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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언니를 만나야 한다는 윌리엄의 말을 들은 엘라의 눈에 순간적으로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경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랗고 깊은 수준의 경멸이 말이다.

         

       맨날 여자만 꼬시고 다니는 윌리엄이 아나스타시아를 찾는다면 무슨 용무로 찾는 것이겠는가.

         

       뻔할 노릇이었다.

         

       문제는 아나스타시아의 외형.

       그녀는 어려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어린애 그 자체였다.

         

       잘 쳐줘 봐야 초등학생 수준의 몸.

         

       ‘이 쓰레기가.’

         

       엘라는 사람이 다다라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떨어져 버린 짐승 같은 놈을 경멸이 섞인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언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평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떤 언니 말씀이신지요?”

       “언니에도 종류가 있냐?”

       “이상한 말씀을. 저는 외동이랍니다.”

         

       엘라는 아나스타시아를 지키려는 듯 시치미를 뚝 뗐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정말 ‘내가 잘못 알고 온 건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완벽한 연기였다.

         

       “쯧, 그렇게 시치미를 뗄 거면 아까 표정 관리라도 잘할 것이지. 다 봤다, 그 눈깔.”

         

       하지만 윌리엄은 그런 엘라의 연기가 부족하다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뭐, 심정은 이해는 하지. 새아빠가 될 사람이 언니까지 노리는 것 같으니까 이게 웬 미친 새끼인가 싶었을 거야. 그렇지 않냐?”

         

       윌리엄은 경박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더니 메고 있던 자그마한 가방에서 길쭉한 맥주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뚜껑을 따버리고 병째로 꿀꺽꿀꺽 맥주를 들이켰다.

         

       크으-

         

       그는 맥주의 짜릿함에 살겠다는 듯 탄성을 지르고는 다시 엘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기랄 그래, 뭐. 네 언니가 예쁘기는 하지. 기가 막히긴 했어.”

         

       그 말을 들은 엘라는 윌리엄을 확신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미치광이 망나니가 드디어 어린아이에게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끔찍한 소아성애자(pedophilia)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라고.

         

       이러한 확신이 더해지자 엘라의 마음에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시아를 저 변태 같은 망나니의 손에서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말이다.

         

       “그런데 그러면 네스가 별로 좋아할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포기를 했다 이 말이야. 오케이?”

         

       하지만 윌리엄은 그런 엘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맥주를 물처럼 마셔가며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저는….”

       “아이, 이 짜증 나는 애새끼 같으니. 다 알고 왔어. 내가 무슨 할 짓이 없어서 너 같은 발육부진 꼬맹이 새끼 언니 조사해서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온 줄 알아? 너! 너랑 똑같이 생긴 언니 있잖아.”

       “혹시 저랑 착각한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있나. 너랑 완전히 다른데!”

         

       윌리엄은 짜증이 난다는 듯 남은 맥주를 단번에 다 들이켜버렸다. 그리곤 이리저리 흔들어 안에 남은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한 뒤, 없는 것을 확인하자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탁자 위에 병을 놓았다.

         

       엘라는 더없이 폭력적이고 거친,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윌리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명감이 더더욱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절대로 아나스타시아를 만나게 할 수는 없다.

       저 변태 같은 취향에 눈을 뜬,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적인 망나니와 마주하게 할 수 없다.

       절대로 막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가슴이 다른데 착각을 할 리가 있나?”

       “네?”

         

       하지만 그녀의 결심도 곧 이어지는 윌리엄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

       황당함에 단단하게 굳은 사명감이 물렁물렁하게 변하고, 현실감이 단번에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엘라는 당황한 듯 윌리엄을 바라보았고, 그런 엘라의 표정을 윌리엄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저 꼬맹이가 지금 정곡을 찔려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라고.

         

       “흐, 왜.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걸 보고 놀랐나 봐?”

       “아니, 잠, 가슴이라니요?”

       “그걸 말로 해야 알아듣나? 너랑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가슴 말이야.”

         

       도저히 레이디의 면전에 대고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천박함이 가득 담긴 말.

       하지만 엘라는 그러한 천박함에 분노를 터뜨리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아니…. 잠시만. 잠시만요.”

         

       엘라는 아나스타시아를 보고 ‘가슴이 크다’라고 말한 윌리엄의 말에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엘라가 당황하고 있을 때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여긴 것인지 가방에서 손바닥 크기의 코팅된 종이를 꺼내 엘라에게 휙 날렸다.

         

       “잠시는 무슨.”

         

       그렇게 날아간 종이에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실력 있는 화가가 영혼을 쏟아붓기라도 한 것 같은 그림은 마치 사진처럼 정교했고, 화사한 톤의 그림은 그 안에 그려진 여성을 밝고 아름답고 자애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이건….”

         

       엘라는 그림에 그려진 여성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새하얀 머리카락.

