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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6

     미래, 그러니까 회귀 전.

     역사에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인간이 자신의 바닥을 보인 시점은 언제였을까.

     

     당연히 그 전설적인 ‘세인트 지오 런’ 사건 이후였다.

     

     제국과 지브롤터가 함께 왕국으로 진격하는데, 왕도의 수비를 딸인 나리아에게 맡기고 자신은 모르가니아로 도망친 사건.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

     윈체스터 대공마저도 크게 실망했고, 이런저런 회의감과 실망으로 인해 노스트럼 왕국이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화가 나서 죽었다.

     자신의 인생과 충성을 저런 인간에게 바쳤다는 것에 화가 나고 후회스럽고 원망하며 죽었다.

     윈체스터 대공 뿐만 아니다.

     끝까지 항전하려고 했던 어느 한 후작은 결사항전을 외치다 세인트 지오의 도주극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왕도에서 온 딸이 전한 소식에 순순히 성문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죽었다.

     후작 뿐만 아니라, 그렇게 여러 가문의 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처형대에 스스로 올랐다.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다.

     -그레이 변경백. 우리 가문은 나의 죽음으로 끝내주시게. 무능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끝까지 충성을 한 가주의 어리석은 독선때문에, 우리 가족들은 그저 피해를 봤을 뿐이라네.

     물론 나름대로 자식과 자신을 따로 결부시켜, 자신을 죽임으로써 남은 가족들이 제국에 의해 화를 입는다거나 하는 걸 막고자 한 계산도 있었기는 했다.

     그런 유서를 남기고 죽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혹은, 백은을 과다섭취하면서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상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무능왕이 성군이었더라면.

     무능왕이 지브롤터를 자극하는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나리아 공주를 왕으로 내세워서, 무능왕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 쫓아내기라도 했더라면.

     그런 일련의 사태를 보고 난 뒤, 과거로 돌아온 나는 세인트 지오를 믿는 이들의 심리를 한 번 파헤쳐보기로 했다.

     깨달았다.

     무능왕이 지금의 누아르와 같은 총명함을 보였다고 하더라.

     내가 알고 있는 그 개차반 누아르가 아니라,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가 나이 9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할 정도의 우량매물이었다고 하더라.

     아마도 그런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망가진 지금도 ‘분명 바뀔 수 있다’라고 계속 과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거겠지.

     뭐.

     하여튼.

     과거에 연연하면서 현재를 바라보지 않는 자들은 세인트 지오 런을 직접 겪어봐야한다.

     그 정도 충격을 겪어봐야 이제 과거로부터 빠져나와 현재를 바라보게 된다.

     지금과 같이.

     “세인트 지오를 믿나?”

     현재, 후작성 집무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손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나는 부끄러워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으아아아ㅡㅡㅡ!!”

     그림자 하나가 앞으로 달려온다.

     검을 움켜쥐며 달려오는 자세가 제국식 검법 중에서도 상당히 구식으로, 머스킷이 도입되고 난 뒤로 사양된 검법으로 알고 있다.

     “내전에서 이겼으면 세인트 지오를 계속 왕으로 세우려고 했겠어.”

     “크악!”

     말 때문에 충격을 받고 기함하는 게 아니다.

     다가오기 전에 창을 휘둘러, 접근하기 전에 옆으로 날려버렸을 뿐이다.

     “포기해라. 황금여명은 전부 제압되었다. 나머지는….”

     “죽어라, 도둑놈!!”

     “도둑?”

     눈이 붉은색으로 돌아간 그림자들이 달려든다.

     한 명이 정면에서 달려오고, 동시에 좌우에서 둘이 나를 협공하려고 펼쳐진다.

     “내가 황태자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죽어!”

     “억울하기는 하지만, 이해는 하지. 이해는 하는데.”

     창을 회수하여 지브롤터의 깃발을 칭칭 감아 한 손으로 붙잡은 다음, 창대의 위로 오러를 흘린다.

     “그렇다고, 세인트 지오의 손을 잡나.”

     그리고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수평으로 크게 휘두른다.

     서걱.

     손 끝에 닿는 감각에는 정확히 ‘넷’을 썰었다.

     좌우, 정면, 그리고 정면의 뒤에서 몰래 다가오고 있던 그림자까지 추가.

     “너희들의 패인은 단 하나다. 무능왕이랑 손을 잡았다는 것.”

     “소, 소드…마스터가 아니라고…?”

     “꼭 검만 마스터급으로 다룰 필요는 없지. 창도, 머스킷도, 심지어 스테이크 써는 은제 나이프도 오러를 일으키면 그게 오러 블레이드가 되는 거다. 조금, 길이가 길기는 하지만.”

     나는 천천히 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진 것도 아닌데, 왜 벌써 어둡게 암막 커튼을 펼쳐놓고 그러는 거지?”

     “……! 마, 막아!!”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나는 창을 크게 휘둘렀다.

