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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성문 안에 들어선 후, 임시로 3층 방에 하나 들어가 앰브로시아와 함께 파티원들을 가볍게 진료했다.

     

    다들 부상은 거의 없었다.

     

    “복귀하시죠.”

     

    내가 툭 내뱉으니 아셀라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의사가 그렇게 불친절해.”

     

    리셰가 즉시 지도를 꺼내 전략을 짰다.

     

    “성채는 강이 두르고 있어서 적 보병이 바로 공격해오지는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문제일 거예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저희는 무엇보다 거미 군주 토벌에 집중해야겠습니다. 그 강력한 마물은 일반병에겐 방어하기조차 버거울 겁니다.”

     

    타냐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에서 얻은 공략법은 조금 달랐다.

     

    “언데드 군대는 강화된 상태입니다. 통상보다 체력과 속도, 방어력이 2할 정도 증가해 있죠. 거미 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정말이오? 무시무시하군. 본래도 강력한 마물이거늘.”

     

    “리치의 마법입니다. 거미 군주를 소환한 것도 리치니 결국 그를 토벌해야 합니다.”

     

    내가 짚은 핵심에 타냐가 동의했다.

     

    “언데드 군이 와해되면 후속 마왕군은 마족군만 남게 되니 저들도 재정비에 시간이 한참 걸리겠지요.”

     

    “리치를 쓰러트리면 연합군이 시간을 많이 벌 수 있겠어요. 그동안 저희가 텔레포트 게이트로 마계로 넘어갈 수 있겠고요.”

     

    리셰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리치는 7위계 마법사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현자와 동급입니다.”

     

    “만만하지 않은 상대네요….”

     

    “파우스트군, 마왕군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구먼.”

     

    앰브로시아의 의문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설명했는데, 확실히 의심을 살만하긴 했다.

    하지만 내게 좋은 변명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트베르크가 전해줬습니다. 기스도 마왕군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랬죠. 기스 치유사님… 열심히 싸워주셨어요.”

     

    리셰가 잠시 그에 대해 묵념했다.

     

    “그렇게 높은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면 본녀가 맞붙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셀라의 말이었다.

     

    “그런 본녀에게 마비약을 놓다니, 제정신인가? 파우스트, 이 전투가 끝나면 그대의 죄를 낱낱이 물을 것이야.”

     

    흠, 아무래도 아셀라에게 파우스트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게 심어진 모양이다.

     

    앞으로 함께 마왕 토벌까지 할 걸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점수를 만회해야겠는데.

     

    “아직 증상이 남아 있으신가 보군요. 조금 더 진료해드리죠. 다른 분들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워주십시오.”

     

    파티원들이 방을 나가고 곧 나와 아셀라만이 남았다. 나는 아이템박스를 열어 활력 포션과 강화한 비타민, 자양강장제를 꺼냈다.

     

    섞어서 마시기 좋게 음료처럼 만들어 아셀라에게 내밀었다.

     

    “드시죠. 훨씬 몸이 편해질 겁니다.”

     

    나를 고깝게 쳐다보다가 플라스크를 받아들고 쭉 들이키는 아셀라.

     

    그녀도 금방 몸의 변화를 느끼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흥, 실력은 인정해야겠네.”

     

    “그의 스승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판단력은 그에게 못 미쳐. 라스라면 그 자리에서 본녀가 리치를 쓰러트리도록 성심성의껏 보좌했을 거야.”

     

    “고트베르크를 잘 아시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그야 나는 그의….”

     

    아셀라가 말을 흐리고는 시선을 피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셀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라도 그 자리는 피했겠지요. 토벌할 수야 있었겠지만 뒤가 없잖습니까. 고트베르크는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은 아끼는 남자입니다.”

     

    “네가 뭘 안다고 확신해?”

     

    “…하하, 잘 알지요. 얼마 전까지 후국에서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썰매도 함께 탔지요.”

     

    “썰매가 있단 말이야?”

     

    “산 하나의 중턱을 개간해서 썰매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재미있겠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아셀라.

    후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중일까.

     

    “후국에 공식 서신을 보낸 적은 없으신 모양이더군요. 목휘궁에선 연합군으로서 여러 번 협력 요청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왕국이나 공국에서도 왔었죠.”

     

    나는 무심코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질문을 해버렸다.

     

    지난 시간 월광궁에서는 후국에 한 번도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아셀라가 내게 파혼 이후로 보내는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연락할 수도 있었겠으나 승계전과 제국 내치 때문에 바쁠 것도 분명했으니, 방해해서 좋을 것도 없었다. 혹 더 분노를 샀다간 연합군에 해가 가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아셀라를 보니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도 든다.

     

    그녀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월광궁은 어땠습니까?”

