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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로즈마리는 입에 마력초를 물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뭘 하려고?”

       “나쁜 짓.”

       “나쁜 짓이라니?”

       “시체를 조작할거야.”

         

       일을 벌일 땐 하스펠트 자매에게 전부 털어놓기로 했다. 혼자 막 나갔다가 괜히 신뢰만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말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중요한 시기였다.

         

       “잘 들어, 클라이스 하스펠트. 네 언니 클라라 하스펠트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은 걸로 된 거야.”

         

       로즈마리는 일이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가를 상세히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호천의 눈을 속여야 해.”

       “하지만 블루베리,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멋대로 바꾸면 안 돼.”

       “지금 그게 중요해?”

         

       제국인이 장례절차를 신성하게 생각한다는 건 로즈마리도 안다. 아니, 인족 태반이 그렇겠지. 자신이 옛날에 살았던 왕국도 누구 하나 죽을 때마다 성심성의껏 삼을 싸서 묻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현실을 봐야 할 때야.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린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당신들이 죽여놓고 그게 무슨….”

       “내가 죽였냐? 길라흐가 죽였지.”

         

       마침 몸에 마기도 돌았겠다. 로즈마리는 깐족거리며 스태프를 꺼냈다.

         

       [전설급 고유마도─위령(慰靈)]

       [제 3악장 : 변주(變奏)]

         

       섬뜩한 선율이 방안을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클라이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

         

       꿈틀.

         

       시체가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린다. 골격이 달라지고 체형이 바뀌었다. 머리카락은 윤기 잃은 바닐라색이다. 초점을 잃은 검은 빛 눈동자도 붉은색으로 변했다.

         

       “세상에.”

         

       클라라는 입을 틀어막았다. 자기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있었다.

         

       “…못 보겠어요.”

         

       클라이스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안다. 언니가 살아있다는 것쯤은. 하지만 클라라와 똑같은 시체를 보니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로즈마리는 가짜 클라라의 시체에 죽은 정령의 의념을 집어넣었다. 화계마도를 관장하는 하급 정령의 잔재 두 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걸로 됐을 거야.”

         

       이 정도면 눈속임으로는 충분하다. 로즈마리는 만족스러운 듯 바이올린을 내려놓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슬쩍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지난 몇 주. 로즈마리가 에테르의 명령을 받아 구축해 놓았던 순간이동 마법진이었다.

         

       “클라라 하스펠트, 너는 이걸 타고 제국으로 돌아가 있어. 내가 쪽지를 하나 줄 테니까 여기에 적힌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전부 찾아. 전부 찾으면 일리야드로 가.”

       “그런 다음에는?”

       “아카샤 언니에게 얘기해. 내가 미리 말해 놓았으니까 틀림없이 도와줄 거야.”

       “당신은 어떡하고요?”

       “아카샤 언니한테 보고받는 즉시 나도 일리야드에 가서 합류할 거야.”

         

       제 2막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가능한 카드를 전부 사용해서 언니를 설득해야 한다.

         

       “좋아. 지금 당장 출발해서…….”

         

       로즈마리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오호라. 그리 나오시겠다 이거군요.]

         

       섬짓한 목소리와 함께 보호 마법이 걸려있었던 문이 쉽게 열렸다.

         

       클라이스도, 클라라도, 심지어 로즈마리조차도.

         

       눈앞에 나타난 갈고리 팔 엘프의 모습을 보고 굳어버렸다.

         

       “아….”

         

       가장 놀란 건 클라라였다. 서슬 퍼런 저 날을 볼 때마다 환상통이 느껴진다. 사지가 쓰라리고, 눈이 뻣뻣해지고, 창자가 이리저리 꼬이는 것 같았다.

         

       호천(昊天)의 길라흐.

         

       자신을 끔찍하게 고문했던 사내가, 이를 끄륵끄륵 갈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장난감 씨.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저, 저리 가…….”

         

       길라흐는 멈추지 않고 다가왔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느덧 그림자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예상은 했는데, 이거 참 놀랍군요. 상천이 당신을 숨겨주고 있었다니. 게다가 옆에 그거 말입니다. 조작된 시체라고 해야 하나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하급 정령의 의념을 뿌리면 제가 착각하고 넘어갈 줄 알았습니까?”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길라흐는 에테르가 마왕성을 떠나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그날 정령의 기척을 느낀 이후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클라라를 다시 고문할 날만을 기다렸다.

         

       오늘 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으니.

         

       “으음?”

         

       로즈마리가 입에 마력초를 문 채로 길라흐를 가로막았다.

         

       “이 두 인간은 언니가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했어. 너한테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하!”

         

       길라흐는 코웃음을 쳤다.

         

       “남의 장난감을 멋대로 빼앗아 간 주제에, 지키라고? 한낱 부랑아 주제에? 그것도 이런 약해빠진 년한테? 지랄도 유분수지요!”

         

       길라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반대로 눈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당신은 처분입니다. 감히 상관에게 거짓말에 반항까지 하다니, 괘씸해서 못 봐주겠군요.”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일대일 전투로는 승산이 없다. 특히 상대가 사천 중 하나인 ‘호천’이라면 말이다.

         

       ‘상대방과 네 간극을 잘 살펴라.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죽은 동지만 수십 수백만이었으니까.’

         

       민천에게 덤볐다가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길라흐는 상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클라라 하스펠트를 넘길 수도 없었다. 아니, 넘겨주더라도 자신은 죽는다.

         

       길라흐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자신을 하스펠트 자매와 함께 찢어버릴 기세였다.