     펄럭.

     암막 커튼이 잘려나감과 동시에, 창을 뒤로 휘둘렀다.

     오러가 깃든 창날의 간격 안에 들어오기 직전 그림자들은 멈췄으나, 그들은 내가 창을 옆으로 들고있음에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남의 나라 고혈을 빨아먹고 몸집 키우려고 한 기생충 같으니라고.”

     아직 시간은 오후.

     해가 떨어지기는 커녕, 노을도 지지 않은 오후.

     

     햇빛은 유리창을 따라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태양을 등진 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제국의 폐세자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까닥거렸다.

     “안 들어오고 뭐하나.”

     “…….”

     “눈에 보이는 ‘마스터’만 세 명은 되어보이는데, 햇빛 아래에서는 싸울 수 없다는 건가?”

     “크윽….”

     “그렇다면 이쪽에서 가주지. 도망치지 말라고.”

     나는 창을 바닥에 꽂은 다음,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햇빛을 지나, 그림자로 들어가는 순간.

     새애액!

     목을 스치듯이 검이 날아온다.

     발가락을 찍어버리겠다는 듯 도끼가 바닥에 찍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눈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왔다.

     “느려.”

     그 모든 공격을, 어깨 너머로 넘긴 손을 아래로 크게 휘두르는 걸로 튕겨낸다.

     손 끝에 만들어낸 오러로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튕겨내고, 도끼가 내 발을 찍기 전에 손을 아래로 뻗으며 오러를 아래로 쏘아내듯이 사출한다.

     그리고 눈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은 고개를 비트는 걸로 피한다.

     “뭣-”

     “뭐긴. 마스터지.”

     마침 나를 향해 검을 베려던 자와 눈이 마주쳐, 그대로 그 자의 허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거 좀 빌리지.”

     “아, 안 돼…!”

     

     허리에 꽂혀있던 레이피어를 뽑아 흡혈귀의 심장을 찌른다.

     흡혈귀든 마스터든 레이피어는 아무래도 ‘점’을 찌르다보니 심장을 찔러도 일격에 죽지는 않을 때가 있으나-

     한 번이 모자라다면, 죽을 때까지 계속 찌르면 그만.

     “커, 커헉…?”

     심장을 향해 레이피어를 넣고 빼기를 빠르게 반복한다.

     레이피어를 다루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1초 안에 7번을 찌르는 그런 달인급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3초가 지나가기 전에 빠르게 찌르기를 반복하여 흡혈귀의 움직임을 막았다.

     “크, 카, 카악…!”

     “모처럼 이렇게 왔는데, 나도 전리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심장에 구멍이 뚫려 움직임이 멈춘 흡혈귀의 멱살을 붙잡는다.

     “아, 안 돼! 라카몬드!”

     “드리테, 나는-”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나는 멱살을 쥔 채로 그대로 지브롤터의 깃발이 펄럭이는 창가를 향해 던졌다.

     “크아아아ㅡㅡㅡㅡ!!”

     푸쉬이이이.

     마법의 불꽃에 의해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

     혹은 지독한 염산에 살갗이 녹아내리는 소리.

     “마스터급 흡혈귀면 햇빛 아래에서도 좀 버티고 그러겠지만,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렸는데 햇빛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있나.”

     제법 예전부터 흡혈귀를 사냥해왔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흡혈귀가 된 자가 햇빛을 그대로 직시하여 몸이 재가 되어가는 소리.

     “다음.”

     몸 안에 들끓는 마나를 잠재운다.

     “여기 지금 다른 사람들 안 보고 있으니까, 오랜만에 좀 제대로 날뛰어볼까 하거든?”

     동시에 흡혈귀를 던진 손을 정장 안주머니에 넣어, 종이봉투 하나를 꺼낸다.

     “너희들이 싸우기 쉽게 그림자에서 싸우려고 하는데, 왜들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 이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종이봉투의 윗부분을 살짝 손으로 열어, 그대로 안에 들어있던 걸 입 안에 털어넣었다.

     “너희도 쓰는데, 나는 쓰지 말라는 법 있어?”

     “이….”

     “어차피 죽을 거기는 한데, 지금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면 하나 명심해두도록.”

     혹시나 모를 일이다.

     나도 과거로 돌아왔는데, 다시 태어난 뒤로 전생의 기억을 자각하거나 그런 기적이 있을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마스터의 대결은 왕국이든 제국이든 엄청 화려하고 촉각을 다투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건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힘들 정도로 비등비등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법이지.”

     나는 레이피어를 내 눈 높이로 들어올린 뒤, 어깨를 뒤로 당겼다.

     “대부분의 대결은 일격에 끝나는 경우가 많지. 한 합을 넘겼다고 해도, 방심한 틈에 심장에 칼 한 방만 꽂아넣으면 죽는 게 인간이니까.”

     그리고 남은 손을 레이피어의 아래를 받쳤다.