       붉은색의 눈.

       성숙해 보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아름다운 미소.

         

       얼핏 보면 엘라와 흡사해 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엘라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청순해 보이는 분위기와 상반되는…에로티시즘(eroticism)을 자극하는 듯한 커다란 가슴이었다.

       노출이 거의 없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음에도 봉긋 솟아오른 가슴은 엘라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네 언니, 맞지?”

         

       그렇다.

       사진에 그려진 것은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 맞았다.

         

       그런데….

         

       “….”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 맞기는 하다.

       맞기는 했는데…. 적어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현실의 아나스타시아는 초등학생이나 다름없는 몸을 하고 있었기에.

       저런 몸을 하고 있었던 것은 오직 꿈의 세계에서뿐이었다.

         

       ‘이 모습을, 어떻게 아는 거지?’

         

       아나스타시아의 성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꿈과 집단 무의식의 표면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아나스타시아는 항상 자그마한 몸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엘라는 사진을 바라보며 의구심을 품었고, 고개를 들어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이제 발뺌하지 말라는 듯 오만하게 웃고 있는 윌리엄의 얼굴을 말이다.

         

       “…어떻게?”

       “뭘 어떻게야?”

         

       그는 앞뒤를 다 잘라먹은 듯 간결한 질문을 던진 엘라를 보며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내가 예언자인 거 몰라?”

         

       믿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반쪽짜리 예언자나 다름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예언 능력을 활용해서 자신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한들 그가 예언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예언 능력이 아니고서야 아나스타시아의 ‘꿈의 모습’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엘라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저 빌어먹을 인간이랑 엮이게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자신의 선에서 끊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하지만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찾아온 것은 지금인데, 사진 속의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은 성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실과 사진과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윌리엄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싫은데?”

         

       하지만 윌리엄은 약을 올리듯 엘라의 질문을 툭 끊어버렸다.

         

       “너 같은 애새끼가 들어서 뭐 하게. 이야기는 어른들이나 나누는 거야. 그러니까 네스나 불러.”

         

       그는 어린애에 불과한 엘라는 이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며 일축해버렸고, 빨리 네스를 부르라며 계속 재촉했다. 엘라는 그 오만하고 짜증 나는 모습에 발끈 화를 내려다가도 ‘짐승에게 화를 내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아그네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전화를 걸자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윌리엄이라는 망나니가 수십 번을 걸어도 연결되지 않던 아그네스의 전화가 몇 초 만에 연결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 어머, 무슨 일이니? ]

         

       윌리엄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며 살짝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고, 가방에서 맥주병 하나를 또 꺼내서 목구멍 안으로 쏟아부었다.

         

       “그게….”

         

       엘라는 평화를 즐기는 듯한 아그네스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윌리엄이 자신에게 연락했다는 것.

       연락을 무시하니까 자신이 가려는 가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부탁이 있다면서 말을 꺼내고, 언니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그 이유는 예언 때문이고, 그 증거로 자신에게 예언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줬다는 것.

       자세한 예언은 그녀가 와야만 이야기한다고 엄포를 놓은 것까지 전부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던 아그네스는 자그마한 한숨과 함께 엘라를 위로하는 말을 꺼냈다.

         

       [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나. ]

         

       아그네스는 엘라의 고생을 위로해주고는 금방 가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스승님은 금방 오실 거랍니다.”

       “알아, 들었어.”

         

       윌리엄은 아그네스가 이곳으로 올 거라는 말을 듣자 부산하게 움직였다.

       가게에 설치된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가다듬기도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돈하는 와중에도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라가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윌리엄은 자신의 나름대로 섬세하게 꾸몄다.

       자신이 꼬시려고 하는 여자가 들어왔을 때 좋은 인상을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그네스가 들어왔을 때….

         

       “Fuck?”

         

       그는 눈이 뒤집혀버렸다.

         

       아그네스의 뒤편에 웬 어려 보이는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다정하게 말이다.

         

       윌리엄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맥주병을 거꾸로 잡았고….

         

       “You bloody bastard! Bugger off! fucking arsehole!”

       “꺄악! 헤어 박?! 피하세요!”

         

       그것을 그대로 집어던져 버렸다.

       감히 아그네스와 함께 들어온 남자 놈을 향해서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약 안하고 올렸다가 깜짝 놀라서 삭제하고 다시 예약을 눌렀습니다…

    2022년 02월 22일 22시 22분…
    2022년 02월 22일 22시 22분…

    이 위대한 시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2022년 02월 22일 02시 22분.
    2022년 02월 22일 22시 22분.

    두 시간대에 두 편을 올리는…
    위대한 콩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종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이 예약회차를 올린 시간은 어제 올린 글 기준으로 22시간 전…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위대한 콩신의 가호가 있기를.
    위대한 콩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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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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