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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어떤 전투에서 실패하는 데는 여러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숫자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 더 유리한 쪽은 수가 더 많은 쪽이다. ‘많은 쪽’의 실력이 일정 이상만 된다면 힘을 합쳐 그 개개인보다 더 강한 인물을 능히 상대해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법국의 수뇌부는 그 ‘일정 이상의 힘’부분을 잘못 계산했다.

        

       황제가 검을 휘두르자 황금빛 검에 묻었던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분명 황금은 무른 금속일 터인데, 황제가 휘두르는 검에 둘린 검기는 그런 금속 간의 차이는 미미한 것이라고 주장하듯, 법국의 기사들을 너무나 쉽게 갈랐다.

        

       황제 하나뿐이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검술에 능하고 강대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 그 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안토, 니오…….”

        

       기사 한 사람이 힘겹게 그 이름을 불렀다.

        

       물론 그 말끝에, 기사는 ‘제리코의 검’에 찔려서 요절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였단 말인가.”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나이가 90은 먹었을 것 같은 작은 노인 하나가 앉아있었다. 입고 있는 법복은 첫눈처럼 새하얀 천 위에 아름다운 황금빛 실로 촘촘하게 자수가 놓아진 고급스러운 옷이었지만, 그 안에 숨듯이 앉아있는 노인은 황제의 눈에는 그저 애처롭게만 보였다.

        

       “아, 교황 성하.”

        

       황제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교황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물론이지. 계획을 세우려면 처음부터 똑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나? 오히려 그대들이야말로 방심하고 있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터. 사실 처음부터 내 아들을 이곳에 이렇게까지 깊숙하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내 딸이 그 정도의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내부 구조를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안토니오’라고 불렸던 인물은 자신이 방금 찌른 기사의 몸에서 검을 빼내며 고개를 들었다.

        

       데미안이었다.

        

       “……그렇다면 너의 또 다른 아들이 이곳을 습격했던 사건은—”

        

       “아, 그건 정말로 우연이었네. 내 아들의 무례를 사과하도록 하지.”

        

       황제는 가슴 위에 한 손을 얹고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유감을 표했다.

        

       “솔직히 그때는 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이 다행이지.”

        

       “정확히는.”

        

       말없이 황제 근처까지 걸어온 데미안이 말했다.

        

       “제가 운 좋게 도망쳐서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주변의 기사들이 죄다 사망했기에 의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거지, 안 그랬으면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들켰겠죠.”

        

       “뭐,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래도 최소한의 의리는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보다는 그저 주변에 남은 목격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섞인 황제의 말에 데미안은 정색하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황제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결국 그래서 지보를 빼앗겼습니다. 이 점은 몇 번을 사죄드려도—”

        

       “괜찮다.”

        

       황제는 데미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결국 그 지보는 내 손에 넘어왔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결국 내 두 아들이 나에게 내가 찾던 물건을 가져다준 셈이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황제가 품 안에서 꺼낸 것은, ‘톱니바퀴’였다.

        

       푸른 빛으로 어지러이 새겨진 문자가 아름답게 아른거리는, 완전한 톱니바퀴.

        

       “……그리고 나머지는, 내 딸이 가져다주었지.”

        

       그르륵.

        

       뭔가 대답하고 싶은 것인지, 황제의 근처에서 그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

        

       황제는 시선을 내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하얀 가면을 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모두 심상치 않은, 커다란 자상이었다. 분명 이대로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리라.

        

       아니, 사실 상태를 보면 이대로 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배 쪽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내장이 비어져 나와 있었고, 그 내장 사이사이에는 마치 안쪽에 뭔가 기계장치라도 있었다는 듯 나사못과 작은 톱니바퀴들이 어지러이 들어있었다.

        

       황제는 자신이 ‘딸’이라고 칭한 그 존재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미래에서 나는 실패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범인은 이해하지 못할 종류의 말이었다.

        

       “그 옛날 팬그리폰이 만들어낸 기계장치는, 오로지 팬그리폰의 힘으로만 구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인간에게서 자유와 의지를 빼앗고 자신의 ‘완벽한 질서’에 꿰맞추려는 여신의 계획에 반발한 초대 팬그리폰이 생각해낸 장치였기에, 일부나마 그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팬그리폰의 몸’이 필요했겠지.”

        

       황제는 그 가면 쓴 소녀의 옆에 부드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상냥하게 소녀의 상체를 안아 자기에게 기대게 하였다.

        

       황제가 그 가면을 벗기는 와중에도 소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냐, 앨리스.”

        

       쿨럭, 하는 소리에는 어떤 의미도 섞일 수 없었다.

        

       황제는 얼굴에 튄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드러운 손길로 앨리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미래의 나는 거의 성공에 도달했지만, 실패했다. 그 결과, 한 차례 반복된 세상 안에서도 누구도 세상이 한 번 돌아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미래의 나는 생각했겠지. 어떻게 하면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냐, 나의 딸아. 나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황제를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에서 빛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네가 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 그리고 내 앞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반항했던 것.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황제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자기 딸을 향해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나는 언제나 이기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니까.”

