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6

       “하아, 하아, 아프단 말이에요. 구해줘요……주인님……히잉.”

       “이 녀석아, 그만 징징거리라고 했지? 워워.”

         

       요정이 고삐를 잡아당기자 클라라가 세 사람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길 건너편에서 그녀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클라라의 입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재갈이 물려 있었다. 그녀는 그 사이로 침을 질질 흘려댔다.

         

       “우우……시, 싫어…….”

       “저희 서커스의 네발 탈것입니다! 하하, 좀 시끄럽긴 하지만, 말은 잘 듣는 편이죠!”

         

       엘라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도 그가 말한 단어는 하나 알아들었다.

         

       “서커스? 서커스라고?”

         

       호객꾼 요정은 나비 날개를 파닥이며 허공을 날았다.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투실한 볼살을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희는 숙박업, 요식업에 공연, 연회까지 겸하고 있거든요! 더불어 일자리 알선까지!”

         

       요정은 클라라의 엉덩이를 뻥 하고 걷어찼다. 클라라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엘라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여기 와서 본 광경 중에 지금 것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자, 잠시만…….”

         

       엘라가 이 상황에 대해 따지고 들려 했을 때, 루미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럼 타고 가 볼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클라라의 등에 얹힌 안장 위에 올라탔다.

       그 자연스러운 태도에 또 한 번 충격받은 엘라는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루미 언니……이 사람, 내 일행…….”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일단 기다려. 이놈들은 다루는 방법이 있어.”

         

       루미가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엘라에게 말하는 듯했으나 그 시선은 오즈를 향하고 있었다.

         

       루미와 눈이 마주친 오즈는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클라라가 네발로 끌려오는 꼴을 보는 순간, 그의 안에서 아까 사법 극장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종류의 혐오감이 치솟았다.

       그나마 그때는 당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남이었지만-부두교 마도사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겠지만-지금은 자신의 단원이었다.

         

       허수아비는 눈앞에서 히죽거리는 뚱뚱한 요정들을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속삭였다.

         

       “이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짐작 가는 구석이 있어. 여관에 도착하면 확실해지겠지. 그보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는데.”

       “뭐죠?”

       “이 아이 영체야.”

       “네?”

       “너처럼 육체가 없는 상태라고.”

         

       오즈는 깜짝 놀라 클라라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흰색의 레카체프 교복은 그녀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것이었다. 엘라가 입고 있는 붉은색 연미복도 그렇고 나머지 사람들도 무대에서 자주 입었던 복장으로 옷이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육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무대 경력이 긴 단장들은 몸에도 페르소나가 조금 반영되었지만, 허수아비처럼 아예 탈바꿈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육체를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의 차이였다.

         

       지금 그가 보는 클라라는 얼굴도 손도 다리도 모두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게 영체라고?

         

       “어?”

         

       허수아비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현재 클라라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분명 ‘산 사람’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녀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 경비병들도 그녀를 흘끗 바라보고는 무심하게 지나쳤다.

         

       “어떻게……?”

       “이 모습 자체가 이 아이의 페르소나면 설명이 되지. 즉, ‘인간 클라라’가 이 아이가 연기하는 가면이라는 거야.”

         

       그녀의 말을 듣고 그는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봤던 영화에서 나온 것이었다. 거기서 외계인이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행세를 했다.

         

       설마 클라라가……?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보다 그에겐 더 그럴듯한 설명이 있었다.

         

       “클라라 양은 혼과 육이 어긋나는 병이 있습니다.”

       “그런 병이 있어?”

       “네. 저도 완치가 불가능할 정도죠.”

       “음, 혼이 불안정하다? 그러면 설명이 될지도……. 그래서 최면도 이렇게 강하게 걸린 건가?”

         

       클라라의 정신 상태는 척 봐도 심각했다. 그녀는 엘라와 몇 번이나 눈을 마주쳤는데도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멍한 눈빛으로 반복적으로 힘들다는 투정만 반복할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요정들이 운영하는 여관에 도착했다.

       입구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여름 밤의 서커스>

         

       “역시나.”

         

       루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엮여도 이놈들이랑 엮이다니.

         

       “서커스? 이놈들도 서커스단인가요?”

       “못 들어봤어? 요정들로 이루어진 서커스단인데.”

