

         부디 오랜만에 다시 만나더라도 복수하겠단 레오나르의 방침에 변함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고민과 함께 의식을 가라앉혔다.

         

         엘렉트라는 초능력자 같은 게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녀가 남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이렇게 자신의 형상을 출력하려면 최소한 전용 기능을 탑재한 임플란트, 혹은 복잡한 대규모 연산 장치의 도움을 받아서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하니. 거기까지 더듬어갈 수 있다면 구속을 풀고 탈출할 수도 있겠지…!

         

         파지지직—!!

         

         흡사 진행 방향이 동일한 에스컬레이터 위를 질주하는 것처럼 배로 빠르게.

         

         빗나갈 확률이 현저하게 적은 가설을 토대로 이번엔 내가 저쪽의 신경망을 더듬어 나간다. 비좁은 영역에 갇혀 있던 자아가 마침내 평소처럼 영역 주권을 회복하는 느낌은 더할 나위없이 상쾌 그 자체.  

         

         여기가 정확히 어디지? 일단 나보고 실험 표본이라 했으니까 연구실 비슷한 공간인가?

         그렇다면 제어용 컴퓨터나 중앙 시스템이 무조건 있긴 있을 터인데 눈으로 확인하거나 종류를 알고 찾는 게 아니다 보니 헛손질이 좀 있었다.

         

         “…잠깐, 어떻게 비각성 상태에서 이런 뚜렷한 뇌파가….”

         

         순간 말을 끊은 엘레트라가 여태 나를 보고 있되 망상에 빠져 소홀히 하던 관측을 재개했다.

         연결은 쌍방향. 그녀가 감히 이쪽 경계를 넘으려 할 때 불쾌함을 느꼈던 것처럼, 저쪽도 나름의 관측 장비로 내 신호를 알아챈 셈이다.

         

         

         “……너, 여태 깨 있었구나?

         

         

         “!!”

         

         ‘앙큼한 년….’ 이라며 살벌하게 중얼거리는 모습에 소름이 쫙… 진짜 공포 영화가 따로 없네요!

         

         닿아라 닿아라 닿아라… 제발 빨리 닿아라.

         엘렉트라가 무의식적으로 조작한 기기들을 징검다리 삼아 기어이 찾아낸 중추 단말기의 프로그램 목록을 쫙 펼치고 안전 장치나 잠금 장치와 관련된 항목을 파악, 그 중에서 나와 연관된 장치는… 발견!

         

         팅! 하는 경쾌한 금속음과 동시에 사지를 결박하던 수술대 구속구가 빗나간다.

         

         굉장히 간만에 보는 것 같은 새하얀 천장과 눈부신 조명이 시각을 괴롭히는 건 둘째 치고.

         드디어 현실 삼각이 돌아온 시점부터 계속 느껴지던, 이마와 뺨에 덕지덕지 부착되어 있던 거슬리는 전극판을 떼어내려고 손을 들었거늘.

         

         ‘……엥?’

         “…….”

         

         움직이려는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아서 제지한 건 익숙한 오페라 가면과 모니터 헤드를 자랑하는 누군가 씨.

         어…… 뭘까, 레오나르가 어떻게 여기까지 무사히 침투했지? 아니, 이게 다 어찌 된 영문이래.

         

         

         

         ★ ☆ ★ ☆ ★

         

         

         

         ‘C’est dégoûtant à écouter. 정말… 들어주기조차 역겹군.’

         

         그래도 꼴에 옛 친구랍시고. 말마따나 한 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면 갈등의 원천에 있어서 약간의 이완 작용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레오나르는 자조했다.

         

         우선은 성실하게 평화 협정에 응하는 척, 일부러 마중 나온 깁슨의 뒤를 따라 연구동 복도를 가로지르며 그는 이 순간만큼은 감정 표현용 아바타를 알아보기 어려운 가면으로 골라 놔서 다행이라 여겼다.

         

         본래는 원래 얼굴을 입체 화상으로 재구성해서 출력하는 게 일반적이나, 육체를 다시 확보하기 전까지는 유령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품고 고른 모델이지만.

         

         만일 그랬다면 지금쯤 앞서가는 깁슨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그대로 들켰을 테니까.

         

         “넌 애인이 잘나서 몇 백억짜리 대수술도 공짜로 받고, 본사에 안 들키게 후처리까지 해줬으면 조금은 감사한 줄 알아야지. 원한 적 없는 개조는 인격적 말살이라는 소리만 평생 되풀이하면 다냐?”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내게도 자유 의지가 있고 그건 엘렉트라가 감히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의 선택이었다. 그걸 그리 쉽게 부정하려 들지 마라.”

         

         “어이구, 그렇게 원론적인 거 좋아하고 따지는 놈이 암흑가에 투신한 걸로도 모자라서 전 직장을 쑥대밭이 되도록 폭격해? 나 참….”

         

         “…….”

         

         여태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정신적으로 몰아붙여 놓고, 말꼬리를 잡은 채 늘어지는 행태에 레오나르의 모니터 주사율이 잠시나마 흔들렸다.

