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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아카데미의 평민 기숙사는 내가 기억하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귀족들이 머무는 기숙사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대개의 평민들은 이조차 사치스럽다고 여기는 곳.

   

   가만 둘러보고 있으면 학창 시절 수련회에 갔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곳.

   

   내가 기숙사 앞에 서자 인근에 있던 학생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알른 영애님!”

   “안녕하십니까!”

   

   침착하려 노력하지만 차마 당혹을 감추지 못한 저들의 목소리에는 공포보다는 의문이 먼저 묻어나온다.

   

   얘네들은 과거의 루시를 모르니까.

   

   과거 루시 알른이라는 소녀가 오만떼만 데에서 패악질을 부리며 그 악명을 드높인 것은 사실이다.

   

   여러 호사가들의 입을 타고서 전해진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은 평민이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그러니 보통이라면 패악질이 두려워서라도 내 눈치를 보는 게 정상이다만.

   

   ‘설마 루시가 벌인 일이 너무 과해서 오히려 신용도가 떨어질 줄은.’

   

   문제가 무엇이나면 루시가 벌인 일이 일반인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왕을 가축이라고 모욕했다.

   

   1왕자를 상대로 음침해서 기분이 나쁘다 그랬다.

   

   교회의 신상을 부수며 패악질을 부렸다.

   

   이외에도 루시가 벌인 일에는 끝이 없었다.

   

   하나만 있어도 그런 미친 사람이 있단 사실에 경악할 일이 수도 없이 늘어선 것이다.

   

   사교계에서 루시 알른에게 곤욕을 치른 귀족들이야 음. 저 년이면 그럴 만 하지. 하고서 넘기지만 루시라는 이름을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평민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누군가는 곧이곧대로 그를 믿었지만 누군가는 의심을 했다.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저 많은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하냐고 말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해석했다.

   

   사교계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익명에 붙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이런 괴악한 소문이 퍼지는 데 아무런 제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그러니까 사교계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같은 수업을 듣는 1학년들이야 내가 하는 짓거리를 눈으로 보았기에 그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음을 알았지만 그 윗 학년들은 달랐다.

   

   1학기 동안 날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던.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나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들은 ‘나이에 비해 너무 뛰어난 능력을 지녀 미움을 산거군.’ 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학년들이 1학년을 시켜 내게 장난을 치게 만든 이유도 이 생각에서 기반한다.

   

   스스로가 뛰어난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아냐 이건 너무 순화된 표현이야. 그 병신들을 묘사하기엔 이런 단어로 모자라.

   

   그보다는.

   

   그래. 중2병이 강하게 걸린 아카데미 2학년 몇 명은 날 귀족들 사이에서 괴롭힘 당하는 외톨이라 판단을 내렸다.

   

   그러니 무언가 일을 당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 황당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니까.

   

   <잘 된 일 아니냐? 네 행적을 헛소문이라 이야기해주는 이들이 있는 것이니.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네 평판이 오를지도 모르겠구나.>

   ‘진심으로 하는 소리에요?’

   <하. 당연히 아니지.>

   

   …이 인간이 진짜.

   

   ‘증손녀 뻘 여자애를 놀리는 게 그리 재밌으십니까.’

   <재밌지. 언제나 새롭다.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나오신다 이겁니까.

   

   어쩔 수 없군요.

   

   상호 확증파괴라는 단어를 알려드리는 수밖에.

   

   오늘 밤 일부러 손잡이에 땀을 남겨 얼빠 여우가 혀를 낼름거리게 만들겠단 계획을 세운 난 평민 기숙사 안 쪽으로 발을 들였다.

   

   “영애님?! 여기는 평민들만이 올 수 있는…”

   

   그러자 입구 근처에 있던 기숙사 사감이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그에게 날 막을 방법은 없었다.

   

   사감이 날 막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내 눈동자에 경멸이 담겼으니까.

   

   “너무 대담한 거 아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성희롱이라니♡”

   “…아. 아닙니다! 이건 결코 그런 것이!”

   “비명을 질러 볼까?♡ 꺄아아~♡ 대머리 변태가 절 덮치려 그래요♡ 하고. 응?♡”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몰랐습니다!”

   

   기숙사감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남에 따라 기숙사 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방금 전 사감이 큰 소리를 지른 탓일까. 건물 안에 있는 평민들의 시선이 내 쪽에 몰려 있었다.

   

   의아함. 공포. 절망. 의문. 호기심. 경악.

   

   그 수많은 감정을 한 눈으로 보고 한 눈으로 넘기던 나는 2층 회의실의 문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마네. 현 평민집단의 리더 역.

   

   저 놈은 선인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다.

   

   마네는 상인이다. 선과 악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을 찾아다니는 사람.

   

   저 녀석이 이번 일에 관여했을지 안 했을지는 모른다. 다만 저 놈이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무언가 변수가 있을지라도 저 녀석이 지닌 상재가 없어지진 않을 테니까.

   

   마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급히 발을 틀어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난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1층에서 뛰어오른 나는 너무나도 손쉽게 2층 난간에 착지해 마네의 앞을 틀어막았다.

   

   ‘어디가세요?’

   “어디 가려는 거야? 설마 이 자그마한 여자애한테 쫀 거야? 우와. 완전 쫄보네. 혹시 아직 이불에 오줌 지려?”