     “그러니까, 명심해둬.”

     마치.

     “항상 누구든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싸우라고.”

     머스킷을 쏘는 것처럼.

     “알겠지?”

     타ㅡ앙.

     “기억해.”

     “……?”

     그림자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곧,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는다.

     “이…무슨….”

     “너는 이게 마지막 죽음이라서 허무하겠지만, 꼭 죽음이라는 게 화려하게 모두의 앞에서 싸우다가 죽거나 하는 것만 죽음은 아니라서.”

     협곡의 사이에 있다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대규모 포격에 깔려죽은 이도 있었다.

     “쿠, 커헉, 커헉…!”

     “대장!!”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오러를 머스킷의 탄환처럼 쏘아낸 레이피어를 다시 앞으로 겨눴다.

     “다음에는 세인트 지오 같은 인간 있으면, 그 인간 따라서 뭐 할 생각하지 말라고.”

     타ㅡㅡㅡ앙!

     * * *

     “하아,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내쉬며, 기사 로버트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기사의 검을 튕겨냈다.

     “어림없다!”

     푸ㅡ욱.

     기사의 황금갑옷, 관절부 사이로 파고드는 검은 정확히 기사가 든 검이 허공에서 멈추게 만들었다.

     “크아아아!!”

     황금여명의 기사는 뒤로 물러나고, 로버트는 발을 들어 기사의 흉갑을 그대로 앞으로 걷어찼다.

     쿠ㅡ웅!

     황금여명의 기사가 대자로 쓰러진다.

     조금 보기 흉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국왕전하를 지켜라!! 후작성에 계신 전하를 지켜야 한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전하를 수호하라! 반역자들을 뚫어내라!!”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친다.

     그들의 얼굴에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즉시 자신의 미래는 없다는 것처럼.

     “로버트 경!”

     로버트의 뒤로 금발의 기사, 카를로스가 달려왔다.

     “괜찮나!”

     “아직, 할만하지…! 내부는?”

     “전부 정리 끝났어! 도우러왔다!”

     후작성 내부로 들어갔던 기사들이 입구의 기사들을 돕기 위해 합류했다.

     기사들은 전신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었고, 호흡이 전부 거칠어져 헉헉대고 있었으나, 그들의 앞-후작성 성문 앞에 가득한 시체는 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적을 베어넘겼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로버트 경. 혹시 얼마나 베었는지 기억하나?”

     “몰라…. 100명 이후로는 세지 못 했어.”

     “흐흐, 그렇군. 나는 30명 정도지만, 뛰어다니고 수색한 거리를 감안해주게.”

     “내기한 것도 아닌데, 숫자 따지기는…!”

     뿌ㅡㅡㅡㅡㅡㅡ우.

     갑작스럽게 울리는 나팔 소리.

     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나팔 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후작성 꼭대기에 붉은 무언가가 깃창을 든 채 서 있었다.

     “저건….”

     “도련님!!”

     그레이 지브롤터.

     와인으로 머리를 적신 것 같은 회색의 머리칼을 뒤로 넘긴 채, 그레이 지브롤터는 후작성 꼭대기에서 지브롤터의 깃발이 걸린 깃창을 든 채 서 있었다.

     “우리의 승리…!”

     “…카를로스 경. 내가, 도련님이랑 1000탈러 짜리 내기를 하나 했거든?”

     “내기를 했다고?”

     “그래.”

     로버트 경은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낸 다음, 안에 들어있는 붉은 액체를 단번에 들이켰다.

     “영지전 승리를 알리는 깃발 점령 이후, 과연 후작성의 인간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무, 무슨 내기를 한 건데?”

     “나는 전통과 법규에 따라 저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거라고 생각했고….”

     로버트는 하늘을 가리켰다.

     “도련님은 그렇게 해도, 인정하지 않고 생떼를 부리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 했지.”

     하늘.

     “…미치겠군.”

     황금의 비룡을 탄 마법사들이, 후작성 꼭대기에 있는 그레이 지브롤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겨눈채.

     “우리가 이겼잖나!! 영지전!!”

     “도련님이 그러셨다. 노스트럼은 자기들이 이길 때까지 계속 지랄하는 게 노스트럼이라고.”

     “…….”

     “어처구니 없겠지. 그래.”

     “…그, 로버트 경.”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카를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비룡들을 보는 도련님 있잖나. …웃고 계신 것 같은데?”

     “…내기에서 이기셨으니.”

     “위험하잖나!”

     “내기로 예측을 하셨다는 건, 그런 상황도 일어날 걸 감안하고 계신다는 것.”

     

     로버트가 호흡을 크게 내쉬며, 후작성 성문 방향의 하늘을 가리켰다.

     “…승부가 났으면, 심판이 와야지.”

     서서히 노을이 져가는 하늘 너머.

     먹구름과도 같은, 검은색의 무언가가 하늘을 뒤덮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장미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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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정치적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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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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