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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5

    약초를 말린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있는 어둑어둑한 방.

    구불구불한 플라스크부터, 신비롭게 빛나는 액체를 담은 유리병까지.

    그야말로 연금술사의 공방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방에서 은은한 황금색 불빛이 일렁거렸다.

    깔끔하게 치워진 탁자 위에서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폴짝폴짝 뛰면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 중 가장 검을 잘 다루는 5명의 용사였다.

    회색 사신이 쓰다가 망가진 커다란 빛의 검과 제1 검이 쓰다가 망가진 조그마한 빛의 검을 탁자 위에 올려둔 채,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손짓·발짓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들의 설명을 듣는 것은 문신투성이의 연금술사 여자였다.

    작업실의 연금술사는 본격적인 연금술사 복장을 차려입고, 연금술사의 검까지 패용하고 있었다.

    “작은 쪽은 그래도 괜찮은데, 큰 쪽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네.”

    연금술사는 황금 사신들이 가지고 온 두 자루의 망가진 빛의 검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황금 사신용 빛의 검과 회색 사신용 빛의 검은 비슷한 방식으로 망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작은 것은 너무 오랜 시간 작동해서 수명을 다한 것이라면, 큰 것은 과도한 출력이 들어와서 내부가 깡그리 녹아내린 상태였다.

    ‘내 예상보다 회색 사신의 출력이 엄청나네. 이런 마도서가 존재할 수가 있는 건가?’

    연금술사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망가진 회색 사신의 빛의 검을 분해해서 살펴보더니,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이렇게 강한 마도서는 자신이 죽기 전까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연금술사는 작은 빛의 검을 분해한 뒤, 몇몇 부품을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만으로 고쳐냈다.

    황금 사신 제1 검은 고쳐진 검을 받고는 빛으로 이루어진 검신을 만들어서 허공에 한번 쓱 휘두른 뒤, 다시 검신을 지우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수리하는 데, 조금 걸릴 것 같아. 서울숲에 가서 재료를 좀 챙겨와야 하거든.”

    황금 사신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당장 수리가 안 된다는 사실만큼을 알아들었는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쭈그러들었다.

    ‘엄마 검, 못 고쳐?’

    환하게 빛나던 장작의 빛도 조금 어두워진 채, 우울한 박자로 명멸했다.

    연금술사는 정신 오염을 막는 약을 먹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표정과 분위기에 무심코 황금 사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버릴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오염 방지약을 꺼내서 먹었겠지만, 지금은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약을 먹어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

    ‘슬슬 억제제의 재료를 챙기러 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다녀와야겠네.’

    연금술사는 고향의 숲과 한없이 닮은 서울숲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쿵. 쿵. 쿵.

    조용한 미니 사신 정원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대한 야광 티라노가 미니 사신들을 잔뜩 태운 채, 미니 사신 정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역시 티라노는 다들 좋아해!’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티라노에 탄 미니 사신들은 티라노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마치 여기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손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엄마!’

    나를 향해 의지를 뿜어내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미니 사신들을 볼 때마다 조그마한 의심이 떠오르긴 했다.

    쟤네들은 티라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티라노를 타면 내가 자주 관심을 주고 쳐다보니까 좋아하는 건가?

    에이 설마.

    티라노는 당연히 좋아하겠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뚜방뚜방.

    나는 티라노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미니 사신 정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숨은 아귀 찾기나 할까? 

    하얀 아귀는 언제나 소환할 수 있지만, 소환보다는 직접 찾아내는 편이 재미있으니까.

    편안하게 쉬던 아귀를 습격하는 것은 각별한 재미가 있었다.

    아니면 헤일로를 사용해서 처참하게 죽은 회색 사신 시체를 만들어서 격리실에 배치해 둘까?

    예린이가 엄청나게 놀랄 텐데, 히히.

    여러 가지 장난을 구상하며 정원을 거닐던 순간, 굉장히 생소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끄앙!’

    황금 사신이 졌다는 것처럼 바닥 위에 대자로 쓰러지며 의지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황금 사신 옆으로 수많은 황금 사신이 똑같은 자세로 잔뜩 쓰러져 있었다.

    황금 사신과 게임을 해서 이기는 것은 보통 같은 황금 사신이나 검은 사신인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주황 사신이었다.

    ‘우후후.’ 하고 웃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눈을 감고 은은한 미소를 뜬 주황 사신의 모습은 왠지 강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잔뜩 모여든 황금 사신 중에서 또 다른 황금 사신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주황 사신에게 도전해 왔다.

    도전자가 생기자, 주황 사신과 황금 사신은 특이하게 생긴 나뭇조각들을 불안정한 탁자 위에 쌓기 시작했다.

    규칙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나무 조각이 ‘하나’ 떨어질 때까지 탁자를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탁자는 굉장히 쉽게 흔들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나무 조각이 두 개 이상 떨어지면 실격패!

    나는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는 고난도의 놀이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황금 사신은 보기 드물 정도로 집중한 표정으로 탁자를 톡톡 건드리며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놀라운 눈썰미와 정밀하고 민첩한 신체 능력으로 탁자를 흔들어서 나무 조각 하나를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오, 대단해!’

    나는 미니 사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작게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황금 사신이 저 정도면, 주황 사신은 얼마나 잘한다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주황 사신이 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온 주황 사신이 은은하게 웃는 표정으로 탁자를 톡 건드리자, 탁자가 절묘한 진동으로 흔들리더니 톡하고 나무 조각 하나를 뱉어냈다.