   

   “…제가 어찌하여 영애를 겁내겠습니다. 다만 제 눈이 좋지 못해 영애님의 고귀한 모습을 눈에 담지 못했을 뿐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과거 성현이 남긴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지만 난 마네를 이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회의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시작부터 험하게 나설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별 말 하지 않고 웃어주었더니 마네가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정말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미리 대본을 짜두기라도 한 것 마냥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대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졌다.

   

   머리를 박는 각도. 절절한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사도. 어느 하나 범상한 게 없었다.

   

   루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어쩜 이렇게 대가리를 잘 박을 수가 있지? 어딘가에서 이런 방법을 따로 가르치기라도 하는 건가?

   

   “영애의 시간을 낭비시킨 것을 실로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허나 자비를 베풀어 제가 사정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마네가 필사적으로 내뱉는 말 사이사이에는 타인을 향한 원망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조져질 거라면 다른 놈들도 같이 조지고 말겠다는 의지를 느낀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신했다.

   

   마네 얘는 이번 일하고 관련이 없구나.

   

   *

   

   마네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부모를 따라 이런저런 행상에 몸을 실었다.

   

   그러면서 마네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마네의 아버지는 분명 거대한 상단을 이끌며 수많은 사람을 부리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필요할 때는 얼마든 고개를 숙였고, 고위 귀족이 상대라면 마네가 경멸이란 감정을 느낄 만큼 비굴한 행동마저 서슴치 않았지.

   

   언젠가 마네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마네의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지녀도, 거대한 세력을 품어도. 주제를 모르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마네. 잘 기억해라. 언제나 자신의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후일 한 상단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며 날뛰다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을 본 후부터 마네는 항상 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유력자들이 가득한 이 곳에서 자기 주제를 잊어버리는 순간 묻혀버릴 것이라 확신했기에.

   

   허나 마네는 상식이라 여기는 이 일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만했다.

   

   어지간한 귀족도 굽실거릴만한 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자신의 아버지가 커다란 용병단을 이끄는 유명한 모험가라며.

   

   마탑에서 모셔가려 할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며.

   

   2왕자께서 자신을 기사로 만들어준다고 했다며.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평민 무리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이들은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자신들이 지내던 곳에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대접을 받았기에.

   

   귀족들조차 쉬이 들어오지 못하는 소울 아카데미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드높은 분들과 경쟁하면서도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냈기에.

   

   그 성과로 인해 평민 기숙사에서 군림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주제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본래 평민 집단에 적당히만 참여하고 있었던 마네가 이 곳의 리더가 되기로 결심한 까닭도 이들 때문이었다.

   

   전통이랍시고 다른 이들과 함께 약소 귀족을 상대로 장난을 치곤 소울 아카데미에서는 이래도 된다는 소리를 하며 키득거리는 이들을 본 순간 저들의 목줄을 붙잡지 못하면 문제가 일어나리라 확신했기에.

   

   같은 기숙사 친구로써의 정은 아니었다. 다만 저들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여파가 저들을 기점으로 멈출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

   

   소울 아카데미에서 평민이 편의를 얻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높으신 분들이 배려를 해주기 때문이다.

   

   이 곳의 유력자들이 분노해 칼을 뽑아든다면 평민을 탄압하는 것이야 일도 아니겠지.

   

   저 놈들이 잘못하면 나까지 죽는다. 그리 생각했었던 마네는 필사적으로 이들을 제어하려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목줄을 잡고자 했던 놈들은 상상 이상의 멍청이들이었다.

   

   “이상입니다.”

   

   방금 전 올라왔던 보고를 바탕으로 설명을 끝마친 마네는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아이의 표정을 살피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좆됐음을 확신하던 마네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은 들었던 것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어투나 태도가 거친 것? 귀족이 평민을 대하는 데 거친 것이 당연하지 않나!

   

   보라! 아카데미에 고발해 이 곳을 뒤엎어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러 오지 않았나!

   

   화 낼 구석이 여럿 있었음에도 얌전히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지 않나!

   

   이것만 하더라도 이 사람은 충분한 인격자다!

   

   그러니 가능하다.

   

   이야기가 잘만 풀린다면 평민 전체가, 내가 좆 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찌끄래기 대장. 네 말에 따르면 생긴 것부터 답이 없는 저 쓰레기 셋이 이 일의 주도자다?”

   “물론 다른 이들의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물어본 거에만 대답해줄래? 내가 너처럼 여유로워 보여?”

   “영애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 셋이 주도자입니다.”

   

   그리 판단이 선 순간부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마네는 속으로 머저리 트리오라 부르던 인간들을 잘라내기로 결심했다.

   

   다른 병신들이 암묵적인 동의를 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일을 주도한 병신은 저 셋이 맞으니까.

   

   마네가 고개를 끄덕임에 따라 루시 알른의 시선이 머저리 트리오를 향한다.

   

   그들의 굳은 얼굴을 보면서 마네는 속으로 기도했다.

   

   저 쓰레기들이 제발 닥치고 있기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를 깨닫고 아가리를 닫기를.

   

   태어나 그 어떤 순간보다 간절히 기도한 마네지만 그의 신앙심이 깊지 못한 탓일까. 그가 원하는 바는 이뤄지지 않았다.

   

   “머저리들. 할 말 있어?”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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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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