         

       그때, 옆에서 엘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나 저 이름 들어본 적 있어. 사부님이 예전에 그러셨어. 숲이나 들판에서 밤에 음악 소리나 어린애들의 것으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거든. 가면 요정들이 연회를 벌이고 있는데, 거기 어울려 노는 애들은 요정들이 자기네 땅으로 데려간대.”

         

       어딘가 괴담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루미는 그것을 좀 더 담백한 사실을 곁들여 설명해주었다.

         

       “마신의 영역에 거주하는 요정이나 마귀도 있다고 했지? 한여름 밤의 서커스는 원더랜드에 그 근거지를 둔 서커스단이야. 물론 키르쿠스의 신도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식객으로서 머무를 뿐이지만. 얘들은 종종 지상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기도 해.”

       “그리고 애들도 납치하고?”

       “그런 짓은 벌이지 않아. 이번 일은 뭔가……오해가 겹친 거겠지. 어쨌든 내게 맡기고 얌전히 있어 줘. 한여름 밤의 단장과는 안면이 있으니까. 반드시 네 친구를 되찾아 올게.”

         

       그들은 문을 열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여름 밤의 서커스입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어린 인간 여자애였다. 그 목소리는 세 사람 다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루엘로가 노란색의 병아리 인형 옷을 입은 채 그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루, 루리?”

       “손님, 아니, 어, 언니?”

         

       엘라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루엘로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있던 요정들이 두 사람을 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시선 둘 곳을 못 찾던 그녀는 여관 입구에 네발로 엎드린 클라라를 발견했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자 ‘항상 웃을 것’이라는 가게 수칙을 까먹고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게요, 클라라 언니가…….”

         

       루엘로는 울먹이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

         

         

       경비대의 추적에서 도망친 두 사람은 함께 카드순 안으로 들어왔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루엘로와 달리 클라라는 원더랜드에 대해서도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페르소나, 바운서, 티케터, 극장 등등.

       그녀는 하나하나 쉽게 풀어서 루엘로에게 설명해주었다.

         

       “대단해요, 언니! 페르소나 빼고 저는 다 처음 듣는 내용이에요.”

       “훗, 여기선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그때, 루엘로의 머리카락이 불쑥 솟아나더니, 마치 짐승의 입과 같은 형상을 취했다.

         

       “평소의 바보 같은 모습은 위장이었나?”

       “바보 같은? 너보단 내가 세상 물정 훨씬 잘 알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녀석이.”

       “행동하는 건 네가 더 어린애 같다.”

       “뭐? 요 녀석!”

         

       클라라는 루엘로의 머리카락을 붙들고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정작 머리카락의 주인은 내버려 둔 채 말이다.

         

       루엘로는 클라라와 삼손이 다투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지었다.

         

       둘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밤, 둘은 루엘로 몰래 의기투합해서 대화를 나누더니 급속도로 친해졌다.

         

       몸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에 비밀이 생겨 섭섭하긴 했지만 루엘로는 기뻤다. 아빠조차 악령이라며 경원시하는 삼손을 클라라가 친구로 받아 들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무섭게 생긴 단원들이 많은 괴물 서커스 소속이라고 하니, 그녀의 대범함이 이해가 갔다.

         

       ‘언젠가 엘라 언니에게도 말해줘야지.’

         

       엘라와 레이나는 자신에게 잘해줬지만,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가 동생에게 베푸는 아량과 거리감 때문에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야는 냉담해서 다가가기 쉽지 않았고, 카렌은 짓궂게 굴기만 하는 것이 또래 남자애들 같았다.

         

       그에 비해 클라라는 다섯 명의 언니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또래 애들을 보는 것 같은 천진함이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삼손과 셋이서 유치한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이불 위를 뒹굴며 놀곤 했었다.

         

       그녀는 어벙한 모습과 달리 아는 것도 많고, 똑똑했다. 티케터의 태그 기능을 이용해 다른 동료들을 찾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그녀였다.

         

       “일단 극장을 빌리려면 대회에 나가서 입상 정도는 해야 할 텐데.”

       “제가 차력을 하면 될까요?”

       “어허, 막내 둘은 가만히 있어. 고생은 맏언니인 내가 해야지!”

         

       클라라는 애들을 잘 돌봐달라는 주인님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 무대 위의 돌발상황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나서는 게 나았다.

         

       그녀가 고른 것은 코미디 무대였다.

       아무래도 노래나 재주는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듀얼’을 택했다.

