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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7

       수옥빈이 교단의 배신자까지 확실하게 처리하여 깔끔한 마무리를 지은 그 시각.

         

       ‘으윽…’

         

       나는 작게 신음을 뱉었다.

         

       무겁고 힘든 눈꺼풀을 겨우겨우 위로 들어 올렸다.

         

       곧 깜박 잠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이런…’

         

       눈동자만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다 무너진 도심과 매캐한 향.

       여기저기 도움, 치료를 요청하는 아비규환의 목소리.

         

       <기린>을 쓰러트리고,

       수옥빈과 대화를 마치고,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보통 2번이나 기절 한 적은 없는데…

         

       ‘삭신이 쑤시네…’

         

       이럴수록 만병통치약.

         

       우리 므냥이를 껴안고 ‘므아아~’를 듣고 싶었다.

         

       겸사겸사 주나용과 문보라의 볼따구를 당겨 ‘용아아! 훙엥엥!’도 듣고 싶었다.

         

       ‘하아…’

         

       나는 몸을 일으킬려 하였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때, 느껴지는 촉감과 소리.

         

       말캉.

         

       “하읏-!”

       “……?”

         

       손아귀로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

       그와 동시에 앙증맞은 귀여운 목소리.

         

       나는 의아함에 시선을 돌렸다.

         

       붉어진 얼굴로 살그머니 내 시선을 피하는 팽진아와 눈을 마주쳤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사이, 팽진아가 입을 열었다.

         

       “이, 일어났나. 유, 유세하 생도. 미안하다 갑자기 허벅지를 만져서 그만…조, 조금 예민한 부분이라…”

       “…어, 네?”

         

       응? 허벅지?

       몇 번의 눈깜빡임.

       나는 곧 상황 파악을 마쳤다.

       절로 입이 벌어졌다.

         

       ‘미친.’

         

       현재, 나는 무릎을 꿇은 팽진아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대고 있었던 거다.

         

       흔히, 러브코미디에서 무릎 베기 시츄에이션이라 불리는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이벤트.

         

       그것이 지금 나에게 펼쳐졌다.

         

       ‘홀리 쉣…’

         

       여기에 자세히 보니 내 몸 곳곳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그냥 평범하고 멀쩡한 붕대는 아니었다.

       모두, 팽진아가 입고 있던 훈련복을 찢어 만든 붕대였다.

         

       덕분에 현재 그녀는…

       그, 저기. 으음.

       여, 여기저기 살이 좀 많이 드러나는 넝마에 가까운 상태였다.

       안에 새하얀 색의 속옷과…야, 약간의 핑크빛이 감도는 그곳이 눈에 보였다.

         

       ‘…후우.’

         

       눈을 감고 작은 심호흡.

       겨우겨우 평정심을 찾는다.

         

       잠시 며칠 전 과거가 생각났다.

       문보라와의 하룻밤 동침하였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한발 빠르게 간파한 팽진아가 힘으로 저지했다.

         

       “죄, 죄송합니다!”

       “…! 일어나면 안 된다!”

         

       꾸우욱-!

         

       손으로 제지해도 될 텐데.

       팽진아는 구태여 상체를 이용해 덮치듯 저지했다.

         

       코를 타고 땀이 뒤섞인 카페라테 같은 달콤한 체향이 스며들었다.

         

       여기에 민망한 부위가 눈에 담길 정도로 확대되었다.

         

       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팽진아는 상황을 알려주기에 바빴다.

         

       “연락은 넣었다. 이제 곧 구조대가 올 거다. 그동안 안정을 취해라! 유세하 생도. 지금 너의 몸 상태는 절대 좋지 못하다!”

       “우, 우읍…저, 저기!”

        “어허! 가만히 있도록! 이럴 때는 스승을 의지하는 거다!”

        “그, 그런 게 아니라…무,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다, 다,…”

         

       닿습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

       팽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쩍 밑을 내려다보았다.

         

       몸을 푹 숙인 덕분에 나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닿은 검술 주머니를 확인했다.

         

       “……!”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팽진아는 얼굴을 붉혔다.

       서둘러 몸을 떨어트렸다.

       나는 덕분에 말랑말랑 천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 후아…”

        “미, 미안하다 유세하 생도. 불쾌한 경험을 시켰군.”

        “아, 아니…그렇지는…않습니다.”

       “…그, 그런가? 다, 다행이구나.”

         

       *

         

       나와 팽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지친 상황.

       나도, 그녀도 남아있는 여력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쟁취한 승리이기에 닥쳐오는 허무감.

         

       그 상황에서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팽진아였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나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스승님?”

       “…유세하 생도. 사실…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나는 그녀의 떨려오는 몸짓에 작게 움찔거렸다.

       그때랑 비슷한 진동이다.

       징다람 사건이 끝난 후.

       다급하게 달려온 그녀가 날 끌어안고 울었을 때와 비슷한 목소리였다.

         

       “…그대는…너무 무모하다.”

       “…스승님.”

       “처음부터 말했다. 구태여 이번 일에 그대가 직접 나설 필요 없다고. 그냥 정보만 알려주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그래서는-”

       “-그대는 아직 생도다! 어린 학생이란 말이다!”

         

       팽진아의 울먹이는 눈이 나를 꿰뚫었다.

       요새 느낀다.

