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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잠깐! 내 말 좀 들어…….”

       “묶어.”

         

       로즈마리는 구속됐다.

         

         

       **

         

         

       클라이스 하스펠트. 그리고 클라라 하스펠트.

         

       실종되었던 하스펠트의 두 딸이 돌아왔다. 이 소식은 하스펠트 공작의 귀에 금방 닿았다.

         

       “그게 정말인가?”

       “네. 두 따님은 제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레너윌은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바싹바싹 타는 입술을 혀로 문지르며 표정을 굳혔다.

         

       “당장 가 보세.”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레너윌은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는 두 딸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종합병원이라고 했으니 둘 다 중상이었을 터. 데스크로 향하는 레너윌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았다. 직원 안내로 방명록을 빠르게 작성하고는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305호, 305호…….”

         

       심경이 여러모로 복잡했다.

         

       레너윌은 입원실 문을 열어젖혔다.

         

       햇살이 들어오는 풍광. 그 양옆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아버지….”

         

       레너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클라이스 하스펠트와 클라라 하스펠트. 두 딸 모두 환자복을 입은 채로 혈관주사를 맞고 있었다.

         

       둘 다 몸이 여위었다. 클라라의 팔뚝에는 기다란 흉터가 져 있었으며, 클라이스는 많이 피곤한 것인지 눈가에 그늘이 생긴 상태였다. 어쨌거나 수척하고 추레한 모습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있던 레너윌은 곧 정신을 고쳐잡았다.

         

       “두 사람 모두 많이 고생했어요. 마왕군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생환한 거라고…….”

         

       뒤따라 들어온 헤를라인이 눈물을 삼키며 부연설명했다.

         

       헤를라인 또한 오랜만에 클라이스와 재회했다.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어려웠다. 벌써 손수건을 몇 번이나 갈아 끼웠다.

         

       “메리, 그만 울고 이쪽으로 오세요.”

         

       결국 헤를라인은 클라이스와 진득한 포옹을 나누고 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

       “공작님? 무어라 말씀을…….”

         

       예상과는 달리 하스펠트 공작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목소리를 떨지도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돌아온 두 딸을 번갈아 보며 무거운 투로 입을 열었다.

         

       “마수와 싸우다가 용맹하게 죽은 게 아니라,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왔단 말인가?”

         

       헤를라인은 크게 당황했다.

         

       “네, 아뇨…. 용감하게 싸우다가 포로로 잡혔던 거예요.”

       “다른 생존자는?”

       “없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레너윌은 무언가를 곱씹었다. 정치적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우물쭈물하던 헤를라인은 용기를 내서 과감하게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 자식들이 돌아왔잖아요. 안 기쁘세요?”

       “기쁘다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응이 밋밋하신 거예요. 혹시 부끄러우신 건…….”

         

       레너윌은 크흠, 하고 기침하며 말허리를 잘랐다.

         

       “헤를라인 후작, 잘 생각해 보게나. 내 딸들이 마왕성에서 노예로 굴려졌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이건 우리 가문의 위신이 추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네.”

       “아버님…….”

         

       헤를라인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됐어요, 메리. 아버님은 늘 이런 분이셨어요.”

       “클라이스…….”

         

       클라이스는 손사래를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더는 변호해주지 말라는 표시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이럴 때는 말 없이 안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버님, 마왕성에 붙잡혀 있다가 돌아온 거면 엄청 대단한 일이잖아요. 역사상 없었던 경우예요. 그런데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니요.”

         

       애초에 헤를라인은 귀족의 명예가 뭔지 잘 모르기도 했다.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이스, 클라라. 퇴원하는 대로 아비를 도와라.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네.”

       “알겠어요.”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딱딱한 가족관계. 이건 헤를라인이 기대하던 장면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이상으로 참견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겠지. 못내 씁쓸해진 헤를라인은 입술을 짓씹었다. 대신 두 사람이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매일 문병을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기력을 회복한 두 자매가 동시에 퇴원했다. 헤를라인은 미리 꽃다발을 사 와서 두 사람에게 건넸다. 퇴원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포옹을 나누었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이런 일은 해야만 했다. 친한 친구 사이 아닌가.

         

       “생각보다 빨리 퇴원했네.”

       “네. 생각보다 좋은 주인님을 만났…….”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클라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주인님?”

       “아…….”

       “혹시 내가 아는 그 아이야?”

         

       역시 헤를라인이다.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았음에도 누구인지 귀신같이 알아맞힌 것 같았다.

         

       어차피 숨길 생각도 없었다. 클라이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사실…….”

         

       그 뒤로 두 사람은 정보 교류를 끝마쳤다.

         

       헤를라인은 틸레트에서 있었던 ‘증기의 비’ 사건을 알려주었고, 클라이스는 이에 보답하듯 에테르와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렇게 두 가지 측면을 하나로 조합하여 본 결과.

         

       “저 때문에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요.”

         

       무시무시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핵폭탄인가 뭔가 하는 대규모 마법 때문에?”

       “네.”

       “그게 왜 너 때문이니?”

       “제가 그 아이에게 처음부터 잘해 주기만 했더라도…….”

       “아니, 지나간 일은 이제 그만 얘기하자.”

         

       전부 클라이스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헤를라인도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너한테 더 잘해 주어야 했었는데….”