       아무래도 웃기는 것보다 입씨름을 겨루는 게 자신에게 맞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듀얼은 무대에 선 몇 명의 챔피언 중에 자신이 도전할 대상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거기서 도전자가 이기면 새로운 챔피언이 되고, 챔피언은 일정한 횟수 이상을 방어하면 본선에 진출했다.

         

       클라라는 그중에 한 명을 택했다.

       전신이 푸른 털로 뒤덮여 있는 데다 머리에는 염소의 뿔이 난 사내였다. 그 키는 어지간한 인간보다 컸고, 몸 역시 넓고 탄탄했다.

         

       새하얀 정장과 셔츠에 밤색 멜빵을 걸친 모습은 요정답지 않게 거친 남자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피우던 시가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나를 택했어? 왜지?”

         

       그 목소리 역시 중후한 중년 남성의 것이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소리쳤다.

         

       “요정이니까. 이런 머리 쓰는 것에는 약할 것 아냐?”

         

       그녀의 답변에 염소 뿔의 요정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요정을 무시하는 발언은 참을 수 없는데.”

       “에헹, 못 참으면 어쩔 건데!”

         

       요정은 허공을 바라보고 한숨을 길게 토했다.

       오랜만에 그냥 머리나 풀 겸 나온 거였는데, 또 이런 골치 아픈 시비나 걸리다니. 키르쿠스의 낙원에는 왜 이렇게 까불이들이 많은지.

         

       “내기라도 할까?”

       “응? 무슨 내기?”

       “뭐든지. 나 이래 봬도 원더랜드에서 극장주 이상의 힘은 있거든?”

         

       그의 말에 클라라는 크게 반색했다.

         

       “오, 그래? 그러면 극장에서 공연 좀 하게 해줘. 이기는 즉시!”

       “좋아. 대신 지면 너는 우리 건물에서 1년 동안 일해야 한다.”

       “에헷, 덤벼 보셔!”

         

       2인극의 한 종류인 ‘듀얼’은 어린 페어리들의 다툼에서 비롯되었다.

         

       -백룡이 더 강해!

       -아냐. 흑룡이 더 강해!

         

       그런 유치한 주장은 보통 환상을 만들어 대결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어차피 환상은 환상일 뿐이었다. 둘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실제 어느 쪽이 더 강한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었다. 서로의 환상을 부수는 믿음의 작용이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즉, 대결에 임하는 두 사람은 서로가 상대가 제시한 것보다 더 강한 것을 제시해 상대의 믿음을 부수면 되는 것이었다.

         

       요정과 클라라는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요정이 손을 들자, 한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주로 그의 단원들이 내는 소리였다.

         

       “단장님, 저런 무례한 여자는 패대기 쳐버려요!”

       “감히 듀얼로 단장님께 덤비다니!”

         

       클라라도 관중들을 향해 번쩍 손을 들어 보였다.

         

       “우와아, 레카체프 교복이네? 정통 곡예사군!”

       “건방진 요정 따위 박살 내버려!”

         

       그녀를 응원하는 건 주로 페르소나들이었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주민들이 요정에게 격파당하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듀얼은 시작 전에 이러한 신경전도 중요했다.

       환상을 담당한 마법사는 중립을 고수한다지만, 이런 자신감이나 기세에 환상이 영향을 받지 않을 확률이 0%는 아니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챔피언인 요정 쪽이었다.

         

       “자, 시작해볼까. 이 몸은 커다란 개구리를 내놓지. 이놈들은 페어리를 잡아먹어.”

         

       오늘 환상을 담당한 마법사는 페어리였다. 그녀는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개구리 한 마리를 만들어냈다.

       푸른 피부의 요정 위에서 개구리 환상이 혀를 날름거렸다.

         

       “헤헷, 중립인 마법사를 겁먹게 했군? 괜찮은 시작이네. 그럼 나는 코브라를 내보낼게. 얘는 개구리 따위 한 끼 식사로 해치우거든.”

         

       이번에는 클라라의 머리 위에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은 개구리 환상을 꿀꺽 삼켰다.

         

       “오소리. 코브라의 이빨과 독이 통하지 않아.”

         

       오소리가 나타나 뱀을 콱 깨물어 몸통을 조각냈다.

         

       “사나운 재규어. 오소리 따위 발톱으로 찢어.”

         

       재규어의 환상이 오소리를 뱃가죽에 발톱을 박아 베어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점점 더 강한 것을 소환해서 서로가 만들어 낸 것을 부수어 갔다.