       의외로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이리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

       “…나는 그대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 묵묵히 따랐다. 그대를 억압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역시 제자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것은 꽤 여러 가지 말이 담긴 말이었다.

         

       이번 일에 대한 사과.

         

       그리고…앞으로도 무모한 짓을 할 것에 대한 사과.

         

       팽진아도 이것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의 이마를 조심히 넘겼다.

         

       “…그래. 수옥빈의 말대로구나.”

       “…네?”

       “그 망할 여자가 말하더구나. 그대는 잡아둔다고 갇혀있을 존재가 아니라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는데…

       이번 일로 확실하게 느꼈다.

         

       “그대는 앞으로도 다가올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르겠지. 본인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

        “말리지 않으마. 대신 나도 함께하겠다.”

       “스승님…”

       “주변에 있는 아이들처럼…나 또한 너를 돕겠다.”

         

       그 정도는 허락해다오.

         

       “…저야말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팽진아는 나를 끌어안았다.

       작고 여린 어깨.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미안함.

       그리고 감사함을 표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요동치는 시간.

       그때 미묘한 기척과 함께 뒤통수가 약간 따가웠다.

         

       나는 [미증유의 감]을 켰다.

       누군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언덕 위.

       어깨에 <용검미르> 문양이 새겨진 로브의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특유의 진한 녹빛이 감도는 눈동자에서 약간의 눈웃음이 보였다.

         

       바로 알아보았다.

         

       ‘아! 아까…’

         

       ‘쁘띠 메테오’를 써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나는 힘이 너무 없기에, 무례하지만 고개만 내려서 감사 인사를 올렸다.

         

       로브의 여성은 개의치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며 뒤로 돌아갔다.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 모습.

         

       멋지다고 생각하였다. 동시에 속으로 다짐했다.

         

       ‘주나용에게 물어봐야겠어.’

         

       저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알게 되면 찾아가 반드시 고맙다고 인사드리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사악한 의도와 음모.

       <교단>의 존망을 앞에 두었던 S급 괴수 ‘기린’ 토벌.

       훌륭히 난관을 해결한 나는 한층 더 성장한 채 무사히 끝을 마칠 수 있었다.

         

         

       * * *

         

         

       유세하와 인사를 나눈 로브의 여자는 천천히 돌아갔다.

         

       어느새 그녀의 주변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용검미르> 소속 복장을 한 수백의 클랜원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최소 B급 이상으로 구성된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무장세력.

         

       리더로서 당당히 걸어가나가는 로브의 여자.

         

       곧 그녀의 옆에 부대장으로 추측되는 갑주의 여자가 다가왔다.

         

       투구를 벗는 여자.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용검미르 소속.

       <레드 와이번> 팀의 리더.

       초설화였다.

         

       초설화는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말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구태여 나서실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한번 거두어 주는 거로 저기 있는 자들이 살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로 생각한단다.”

       “교단입니다.”

         

       그 말에 로브는 멈추었다.

       지그시 초설화를 바라봤다.

       초설화의 눈에는 차디찬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이자 한이며, 틀림없는 증오의 불꽃이었다.

         

       “저들은 적입니다. 많이 죽을수록 저희에게 이득이 됩니다.”

       “……”

         

       실로 잔인한 소리.

       같은 인간 같지 않은 소리.

         

       로브는 말없이 바라보았지만, 초설화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첫째 아가씨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한 곳이 교단이라는걸.”

         

       그들은 저희의 도움을 짓밟고 무시했습니다.

       신성이라는 명목하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짐승들입니다.

       이번 기회는 그들을 무너트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로브의 여자는 그 말에 쓰게 웃었다.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자신이 나섰다면 이 토벌은 더욱 쉽게 끝났을 거다.

         

       하지만 나서지 않고 방관했던 이유.

       그들이 죽어가는 비명을 들으며 감상했던 이유.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긴 하지만…

       결국, 가장 큰 건 딸의 죽음을 비웃던 교단에 대한 분노가 원인이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딸아이의 시신을 보며 지껄이던 그년들이.

         

       ―근데 이상하네요. 첫째 따님의 옆에 그렇게 많은 호위가 있었는데 독살이라니.

       ―이래서 신성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성스러운 주신님이 주신 힘이 있다면 독에 걸릴 이유가 없는데. 혹시…

         

       안 죽은 걸 일부러 연기하며 빌런, 마인 토벌권을 따내려는 계획은 아니시죠?

         

       그들이 병신도 아니고, 확실하게 독에 당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구태여 그런 소리를 한 이유는, 명백히 이번 기회에 <용검미르>에 흠을 내겠다는 치졸한 도발이었다.

         

       알고 있었다.

       유치한 말이라는걸.

       하지만 피가 거꾸로 솟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신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 아이의 죽음을 들먹였던 주교.

         

       그 자리에서 바로 얼굴 가죽을 뜯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로브의 여자는 눈을 감다가 초설화를 바라보았다.

         

       “초설화 팀장. 그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그러면!”

        “하지만 당연하게도…<교단> 소속의 모두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니란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을 위한 말을 더더욱 아니고.”

         

       초설화는 부정했다.

         

       “성기사든 종기사든 수습 사제든 모두 다 한통속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성에 대한 열등 사상을 주입받아 온 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그래 보여?”

       “네?”

         

       로브의 여자는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 시선에 언덕 밑을 내려다보는 초설화.

         

       이내, 펼쳐지는 한 장면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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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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