       “어차피 안 들어먹었을 거예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들어주면 되지.”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지를 몰라서 둘 다 머뭇거렸다.

         

       그만큼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합의했다.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을 바에야, 아예 시원하게 넘겨버리자고. 그보다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자고.

         

       “아무튼. 오늘까진 쉬고 내일부터 교수직에 복귀하는 거지?”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럼 내일 보자.”

         

       두 사람은 중간에서 갈라졌다. 마음 같아선 귀환 기념으로 파티를 벌이고 싶었지만, 산처럼 쌓인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쪽입니다.”

         

       이제 헤를라인은 공무원 자격으로 구치소에 발을 들여놓았다.

         

         

       **

         

         

       레너윌은 여느 날처럼 고된 업무를 마치고 임시 거처로 돌아왔다. 왼쪽 손에는 주점에서 산 와인 한 병이 들려있었다. 샤르도네 품종이었는데, 도수가 제법 높았다.

         

       그가 사는 곳은 수도 근교였다. 적당히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

         

       1인용이라기에는 제법 넓은 집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그런 적막함도 오늘로 끝이다. 자신의 두 딸이 방 하나씩을 더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아오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두 딸이 시녀 대신 짐을 받아준다. 레너윌은 말하기 앞서서 침음을 삼켰다.

         

       “내일부로 일이 힘들어질 것이다. 실추된 가문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알겠어요.”

         

       이 모습을 헤를라인이 보았더라면 너무하다고 소리를 질렀겠지.

         

       이것이 하스펠트 가문의 모습이다. 레너윌은 늘 자신의 자식들을 엄격하게 가르쳐왔다. 평소 불필요한 말은 섞지도 않았고, 잡담을 나누어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세 사람은 기계처럼 식기를 준비했다. 이곳에 메이드 따윈 없었다. 하스펠트 가문도 나라에 전례 없을 수준의 세금을 기부금 형식으로 헌납하게 된 탓이다. 최대한 긴축해야 할 때였다.

         

       식사조차도 단출하게 진행됐다. 밥 먹는 일은 거의 5분에서 10분 사이에 전부 끝났다. 그 와중에 레너윌은 딸들 얼굴을 봐 주기는커녕 공문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

         

       후식으로는 방울토마토가 나왔다. 클라이스는 제 눈을 닮은 방울토마토를 포크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눈치를 보게 되는 건 덤이다.

         

       보다 못한 클라라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희랑 대화 좀 해 주시면 안 되나요?”

       “대화? 무슨 대화 말이더냐?”

       “오랜만에 돌아왔잖아요.”

         

       아까는 남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슬슬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여긴 개인적인 공간이잖아요. 잘 다녀왔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해 주시나요?”

       “잘 다녀왔다. 됐지?”

       “……아버지.”

         

       클라라는 입술을 달싹이려다가 말았다.

         

       “지금 가세는 물론이고 나라 자체가 기울어지기 직전이다, 클라라. 포로로 잡혔던 일이 부끄러운 줄 안다면 가능한 한 빨리 국가에 헌신하도록 하여라.”

         

       가문의 위신이 무엇인지. 또 국가에 헌신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클라라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

         

       클라이스가 물었다.

         

       “내일부터 할 일이 뭐죠?”

       “일단 황제 폐하부터 뵙도록 하자.”

       “그 다음에는요?”

       “너희와 같이 온 그 마수를 심문하러 갈 계획이다. 증인으로서 함께 가 주어야 할 게야.”

         

       여기에 교수직 복귀까지 해야 한다. 일이 다사다난해질 것이다. 레너윌은 짐짓 한숨을 쉬었다.

         

       “이제 됐구나. 밤이 늦었다. 둘 다 들어가서 자라.”

       “아버지.”

       “얼른 올라가도록. 세 번 말하게 하지 말고.”

       “…….”

         

       클라이스는 아버지의 말에서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이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클라이스는 클라라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양치도 했다.

         

       그렇게 퀸 사이즈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운 두 사람.

         

       “이렇게 자는 거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한 10년 만인가?”

       “더 되었을지도 몰라요.”

         

       두 하스펠트는 서로를 마주보며 베시시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때도 이랬지…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잠이 안 와요.”

       “나도.”

         

       두 시간? 체감상 그쯤 지났는데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주일 내내 숙면했던 탓이다.

         

       하스펠트 자매는 벽걸이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12시. 하루가 지났다.

         

       “오늘부터 일하기로 했죠?”

       “그렇지.”

       “지금 내려가서 도와드릴까요?”

       “너도 같은 생각 했구나.”

         

       공문서 정리라면 지금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다. 자매는 이불을 박차고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가는 모습에선 나름 장난기도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디 계시…….”

       “쉿!”

         

       앞서 걷던 클라이스를 클라라가 제지했다.

         

       “…….”

         

       이 시간대에 부엌의 보조조명이 켜져 있었다.

         

       하스펠트 자매는 숨을 죽이고 문지방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덜컥. 냉장고가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레너윌은 오늘 산 포도주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몸을 앉힌 채로 코르크를 능숙하게 따냈다.

         

       온더록스 잔에 도수 높은 술을 따라 마시던 레너윌은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

       “……올라가자.”

         

       클라이스와 클라라는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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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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