     

    내 질문에 아셀라가 눈꼬리를 찢었다. 나, 파우스트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와 라스의 일이야. 네가 끼어들 건은 아니지. 정 궁금하면 먼저 말해보아라.”

     

    아셀라가 잠깐 머뭇거리고는 내게 물었다.

     

    “라스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잘 있습니다.”

     

    “…그래, 잘됐네. …혹시 다른 여자가 구혼하지는 않았니?”

     

    “제국의 귀족가나 소국의 왕족에서 혼담이 다수 들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아셀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스가 응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황녀님의 손에 끼워진 그 반지.”

     

    아셀라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수수한 디자인의 반지가 은은하게 존재감을 빛내고 있었다.

     

    “같은 모양의 고리가 지금도 고트베르크의 약지에도 끼워져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다시 만나고 처음으로, 아셀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여태 짜증과 화에만 젖어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보인 미소였다.

     

    “정말입니다. 적어도 제가 봤을 땐 한순간도 손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았습니다.”

     

    “흐응, 더 얘기해 봐.”

     

    아셀라가 흥미로워하며 다리를 꼬았다. 턱을 괴고는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가 반지에 대해 제게만 알려준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고트베르크에게 반지의 기능에 대해 들으셨을 겁니다.”

     

    “맞아. 분명 위험할 때 이 틈새를 손톱으로 긁으라고 들었어.”

     

    “그 반지는 꽤 희귀한 아티팩트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 기능이 있구나.”

     

    아셀라가 애틋한 눈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기능을 사용한 순간 고트베르크가 황녀 전하의 위치를 바로 알게 됩니다. 다급할 땐 써보시죠. 혹시 그가 도움을 줄지도 모르잖습니까.”

     

    “하.”

     

    아셀라가 코웃음을 치고는 지팡이를 잡았다.

    마스크를 쓰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머리를 틀어 올려 묶으니 말 꼬랑지처럼 살랑거린다.

     

    “모르는 소리 말아라. 본녀가 장난으로라도 그에게 의지할 줄 아느냐.”

     

    아셀라는 독기 품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명령했다.

     

    “마왕을 토벌할 때까지는 그대가 본녀를 책임지고 살려놓아라. 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가야겠구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였습니다.”

     

     

     

    아셀라가 나간 후, 나도 한 번 더 변장을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파우스트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내 앞에 타냐가 서 있었다.

     

    원체 감이 좋은 타냐다. 그녀라면 내 정체를 눈치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잘 됐다, 이리 와 봐.”

     

    나는 바로 그녀를 데리고 복도 뒤로 돌아 들어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단장, 나 좀 도와줘.”

     

    “선생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타냐의 눈이 일자로 찢어졌다.

    혼자서는 이 상황을 전부 커버할 수 없다. 타냐라면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하고 있었어?”

     

    “약간은요. 너무 수상하게 유능하지 않습니까.”

     

    “내가 좀 유능하긴 해. 하여튼.”

     

    “굳이 정체를 숨기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정치적인 문제야. 나도 용사 파티에는 알리려고 했어. 그런데 여기 아셀라가 왜 있는데!”

     

    “아.”

     

    타냐가 입을 다물고는 볼에 바람을 넣었다.

     

    “도저히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맹약의 마법이란 게 생각보다 강하더군요.”

     

    “강하지. 꼼수도 안 먹혀. 아무튼 반가워. 그동안 고생 많았어.”

     

    우리는 주먹을 마주쳤다. 간만에 그녀를 보니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마왕을 토벌할 때까지 함께 할 거야. 남에게 맡겨서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깨달았거든.”

     

    “선생님 성격이시면 그러실 줄 알았죠.”

     

    “이제 병원장이야.”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렇게 빡셀 줄 알았으면 후국으로 갈 걸 그랬습니다.”

     

    “소드마스터잖아. 힘내.”

     

    나는 타냐의 어깨를 치며 사탕 꾸러미를 넘겨주었다. 타냐가 안에서 알사탕을 꺼내 하나 입에 쏘옥 넣었다.

     

    “계피맛이군요.”

     

    “방어력 증가 효과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셀라는 알면 안 돼. 나라고 알면 멘탈에 영향이 가서 파티에도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

     

    타냐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지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 같군요. 미리 어떻게든 전달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체형이나 걸음걸이만 봐서는 눈치 못 챌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

     

    “그래도 선생님이 오셨으니 승률은 훨씬 높아졌군요. 어서 마왕을 토벌하고 바닷가로 휴가나 떠나죠.”

     

    “단장이 쏘는 거야?”

     

    “술만 가져가겠습니다.”

     

    타냐가 듬직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갑옷의 목덜미를 채우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가면 밑으로 사탕을 넣어 물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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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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