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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그 시각, 오로솔 아카데미 대회의실.

     “보이십니까, 어머니. 노스트럼이 박살나고 있습니다.”

     “…….”

     카르멘 왕비는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바르셀 후작성의 상황에 대해 논하는 자신의 딸, 나리아 공주의 말에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 공주님….”

     “회장님, 박살나고 있는 게 맞기는 하지만….”

     모르가니아의 흑장미 기사단도 그렇고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학생회 임원들도 그렇고, 카르멘 왕비와 같이 나리아 공주의 말에 다들 당황한 눈치.

     “틀린 말이 아니죠. 구 시대의 노스트럼이 저렇게 무너지고 있으니.”

     

     하지만 나리아 공주는 아카데미의 핵심 인사들이 모인 대회의실에서 담담히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십시오. 저 모습을. 지브롤터의 기사 약 30명 가량을 감당하지 못하여 무너지는 후작령의 모습을. 군사학적으로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콘스탄스 남작.”

     “저건, 그러니까, 그게.”

     

     새롭게 군사학 교수로 초빙된 중년 남자, 콘스탄스 남작은 자신을 향해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했다.

     “…오직, 지브롤터만이 가능한 전술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임 군사학 교수와는 다른, 능력으로 이 자리에 오른 남자.

     “비상식적이고 파괴적이고, 때로는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끔찍할 정도로 신속하고 효율적이기 짝이 없지요.”

     “의견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나리아가 이 자리에 ‘초청’한 인사 중 하나인 만큼, 그는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머니. 만일 저기 당하고 있는 가문이 바르셀 후작가가 아니라 모르가니아였다고 한다면, 과정은 달라졌을까요?”

     “아니.”

     카르멘 왕비는 단언했다.

     “모르가니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영지도 저런 식으로 공격하는 걸 막아낼 수 없겠지.”

     “그렇다면, 노스트럼은요?”

     “…다를 리가. 애초에 저기 후작성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 중 대부분이 황금여명 기사단, 그리고 각 귀족들이 보낸 지원병력들인데.”

     그 숫자가 몇 명이냐 따지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소드마스터 1명은 곧 제국군 1만의 힘을 가지고 있지. 그런 걸 따지고 보면, 저기 멘테 리프트 경이 함께한 것 만으로 지금 지브롤터군 1만이 후작성 정문에 침투한 거나 마찬가지야.”

     “마스터가 한 명은 아니죠.”

     “…그렇네.”

     천리안 마법을 통해 보이는 장면은 후작성 정문을 막아선 지브롤터의 기사.

     “로버트 세빌리야, 였던가? 분명 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급보다 더 못한 수준의 기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브롤터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마스터 한두 명 정도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마음만 먹으면, 인가.”

     “예. 마음만 먹으면…노스트럼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요.”

     회의장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명백히 ‘반역’을 운운하는 뉘앙스의 말이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왕국의 공주라는 점에서 모두가 뭐라고 발언을 하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이 자리는 훗날 여왕이 될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정적을 견제하고자 하는-

     “지브롤터는 단죄자입니다. 노스트럼이 잘못된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바로잡아나가는 이들이죠.”

     나리아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노스트럼의 역사 500년 동안 지브롤터는 단 한 번도 노스트럼 왕가를 향해 칼을 빼들지 않았습니다. 노스트럼 왕가는 지금까지 지브롤터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요. 노스트럼의 역대 국왕 중 그 누구도 현왕과 같은 상황을 만든 이가 없었을까요?”

     “나리아. 그게 무슨 소리니…?”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

     나리아는 품에서 동전을 여러 개 꺼냈다.

     “저 장면을 보며,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지브롤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지브롤터를 건드린 순간, 노스트럼은 어떠한 이유로 그러했든 멸망하게 된다.”

     노스트럼의 역대 국왕의 얼굴이 뒤에 새겨진 골드를 손으로 튕기며, 동전을 자신의 앞에 모두 얼굴 부분이 위로 보이게 놔두었다.

     “하지만 만일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지브롤터가 반기를 들 정도의 사건에 대하여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힘이 있다면.”

     나리아 공주는 담담히, 역대 왕들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를 뒤집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지브롤터는 십수 번도 넘게 노스트럼을 향해 ‘잘못되었다’라고 칼을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 ‘없었던 일’로 바뀌어버릴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요.”

     “…….”

     “뭐, 그냥 우스갯소리입니다.”

     나리아 공주는 마지막 남은 골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얼굴이 새겨진 거대한 금화를 세로로 세웠다.

     “그런 게 있었다면, 우리의 위대한 국왕 전하께서 지브롤터가 영지전을 일으키기 전에 어떻게든 달래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을 테니.”

     툭.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자명하죠. 이 전쟁, 지브롤터의 승리입니다.”

     세인트 지오 금화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

     얼굴 부분이 여전히 빛을 향하고 있었으나, 창가에 비친 햇살에 드리운 나리아의 그림자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금화를 가렸다.

     “이 전쟁이 끝난 뒤.”

     나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 한 자루를 자신의 책상 앞에 푹 꽂았다.

     “저는 …로서, 지브롤터에게 ‘전권’을 맡길 예정입니다.”

     검신에는 ‘죄를 사하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이 노스트럼에 드리운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의사이자, 노스트럼을 좀 먹게 만드는 죄수들을 처형할 처형인으로서.”

     “그것은, 면검부가 아닙니까…?”

     “면검부를 샀으니, 지브롤터는 용서하겠지요.”