         

       종종 변칙이 나오기도 했다. 사나운 호랑이에 대해 강력한 독을 지닌 벌이라든지, 무거운 코끼리에게 발을 빼기 힘든 늪지대라든지.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제시한 것을 바로바로 다른 개념을 꺼내와 해결했다.

         

       관객들은 혀를 내둘렀다.

         

       “허어, 단장님과 벌써 오십여 합을 주고받다니.”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받아치잖아? 머리에 백과사전이라도 들어있나?”

       “괜찮을까? 지는 거 아니겠지, 단장님?”

         

       요정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곡예사들도 클라라의 실력에 놀랐다. 그녀를 응원하기는 했지만, 저 요정은 여태껏 번번이 이름난 도전자를 격파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레카체프 하면 기술은 뛰어난데 임기응변은 약한 이미지인데.”

       “대단한 재치군.”

       “저렇게 어린 나이에 죽은 건 안타깝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듀얼은 사회적인 규모로 커져 있었다.

         

       “이 몸은 대륙을 통일한 황제. 모두가 내 명령에 복종해.”

       “나는 민중의 혁명. 어떠한 절대 권력자라도 끌어내리지.”

         

       황금 옥좌 위에 나타났던 황제의 환상이 누더기를 입은 민중들의 환상에 질질 끌려 내려왔다.

         

       요정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를 내밀면 암살자 따위를 내보낼 줄 알았다. 그러면 가볍게 황제의 호위대로 암살자를 제압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저 정도 개념을 바로 내놓을 정도라니. 확실히 겉보기와는 다르군.’

         

       요정은 이제 슬슬 승부를 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지식으로 계속 붙었다간 자신이 질지도 몰랐다.

         

       “나는 유희의 마신, 키르쿠스. 어떤 불행이라도 웃으며 즐기지.”

       “나는 빛의 신이야. 모든 마신을 굴복시켜.”

         

       클라라는 미소를 지었다.

         

       ‘많이 다급했나 보지? 갑자기 마신을 끌고 오다니.’

         

       전 세계 석학들의 논쟁을 즐겨듣던 그녀였다. 우주적 레벨로 들어간다면 그녀에게는 더 방대한 지식이 있었다. 자신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요정 쪽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개념이었다.

         

       “나는 잠든 혼돈. 눈을 뜨면 빛의 신도 마신들도 모두 내가 잡아먹지.”

       “뭐? 그런 게 어딨어!”

         

       자신이 모르는 지식이 나오자, 클라라는 순간 그렇게 반박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 말을 내뱉고 숨을 헉 들이켰다.

         

       그건 듀얼에서 절대 말하면 안 되는 단어였다. 상대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걸 상상해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상상력을 짜내 그것을 부수는 개념으로 대답해야지, 그냥 떼를 쓰듯 부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으으, 자, 잠깐, 생각해낼 거야, 기다려…….”

         

       클라라는 머릿속을 빠르게 뒤져봤다.

       하지만 ‘잠든 혼돈’이라는 개념은 처음 들었다.

       그것을 부수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초신성? 블랙홀? 다중 차원 충돌?

         

       그녀가 자신감을 잃고 머뭇거리는 동안 빛의 신을 삼킨 잠든 혼돈이 점점 선명해졌다.

       반투명했던 환상이 완전하게 형태를 갖췄다.

         

       “환상이 완성되었군. 승부는 내가 이겼다. 그렇지, 심판?”

       “기, 기다려, 나, 나는……!”

         

       클라라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도 안 돼.

       나는 이겨야 하는데,

         

       그러나 요정은 그녀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허리를 펴자 그의 등에서 날개가 펼쳐져 나왔다.

       한쪽은 잠자리의 것과 같은 페어리의 날개, 다른 한쪽은 나비의 것과 같은 스프라이트의 날개였다.

         

       “재밌는 대결이었다. 클라라라고 했나?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네가 섬길 ‘한여름 밤의 서커스단’의 단장인 오베론이라고 한다.”

       “히익.”

         

       클라라의 눈동자에 힘이 풀리면서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침이 주르르 흘렀다.

       허공에서 만들어진 목줄의 환상이 그녀의 목에 채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르퀘이 님, 50코인 후원! 엄청난 유머 감각에 소름 돋았습니다! ㅋㅋ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