        

       “어째서?”

        

       질문이 들려온 방향은 품에 안긴 ‘앨리스’ 쪽은 아니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검까? 당신의 그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임까?”

        

       “음.”

        

       황제는 품에 안고 있던 ‘앨리스’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몹시 껄렁한 말투로 무례하게 말을 거는 아들— 루카스를 보았다.

        

       “내가 이기고 싶어 하는 이유 말이냐?”

        

       “그렇슴다.”

        

       루카스의 목소리에 재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제일 먼저 움직인 건 황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데미안이었다. 황제 앞을 가리듯 선 데미안은—

        

       “됐다. 물러나거라.”

        

       황제가 그 어깨를 가볍게 치자, 어깨를 떨며 흠칫 놀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뒤로 벨라와 제이든이 달려왔다. 황제가 직접 비키라고 했으니 그 앞길을 막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있는 자세였다.

        

       루카스는 그 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황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검을 휘두르는 이유와 같다.”

        

       “……가장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그 강함의 근거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황제는 웃으며 한 발자국, 루카스 쪽으로 내디뎠다.

        

       “루카스, 나는 말이다. 내가 황제라는 사실이 즐겁다.”

        

       “…….”

        

       “내가 한 번 명령하면 수만의 병사가 군화로 땅을 울리며 진군한다. 수만의 인간이, 나와 목숨의 가치가 같은 인간 수만이 오직 나 한 명의 명령만을 믿고 저 지옥을 향해 진군하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바쳐가면서.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기에 나는 그 목숨값만큼의 결과를 낼 것을 언제나 강요받는다.”

        

       황제는 별다른 경계 없이 루카스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가슴 뛰는 일이 아니더냐? 내 몸짓 하나, 내 말 한마디가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

        

       “그래, 처음에는 팬그리폰이라는 위명에 걸맞은 인간이 되고자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초대 팬그리폰은 혼돈을 사랑했지. 약한 이와 강한 이가 뒤엉키고, 그저 검과 검의 부딪힘으로, 순수함과 선함만으로 위아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닌, 말과 협력, 모략과 배신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사랑했다.”

        

       먼, 먼 옛날.

        

       아직 질서라는 것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혼돈의 시대. 기형의 몸을 가지고도 초대 황제는 그리폰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였다.

        

       그리하여 얻은 이름이 팬그리폰.

        

       “그는 그 아름다운 혼돈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랐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 위대한 혼돈을 다시 불러오고자 하는 검까? 초대 팬그리폰의 위명을 되살리기 위하여?”

        

       “아니.”

        

       황제는 말한다.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질서도, 혼돈도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저, 지금 나의 위치가 너무 즐거울 뿐이다. 내 피가, 팬그리폰의 피가 섞였으면서도 어째서인지 여신의 간택을 받았을지 모르는 이와 수를 두며 싸우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새로운 계획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도 즐겁고,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행위가 너무나 즐겁다. 그래,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할 만큼.”

        

       그리고 황제는 웃는다.

        

       티 하나 없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미소.

        

       “궁금하지 않으냐? 여신의 힘을 내가 완벽하게 제어해낼 수 있다면, 그다음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그러니, 결국 내가 추구하는 것은 네가 추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나의 아들아.”

        

       황제는 양팔을 활짝 벌린 채 말했다.

        

       “이 세상을 내 발아래 두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곳부터 천천히, 확실하게 고쳐나갈 날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모른다. 어쩌면, 너희들의 그 결핍되었던 과거마저도 충만하게 고쳐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느냐.”

        

       “…….”

        

       “음.”

        

       루카스가 황제의 말에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 바깥쪽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을 갑옷으로 가린 법국의 기사단이 몰려드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딸과의 양동작전의 효과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아마 여기서는 저쪽을 포기하기로 한 모양이군.”

        

       “……실비아는 이게 양동작전이라는데 동의했슴까?”

        

       황제는 루카스를 향해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럼, 교황 성하.”

        

       황제는 몸을 돌려서 교황 쪽을 보면서 말했다.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교황은 황제에게 압도되기라도 한 듯 황제를 그저 멀거니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성하께서 숨기고 있는 그 완성되지 못한 기계는 어디에 있지? 슬슬 마지막 단계를 밟고 싶다만. 아, 물론 우리는 바깥의 기사들도 환영하는 바이네. 설마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고작 이 정도 인원만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

        

       그러니까, 법국은 제국의 ‘힘’을 잘못 계산했다.

        

       단순한 무력, 지략,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을 보았어야 했다고, 교황은 그 순간 생각했다.

        

       그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것.

        

       그래, 이를 테면—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신념.

        

       절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꺾이지 않는, 그런 신념을 황제 또한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다고.

        

       *

        

       흐려져 가는 시야 너머.

        

       황제와 그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앨리스라고 불렸던 것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찰칵찰칵찰칵.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소리 안에서, 딱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소리 안에서.

        

       지금, 이 순간 자체가, 마치 누군가가 정리해둔 톱니바퀴의 설계도대로 딱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저 위쪽—

        

       자신이 있던 틈 사이의,

        

       창백한 푸른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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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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