    사기잖아!

    황금 사신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방금 주황 사신은 능력을 사용했다.

    벌어질 일의 확률을 조작하는 능력이었다.

    나도 비슷한 능력을 자주 사용해 와서,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었다.

    내 능력은 주황 달의 확률 조작과 다르게 오브젝트가 아닌 대상의 죽음을 인도하는 능력이었지만, 확률을 비틀고 조작한다는 점에서 닮아있었다.

    황금 사신이 속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저 게임이 서로 능력을 사용해도 되는 게임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아닐 것 같았다.

    모름지기 눈을 작게 뜨는 녀석들은 음모를 꾸미는 녀석들이니까! 

    나는 패배해서 바닥에 쓰러진 황금 사신을 하나 주워 들고는 진실을 속삭였다.

    ‘주황 사신은 능력을 사용하고 있어. 확률을 비트는 능력이야.’

    ‘신체 능력만으로 저런 신기한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

    ‘사기야!’

    ‘혁명이 필요해.’

    ‘일어나라 황금의 전사들이여!’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갸우뚱거리던 황금 사신은 이내 이해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 표정을 지은 황금 사신은 쓰러진 동료들을 모으더니, 손짓·발짓하며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실을 깨달은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주황 사신을 둘러싸고 훈계를 시작했다.

    ‘다음부터 속이면 안 돼!’

    하지만 주황 사신은 감긴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더니,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

    황금 사신은 동생이 자신들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충격적이었는지 멍하니 있다가, 현 상황을 깨닫고 빠른 속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좀비들이 벽을 넘으려고 모여드는 것처럼 잔뜩 달라붙은 황금 사신들이 빠른 속도로 탑을 만들더니, 주황 사신을 붙잡고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주황 사신은 온 힘을 다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비행 속도도 느렸고 황금 사신을 떨쳐낼 만큼 힘이 세지도 않았다.

    그저 몇몇 황금 사신들이 미끄럽지도 않은 바닥에서 부자연스럽게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다시 붙잡힌 주황 사신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찡그린 표정의 황금 사신에게 붙잡혀 훈계 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살짝 실망했다.

    황금 사신이 혁명의 전사가 돼서 주황 사신을 마구 때리는 것을 기대했는데, 훈계에 그치다니….

    힝.

    ***

    샥샥.

    유령화 상태였지만, 황금 사신은 길모퉁이서 길모퉁이로.

    최대한 몸을 숨기면서 미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장 사악한 오브젝트가 있는 곳으로 갈 줄 알았던 남자들은 오브젝트에게 가지는 않고, 여러 인간을 방문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퍼트리고 있었다.

    “어이, 아저씨. 돈을 빌리셨으면 갚으셔야죠!”

    황금 사신이 미행하면서 본 남자들은 가는 곳마다 크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강하게 두들기고 다녔다.

    그때마다 퍼져나가는 슬픔과 억울함, 공포.

    그들은 인간이면서 오브젝트처럼 가는 곳마다 슬픔과 억울함을 퍼트리고 있었다.

    역시 애착 인간이 싫어하는 인간들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해로운 인간으로 보였다.

    ‘나쁜 인간?’

    황금 사신은 저런 종류의 인간을 처음 봐서 의아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쁜 인간이기는 하지만,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황금 사신은 조그마한 머리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미니 사신 정원에서 모여서 대 회의를 열어야 해!

    황금 사신은 지금이야말로 푸딩으로 만들어진 단상 위에서 벌이는 단상 토론회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푸딩을 어떤 황금 사신에게 주는가?’ 라는 엄청난 난제를 해결했던 대 회의라면 이 난제도 해결할 수 있겠지.

    고민하느라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던 황금 사신은 후련해진 마음으로 다시 미행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을 한참 동안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괴롭히던 남자들은 드디어 자동차에 올라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 사신도 어느새 차 안으로 몰래 따라 들어간 뒤, 글로브 박스 안에 몰래 들어가서 유령화를 풀었다.

    어둡고 좁은 조수석 서랍이었지만, 황금 사신은 왠지 몰래 숨바꼭질하는 느낌이라 조금 즐거워져서 키득키득 소리 없이 웃었다.

    ‘애착 인간, 보고 싶다.’

    그렇게 글로브 박스 안에서 숨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심심해진 황금 사신이 애착 인간을 그리워하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형님. 그런데, 황금 사신이 정말 돈이 되는 건 맞습니까? 딱히 황금 사신으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본 것 같네요.”

    운전석에 앉아서 차를 운전하고 있던 남자가 조수석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히 돈이 안 되지. 우리가 오브젝트를 돈 받고 파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돈이 되겠어? 그저 우리는 희망을 좀 주다가 격리에 성공하면 그걸 가져가면 되는 거야.”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자동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

    “드디어 도착했네. 독사 형님께 가기 전에 좀 쉬다가 가자.”

    조수석에 앉은 사내는 담배를 꺼내려고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그 서랍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해서, 눈을 크게 뜨고 굳어버렸다.

    글로브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색 광채.

    ‘앗 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히히 웃고 있는 황금 사신.

    갑작스러운 특급 오브젝트와의 조우에 조수석의 남자는 깜짝 놀라서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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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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