     나리아는 형형한 눈을 반짝이며, 수정구에 비치고 있는 황금여명 기사단과 후작령 병사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

     “모두에게, 분명히 말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나리아는 느긋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단죄받는 건 세인트 지오의 노스트럼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 * *

     [바르셀 후작령 골든캐슬, 꼭대기층 후작성 집무실.]

     “젠장, 이 미친 새끼들이!!”

     

     드리테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튀어나온다.

     “으아아ㅡㅡㅡ!!”

     드리테는 쓰고 있던 안경을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마구 밟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신경질적인 분노에 집무실 안에 모여있는 십수 명의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드리테가 냅다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러서 그렇지, 자신들도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미친 지브롤터!”

     배가 땅을 달리다 점프하여 성벽을 뛰어넘는다? 뭐, 그럴 수 있다.

     제국에서는 배가 땅이나 바다만 다니는 게 아니니까.

     “미친 노스트럼!”

     지브롤터의 기사가 고작 30명만 와서 압도적인 살상력을 보인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지브롤터의 전설적인 인간도축기에 따르면, ‘1카디안=1만 정예병’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게 벌써 한 세기도 전이니까.

     “미친 놈들이 가득하지! 그래! 무슨 미친 일이 일어나든, 담담히 대응하려고 했어! 배가 떨어진 건 예상외였지만, 그건 비룡으로 강습한 거랑 다를 바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니까! 여기까지는, 상정 내였다고!!”

     하지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어디로 갔나!”

     “사, 사라졌습니다!”

     “이 미친…!”

     다른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적어도 이것만큼은 넘어갈 수 없었다.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옆에서 지랄을 해댔으면서, 지브롤터가 들이닥치자마자 바로 사라져?! 이딴 새끼도 국왕이라고!”

     후작성 집무실, 있어야 할 자가 없다.

     “국왕의 수호기사들은 어디로 갔나! 황금여명은?!”

     “나, 남아있습니다! 아직 여기에 국왕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듯합니다!”

     “그렇다면, 최측근은?!”

     “아무래도 국왕을 데리고 둘만 도망친 것으로….”

     “씨발!!”

     

     너무나도, 상스러운 욕설이 드리테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자는 도망가는 게 마스터급 실력인가?! 여기가 노스트럼의 왕성이었어도 그렇게 도망갈 건가! 으아아!”

     왕이 사라졌다.

     “국왕이 제일 먼저 튀는 게, 말이나 되냐고!!”

     이 후작성에 모여있는 귀족들이 지원군을 보낸 명분이 사라졌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사라졌다는 걸 알면 다른 귀족들이 보낸 지원군이 전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것이다! 그들이 바르셀 후작령에 원군을 보낸 이유는 바르셀 후작가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있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국왕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온 것이었으니!”

     전쟁이라는 건 명분이 중요하며, 이 명분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뀜에 따라 우군이 삽시간에 적군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왜 바르셀 후작령 따위를 도우러 왔는데! 국왕이 여기에 있기로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다시, 다시 한 번 찾아봐!”

     “하, 하지만…!”

     “찾으라면 찾아! 놈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상관없다’라고 하면서 술 마시던 인간이, 지브롤터의 기사들이 성벽을 넘어오자마자 바로 텔레포트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사라지는게ㅡ”

     역정을 내던 드리테의 말이 멈춘다.

     그것은 어쩌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갑자기 증발한 이유에 대한 편린을 잡은 것도 있기도 하겠지만-

     저벅, 저벅.

     집무실 너머,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느긋하면서도 무거운 발자국 소리에 드리테는 침을 삼켰다.

     “…전원, 전투 준비. 전력으로. 백은, 투여.”

     드리테가 손을 들자, 곧 방 안에 있던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즉시 무언가를 깨무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오오.

     곧 투구에 가려진 그들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반짝이며, 투구 사이에서 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팔이 하나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짙은 피냄새가 방 안으로 풍겨오며, 검은 그림자가 집무실 안으로 툭 떨어진다.

     데구르르.

     잘린 머리.

     

     너무나도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 집무실 안에 있던 이들은 저게 전투 중에 베인 건지 아니면 사형으로 단두대에 목이 잘린 건지 순간적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목은, 분명 제로스 바르셀 후작.

     이었던 것.

     본래의 제로스 바르셀 후작과는 확연히 다른,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는 목만 남아 집무실 바닥을 붉게 적셨다.

     “정말이지….”

     저벅.

     “오늘, 너무 많이 죽이는 날인 것 같은데.”

     집무실 입구.

     “이래서 전쟁이 싫어. 전쟁은 싫은데….”

     전신이 피에 젖은 청년이 창 하나를 어깨에 적당히 걸친 채, 피에 젖은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쓰레기들 청소하는데, 오물 묻는 건 당연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 미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어디에 있나.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던데.”

     히죽.

     “아. 딱 봐도 알겠다. 너희만 남겨두고 도망쳤구나. 정말이지, 누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아니랄까봐.”

     “국왕 전하께서는….”

     “너희들이 생각해도, 참 미친 왕이지? 섬기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그런 미친 왕.”

     “…….”

     드리테는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브롤터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오직 단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너희들 말이야. 제국 그림자에, 제국에게 멸망당한 왕족이나 귀족 출신에, 노스트럼의 왕을 부추겨서 내전을 일으키려고 하고 그런 건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뭐, 백 번 양보해서 지브롤터라는 상대가 나빴다고 하자. 그런 거 다 떠나서, 너희들이 죽는 원인은 단 하나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길래 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손을 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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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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