         

         사실 어느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다. 순수한 우정에 근거해서 짊어질 리스크 치고는 너무 위험 부담이 컸으니까.

         다만 일이 끝나고 자신에게서 더한 대가를 바랄 줄 알았지, 최초부터 엘렉트라와 작당하고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을 뿐.

         

         심지어 중간에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 어렴풋한 이유조차 레오나르의 짜증을 증폭시켰다.

         그에겐 은밀성을 변명으로 여러 고가의 기기와 돈을, 유일한 소통 창구라는 걸 방패로 그녀로부턴 온갖 직장 내 편의와 실적을 받아냈으렸다.

         

         “생각을 좀 해라! 너도 밑바닥에서 좀 굴러봤으니 알았을 거 아니야? 크레딧만 충분히 있어도 온몸에 칼 댈 새끼들이 밖엔 널렸을 텐데. 평생 회사 공금으로 유지할 수 있는 초 하이스펙 바디를 얻었으면 절이라도 해야 할 판에 뭐?

         

         씨발, ‘선택권이 어쨌네~ 자유 의지가 저쨌네.’를 계속하고 싶냐? 난 먹고 뒤질 돈도 없어서 이런 병신 같은 고글(Goggles)을 면상에 처박은 채로 평생 살아야 할 신세일지도 모르는 판국에?”

         

         “……깁슨.”

         

         나지막한 부름.

         싸해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한참 신나게 떠들며 손가락으로 눈가를 두들기던 그가 돌연 입을 다물고는 ‘그러니까 넌 운 좋은 줄 알아라 좀. 내가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으면 진즉 수습했다.’며 급하게 말을 마쳤다.

         

         딴에는 위트 있게 농담으로 수습했다 여겼을지 모르겠는데, 레오나르의 센서에는 그의 추악한 열등감이 적나라하게 잡히는 것 같았다.

         

         옛날에 깨달었다면 좋으련만… 당시엔 통상 업무와 개인 연구로 바빠서 너무 둔감하게,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후회가 문득 들었다.

         

         틀림없이. 대화라는 건 가장 확실한 소통의 연장선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공허한 울림의 연속이 될 수도 있었다.

         말을 섞는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기저에 깔린 상식과 의견이 진정으로 교차하지 않으면 벽을 보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닌가? 벽에 대고 비명을 질렀으면 속이라도 풀렸지, 이건 속이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있었으니 더 나쁠지도.

         

         어쩜 과거의 인연이 모조리 이리도 쓰레기일 수가 있는지 이것도 내심 대단하다며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다못해 땡전 한 푼 받지 않은 채로, 불확실한 보수를 핑계로 내걸고 옷깃이 스친 인연에 의지해 제 목숨 걸고 끝까지 노력해준 사람마저 일개 용병인 마당에.

         

         “하….”

         

         그래, 한 개를 잃으면 한 개를 얻는 법이다. 이 경우엔 둘이나 되는 악연 대신 그에 상응하는 좋은 친분을 얻었다고 봐야겠지.

         

         비교적 간단하게도. 이 경우엔 당면한 모든 과제를 몰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리라.

         

         “내가 이 자리를 만들려고 여태 그 고생을 했다 정말. 하여간 그 해커 여자애만 없애 버리면 외부인 중엔 네가 오늘 벌인 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귀찮게 기동대한테서 양도받는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처분하라 할 걸.”

         

         “…그렇다. 그녀의 문제만 정리하면 나도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지.”

         

         자꾸만 지적받은 대로 낡아빠진 걸 전부 불태우고 새로이 얻은 걸 더 소중히 여기면 될 노릇이다.

         

         상당히 마음엔 안 들지만 엘렉트라와도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겠다.

         요청받은 대로, 복직하라는 건도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미리 알아야 한다.

         

         레오나르의 상식과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타협안을 깁슨은 그대로 삼킨 채 연구동 최심부의 어느 뇌파 교반실까지 충실히 안내해주었으니.

         

         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음과 함께 대기 차단용 슬라이드 도어가 부드럽게 열리자, 집도의(Operating Surgeon) 자리엔 요란하게 생겨 먹은 헬멧을 눌러쓰고 앉은 엘렉트라가.

         장기간 의식 불명 상태로 환자를 안치하기 위한 캡슐에는 곤히 가로누인 아나스타샤가 눈에 들어왔다.

         

         조력자가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비교적 쉬운 첫번째 관문은 넘었다.

         이제 다음은… 각자가 가진 모든 수단을 조합해 여길 초토화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벗어나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노 리필! 갱신 일자(오늘).

    내일, 10/02 월요일은 추석 납치로 인한 휴재입니다…. 이번 편 업로드 되는 대로 바로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어디 안 가고 무사히 넘어가나 했는데 결국 이렇게…!
    에피소드 마무리가 얼마남지 않았는데 자꾸 연재일이 비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은 맛난 음식 양껏 드시면서 푹 쉬시길 바랍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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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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