         

       그래, 마왕군이란 본디 이런 존재였다. 상명하복, 약육강식, 모략과 뒤통수가 난무하는 집단.

         

       이길 방법은 없다. 전세를 뒤집을 카드도 없다.

         

       그렇다면.

         

       플랜 B로 가는 수밖에.

         

       “호오, 싸우시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편히 보내드렸을 텐데 말이죠.”

         

       이번에는 로즈마리가 코웃음쳤다.

         

       “누가 싸운데?”

         

       다음 순간.

         

       “윽…!”

       “꺄악!”

         

       로즈마리는 하스펠트 자매의 목줄을 휙 잡아당겼다. 세 사람의 발이 동그란 원 내부에 들어온다.

         

       번쩍!

         

       발밑이 은은한 하늘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

         

       길라흐는 곧바로 갈고리를 휘둘렀다. 쐐애액! 손맛이 없다. 갈라진 것은 허공뿐이었다.

         

       눈을 깜빡이고 나자 방에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 늦은 것이다.

         

       “이, 이건 또 무슨 마법이더랍니까.”

         

       스크롤 마도학과 다층형 마법진의 개념이 등장한 건 불과 2백 년 전. 1천 년 전에 봉인된 길라흐가 상세한 원리나 동작 방식을 알 턱이 없었다.

         

       “이거 참. 방심했군요. 흐흐흐…….”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먹잇감을 놓쳤다.

       

       허탈했다. 동시에 분노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왔다.

       

       길라흐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쌍욕을 뇌까리며 연구실을 뒤집어 놓았다.

         

         

       **

         

         

       사람은 죽어도 시간은 흐른다.

         

       필리우트 제국은 일전 수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경기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하스펠트 공작과 새 황제 알리온 필리우트의 노력 덕분이었다.

         

       반파되었던 틸레트 아카데미도 재건하고 있다. 이 부분은 국토부장관에 새로 취임한 메리가 헤를라인 후작이 맡았다.

         

       여전히 인재가 부족한 상황. 장관 일을 하고 있다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한 달 넘게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헤를라인은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입에선 한숨이 픽픽 새어 나왔다.

         

       “힘드네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시느라 그렇죠.”

         

       동료 교수가 너스레를 떨며 안부를 물었다. 헤를라인은 손사래를 쳤다.

         

       “말도 마세요. 투잡 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학생들은 잘 가르치고 계신가요?”

         

       헤를라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희 반에 듬직한 애들이 많아서 괜찮아요.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특히 그 엘프 말씀이시죠? 예전에 자퇴했다가 다시 돌아온…….”

       “네. 틈만 나면 수련하고 공부하더라고요. 그 친구 덕분에 어수선하던 반 분위기도 진정되었고요.”

       “그 학생, 얼마 전에 4학년 실습에 따라가서 기간토피아도 잡았다고 했죠?”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리는 헤를라인. 동료 교수는 짐짓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게, 엘프 유학생이 재앙급 마수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건 틸레트 아카데미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수업 들어갈게요.”

       “저도 할 일이 있어서…….”

         

       두 교사는 동시에 일어났다.

         

       헤를라인은 앞으로 서너 시간 정도 공강이었다. 지금은 선생보다는 국토부장관으로 활동할 때였다.

         

       헤를라인은 황궁에 입궁했다. 오늘은 무너진 서쪽 성벽을 고쳐야 한다.

         

       이곳은 한때 블랜튼 공작이 기거했던 곳. 위험한 건 대부분 치웠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헤를라인은 인력을 재배치하고 파괴된 방들을 둘러보았다.

         

       “이건 얼마 전에 발견된 마법진입니다.”

         

       헤를라인은 셀레스턴 후작과 나란히 서서 블랜튼 공녀의 방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전이진인가요?”

       “구성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습니다.”

       “왜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나요?”

       “해체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일대를 폭파하는 회로까지 깔려있어요.”

         

       헤를라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혀를 찼다. 로즈마리 공녀가 마지막까지 제국을 방해하는구나.

         

       “블랜튼 공녀를 포착할 수 있으면 좀 좋겠네요.”

       “그날 잠적했잖습니까. 어디 갔는지 도통 알아야 말이지요.”

       “잡히기만 해 봐요. 그냥 확…….”

         

       장난스레 말하고는 있지만 헤를라인은 그 공녀에게 쌓인 게 많았다.

         

       제국을 농간한 것, 이사장을 포함한 개혁파를 여럿 죽인 것, 틸레트 아카데미를 반파한 것, 이제 꿈을 키워가고 있던 학부생들에게 절망을 알려준 것 등등.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건 그대로 두세요. 보통 축조진은 아니니 틀림없이 회수하러 오겠죠.”

       “아니면 이쪽으로 군대를 보낼 수도 있겠군요.”

         

       어느 쪽이든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왜, 범인은 사건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이 참말이었다.

         

       파아앗!

         

       “아…?”

         

       마법진이 푸르게 변하더니, 그 위로 세 사람이 덩그러니 나타났다.

         

       자신이 그토록 찾으려고 애썼던 로즈마리 공녀. 그리고 붉은 눈에 금색 머리카락을 한 여인 둘이 마법진 위에 멀뚱거리며 앉아있었다.

         

       아무런 전조가 없었다. 그냥, 눈 깜짝할 새에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

       “…….”

         

       헤를라인과 셀리스턴은 멀뚱히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 장관님! 정신 차리십쇼!”

       “저거 마수입니다!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아랫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헤를라인은 스태프를 들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메리?”

       “…클라이스?”

         

       왜인지 아는 사람이 섞여있었다.

         

       그것도 노예 목줄을 찬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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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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